법원, 삼성반도체 ‘뇌종양’ 산업재해로 첫 인정 판결

삼성반도체 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 피해자 고 이윤정, 유명화 씨 산재 인정

법원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 뇌종양으로 사망한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처음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7단독 이상덕 판사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을 하다 뇌종양으로 사망한 고 이윤정(32) 씨의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아울러 고 이윤정 씨와 같은 공정에서 일을 하다 재생불량성빈혈을 얻어 투병중인 유명화(32) 씨의 산업재해도 인정했다.

재판부는 “벤젠과 납, 포름알데히드와 같은 유해화학물질과, ‘극저주파 자기장’에 일정기간 지속적이고 복합적으로 노출돼 뇌종양, 재생불량성빈혈이 발병했으며, 업무와의 연관성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어서 “주야간 교대근무를 하면서 누적된 피로와 스트레스 등이 신체의 면역력 저하를 초래해 질병의 발병이나 진행을 촉진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근로복지공단의 의뢰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실시한 역학조사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역학조사 기관이 일부 화학물질에 대한 조사만 했을 뿐. 배출가스와 검댕에 어떤 물질이 함유돼 있었는지 규명하지 않은 채 조사를 종결했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은 역학조사를 통해 질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재판부는 “근로자에게 책임 없는 사유로 사실관계가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이러한 사정은 상당인과관계를 추단함에 있어 근로자에게 유리한 간접정황으로 참작함이 마땅하다”며 “특정 화학물질과 질병 사이의 관련성이 아직 연구되지 않은 상태라는 점을 ‘관련성이 없다’, 또는 ‘낮다’는 판단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고 이윤정 씨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7년, 삼성전자 온양공장에 입사해 고온테스트(MBT)공정에서 일을 해 왔다. 퇴직 후인 2010년 5월 악성 뇌종양이 발병했고 2012년에 사망했다. 이번 판결로 고 이윤정 씨가 산재신청을 제기한 지 3년 7개월 만에 산업재해를 인정받게 됐다. 유명화 씨 역시 이 씨와 같은 공정에서 일하다 1년 만에 재생불량성빈혈을 얻어 10년 넘게 투병중이다.

반도체노동자의건강과인권지킴이(반올림)에 따르면, 반도체, LCD공장에서 일하다 뇌종양이 발병한 제보자는 현재까지 20여 명에 달한다. 이 중 산재를 신청한 이는 5명이며, 뇌종양을 산업재해로 인정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 반도체 노동자 중 재생불량성빈혈을 산재로 인정받은 사례는 이번이 세 번째다.

반올림은 논평을 발표하고 “더 이상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들과 피해가족들에 맞서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며 “국민들이 기대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정부의 역할은, 재해노동자에게 신속한 보상을 하고, 다시는 이런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업주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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