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는 예고편...어딜가나 '죄송합니다'”

[여성노동자, 말하다] (2) 대형마트 여성노동자

3년 전, 대형마트에서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소식을 듣고 입사한 김미숙(가명, 40대)씨. 마트에서 일하면서 ‘죄송합니다’가 입에 붙었다. 그녀도 이 일을 3년이나 할 줄 몰랐다. 고객에게는 항상 죄송해야 했고, 관리직원에게 “아줌마”라고 하대당하며 자존심을 구겨가며 일하는 직장 동료들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미숙씨는 “처음에 들어와서 언니들한테 이런 대접 받고 왜 안 나가느냐고 말했다. 그때 언니들이 니도 다 하게 된다고 그랬는데, 지금까지 하고 있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어 “아줌마들 나가봤자 일자리 있느냐, 여기 사람이 어디 가서 일하겠느냐는 비아냥도 들었다”고 말했다.

마트에 오기 전, 미숙씨는 10년 동안 삼성계열 보험회사에서 일했다. 보험회사 일을 그만둔 후, 마땅한 직업을 찾지 못했다. 중년 여성이 찾을 수 있는 직장이 흔치 않았다. 미숙씨 처지에 마트는 오전에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 출근할 수 있어 좋았다.

그녀는 “4~50대 여성은 전문직이 아니라면 딱히 갈만한 데가 없다. 아니면 공장에 간다든지 해야지. 딱히 갈 데가 없다”며 “나이 때문에 우리가 수그러들고 하는 것도 있다. 이 나이에 우리가 어디 가겠나 하는 마음도 있다”고 말했다.

같은 마트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이지현(가명, 40대)씨도 같은 처지였다. 지현씨는 “알바 구한다고 왔는데, 이렇게 힘든지 몰랐지. 장사도 진짜 잘돼. 전국 열 손가락 안에 든다”며 “3년 회사에서 일하다가 그만둔 후로는 집에 있었다”고 말했다.

대형마트 1층은 ‘아오지탄광’이라 그랬다

미숙씨와 지현씨는 마트 1층 가공식품 판매장에서 일한다. 제품을 진열하고, 결품(팔려 나간 물품)을 채우고, 가격표를 붙이는 일이다.

과자 판매대에 근무하는 미숙씨는 “어제까지 빼빼로데이 땜에 난리 났다. 물건 가지고 와서 비면 채우고, 우리는 그걸 ‘까대기 친다’고 부른다”며 “결품된 제품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 후방에 구석구석 있다. 특히 빼빼로 이런 건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일하는 건 1층이 제일 힘들다. 옛날엔 아오지탄광이라 그랬다”며 “장사가 잘 되니깐 제일 늦게까지 일한다. 마감 정리하는데 손님들이 와서 물건을 쏙쏙 빼간다. 11시 50분까지 정리해야 하는데, 어제 같은 날은 채워도 채워도 끝이 없다”고 토로했다.

가공음료 판매대에 근무하는 지현씨는 “일하는 데 남자 1명, 여자 4명이 있다. 커피, 차, 물, 음료수를 파레트로 끌고 옮겨서 진열해야 한다”며 “짐이나 파레트 무거운 걸 많이 들고 가는데, 고객들이 잘 안 비켜준다. 무게 때문에 정지가 잘 안 되는데, 비키라고 소리 질러도 잘 안 비켜주고, 고객이 다치면 또 난리 난다”고 말했다.

‘고객이 왕’인 서비스업계에서 이들은 항상 죄인이다. 잘못이 없어도 일단 사과를 해야만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손님이 원하기 때문에. 빽빽한 지하철에서 몸이라도 살짝 부딪히면, "죄송합니다, 고객님"이 튀어나왔다.

쇼핑 종착지이자 불만의 종착지 계산대, 영화 <카트>는 일부분

지난 13일 개봉한 영화 <카트>는 대형마트 노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영화에는 관리팀장이 직원을 세워놓고, 한 직원을 공개적으로 질책하는 장면이 나온다. 캐셔가 사과를 요구하는 손님에게 무릎을 꿇고 눈물을 삼키며 사과하던 장면도 있다.

또 다른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일하는 캐셔들은 “영화 장면은 덜 하다. 영화에 나오는 건 진짜 일부분”이라며 입을 모았다.

영화 <카트>를 보고 난 후, 캐셔들은 너도나도 영화보다 더한 현실을 토해냈다.

어느새 대형마트 캐셔로 근무한 지 10년을 넘긴 정지영(가명, 50대)씨는 “줄 세워놓고 훈계하는 건 몇 년 전까지도 있었다. 영화 장면은 덜하다”며 “고객님 감동시켜야 한다면서 위에 관리직들한테 당하는 거지. 그런대서 마음을 더 다친다. 손님들한테 다치고, 왜 그런 식으로 응대해서 클레임 걸게 하느냐고 관리직들한테 다치고...”라고 말했다.

이어 “고객이 클레임을 걸면 무조건 잘못하는 게 된다. 우리는 무조건 죄인이다. 내가 잘못했는지 살펴보지도 않는다. 내용도 필요 없고, 결과만 따진다”며 “고객 앞에서 사과하는 경험은 다 가지고 있다. 손님이 큰소리 내면 무조건 죄인이 되는 거다. 입에서 ‘죄송합니다. 고객님’부터 나간다”고 말했다.

계산대는 마트 쇼핑의 종착지다. 이 때문에 계산대는 쇼핑하면서 쌓인 불만도 계산하는 곳이 된다. 터무니없는 클레임에 울면서 제품 계산을 한 적도 많았다.

남편과 함께 <카트>를 본 박정아(가명, 40대) 씨는 영화의 감정노동은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회사는 고객님 눈 맞춰라, 감동서비스를 하라고 한다. ‘어머 손님 오늘 예쁘시네요’ 스몰토킹도 하라고 한다. 미스터리 쇼핑이라고 해서 평점도 매긴다. 제품 스캔 속도도 측정한다. 개인 평점이 낮으면 상담도 받아야 한다. 점수로 순서 매겨서 벽에 붙이고. 부서이동 한다고 협박하기도 했다”

캐셔의 업무는 계산이 전부가 아니다

캐셔의 업무는 계산이 전부가 아니다. 눈 맞추기, 스몰토킹 등 고객 감동서비스는 물론이고, 회원카드 발급, 신용카드 발급, 마트 할인권, 응모행사 안내까지…. 그러면서 제품 스캔 속도도 맞춰야 했다.

제품 스캔을 다 해도 손님이 제품을 다 담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러는 동안 뒷손님이 클레임을 제기하면 그것 또한 오롯이 캐셔 잘못이 된다.

지영씨는 “빨리 안 하면 왜 빨리 안 하느냐고 하고, 원칙대로 하면 융통성 없다 그러고. 했던 일을 반복하면 더 편해져야 하는데, 일은 더 많아지고, 힘들어진다”고 하소연했다.

계산대 청소, 장바구니 청소도 캐셔의 몫이다. 계산대 주변 청소 3년 전 청소 인원을 절반으로 줄이면서, 직접 청소를 하게 됐다.

길면 계산대에서 3시간여 동안 있어야 할때도 있었다.

정아씨는 “쉬는 시간이 없다. 화장실도 참아야 한다. 바쁘면 참아야지. 주말 알바들은 현기증 나서 넘어지고 그런다”며 “기계에 불과했지. 내가 너무너무 힘들면 웃음이 안 나잖아. 딱 2시간이 한계다. 2시간은 진짜 웃으면서 할 수 있는데, 지나면 디가지고(힘들어서) 못 한다”고 말했다.

4~50대 아줌마들이 이렇게 많은 곳은 대형마트뿐

지영씨는 “10년 전 임금이랑 지금 차이는 얼마 안 난다. 나이 들면서 좋은 직장 구하겠나 싶은 그 생각하니까 맞춰서 만족 하려고 하는 거지. 4~50대 아줌마들이 이렇게 많이 모여서 일하는 데가 없다”고 했다.

지영씨는 이 마트가 결혼 후 첫 직장이다. 10년 넘게 한 곳에서 일하면서 결혼한 중년 여성이 아르바이트로 취직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지영씨는 “집에서 살림하던 사람들이 와서 일하지, 7~80만 원 받으면서 (젊은 사람들이) 못 한다”고 말했다.

캐셔의 취직 동기는 모두 제각각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결혼 후 경력 단절 때문에 재취업이 힘들었다는 점이다. 캐셔는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어 집안일과 함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이었다.

내 평생직장, 좋은 직장을 만들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들다

마트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이곳을 평생직장으로 삼고 싶어 했다. 그러나 혼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유종철 홈플러스노동조합 조직국장은 “노동조합을 서립하면서 노동조건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임금인상보다 앉아서 일할 수 있게 된 점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며 “이전까지는 미스테리 쇼퍼들때문에 손님이 없어도 서 있어야 했는데 파업을 겪으면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다”고 말했다.

병가와 휴식시간을 확보한 것도 성과로 꼽았다.

유종철 조직국장은 “이전에는 병가시스템이 아프면 연차를 당겨 썼다. 병가제도가 분명 있는데 공지를 안 한 거다. 그래서 내후년 연차까지 끌어 쓰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제는 달라졌다”고 말했다.

하루 7.5시간을 근무하던 일명 ‘점오제’도 폐지됐다. 8시간 근무 시 발생하는 휴식시간과 수당을 주지 않기 위한 꼼수다.

그는 “봉급이 올랐다고 보면 된다. 8시간 근무하고, 30분 유급 휴식시간이 생겼다”며 “지금까지는 휴식시간이 있어도, 1층 가공 쪽에는 바쁘다 보니까 못 쉬었지. 사무실에서도 ‘쉬세요’이런 말도 안 한다. 몰래 눈치 보면서 쉬다가 이제 당당하게 쉰다”고 말했다.

어깨에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진 대형마트의 여성노동자. 영화 <카트>는 이들에게 동질감과 더불어 희망을 안겨줄 수 있을까.
덧붙이는 말

김규현 기자는 뉴스민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뉴스민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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