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정당했다”, 법원 앞 분노의 울음 뒤덮여

원심 깨고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잔인하고 무책임한 판결”
해고 노동자들, 또 다시 길거리에서 여섯 번째 겨울 맞이하나

대법원이 2009년 쌍용자동차의 대규모 정리해고가 정당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결 직후,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대법원 앞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대규모 정리해고로 길거리에 내몰린 지 2002일 되는 날이자, 전태일 열사 44주기를 맞은 날이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13일 오후 2시, 쌍용차 해고노동자 153명이 쌍용차를 상대로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던 원심을 깨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재판부가 법정에서 “원고 152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고등법원에 환송한다”고 선고를 내리자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판결 이후,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을 비롯한 쌍용차 해고자들은 법정을 빠져나오며 눈물을 터뜨렸다. 다른 해고자들과 쌍용차 비정규직 노동자, 연대단위들도 침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밀양 송전탑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서울 상경에 투쟁을 벌이고 있는 밀양 주민들도 법원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대법원 “쌍용차 정리해고 정당했다”, 원심 깨고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

대법원은 쌍용차 대량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다’고 봤다. 국제금융위기와 경기불황 상황에서 연구 및 신차 개발 소홀로 경쟁력이 약화되는 등 구조적 위기에 있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재판부는 기업운영에 필요한 인력규모 여부는 경영진이 판단할 몫이라며 선을 그었다.



재판부는 “기업 운영에 필요한 인력의 적정 규모는 경영판단의 몫이어서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영자의 판단을 존중해야 한다”며 “사후에 노사대타협으로 해고인원이 축소됐다는 사정만으로 사측이 제시한 인원 감축 규모가 비합리적이거나 자의적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단행하기 전, 부분휴업과 임금동결, 순환휴직, 협력업체 인원 축소, 희망퇴직 등의 조치를 실시한 것을 두고는 ‘해고회피 노력을 다 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고등법원이 인정한 회계장부 조작 문제에 있어서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2008년 재무제표 상 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다계상 여부와 관련해, 신차 출시 시점이 불확실하고 기존 차종의 경쟁력이 약화된 상태여서 현저히 합리성을 결여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지난 2월 7일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을 모두 부정한 셈이 됐다. 당시 고등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 당시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거나 해고 회피 노력을 충분히 다했다고 볼 수 없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회사가 해고 회피 노력을 일정부분 한 점은 인정되지만,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고등법원은 회사가 정리해고 당시, 재무건전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며, 노조가 주장해 왔던 회계장부상의 문제점 또한 인정했다. 고법은 “쌍용차가 정리해고 당시 유동성 위기를 겪은 사실은 인정되지만 유동성 위기를 넘어 구조적인 재무건전성 위기까지 겪고 있었다고 볼 수 없다. 손익계산에 있어 회계장부상 산출근거 자료도 뚜렷하지 않다”고 밝혔다.

법원 앞 분노의 울음...“사측, 대법관 출신 포함 19명의 대규모 변호인단”

쌍용차 해고자들은 대법원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판결을 내렸다며 분노했다. 대법원이 해고 노동자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았다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김득중 쌍용차지부 지부장은 판결 직후 “많은 해고자들이 어젯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6년간 벼랑 끝에 서 있는 노동자들에게, 대법원은 오늘 대못을 박았다. 법리적으로만 다퉜으면 승소할 수 있는 문제였지만, 사측은 대법관 출신을 포함한 19명의 대규모 변호인단을 꾸렸고 전관예우라는 관행이 발목을 잡았다”며 “가장 두려웠던 것은 사법부가 친 자본, 반노동적 입장으로 노동자들을 다시 벼랑 끝으로 내 모는 것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 곁을 떠날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 때문에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이어서 “판결 직후, 주변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 이는 분노의 눈물이자, 6년을 버텨왔던 것처럼 또 다른 행동을 결단하기 위한 눈물로 봐 달라”며 “향후 법률적 대응을 계속 해 나갈 것이며, 빠른 시일 내에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또 다른 결단을 하겠다. 반드시 승리해 공장으로 돌아가겠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원고측 법률대리인인 김태욱 금속법률원 변호사는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변호사는 “모든 재판에는 입증 책임이라는 것이 있다. 하지만 쌍용차 회사 측은 소송 중에 유형자산 손상차손 과다계상문제와 인력구조조정 문제 등의 입장이 계속 바뀌었다. 그럼에도 대법원은 회사 측의 주장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파기환송이 되더라도 심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관계를 밝혀낼 경우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 특히 고용안정협약을 위반한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법원 판시가 있다. 이번 재판에서는 노조가 고용안정협약 부분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향후에는 회사가 내팽개친 고용안정협약 문제를 중심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겠다. 아직 법정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이번 대법판결을 앞두고, 열흘 가까이 대법원 앞에서 24시간 노숙 농성을 진행해 왔다. 대법원의 공정한 판결을 촉구하며 7일 째 법원 앞에서 매일 2천배를 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결국 스물다섯 명의 노동자, 가족의 목숨을 앗아간 쌍용차 정리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번 판결로 남은 해고 노동자들은 또 다시 길거리에서 여섯 번째 겨울을 맞이해야 한다. 또 다른 해고 노동자와 가족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을까, 라는 불안함과 공포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밀양에서 상경한 할머니들도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다지 않느냐. 대법원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며 “정부와 법원, 회사가 짜고 치며 노동자를 죽이고 있다. 이런 법은 없다”며 오열했다.

한편 쌍용차지부는 조만간 회의를 통해 향후 투쟁 계획을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15일에는 쌍용차 평택공장 앞에서 정리해고 2000일 투쟁 집회가 열린다. 이창근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이번 판결은 잔인하고 무책임한 판결이다. 법원 권력과 자본의 편이었다. 대법원이 노동자 고통의 숙주였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 판결이다. 하지만 다시 싸우겠다. 전 국민적 불매운동을 포함한 계획들을 세워나가겠다”며 “회사는 이미 정상화의 길에 접어들었다. 정리해고로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빨리 현장에서 일할 수 있도록 종합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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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공

    용기 잃지 마시고 새로운 사실관계를 찾아내고 밝혀서 반드시 복직하시길 기원합니다.
    여러분의 복직이 쌍용차를 살리는 길입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이 쌍용차를 오히려 죽이는 것임을 제대로 각성하여야 할것이다!!!

  • 비정규직

    너무도 슬픈 현실입니다 쌍용차해고자분들 힘내십시오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투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