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유니온과 알바노조, 그 변방의 목소리

[주례토론회] 같은 듯 다른 두 조직의 결성과 운동


음성파일 강의(클릭)
음성파일 질의 및 토론(클릭)


I. 청년유니온

1. 들어가며

청년유니온(Youth Community Union)은 2010년 3월 창립한 최초의 세대별 일반노조이다. 이 글은 지난 약 5년 동안 청년유니온의 결성 과정, 활동 실태 및 내부 운영을 정리하고 청년유니온의 등장이 던지는 시사점을 정리하였다. 사회적 관심도에 비해 청년유니온의 실태에 대한 조사연구가 거의 전무한 실정에서 이 글의 일차적 목표는 운영 및 활동실태에 대한 객관적인 파악에 두어졌다.

이를 위해 2014년 4월부터 6월까지 청년유니온의 전현직 상근활동가 7명과 개별 면접조사를 수행하였고, 다양한 형태의 문서자료를 입수하여 분석에 보충하였다. 연구참여자는 청년유니온 1기 위원장·사무국장·정책기획팀장, 2기 위원장(현 경기지부장), 3기 위원장·사무처장·정책국장(2기 사무국장) 등의 전현직 임원 및 집행간부들이다. 면접 조사는 약 1-2시간 동안 진행하였고 모두 녹음하였다. 면접조사의 주요 내용은 청년유니온 활동의 동기와 개인적 배경, 주요한 캠페인 활동의 구체적 실태, 청년유니온에 대한 현재적 평가와 향후 과제에 대한 인식 등이었다.

청년유니온의 조직 현황을 간략히 살펴보면, 2009년 8월 청년유니온(준)이 결성된 후 2010년 3월에 정식으로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창립 당시 조합원은 42명이었고, 조합원 자격을 “만 15-39세의 비정규직, 정규직, 구직 중인 노동자”로 한 세대별 일반노조 형태를 갖추었다. 창립 이후 설립신고를 하였지만 ‘구직자’의 조합원 자격을 이유로 5차례 반려되었고, 이후 2012년 3월에 서울청년유니온이 설립신고를 처음 받은 후 2013년 4월에 완전히 합법노조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규약 상 조합비는 월급의 1%를 권고하고 최저임금 시급을 조합비 최소금액으로 명시하였다. 조합비 납부율은 대략 60% 정도로 알려져 있다. 2014년 7월 현재 조합원은 총 891명이고, 약 200명 정도의 후원회원이 있다. 대의구조를 보면, 20명당 1명의 대의원을 두고 있고, 지역별·부문별 할당을 한다. 집행체계는 1처 3국 4팀으로 사무처 아래에 정책국, 노동상담국(사건대응팀, 노동인권교육팀), 조직국(청소년사업팀, 대학생팀)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서울을 포함하여 9개 광역시도 단위로 지역지부가 결성되어 있다. 창립부터 현재까지 가입한 상급단체가 없는 독립노조로 운영되고 있다.

2. 창립의 동기와 과정

청년유니온은 기존 노동조합과는 독립적으로 청년층 불안정 노동자의 이해대변을 위해 청년 당사자들이 자체적으로 조직한 노동조합이다. 청년유니온을 구상하고 설립을 주도한 핵심 멤버는 4명으로, 이들은 2009년 초반부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아 2009년 8월 청년유니온(준)을 출범시켰다.1 설립의 핵심 멤버 4명은 1978년에서 1984년 사이에 태어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학에 입학한 이른바 ‘포스트-IMF 세대’로 1997년부터 2003년 사이에 대학에 입학하였고 주로 NL계열의 학생운동을 한 공통점이 있었으며 설립을 도모하던 2009년에는 대략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의 연령대에 속하였다.

처음 청년유니온 형태의 청년 노동운동 조직의 설립을 제안한 활동가는 당시 국회의원(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실) 보좌관이었는데, 그는 청년실업에 대한 정책적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사회운동(노동운동과 시민운동)에서 청년 세대의 고용문제가 주변적 의제라는 점을 확인하고 ‘청년 당사자’ 중심의 새로운 사회운동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의원실 주최의 정책 세미나에서 일본의 수도권청년유니온 사례를 우연히 접하고 이러한 조직 형태를 벤치마킹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신의 아이디어를 주변의 노동조합, 시민운동단체, 청년운동단체, 진보정당 등의 활동가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새로운 운동을 할 주체를 모으는 과정에서 나머지 3명의 초창기 핵심 멤버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기존의 노동조합이나 청년운동단체의 주요 활동가들이 청년실업이나 청년 노동운동에 관한 문제의식이 대단히 빈약하거나 자신들의 새로운 구상에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을 확인하게 된다.

일단 청년운동 하는 친구들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운동이냐’에서부터 ‘왜 청년이 노동조합을 해야 되냐, 원래 전통적인 자기네 운동과 어긋난다’, 뭐 이런 전형적인 얘길하고, 노동운동 쪽에 계시는 분들은 ‘그냥 민주노총 들어와서 하면 되지, 뭐 그런 걸 하냐’, ‘청년들이 뭐가 힘드냐, 노동자들이 힘들지’, 여전히 그런 얘기들이 있었고. … 저희가 구상했던 당사자들이 조합원이 되고 노동조합이 되는 방식에 대해 반대에 굉장히 많이 부딪혔어요. 특히 노동운동 쪽에서는 거의 대부분이 이제 ‘그게 무슨 노동조합이냐’, ‘너희들 사용자가 누구냐’, ‘임단협을 어떻게 하냐’ 이게 첫 번째 질문이었고, 두 번째는 청년실업이 심각한 건 알겠는데, ‘민주노총 산별에 가입하면 되는 거 아니냐’ 이 두 개가 제일 컸죠. (연구참여자 1-A)

당시 이들 4명은 대학을 졸업한 이후 한편으로는 사회운동에 대한 개인적 전망을 고민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생계유지와 학자금대출 상환 등의 경제적 압박 속에서 불안정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당시 직업은 국회의원 보좌관, 학원 강사, 휴대폰 조립업체의 파견노동자, 단기계약직 아르바이트 노동자 등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포스트-IMF 세대 청년들이 겪는 저임금 불안정 노동과 생존 경쟁을 몸소 겪고 있었고, 그만큼 청년 당사자가 스스로 조직하는 노동운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특히 주목되는 점은 청년유니온을 매개로 유사한 고통을 겪는 또래 친구들을 만나 사회적 발언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며 사회적 주변화와 고립을 경험하던 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삶의 전환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이다. 당시 휴대폰 제조업체의 파견노동자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던 연구참여자와 졸업 이후 학자금대출 상환의 압박 속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사회적 고립에 직면해 있던 연구참여자 두 명의 다음 발언은 당시 청년유니온이 그들의 내면적 풍경에 어떻게 와 닿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공장생활 한 2년 하면서 상대적 박탈감도 되게 많이 느꼈고요. … 그 때 내가 정말 이렇게 사회에 불필요한 존재인가 이런 생각을 되게 많이 했었죠. … 저는 처음에는 이렇게 뭔가 노조로서 어떤 사회적인 이슈파이팅이 이렇게 크게 되고 이런 것까지는 상상하지를 못했었고, 진짜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때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힘들고, 어디에서 하소연도 못하고, 보호받을 곳도 없고, 그래서 저는 이렇게 이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게 내가 진짜 부족하거나, 예전에 엄마 말처럼 공부를 제대로 안하거나 이래서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이럴 수밖에 없는 구조구나라는 것을 책이 아닌 실제 제가 경험하게 되면서, 그냥 위로받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공감하고 싶었고, 친구들을 만나고 싶어서 사실은 청년유니온을 그렇게 함께 해보자고 했었던 게 있었죠. (연구참여자 1-C)

저는 이제 되게 피폐하게 매일 출근하고 집에 오면 잠만 자고 그래서 돈 벌어가지고 학자금 대출만 갚고 있었던 상태여서 굉장히 별로 안 좋았어요. 친구들도 잘 안 만나고, 되게 우울해 하고 있었죠. … 제가 학생운동도 했던 애지만, 그 학자금 대출 60만원씩 갚아야 된다는 압박, 압박을 계속 받으면서 그리고 내가 왜 4년제를 욕심을 부려가지고 집안 형편도 안 좋은데 굳이 빚까지 얻어가면서 욕심을 부려서 이런 고생을 하고 있는건가, 저를 자책하고 되게 그러면서 우울해 했었던 거에요. 그랬는데 그게, 너의 욕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그게 되게 위로가 됐었고 공감도 되면서 저같이 생각하는 애들이 너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래서 ‘그게 아니다’라는 거를 다른 친구들한테도 알려주고 싶었고, 그 때는 무슨 가능성이 크게 보였던 거는 아닌데, 뭔가 이런 친구들이 모여서 일단은 좀 위로하고 공감한 다음에 사회에 나만의 욕심이 아닌, 나의 욕심 때문에 이런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좀 말하고 싶었어요. … 아, 저는, 제 얘기를 한 번 해보겠다라고 해가지고 이제 같이 시작하게 됐던 것이죠. (연구참여자 2-A)


2009년 8월에 청년유니온(준)은 활동을 시작하였다. 위에서 소개한 4명 이외에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지인들, 그리고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계기로 모였던 ‘안티2MB’ 카페 회원 등 약 15-20명이 창립 준비모임에 결합하였다. 청년유니온(준)은 공개토론회 또는 공개강좌 개최, 청년실업 대책 촉구 기자회견 참석, 민주노총 미조직특위 워크숍 참가, 청년실업극복 콘서트 개최, 청년인턴 실업급여 지급촉구 1인 시위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치면서 조금씩 존재감을 드러내었다. 청년유니온 설립을 전후하여 기존의 노동운동 진영에서 후원과 자문에 적극적으로 나선 이들은 주로 지역일반노조, 실업자운동단체, 비정규노동단체 등의 활동가들이었고 이외에도 연구자와 노무사 등이 막후에서 지원을 해주었다. 이에 반해 총연맹이나 산별노조 등의 공식 노동조합이나 청년운동단체 등으로부터의 적극적인 지원이나 결합은 거의 없었다.2

청년유니온은 2010년 3월 10일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당시 조합원은 42명이었다. 창립총회에서 청년유니온은 “청년 노동조합의 새로운 이름”이라 자칭하며, “청년 세대의 권익을 위해 행동하고 의견을 대변하는 청년 공동체이자 청년들이 스스로 만들어가는 조직”으로 소개하였고, “기업별 노조가 아닌 지역, 직종 등의 공통성을 중심으로 취업자를 비롯한 불안정 취업자, 실업자 등 청년노동자의 개별 가입이 가능한 노동조합”, 즉 일반노조 형태의 “커뮤니티 유니온을 지향”한다고 밝혔다.3 또한 청년유니온은 “청년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넘어 청년 세대의 문화 정서적 교류를 통해 청년들의 연대를 도모하는 소통의 공간”이라고 규정하였다(청년유니온, 2010: 4). 청년유니온의 강령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우리는 대한민국 청년들의 정치/사회/경제/문화적 지위를 높이는 데에 앞장선다.
1. 우리는 정규직, 비정규직, 취업준비생 그리고 불안정한 취업상태 또는 실업상태에 있는 청년노동자들의 조직화와 권리확보를 위해 앞장선다.
1.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법제도, 관행과 관념들이 없어지는 평등사회 실현을 위해 앞장서며 사회적 약자들과 연대한다.
1. 우리는 지위, 연령, 직업, 지역, 학력, 국적, 성별, 정규직/비정규직 등의 차이를 뛰어넘어 평등과 평화, 사회정의 실현에 앞장서고 이를 위해 제 사회단체와 연대한다.
1. 우리는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한반도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1. 우리는 국제연대를 통해 청년노동자들의 권리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전세계 청년노동자의 인권과 평등권을 실현하는데 앞장선다.


청년유니온은 창립 총회에서 규약을 제정하여 조합원 자격을 “만 15세부터 만 39세까지의 비정규직, 정규직, 구직 중인 청년노동자”로 명시하여 세대별 일반노조의 성격을 분명히 하였다. 그 외의 규약 내용은 일반적인 노동조합 규약과 큰 차이가 없다. 단, 임원(위원장, 사무장, 회계감사)의 임기를 2년으로 하되 1회에 한하여 연임할 수 있도록 하였고, 조합비를 매월 조합원 임금의 1%로 하되 하한선을 월 3,000원으로 정하였다.

3. 주요 활동과 조직 운영

청년유니온의 주요 활동을 시기별로 살펴보고자 한다. 청년유니온은 2010년 3월 창립 이래 2년마다 새로운 임원과 집행부를 꾸렸고 현재는 올해 2월에 출범한 3기 임원 및 집행부가 활동하고 있다. 임원의 선출 과정에서 청년유니온은 그간의 활동에 대한 평가에 기반하여 새로운 활동 방향을 제시해 왔다는 점에서 2년의 임기를 기준으로 주요 활동에 대한 정리를 하고자 한다.

가. 1기의 주요 활동과 조직 운영, 2010.3 ∼ 2012.2

1) 최저임금 캠페인과 조직 정체성의 형성

청년유니온의 창립총회는 매스컴의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총회에 나타난 수많은 기자들을 보고 당시 청년유니온 조합원들은 크게 놀랐고, 당시 언론은 청년유니온을 “88만원 세대”, “청년실업자”, “개털 청춘들”, “알바생”, “백수”들이 노조를 결성하였다는 카피를 뽑아 보도하였다. 이러한 언론의 관심은 청년실업의 증가, 취업난의 가중, 대학 등록금 폭등, 대학의 기업화 등 2000년대 중후반 이래의 청년 세대를 옥죄던 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이른바 ‘88만원 세대론’(2007년)의 등장 이후 쏟아져 나오던 다종다기한 청년세대론의 담론 환경, 그리고 창립 총회 3일 전 고려대 김예슬 학생의 자퇴 선언 대자보 게시 등의 사건 등과 맞물려 증폭되었다. 창립과 더불어 청년유니온은 자신의 탄생을 비교적 쉽게 공론장에 널리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창립 초기 청년유니온의 내부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특히 재정 문제와 함께 조직의 정체성, 활동 방식, 사업 의제의 발굴 등에서 신생 조직이 겪어야 하는 여러 장애물들을 극복해야 했다. 초기 재정적 어려움으로 상근자를 1명(사무국장) 밖에 두지 못하였고 상근자 월급도 약 30만원 수준밖에 지급하지 못하였다. 사무실 또한 다른 단체의 사무실 한 귀퉁이에서 시작하였다. 이후 청년유니온의 활동이 공중에 알려지면서 조합원 및 후원회원 가입이 급증하면서 초기의 재정적 곤란은 조금씩 해결되어 나갔다.

이와 더불어 청년유니온의 활동 방향을 둘러싼 내부적 고민과 혼란이 지속되었다. 핵심 활동가들조차도 조직의 정체성과 활동 목표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활동가들 내부에서는 청년세대의 대변자로서의 ‘청년운동’ 조직의 방향성과 청년층의 고유한 노동문제를 해결하는 특수한 ‘노동조합’ 조직의 방향성을 두고 명확한 자기 이해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였다.

처음에는 저희 고민이 혼재되어 있었어요. 저도 그렇고. 이게 청년 문제로 접근하는 거라면 세대론으로 가는 거고. 노동문제로 접근하는 거라면, 그런데 청년노동문제라는 게 아직 개념이 좀 명확하지도 않았고. … 그 때 이제 저희도 혼재되어 있었죠. (연구참여자 1-A)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유니온은 캠페인 사업의 기획·실행·평가의 경험을 통해 활동의 방향과 조직 정체성을 차츰 마련해 갔다. 2010년의 1기 1년차에서 가장 중요한 활동은 최저임금 사업이었다. 청년유니온은 창립 당시 사업기조를 ① 청년유니온 설립과 조직안정화, ② 청년노동문제 이슈화, ③ 청년노동실태조사 진행 등을 꼽았고, 주요사업 중 ‘최저임금인상 운동’과 ‘최저임금보장을 위한 법제도 개선 운동’이 첫 번째와 두 번째 주요사업으로 배치하였다. 청년유니온은 양대노총과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하는 ‘최저임금연대’ 회의에 공식 참석하여 전국적인 최저임금 인상 캠페인 활동의 일원으로 자기 역할을 하였다.

특히 2010년 상반기 최저임금 캠페인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편의점 알바 실태조사’(2010년 5-6월)였다. 이 실태조사는 단순히 정책 자료를 얻는 의미에 그친 것이 아니라, 조합원들이 직접 전국의 편의점 427개에서 일하는 446명의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노동실태를 하나하나 수집하여 만드는 등 아래로부터의 조합원 직접 참여에 기반하여 청년층 불안정 노동자의 현실을 조합원 스스로 알아가며 최저임금제도의 현실태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청년유니온의 실태조사 결과는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고 이 과정에서 청년유니온 활동가들은 처음으로 자신의 활동에 대해 자신감과 사회적 효능감을 체감하게 되었다.

당사자들이 자기 삶의 구체적인 디테일한 문제 속에서 뭔가 풀어내야, 끄집어 내보자 하는 게 저희가 원칙처럼 잡고 있었는데, 한 친구가 우리랑 노동법 얘기도 하고, 최저임금 얘기도 하다가 어, 자기는 편의점에서 알바로 일하는데 최저임금도 못받고 일한다, 그런데 그거에 대해서 자기 사장님도 말해준 거 없고, 자기도 몰랐고, 자기 주변 사람도 물어보니까 다 모르고 있더라 이러는 거에요. 그래 가지고 어, 이거 뭐지, 그러면 우리 한번 청년들이 바라는 최저임금은 얼마인지, 그 다음에 그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친구들이 최저임금 얼마인지 들여다봐 볼까, 해서 그 친구 한 명의 제보를 가지고 저희가 사업화를 시킨 거예요. 딱 해보니까 저희가 생각한 것보다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거죠. … 저희 조직 내부적으로는 그 실태조사를 하면서, 뭐라고 해야 할까, 청년유니온이 해야 되는 활동의 감 같은 것을 잡았다고 해야 되나, 현장에서 그 실태조사를 하면서 그 분노라는 걸 하게 된 거예요. (연구참여자 1-B)

또한 이 조사를 계기로 ‘최저임금연대’ 내에서도 저임금 청년 노동자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위상을 높였고 독자적 활동 역량에 대한 인정이 생겨났다. 매년 최저임금연대 테이블에서 진행된 최저임금인상운동이 다소 관성화되어 있고, 총연맹에서도 고령층 비정규직 노동자들만의 싸움처럼 인식되고 있을 때, 최저임금 투쟁의 일 주체로 청년유니온이 참여하여 그 투쟁의 외연을 넓힌 효과가 있었다. 실태조사가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되자 최저임금 위반과 관련된 개별적인 노동상담 건수가 청년유니온으로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또한 고용노동부도 이러한 활동에 영향을 받아 2010년 하반기에 ‘최저임금 지킴이 사업’을 벌이게 되었다.

2) 캠페인의 전형 만들기: 30분 배달제 폐지와 주휴수당 캠페인

청년유니온이 청년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노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게 된 데에는 2011년에 벌인 ‘30분 배달제 폐지’ 및 ‘커피전문점 주휴수당 지급’이라는 두 개의 캠페인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두 캠페인을 통해 청년유니온은 고유한 캠페인 사업의 전형을 만들어내었고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조합원의 증가와 재정 확충에도 성공하였다.

먼저 피자업체를 상대로 한 ‘30분 배달제 폐지 캠페인’을 살펴보자. 원래 창립 시기부터 청년유니온 활동가들은 배달업에 종사하는 청년노동자에 관한 실태조사 사업을 벌이고 대기업 프랜차이즈업체의 30분 배달제 관행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2010년에 최저임금 사업 및 청년실업 정책 마련 등 여러 다른 사업으로 이에 대한 활동을 펼치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2010년 연말에 대학 등록금 마련을 위해 방학 중에 도미도피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한 청년이 피자 배달 중 오토바이 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언론을 통해 이 소식을 접한 청년유니온 활동가들은 전격적으로 ‘30분 배달제 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필두로 이후 약 3개월 간 이 캠페인에 매진하였다. 이 캠페인에는 청년유니온과 민주노총 민간서비스노조연맹,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등이 연대하였고, 이들 단체는 공동기자회견(2월 8일)을 열기도 하였다. 청년유니온은 독자적으로 프랜차이즈업체를 타깃으로 ‘30분 배달제 폐지’를 촉구하는 트위터 시위를 벌였다. 청년유니온은 조합원들에게 트위터 멘션창 맨 앞에 ‘#노(NO)30 서비스’라는 해시태그를 붙이도록 하였고, 오프라인 시위도 병행하여 해당 피자업체 본사 앞(2월 17일), 명동(2월 18일), 대학로(2월 19일) 등지에서 온라인 상의 트위터 시위를 스크린을 설치하고 오프라인에서 생중계하면서 업체의 정책 변화를 압박하였다. 청년유니온의 트위터 시위 2주만에 해당 피자업체를 비롯한 주요 피자 업체들은 ‘30분 배달제’를 공식 폐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 캠페인은 활동가들이 청년유니온 고유의 활동 방식이 어때야 하는지 자기 확신을 갖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내부적으로 청년유니온의 활동 포커스가 ‘청년세대 일반’의 고통에서 일정 정도 벗어나, 기존 조직노동이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는 노동시장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하는 문제, 즉 불안정 청년노동자의 ‘노동권’ 이슈로 집중되도록 한 주요한 계기였다. 또한 이러한 일련의 캠페인 활동의 성공과 사회적 여론화로 기존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도 인정을 받게 되었다.

아, 할 수 있구나, 굉장히 사회적으로 유의미한 일을 할 수 있구나, 이러면서. 이제 소위 말하는 청년유니온이 이슈파이팅을 할 수 있구나, 인정받고, 우리가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슈파이팅 제대로 하고 유의미한 성과를 내는, 자신감을 갖게 된 아주 중요한 계기였어요. … 30분 배달제 폐지 캠페인은 우리가 기획해서 시작해서 싸움을 걸고 폐지를 시킨 것이니까, 이게 승리의 성과 경험으로 많이 오니까, 이게 조합원들을 확 모이게 했어요. 사회적으로 굉장히 단단해졌죠. 이거 하면서 더 노동문제 쪽으로 천착을 하기 시작했구요. 사실은 예전에 청년문제 쪽에 많이 혼재되어 있었다면, 그러니까 30분 배달제 폐지 이전까지는 실업자노조, 청년실업자노조, 백수노조, 이런 게 언론들의 주요한, 많이 우리를 쓰는 방식이었다면, 우리는 계속 그렇지 않다, 우리는 노동하는 청년들의 노조라고 강변했지만, 그렇게 안 다루어졌었죠. 그런데 점점 이제 30분 배달제 후, 아르바이트생, 노동권 이런 쪽으로 이제 포커스가 바뀌게 된 계기죠. 저희 내부에서도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이런 노동문제를 고민해봐야겠다. 어떤 사각지대, 기존 노동의 사각지대, 기존 노동이 다루지 않았던, 조직노동이 다루지 않았던 그런 문제를. (연구참여자 1-B)

‘30분 배달제 폐지’ 캠페인의 성공으로 자신감을 갖게 된 청년유니온 활동가들은 2011년 여름에 또 다른 기획 사업인 ‘커피전문점 주휴수당(유급휴일수당) 지급’ 캠페인을 벌였다. 이 문제는 당시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조합원 개인의 문제제기로부터 시작하여 실태조사 → 법위반 사례의 공개 → 사회적 여론화 및 소송을 통한 해당 업체에 대한 압력 행사 → 업체와의 직접 교섭(협의) → 문제해결의 수순을 거쳤다. 이러한 캠페인 활동의 일련의 순서는 이후 청년유니온 활동의 전형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주휴수당 지급 캠페인의 시작은 청년유니온 조합원 한 명의 문제제기에서 시작되었다. 그 조합원은 청년유니온에서 주최하는 노동법 세미나에 참여하면서 근로기준법의 ‘주휴수당’ 규정을 인지하게 되었고, 당시 자신이 일하던 커피전문점 매장 사장에게 미지급된 주휴수당을 지급해 달라고 요구하였으며, 매장 사장은 이를 본사에 문의하게 되었다. 본사 차원에서 점검한 결과 지급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고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 본인에게만 미지급 수당을 지급하였다. 이를 계기로 청년유니온은 2011년 최저임금 사업의 핵심 포인트로 ‘주휴수당 지급 캠페인’을 벌이기로 내부 결정을 내렸다. 이 캠페인을 위해 청년유니온은 10-12명 정도의 열성 조합원들로 구성된 TF팀을 꾸리고 사업의 기획, 설계, 실태조사, 기자회견, 교섭 등의 전 과정을 함께 책임졌다. 이후 이 TF팀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청년유니온 활동의 중심에서 함께 하는 활동가로 커나갔다.4

2010년의 ‘편의점 알바 실태조사’와 마찬가지로 청년유니온은 조합원들의 참여 속에 전국의 커피전문점 251개 매장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이고 그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노무사의 자문을 받아) 커피전문점 본사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로 노동청에 고발하고, 기자회견을 벌였다. 기자회견 당일에 해당 커피전문점(카페베네) 본사로부터 연락이 와 청년유니온과 교섭이 진행되었고, 교섭 결과 직영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103명의 아르바이트생들에게 미지급된 주휴수당 5천 여 만원이 지급되었다. 다른 한편 커피빈에 대한 당사자 소송도 진행한 결과 총 3,000여명의 청년노동자에게 총 5억 원에 해당하는 주휴수당이 지급되었다.

주목되는 점은 주휴수당 지급 문제가 근로기준법에 분명히 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 조직노동에서는 그동안 한 번도 이슈로 포착하지 못한 사안이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유노조 사업장에서는 유급휴일수당의 지급은 당연한 것이었고 오히려 주요한 쟁점은 휴일근로에 따른 가산금 비율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유노조 사업장이나 양대노총의 노무사들도 시간제 아르바이트 고용형태에서 발생하는 주휴수당 문제, 즉 최저임금 월 환산액과 단순시급의 합계액 간의 차액이 발생하는지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근로기준법에서 그동안 제대로 활용되지 못한 법조문을 당사자만 알 수 있는 현장의 밑바닥 지식(lay knowledge)으로 발굴하여 사회적 의제화한 것이라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주휴수당 지급 캠페인 이후 청년유니온은 그동안 별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던 노동상담 업무가 조직 내의 핵심 사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캠페인의 성공이 알려지면서 노동상담 건수가 급증하였고, 이에 따라 개별 청년노동자의 권리구제 활동을 전담하는 ‘노동상담팀’도 안착될 수 있었다. 2011년 1년간 온라인상담 174건, 전화상담 243건이 접수되었는데, 그 중에서 주휴수당 캠페인이 언론에 보도된 9월 이후부터 전화상담이 활성화되었다. 전화상담 건수 중 주휴수당과 직접 관련된 ‘임금’ 관련 상담이 203건(83.5%)에 달하였다(청년유니온, 2012: 43).

주휴수당을 터뜨리고 나니까, 그날 오전에 한겨레가 보도했고, 그날 밤 9시 MBC뉴스데스크에도 나갔는데, 그날 밤 아홉시부터 노동상담 전화가 오기 시작했어요. 밤 아홉시부터. 그냥 온 게 아니고, 거의 하루에 한 삼십 통씩 상담을 했으니까. 우리가 노무사도 없고, 우리는 아주 기초적인, 스스로 우리끼리 공부한 노동법을 가지고, 당시 어렸던 친구가 노동상담팀장이었는데, 직접 우리가 상담한 거예요. 물론 노무사들 자문도 받았죠. … 그러니까 노동상담이 안착이 된 거죠. … 이 싸움을 준비했던 조합원들이 많이 울고, 그 싸움이 꽤 컸죠. 노동조합으로서 약간 본격화된 것이랄까, 정체성을 좀 확립하게 됐죠. (연구참여자 1-A)

잇따른 캠페인을 통한 이슈파이팅이 성공하고 그 결과가 언론을 통해 확산되면서 조합원도 꾸준히 증가하였고, 이는 재정 상황의 개선으로 이어져 상근자에 대한 최저임금 수준으로 월급 지급이 가능해졌다. 2010년 3월 창립총회 당시 조합원 수는 42명에서 출발하여, 1년 후인 2011년 3월에는 210명, 2012년 3월에는 497명이 되어 만 2년만에 10배가 넘게 조합원이 증가하였다(해당연도 정기총회 자료집 참조). 또한 언론을 통한 문제제기가 사회적으로 확산되면서 취약 노동자에 대한 정책 당국의 근로감독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실제 주휴수당 캠페인의 여파로 고용노동부는 전국의 주요 커피전문점 125개 매장에 대한 긴급점검에 나서기도 하였다.

이상의 두 개의 캠페인은 청년유니온이 무엇보다 (아직까지 합법노조로서의 지위를 얻지 못한 상황에서) 불안정 청년노동자의 이해대변 조직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대내외적으로 확립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경험이었다. 또한 근로기준법조차 준수되지 못하는 주변부 노동시장의 문제를 당사자의 경험 지평 속에서 운동 의제로 만들어내어 여론에의 호소, 법률 소송의 제기, 해당 업체를 타깃으로 하는 직접 행동 등의 운동 전술을 활용하여 실제 문제의 해결까지 이루어내었다. 운동의 성과가 조합원 개인의 권리구제를 넘어 해당 직종 또는 업종의 관행 전반을 개선시키는 효과를 발휘하였고 정부의 관련부서의 전향적인 제도 개선까지 이끌어 내었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이와 관련하여 청년유니온은 자체 평가에서 특히 주휴수당 캠페인이 ‘개인분쟁 처리형 노동조합’의 수준을 넘어 ‘노동시장 규제형 노동조합’으로의 발전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하며, 이슈파이팅과 교섭을 연결시키는 사업방식을 창출했다는 점에 주목하였다(청년유니온, 2012: 45-6).

3) 조직 내부 운영: 리더십 교체 과정

창립 이후 2년 동안 청년유니온은 외형적으로 큰 성장을 보였으나, 내부 핵심 활동가들은 조합원 규모의 증가에 비해 열성 조합원의 확대는 더디고 신규 조합원의 관리와 교육이 미진하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2012년 2월의 정기 총회는 임원 선거가 예정되어 있어 리더십 교체의 과제를 안고 있었다. 1기의 임원 및 집행간부들은 2년간의 임기가 끝나자 모두 사퇴하였고, 새로운 인물들로 2기 임원 및 집행부가 채워졌다. 규약 상으로는 임원의 중임을 허용하고 있었지만, 오래 전부터 1기 핵심 활동가들은 리더십 교체를 전제하고 있었다.

리더십 교체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추진되었다. 첫째, 2012년에 예정되어 있던 두 차례의 전국 선거(총선과 대선)에서 1기의 핵심 활동가들의 정치권 진출 문제가 불거졌다. 1기 위원장은 당시 민주당의 청년비례대표 출마를 권유받고 있었고 이는 청년유니온 내부에서 치열한 논란을 가져왔다. 결국에는 내부적인 합의가 지연되면서 위원장 본인이 출마하지 않기로 하면서 일단락되었다. 제도 정치권 진출 문제를 둘러싼 내부 논쟁을 거치면서 청년유니온 핵심 활동가들은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나 이해관계를 조합 활동에 직접 투영하지 않는다는 암묵적 문화를 공유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1기 정책기획국장은 통합진보당 청년비례대표 후보로 등록하면서 사퇴를 하게 된다. 둘째,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진출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은 새로운 리더십으로의 교체에 대한 주체들의 의지였다. 이런 측면에서 1기 지도부의 퇴진은 다분히 의도된 것이었다. 즉 1기 지도부보다 더 젊은 활동가들이 주체적으로 청년노동운동의 활동가로 성장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중요하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존 운동 진영의 ‘선배 운동가’들의 모습이 반면교사로 작용한 것과 더불어, 20대 당사자가 자기 세대의 문제를 제일 잘 알 것이라는 고려도 작용하였던 것이었다. 1기의 위원장, 사무국장, 정책기획국장 모두 당시 30세가 넘는 나이였다.

초창기 멤버들이 저하고 같이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 중 하나가 고착화되는 것을 막아보자는 거였어요. 선배 세대들이 다 대표직을 하고 있고, 40-50대도, 10년, 20년째 대표고, 20대부터 실무자로 들어간 사람들은 30-40대까지 계속 그러고 있고. … 그렇게 하면 안된다, 우리 세대 커리어를 키워주고, 예를 들면 자기 커리어가 되어서 성장해 가야 하는데, 젊은 활동가들이 그런 길을 열어주지 않는 선배 세대 운동가들에 대한 굉장한 비판의식이 있었어요. … 처음부터 고민했어요. 2년 끝나면 무조건 셋 다 나간다. 그리고 그런 문화를 만들자, 이런 게 있었던 거죠. (연구참여자 1-A)

1기 때는 저희가 어쨌거나 이 조직은 20대를 위한 조직이어야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 1기를 하면서도 후배들을 잘 키워서 그들이 2기부터 맡게 하자, 이런 게 있어서 저희는 맡을 때부터 노래를 불렀던 것 같아요. … 이게 어쩔 수 없이 우리 나이만 돼도 지금의 20대 초반 친구들하고 이미 갭이 너무 크거든요. … 우리는 문화적으로 굳이 보면 당사자의 감수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1기에서 2기로 넘어갈 때 과감하게 나올 수 있었던 건, 물론 그 때 정치적 일정이라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 그게 아니었더라도 우리가 나오자고 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죠. (연구참여자 1-B)


보다 젊은 활동가들로 차기 리더십을 구성하기 위하여 청년유니온 1기 활동가들은 ‘바보회’6라는 명칭의 활동가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였다. 1기 2년차에 만들어진 ‘바보회’는 열성 조합원들을 발굴하여 6개월 이상 정기적인 토론과 학습을 진행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여기에서 노동법 교육, 청년유니온의 활동 평가 및 전망 토론, 한국의 노동운동 및 노사관계 세미나 등이 이루어졌다. 이 모임을 통해 차기 지도부의 핵심 활동가들이 문제의식을 서로 공유하고 조직적 진로를 깊이 있게 논의할 수 있었다. ‘바보회’는 정기 총회가 임박하면서 점차 2기 지도부 구성 및 사업계획 확정을 위한 논의 기구로 자연스럽게 이동하였다. 이러한 차기 활동가 교육프로그램의 운영은 2기에서 3기로의 교체 과정에서도 ‘신(新)바보회’라는 명칭으로 다시 부활하여 청년유니온 내부 운영의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나. 2기의 주요 활동과 조직 운영, 2012.3 ∼ 2014.2

1) 새로운 리더십 구성과 새로운 활동 목표

2010년 3월 창립하여 만 2년을 지나고 새로운 임원 및 집행부로 재출발하게 된 청년유니온은 이제 약 500명의 조합원을 가진 조직이 되었고, 노동관계법 상의 합법노조의 지위를 얻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사회적 영향력의 측면에서 청년세대의 노동권을 대표하는 상징성을 획득하고 있었으며, 수도권 중심의 조직에서 이제 지역지부 또는 지역모임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는 전국 단위 조직으로 발돋움하려는 상황에 있었다.7

2년 동안 급속하게 성장한 청년유니온은 2기 지도부 출범을 계기로 새로운 활동 과제를 표방하였다. 2기 지도부는 내부 논의를 거쳐 “법내 노동조합, 네트워크 노동조합, 청년일반 노동조합”이라는 3가지 목표를 제시하였다. ‘법내 노동조합’은 합법노조 설립신고를 통해 전국적인 노동조합의 위상을 획득하고, 합법적 교섭과 협상을 통해 청년노동을 대변하는 조직 모델을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이것은 2012년 지역 청년유니온의 잇따른 합법적 지위 획득과 2013년 ‘전국’ 청년유니온의 합법화로 이어졌다. 또한 2013년에 서울시와 오랜 협의 끝에 도출한 ‘정책 협약서’의 체결은 합법노조로서의 법률적 지위에 더해 지방정부 차원에서 청년노동자의 대표조직으로서의 제도적 인정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일반노조에 특유한 교섭 모델의 정립은 현재까지 과제로 남아있다. 다음으로 ‘네트워크 노동조합’은 지역별 유니온 설립을 지원하여 지역유니온과의 교류를 활성화하고, 다양한 직종/업종모임을 건설하여 직종/업종별 노동시장에 대한 청년유니온의 발언력을 높여내는 목표를 제시한 것이었다. 지역 청년유니온들은 서울의 ‘전국’ 청년유니온과는 별개로 지역 수준에서 자발적인 설립 노력으로 설립되고 있었다. ‘전국’ 청년유니온의 설립신고가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에서 2012년에 6개 지역(서울, 인천, 충북, 대전, 광주, 대구)의 청년유니온이 각각 별개의 설립필증을 교부받게 되었고, 이들 지역 청년유니온과의 교류 사업이 진행되었다. 또한 직종/업종 유니온의 건설을 목표로 한 사업은 2기에 들어와 ‘미용실 스텝 조직화’ 시도로 나타났지만, 실제 조직화와 직종/업종 유니온의 건설로는 이어지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청년일반 노동조합’은 1기 때의 파트타임 노동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서 취업준비생이나 신규 취업 청년층의 노동권 의제까지 이슈화시키자는 포부를 드러낸 것이었다. 이와 관련된 2기의 주요 활동은 취업준비생의 경제적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영어 능력평가 시험 비용에 대한 사회적 여론전과 법률 소송을 진행 중이다. 아래에서는 이 중에서 특히 중요하게 평가되는 세 가지 주요 활동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겠다.

2) 서울시와의 정책 협약

2012년의 총선과 대선으로 선거 국면에서의 정책적 개입에 내외부적 요구가 폭증하면서 청년유니온의 많은 실무 역량이 여기에 투입되면서 자체 활동은 다소 부진하였다. 또한 새로 지도부를 구성한 2기 활동가들은 외부의 높아진 기대와 핵심 활동가의 교체로 인한 실무 역량의 취약성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었다.8

[2012년] 초반에는 총선 때문에 한 번 이렇게 흔들렸고, 이후에는 대선에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 처음 맞는 대선 대응이다 보니까 그 때는 이렇게 흔들리고 이래가지고 1년 동안 거의 그냥 계속 방황하는 시기였죠. … 그래서 이제 2012년도에는 1기 많이 비판했어요. 너무 이렇게 무책임하게 그냥 다 떠나가 버린 거 아니냐? 2기가 어쨌든 이어 나가야 되는 역할들도 있고 발전시켜야 되는 것들도 있는데, 그런 거에 좀 연결다리 같은 역할이나 아니면 좀 조언도 해주고 보조해줘야 되는 역할들이 분명히 있는데, 뭐 상황이, 그런 상황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너무 이렇게 손 놔버리고 다 떠나버리신 거 아니냐. 이래서 그런 비판을 많이 했었죠. (연구참여자 2-A)

이러한 활동의 부진과 어려움을 딛고 다시 청년유니온이 성장할 수 있었던 데에는 2011년 10월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 서울청년유니온의 합법화. 서울시와의 사회적 협의, 그리고 오랜 협의 끝에 체결된 2013년 1월의 ‘정책 협약’이 크게 작용을 하였다. 다소 침체된 청년유니온으로서는 반등할 수 있는 ‘정치적 기회구조’가 개방된 것이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2012년 4월부터 청년유니온은 서울시를 상대로 사회적 교섭을 요청하여 협의가 진행되었다. 청년유니온은 약 20여 개의 정책을 서울시에 제안하였고, 약 반 년 동안의 협의를 거쳐 2013년 1월 서울시와 청년유니온 간의 ‘사회적 교섭’이 마무리되었다. 그 정식 명칭은 「서울특별시-서울청년유니온 청년 일자리 정책 협약서」(2013. 1. 18)이다.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표 1> 서울특별시-서울청년유니온 청년 일자리 정책 협약서의 주요 내용

△ 청년 고용 확대를 위한 기반 조성
① 서울시는 청년 일자리 기본계획을 수립·추진
② 양자는 공동으로 청년 일자리 권리선언을 발표
③ 서울시는 「서울특별시 청년일자리 기본조례」의 제정을 추진
④ 서울시는 사업주 등을 대상으로 노동교육을 수행.

△ 청년 취업지원과 근로조건 개선
⑤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청년의무고용제 도입의 단계적 추진 방안 수립
⑥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에 표준이력서 사용방안을 추진
⑦ 서울시 산하 투자출연기관의 신규 직원 채용시 신체검사 비용 지원 추진
⑧ 청년구직자를 위한 취업 코칭 프로그램 운영
⑨ 청년창업센터 개선방안 마련
⑩ 민간 사업체를 대상으로 민간 청년고용지표를 마련하여 공공구매 등에 활용 노력
⑪ 직간접적으로 고용하는 청년 근로자들에 대한 근로 점검 및 관리 방안 마련
⑫ 표준근로조건의 홍보 노력
⑬ 서울시립대 노동법 교양과목의 신설 운영 방안 추진
⑭ 생활임금 연구 실시
⑮ 청년문화활동 지원 방안 마련

서울시와의 정책 협약은 서울시로부터 노조설립필증을 받은 이후 노동조합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교섭권’을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놓고 청년유니온 내부에서 고민한 산물이었다. 청년유니온은 산별교섭의 오랜 경험을 갖고 있었던 보건의료노조로부터 조언을 구하였고, 외국의 ‘사회적 교섭’이나 지자체와의 협의 관행 등을 연구하여 서울시에 제안을 하였다. 서울시의 경우에도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노동문제 또는 청년실업에 대한 정책 우선순위가 높았고 노동운동 경험이 풍부하였던 노동특보 채널이 존재하였기 때문에 기존 공무원 집단의 거부점을 돌파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구조가 있었다. 반 년 넘는 장기간의 협의 과정을 거쳐 위와 같은 정책 협약서가 체결되었다. 이외에도 2013년 9월에 청년유니온과 서울시는 아르바이트 청년들의 노동기본권을 실현하기 위한 ‘서울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장전’을 체결하였다. 여기에는 아르바이트 청년들이 누려야 할 노동기본권과 사용자의 의무, 그리고 서울시의 책임 사항 등이 담겨 있다.

서울시와의 정책 협약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청년유니온이 청년 노동자의 이해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인정받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당시의 청년유니온 핵심 활동가는 이를 “상징적 의미의 대표”로 인정받게 되었다고 자평하였다(연구참여자 2-A). 또한 그 이후 서울시에서 청년노동 문제에 관련한 협의체 기구에 청년유니온은 청년세대의 대표조직으로 직접 관여하게 되었다. 대표적으로 아르바이트보호협의체, 서울시청년일자리허브 설치 및 운영 등에의 관여와 참여가 진행되고 있다.9 여기서 중요한 점은 2013년 1월의 ‘정책협약’이 단순히 선언적 문구에 그친 것이 아니라, 많은 주요 조항들이 이후 서울시 정책으로 실질화되었다는 점이다. 현재까지 서울시는 ‘서울 아르바이트 청년 권리장전’ 체결, ‘서울특별시 청년일자리 기본조례’ 제정, 청년 의무고용제 도입, 표준이력서 도입, 서울시 청년일자리허브를 통한 취업 코칭 프로그램 운영, 서울시립대 노동법 교양과목 신설, 생활임금제 추진 방안 수립 등을 실제 정책으로 추진하였다.

3) 미용실 스텝 조직화 시도와 취업준비생 이슈의 제기

청년유니온 2기 지도부는 준비 단계에서부터 특정 직종/업종(미용실 스텝, IT 노동자, 학원강사 등) 조직화를 주요 사업으로 배치하였다. 그 일환으로 2기 2년차에 접어들면서 미용실 스텝 조직화 사업을 벌였는데, 이 사업은 청년유니온이 기존의 이슈파이팅 위주의 활동을 넘어서 직접 특정 업종이나 직종의 청년노동자를 조직화(organizing)하려는 첫 시도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이를 위해 당시 조직팀장이었던 활동가가 미용실 스텝 생활을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자료조사와 업계의 관행 등에 대한 본격적인 실태조사 작업과 노동상담이 진행되었다. 이렇게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미용실 스텝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언론에 이슈화시켜 미용 프랜차이즈 업체들에 소속된 스텝들의 고용조건이 일정 부분 개선되기도 하였다. 미용실 스텝은 ‘근로자’가 아니라 ‘교육생’이라는 업계의 관행에 의해 평균 시급이 3,000원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대대적인 여론전을 진행하는 한편, 한 유명 헤어숍에서 근무하였던 조합원의 임금체불 문제로 대표이사를 고용노동부에 고발하기도 하였고, 고용노동부는 이에 호응해 근로감독을 벌여 현장의 근로조건이 일정하게 개선되었다.

그러나 ‘사람을 남기는’ 사업이라는 애초의 조직화 목표의 달성에는 실패하였다. 청년유니온은 미용실 스텝을 조합원으로 가입시켜 직종 모임을 유지하려는 시도를 하였지만, 두차례 모임에 10명 정도의 미용사 및 스텝이 참가한 이후에는 모임이 유지되지 못하였다. 조직화 실패는 미용실 스텝 직종의 특수성(장기간의 도제 관계라는 업계 관행)에서 오는 조직화의 난점과 더불어, 이슈파이팅을 넘어선 실제 조직화에 대한 치밀한 사전 계획의 마련이나 주체의 헌신을 담보하기에는 아직 청년유니온의 역량이 미약한 것이 크게 작용하였다.

이게 당사자가 중요하긴 한데, 당사자가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미용실 조직화를 하면서 정말 많이 느꼈어요. 제3자가 얘기하는 건 사실 쉬워요. 왜냐하면 제가 미용실에서 일을 하면서 디자이너가 되거나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이제 스텝으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 다수는 여기만 좀 참아내서 디자이너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함부로 이렇게 앞에 나서거나, 입 밖으로 꺼내기는 굉장히 조심스러운 거예요. 왜냐하면 미용업계에서 살아남을 수가 없으니까. 그런데 이건 미용뿐만 아니라 다른 업계에서도 다 그런 것 같더라구요. (연구참여자 2-A)

미용실 스텝 조직화 시도를 계기로 청년유니온 내부에서는 활동 방식을 둘러싼 고민이 깊어졌다. 즉 1기의 캠페인과 같은 이슈파이팅 위주의 활동방식과 더불어 합법노조 지위를 얻은 이후 일반노조로서 행사할 수 있는 교섭권을 현실에서 어떻게 활용하여 조직 확대의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인지가 핵심 활동가들의 고민이 되었다.

청년유니온 2기에서 역점을 두었던 또 하나의 활동은 취업준비생과 관련된 사회적 이슈를 발굴하여 제기하는 것이었다. 2기 지도부가 출범시 표방한 3대 목표 중 하나인 ‘청년일반 노동조합’으로서 청년유니온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취업준비생(청년 구직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내부에 존재했던 것이다. 이 문제는 한편으로는 구직자를 조합원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노조설립신고 투쟁으로 나타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2013년에 토익시험 응시료 문제의 제기로 표면화되었다.

일명 ‘구직자의 역습’이라고 칭해진 취업준비생 관련 이슈파이팅은 2012년 구직자들의 이력서 작성을 위해 실제 들어가는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여 발표하는 사업을 벌였고, 그 연장선상에서 2013년에 YBM의 토익(TOEIC) 시험 독과점 지위 남용에 의한 응시료 문제를 제기하는 사업으로 진행되었다. 2013년 10월에 공정거래위원회에 YBM사 및 허위과장 광고를 한 영어학원을 제소하였고, YBM 앞 1인 시위, 연세대 및 토익시험장에서의 옥외 캠페인 등을 벌였으며, 11월에는 토익 환불피해자를 모아 집단소송을 제기하였다. 현재는 이러한 법률적 제소와 소송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취업준비생 이슈의 제기는 취업시장에 일찍부터 내몰리는 대학생들로부터 즉각적인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판단 하에서 진행된 것으로 현재 그 캠페인의 법률적 소송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있지만, 청년 취업준비생들로부터 큰 호응과 함께 청년유니온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활동이었다.

4. 변화된 조직 여건과 향후 과제

청년유니온 3기 임원 및 집행부는 청년유니온의 완전한 합법화, 조합원 천 명 시대를 곧 맞이하게 될 조직의 대형화, 9개 지역지부 설립을 통한 전국 조직화 등 4년 전 노조 설립 시점과는 매우 다른 내외부적 환경 속에서 올해 2월 새롭게 출발하였다. 이렇듯 창립 이후 이제 5년차를 맞은 청년유니온은 변화된 조직 여건에 따라 활동 과제를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청년유니온이 현재 직면하고 있는 조직 여건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2013년 4월 30일 전국 청년유니온 노조설립 신고필증이 교부되면서 완전한 합법노조의 지위를 얻게 되었다. 창립 직후 청년유니온은 ‘구직자’의 조합원 자격 문제로 5번의 설립신고 반려 처분을 받았고, 이후 지역별 청년유니온 형태로 설립신고 싸움을 지속하여 2012년 서울을 필두로 8개 지역에서 지역청년유니온의 설립신고 필증을 받았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국’ 청년유니온은 법외노조였으나 작년 4월에 노년유니온과 함께 합법노조의 지위를 획득한 것이었다. 그런데 합법노조로서의 청년유니온은 단결권의 행사에 있어서는 제도적 지위를 확보하였지만, 단체교섭권의 실질적 행사와 관련해서는 아직 청년세대 일반노조로서 특유의 모델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2012년 서울시와의 정책 협약에 성공하였지만 실질적인 구속력을 갖춘 교섭에는 이르지는 못하였고, 몇몇 민간 사업주나 기업을 상대로 한 교섭이나 협의도 일회적인 캠페인을 통한 관행의 개선 이상으로 나아가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노사관계 법률이나 관행을 고려할 때, 사업장 조직이 아닌 초기업별 일반노조 형태의 조직이 정례적인 단체교섭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을 이루어낼 가능성은 향후에도 대단히 작다는 점을 고려하면, 단체교섭권의 현실적 구현의 과제는 앞으로 청년유니온에게는 매우 장기적인 과제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둘째, 청년유니온은 이제 ‘대형’ 조직이 되었다. 조합원 규모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14년 7월 현재 891명에 달하고 있다. <표 2>에서 보듯이, 유니온 창립 시기와 비교해 만 4년만에 20배 이상의 양적 성장을 기록한 것이다. 조합원 수 급증으로 재정적 자원이 출범 초기와 비교해 크게 안정되었다. 2010년 청년유니온의 재정 수입은 약 39백만 원에 불과하였는데, 2013년의 수입은 약 132백만 원으로 증가하였고 그 중 정기적 회비(조합비와 후원회비) 비중도 약 80%에 육박할 정도로 증가하여 재정 수입이 안정화되었다. 이에 따라 상근활동가도 출범 초기 1명에서 현재에는 9명에 이르고 있다.10


조합원 규모의 증가와 조직의 대형화는 자연스럽게 내부적인 조합원 관리 및 대의 구조의 정비 필요성을 높였다. 이에 따라 청년유니온은 2013년에 들어와 조직팀 상근자를 확보하고 독자적 사업을 구축하였고, 신입 조합원 교육, ‘우리동네 모임’이라는 지역별 조합원 친목모임 개최, 대의원 교육프로그램의 운영 등 조직 관리에 조직 역량의 일정 부분을 투여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외형적 성장과 비교해 볼 때, 청년유니온의 조직 관리는 아직까지 초창기의 수공업적 형태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가장 중요하게는 전체 조합원의 현황을 중앙에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조합원의 연령, 직업, 학력, 고용형태, 가입동기, 정치적 성향이나 참여의사 등에 관한 기초적인 자료가 축적되어 있지 않다. 또한 70여 명에 이르는 대의원들의 임무와 역할에 관한 조직 내부적 동의 수준이 아직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11

셋째, 원래 청년유니온은 서울과 경기 등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한 조직으로 탄생하였으나, 현재에는 광역시도 단위로 9개의 지역지부(서울, 경기, 인천, 대전·충남, 충북, 광주·전남, 대구, 부산, 경남)가 존재하는 전국 조직으로 발전하였다. 지역의 청년유니온은 중앙으로부터 하향식으로 건설된 것이 아니라, 청년유니온의 초기 활동을 접한 각 지역의 청년들이 자체적으로 지역모임을 결성하는 상향식으로 만들어졌다.12 그러나 내부적으로도 중앙과 지역 간 사업의 유기적 연계나 캠페인 활동의 전국화를 도모하기에는 아직까지 미약한 점이 많은 것으로 지적된다. 우선 조합원의 지역별 분포를 보면,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 지역이 전체 조합원의 약 70%에 달할 정도로 편중되어 있다(<표 3> 참조). 또한 9개 지역지부들 간에도 활동 역량의 편차가 매우 큰 편이다. 현재 상근 활동가를 두고 있는 지역지부는 대구와 경기 지부 정도에 그치고, 독자적인 활동을 비교적 활발하게 하는 지역은 부산·대구·경남·인천·경기 등 약 5개 지역 정도이다(인터뷰 참여자 3-B, 3-C).


이처럼 청년유니온은 현재 합법노조로서의 노동3권 실현을 구체화하고, 규모의 대형화에 따른 조직 내부 관리를 새롭게 도모해야 하며, 전국 조직으로서의 위상을 내실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와 더불어 한국의 노동운동 역사에서 유례없는 실험에 도전해 온 청년유니온은 이제 자신의 조직 정체성과 운동 전략에 대한 성찰적 고민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 올 초에 출범한 3기 지도부는 그것을 “청년이 만드는 새로운 노동운동”이라는 슬로건으로 집약하였고, 노조운동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의 지향성을 분명히 하였으며, 운동 전략과 관련하여 시민단체에 특유한 캠페인이나 이슈파이팅과 노동조합에 특유한 교섭 모델의 구축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자신의 조직 정체성 수립에 대한 고민을 드러내었다. 3기 지도부가 올 초 총회에서 공개한 자신의 ‘출사표’에는 이러한 내부적 고민이 잘 드러나고 있다.

청년유니온은 출발부터가 사업장의 틀과 조합원의 이익이라는 범위를 넘어서 시민사회 전체를 활동 영역으로 삼고, 청년노동 전체를 대변하고자 사회적인 의제와 방법으로 싸워온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이다. … 우리는 개별 사업장의 문제를 업종·직종 전반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개별 기업의 문제를 기업집단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방식으로, 개별 사안을 사회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싸워왔다. 지금까지는 청년유니온의 정체성이 시민단체냐 노동조합이냐의 질문이 존재했다면, 이제는 그것을 통합한 형태로 하나의 방향성을 정립해야 할 때다.13

5. 글을 나가며

지난 5년간의 청년유니온의 활동에서 보이는 특징적인 면모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청년유니온 활동가들은 명확히 이전 세대의 사회운동이나 노동운동과의 차별성에 대한 자의식을 갖고 있다. 한편으로 그들은 90년대 초반까지 활발했던 학생운동이 몰락한 이후의 ‘폐허’ 속에서 운동의 전망을 찾아 분투했던 이들로 ‘포스트-IMF 시기’의 청년운동에 대한 자기 고민 속에서 출현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민주화 이후의 노동운동과 사회운동의 사이클이 조락하는 국면에서 기존의 흐름으로부터 일정하게 거리를 두고 출현한 새로운 활동가 세대이다.

둘째, 이와 연관된 것으로 청년유니온 활동가들과의 심층 인터뷰 과정에서 그들은 여러 번 운동의 ‘당사자성’이 갖는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들 대부분은 대학 졸업 이후 생계유지를 위해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에 종사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학원강사, 단기 알바, 중소제조업체 파견근로자, 방송사 파견직 등). 또한 그 경험을 통해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청년노동자들의 불안정성, 사회적 고립감, 심리적 위축, 상대적 박탈감 등을 실존적 고민으로 안고 있었고, 청년유니온 운동과 조직 활동은 그러한 부정적인 심리적 내상을 치유하고 위로받을 수 있는 커뮤니티로 인식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인들은 ‘청년 당사자성’이라고 지칭하곤 한다. 그들이 청년 세대의 문제를 노동권의 프레임으로 구성해 낼 수 있었던 것은 활동가와 조합원들이 공유하는 청년 당사자성이 중요하게 작용하였다.

셋째, 활동의 방식과 관련하여 청년유니온이 보여준 가장 큰 특징은 일반노조 형태의 노동조합으로서의 법적 지위를 활용하여 시민운동단체(NGO)가 주로 사용하는 캠페인 활동에 주력하고 이를 통해 운동 성과를 극대화해왔다는 점이다. 청년유니온이 지난 5년 동안 급성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불안정 청년노동자의 실제 노동생활과 밀접히 연관된 구체적인 이슈를 조사·발굴하고, 그 문제를 언론을 통해 폭로하여 사회적 여론을 형성하며, 이를 통해 해당 기업이나 업종 그리고 정부 당국에 대한 사회적 압력을 행사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운동 전략의 성과에 크게 기인하였다. 또한 이러한 성과는 문제 해결에만 그친 게 아니라 이 캠페인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이해를 보호받게 된 청년들과 이 일련의 캠페인 과정을 지켜보는 공론장의 지지자 그룹을 조합원으로 확충함으로써, 조직의 인적·재정적 자원을 확대할 수 있었고, 다시 이것은 보다 대규모의 캠페인 활동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청년유니온 스스로는 이러한 방식의 활동을 종합하여 ‘사회운동적 노동조합’의 정체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넷째, 청년유니온은 내부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사회적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한편으로는 유리한 ‘정치적 기회구조’를 적극적으로 해석·활용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조합 및 사회단체와의 연계와 연합을 폭넓게 도모하였다. 한국사회에서 유행처럼 번진 ‘청년세대론’의 담론적 전유, 박원순 서울시장의 등장으로 열린 정치적 기회구조의 재빠른 포착과 활용 등이 전자의 대표적 사례이다. 또한 청년유니온은 사안에 따라 유연하고 폭넓은 연대 전술을 활용해 왔다. 최저임금 투쟁에서는 양대노총이 주도하는 최저임금연대에 적극 결합하였고, 취업준비생 이슈(병원 실습생)나 서울시와의 사회적 협약에서는 보건의료노조와 연대하거나 자문을 구하였고, 30분 배달제 폐지 캠페인에서는 민간서비스연맹과 긴밀히 협력하였으며, 청년 세대의 권리 주장과 관련해서는 여러 청년 당사자 조직들과의 상시적 연대를 구축해 왔다. 또한 청년유니온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국회의원실과의 네트워크를 설립 초기부터 구축하여 제기하는 이슈의 사회적 확산과 전파를 보다 쉽게 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청년유니온의 등장과 성장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논의하고 글을 맺겠다. 청년유니온은 서로 밀접히 연관되는 두 가지 의미의 ‘변방’에서 출현하여 성장하였다. 하나는 노동시장의 ‘변방’(주변)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에서 주변부, 그 중에서도 10대와 20대의 청년 불안정 노동자들이 경험하는 노동시장은 주변의 주변이라 할 만하다. 이 변방에서는 최저임금이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요구가 쉽게 ‘북소리’로 울린다. 청년유니온이 지난 5년간 줄기차게 벌인 여러 캠페인들은 이런 의미에서 ‘변방의 북소리’라 할만하다. 그런데 이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 청년유니온은 ‘변방’에서 울리는 ‘북소리’이다. 즉 청년유니온은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의 ‘변방’에서 출현하여 성장하였다. 청년유니온은 불안정 노동의 사회적 확산에 가장 큰 치명타를 입은 청년 당사자 스스로 조직한 집단(self-organized group)이다. 21세기 한국의 노동조합운동은 불안정 노동자의 이해대변을 위한 조직으로 거듭 나야한다는 내외부적 요구를 안고 있었지만, 이 요구에 대한 책임 있는 답변을 하지 못해왔다. 답변의 부재가 오래 가면서 불안정 청년 노동자들은 기존의 조직노동으로부터 독립된 형태로 스스로의 이해대변을 위한 조직을 만들어왔다. 이러한 의미에서 청년유니온은 한국의 ‘중심부’ 노동조합운동이 포괄하지 못한 ‘변방’에서 발생한 새로운 ‘북소리’이고, ‘중심’으로 향하는 ‘경고음’이기도 하다.


II. 알바노조

1. 들어가며

아르바이트노동조합(이하 알바노조)은 주로 민간 서비스부문에 단기계약직 아르바이트 형태로 고용되는 노동자들을 주요 조직대상으로 하는 일반노조로 2013년 8월에 결성되었다. 알바노조의 전신은 ‘알바연대’로서 알바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단체로 2013년 1월 출발하였고, 그것이 노조 형태로 전환한 것이다. 알바노조는 우리 사회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핵심적인 조직 대상으로 삼고 있고, 사업장 단위가 아닌 개별 가입 형태의 일반노조로서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이다. 또한 알바노조는 기존 조직노동의 조직화 시도가 아니라, 진보정당운동의 한 세력이 불안정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또한 알바노조는 결성 이후 다양한 캠페인 사업, 기자회견, 직접 행동, 개별 교섭 등을 통해 노동계와 시민사회진영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쌓아나갔으며, 어느새 300명이 넘는 조합원을 조직하였다.

알바노조의 운영 및 활동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알바노조 현직 임원 2명과 개별 면접조사를 수행하였다. 면접조사는 2014년 6월에 알바노조 사무실에서 이루어졌고 각각 2-3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그밖에도 총회 자료집, 운영위원회 자료, 정기 소식지, 노조 홈페이지, 언론 기사 등을 활용하였다. 또한 올 초에 출판된 알바노조 활동에 관한 기획 단행본(박정훈, 2014)을 통해 알바노조의 활동 내용에 대해 살필 수 있었다. 개별 면접 이후에도 노조 상근활동가들과 몇 차례 전화 및 이메일을 통해 추가 조사를 수행하였다. 또한 조합원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노조의 협조를 얻어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조사는 2014년 7월에 이루어졌고 조합원의 인적 속성, 가입 동기, 노조 참여 및 평가 등이 주요 설문 내용이었다. 조사방식은 온라인 설문조사로 노조가 파악하고 있는 조합원의 개인 이메일을 통해 배포되었고, 설문 작성을 독려하기 위해 노조에서 유선으로 연락을 취하였다. 응답자는 총 100명이었다.

이 글을 통해 알바노조의 창립 과정과 문제의식, 주요 활동 내용, 현재적 평가와 앞으로의 과제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에 앞서 현재 알바노조의 조직 현황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알바노조의 전신인 알바연대는 2013년 1월에 결성되었고, 알바노조는 같은 해 8월에 설립되었다. 조직형태는 일반노조이고, 조합원 자격은 ‘모든 노동자’로 열려 있다.14 조합비는 법정최저임금 시급이고, 조합비 납부율은 약 50% 정도이다. 조합원은 2013년 8월 설립신고 당시 10명에서 출발하였고, 2014년 7월 현재 312명으로 증가하였다. 조합원 이외에도 알바연대 회원들이 별도로 존재하는데 이들의 회비는 알바노조의 후원금으로 사용된다. 후원회원 수는 약 400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알바노조의 상근자는 현재 8명이고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고 있다. 노조 집행체계는 현재 기획팀, 홍보팀, 조직팀의 3팀으로 구성되어 있고, 아직까지 별도의 대의원 제도는 운영되지 않고 있다. 알바노조는 산하 조직으로 지부와 분회를 둘 수 있는데, 현재 지부는 부산지부가 유일하고, 분회는 총 9개이다. 9개의 분회 중 6개는 서울에, 나머지 3개는 부산에 설립되었다. 특이한 점은 분회의 대다수(9개 중 8개)가 대학별 분회라는 점이다. 알바노조는 상급단체 없이 운영되는 독립노조이다.

2. 창립 과정과 초기 활동

가. 알바연대의 결성과 알바노조의 설립

알바노조는 ‘알바연대’가 노동조합으로의 조직적 전환을 결정하며 만들어졌다. 알바연대는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무소속 김순자 후보 선거캠프의 운동원들 중 일부가 주축이 되어 대선 직후 결성한 단체였다. 김순자 후보는 청소용역노동자 출신으로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의 대표를 자임하며 대선에 출마하였다. 대표적 공약 중 하나가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었고, 선거 운동의 일환으로 서울 시내의 아르바이트 노동자 근로실태 조사를 벌였다. 그 과정에서 선거 운동원들은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구체적으로 파악하면서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중 가장 열악한 처우에 노출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비정규 불안정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상설적인 운동조직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대선이 끝나고 이러한 필요성에 공감하는 7, 8명의 초동 주체들이 논의를 거쳐 2013년 1월 2일 ‘알바연대’ 창립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들은 가장 단기적이고 노동법적 보호의 사각지대에 위치하며 고립된 채 흩어져 존재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우리 주변에 일상적으로 존재하는 대중적인 불안정 노동자라고 인식하며 이들의 이해대변과 조직화를 자기 임무로 하는 상설적인 운동 단체의 결성을 도모한 것이었다.

진보정당들이 선거 끝나면 선거 때 제시한 허무맹랑한 공약 다 잊어버리고 하는데, 그러지 말고 우리는 이걸 일상의 운동으로, 사회운동적 차원에서 이걸 제기하고 그걸 만들어가는 그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 그런 단체를 만들어보자는 논의가 있었고, 그러면서 알바노동자들과 최저임금 1만원 이걸 연결해서 알바연대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죠. … 기존에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라고 했을 때 사회적으로 딱 떠오르는 이미지는 극렬하게 저항하는 소수의 비정규직 노동자들, 어디 철탑에 올라갔다든지 수백일 농성투쟁을 한다든지 이런 이미지죠. 그런데 실제 비정규직 불안정 노동자들은 주변에 깔려있고, … 그러면 우리 주변의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부터 만나는, 그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운동이 좀 더 대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거 아니냐. 비정규직 철폐하자 이런 것보다 알바들의 권리를 찾자라고 하는 게 훨씬 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것 아니냐 해서, 제 머릿속에서는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를 대중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단어가 알바일 수 있겠다, 이런 생각을 해서 이제 여기에 한번 주목해보자고 생각한 거죠. (연구참여자 M)

따라서 알바연대는 대통령선거운동에 모인 진보정당운동의 일 주체들이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운동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목적으로 의식적으로 결성한 단체였고, 이것이 이후 알바노조의 모태가 되었다. 2013년 상반기에 알바연대 활동을 시작한 이후 5월경에 노동조합 설립 논의가 내부에서 시작되었다. 노동조합 설립을 추진한 이유는 비영리단체의 경우 실질적인 노동권의 보호와 이해대변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론을 통한 이슈의 제기나 노동청 진정 등이 주요한 활동 방식이었지만, 그것은 아르바이트 노동자 스스로 집단적인 힘을 통해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었다.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합법적 지위를 획득하면 직접 사용자를 상대로 법률에서 보장되는 여러 가지 권한을 사용할 잠재력이 생긴다는 점에 주목한 것이었다. 또한 당시에 청년유니온과 노년유니온 등 구직자를 조합원의 일부로 포함한 일반노조의 설립신고가 받아들여졌다는 점도 중요한 자극이 되었다.

알바연대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면서 상담도 들어오고 알바노동자들의 문제에 개입하게 되고, 이런 과정들 속에서 결국 새로운 또 다른 수단이 우리에게 필요한 거 아니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알바연대라는 시민사회단체의 틀에서는 상담을 받으면 우리가 어떤 권한이 없으니까, 사용자에게 뭐 요구하거나 이런 권한이 없으니까, 그냥 노동청 진정이 대부분의 경로였던 거죠. 대신에 그걸 잘 모아서 이슈파이팅을 한다든지 이런 정도는 할 수 있겠지만, 직접 사용자와 만나서 요구하거나 이럴 수 있는 조건은 아니었던 거죠. … 어쨌든 노동조합은 노동3권이 있고 교섭권한이 있으니 우리도 노조해볼 수 있는 거 아니냐, 청년유니온이 노동조합으로 인정된 사례도 있고. 우리도 해보자 그러면서 시작을 한 거죠. (연구참여자 M)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알바연대는 5월에 조합원 10명으로 ‘아르바이트노동조합’ 설립신고서를 제출하였다. 설립신고증 발부가 지연되면서 알바연대는 8월 6일 과천 고용노동부 앞에서 전격적으로 ‘알바노조’ 출발 기자회견을 하였고 이것이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고용노동부는 기자회견 바로 다음날 설립필증을 발부하였고 이로써 알바노조는 합법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 당시 조합원 10명 중 취업자(아르바이트)는 6명, 구직자는 4명이었다.

노조 설립 당시의 알바노조는 아직까지 체계적인 조직구조를 갖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알바연대의 상근 활동가는 당시 7명이었는데, 이들의 역량이 알바노조로 옮겨왔고 알바연대는 노조의 외곽 후원조직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아직까지 노조 규약도 없었고 총회를 통한 공식적인 임원진 선출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창립 총회는 2013년 11월 9일에 개최되었고, 여기서 위원장, 부위원장, 사무국장 3명이 조합원들의 오프라인 투표를 통해 선출되었고 노조 규약도 제정되었다. 알바노조는 창립총회에서 향후 1년 동안의 사업계획으로 △알바 1000명의 알바인권선언, △노동조합 체계 갖추기, △온라인소통 강화, △분회교섭을 통한 노동조건 개선과 이슈화, △최저임금 1만원 인상 투쟁, △부설 알바상담소 운영, △조합원 500명 조직화, △전국단위 노조 조직화, △대학·청소년·지역 등의 분야별 조직사업 전개 등을 밝혔다. 이와 더불어 총회 참석자 전원의 명의로 다음과 같은 ‘특별결의문’을 채택하면서, 알바노조는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권리를 옹호하고 요구하는 조직임을 천명하였다.

아르바이트는 이제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노동형태가 되었다. 학생들의 용돈벌이, 경험삼아 하는 일이라는 인식은 이제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다. … 우리는 전 사회에 걸쳐 존재하지만 한편으론 존재하지 않는 노동자다. 수많은 왕들을 모시는 우리는 권리도 주장할 수 없고, 목소리도 높여서도 안 된다. 법에 명시되어 있는 온갖 권리들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는 아무 의미 없는 글자들의 나열일 뿐이다. … 당돌하면 안 되는 우리가 이제부터 당돌해지기 위해 노동조합을 결성했다. 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은 우리를 옭아매고 있는 사슬을 끊고 인간다운 삶을 위해 목소리를 높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당당하게 요구할 것이다. (알바노조 1차 총회 특별결의문, 2013. 11. 9)

나. 결성 초기의 활동과 문화

알바노조는 기존 조직노동과는 독립적으로 진보정당운동 내부에서 발생하였다. 따라서 노동조합운동으로부터 자원이 보충되기보다는, 진보정당운동(현재의 노동당, 과거의 사회당)과 장애인·청소년인권운동 등의 사회운동 등으로부터 인적 자원이 유입되었고 실무 역량이 보충되었으며 재정적 후원의 네트워크도 마련되었다. 알바연대의 결성을 가능케 한 정기적인 재정 후원은 지금까지도 알바노조 수입의 2/3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알바연대 시기부터 약 7-8명의 상근활동가들이 존재하였는데, 이들은 최저임금 수준의 보수를 받으면서도 운동의 헌신성을 크게 발휘하였다.

알바연대/알바노조의 활동에 있어서 가장 큰 난관 중 하나는 조직 대상인 알바노동자에 접근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점이다.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 중에서도 가장 유동성이 높고 고립성이 큰 알바노동자를 조직 대상으로 하였기에 잠재적 조합원에게 접근하는 것 자체가 큰 어려움이었던 것이다. 알바연대 결성 후 초기 활동 과정에서 활동가들은 ‘최저임금 1만원’ 의제를 갖고 거리 캠페인, 선전전, 서명운동, 연설, 실태조사, 소식지 발간 및 배포15 등의 활동을 벌이며 잠재적 조합원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하였다. 대중적 인지도가 처음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13년 2월 대통령 인수위원회 앞에서 벌인 박근혜 당선자의 최저임금 관련 공약 비판 기자회견이었다. 자신의 노동조건이 최저임금에 거의 전적으로 결정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 당사자들이 조직을 갖추고 처음으로 공중을 상대로 집단적 목소리를 낸 것이었기 때문에 알바연대 내부의 기대보다 훨씬 더 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알바연대의 활동이 일간지 지면에 실린 게 처음이었다.

이를 통해 활동가들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이후 자신들의 주장을 보다 잘 드러낼 수 있는 기획 사업을 잡게 되었다. 그것이 이른바 ‘알바오적(五賊)’ 릴레이 기자회견(2월말∼4월초)이었다. ‘알바오적’은 아르바이트를 대량으로 채용하는 업종별 프랜차이즈 기업 중 매출 규모가 가장 높은 4개 기업(GS25, 파리바게트, 롯데리아, 카페베네)과 근로감독의 책임을 가진 고용노동부로 선정하였다. 당시 사회적으로 ‘갑을관계’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는 상황에서 알바연대는 대형 프랜차이즈 본사의 정책이 바뀌지 않는 한 가장 밑바닥의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권리는 실현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릴레이 기자회견을 통해 강조하였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구조에 대해서 우연히 좀 주목하게 됐고, 그러면서 편의점, 커피전문점 등 업종별로 유형화된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매출규모가 어마어마하고 다 거기서 알바를 쓰고 있고, 법위반 사례도 많고, 이렇다는 사실을 알게 돼서 그걸 가지고 기자회견하고 고발했었죠. … 그 배경에는 2월부터 아마 그런 얘기가 다 있었는데, 갑을관계 이러면서 특히 편의점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 사이의 불공정 거래, 점주가 자살하는 이런 사건들이 계속 있었어요. 그러면서 이게 구조적 문제가 있구나, 이것을 계속 제기하면 알바들 문제를 좀 얘기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 당시의 기대는 이게 잘 되면, 프랜차이즈 본사를 잘 쪼면 그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일하는 알바들을 뭔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더 넓어지는 게 아니냐 이런 생각도 사실 했구요. 그러면서 이제 그런 기자회견을 기획하게 된 겁니다. (연구참여자 M)

이 기자회견은 창의적인 퍼포먼스를 가미하여 언론의 주목을 끌었고, 알바연대의 활동과 주장이 주요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적 인지도와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생겨나기 시작하였다.16 릴레이 기자회견을 통해 알바연대는 ‘퍼포먼스가 가미된 기자회견’을 자신의 고유한 행동 전술로 삼게 되었다. 열악한 재정적 자원 하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공중의 관심을 끌고 이슈를 전파할 수 있는 운동 레퍼토리로 채택한 것이다. 이후 2013년 한 해 동안 알바연대/알바노조는 ‘퍼포먼스가 가미된 기자회견’을 모두 40여 차례 벌였다.

알바연대의 초기 활동 중에서 내부적으로 가장 크게 자신감을 얻게 된 행사는 2013년 5월 1일 노동절의 독자적인 집회 및 거리행진(일명 ‘알바데이’)이었다. 노동절을 맞아 알바연대는 기존 노동조합의 집회 문화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으로 알바노동자의 메이데이 행사를 기획하였다. 약 150명 가량이 참여한 ‘알바데이’ 행사에서 알바연대는 독자적인 동원력을 확인하게 되면서 활동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알바데이’의 핵심 구호는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대기업의 이윤을 알바 노동자들에게, △우리에게 좋은 일자리를 등이었다. 행사는 알바 노동자들의 자유 발언, 인디밴드 공연, 알바 권리장전(‘알바나카르타’) 선언, 플랑 제작, 거리 퍼레이드, 진정서 붙이기 퍼포먼스, ‘쉬고싶다’ 플래쉬몹, 편의점 가맹점협의회 발언, 박터뜨리기 등으로 청년층의 문화적 감수성과 잘 어울리는 창의적인 기획력이 돋보였다.17 노동운동에서 기존에 찾아보기 힘든 다채롭고 창의적인 집회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활동가들은 매우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이제 5월 1일 메이데이 때 민주노총의 집회라는 게 대공장 정규직 노동자들 중심의 집회고, 굉장히 딱딱하고 중앙집중적이고 이렇잖아요? 그래서 알바데이 기획이 초반부터 논의가 있었어요. 5월 1일은 알바들의 메이데이, 알바데이다, 이렇게 결정을 했죠. 어쨌든 내용을 어떻게 꾸밀까를 가지고 엄청 고민했죠. … 좀 예전부터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운동이 너무 무겁고 경직되어 있다. 물론 그게 왜 그런지는 알지만, 어느 정도 관성도 있는 거 아닌가 해요. 그리고 투쟁을 좀 즐겁게 하고 싶다, 즐겁고 신나고, 보는 사람이 나도 같이 하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는 그런 걸 하면 안 될까? 왜 항상 무겁고 앞에서 다 어조도 똑같잖아요. … 우리는 여기 이 미친 세상에서 살아남아 즐겁게 투쟁할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아 카라멜마키아또님 저보다 비싸시네요’, ‘햄버거 하나 못 먹는 내 인생’, 이런 수준으로 비꼬는, 그런 풍자와 개그 코드가 있어도 되니까요. … 민중가요를 안 부르고, 인디밴드의 대중가요를 부른다고 해서 누가 지탄받을 것도 아니고, 그냥 좀 마음대로 하겠다는 데, 그래서 그런 기풍들이 그렇게 잡혀갔던 거 같아요. (연구참여자 N)

그 후 알바연대는 앞서 보았듯이 5월경부터 노조 설립을 도모하여 8월 7일에 노조설립필증을 교부받아 합법적 지위를 얻었다. 그러나 알바노조는 아직까지 노조의 공식 체계를 마련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노조의 규약도 없었고, 조합원 총회를 통해 임원을 선출하지도 못한 상태였다. 알바노조는 11월 창립총회를 개최하여 노조 규약을 제정하고 임원을 선출하였으며 집행체계를 정비하고 사업계획을 구체화하였다. 창립총회 당시 조합원은 136명이었고 실제 총회에 참석하여 임원 선출 투표에 참여한 조합원은 74명이었다. 알바노조 총회 이후 지부와 분회가 추가적으로 속속 결성되었다. 성공회대분회 및 가톨릭대분회가 11월 29일에, 경희대분회가 2014년 2월 20일에, 부산지부가 2월 21일에, 흥분회가 2월 24일에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현재 알바노조의 지부는 부산지부 1개이고, 분회는 서울에 6개, 부산에 3개로 총 9개로 구성되어 있고, 지역별 준비모임은 울산, 광주, 수원, 창원, 대구 등에서 시작하고 있는 상황이다.

3. 주요 활동: 캠페인과 개별 교섭

가.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

알바연대 결성 초기부터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은 핵심 사업이었다.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은 단순히 알바노동자들의 시급을 대폭 올리자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근로빈곤층의 소득을 대폭 상승시키고, 노동시간의 절대적 연장을 통해 생계를 꾸려가는 많은 저임금근로자들에게도 단위시간 당 임금을 대폭 올림으로써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일자리를 늘리며 자유로운 여가시간을 확충할 수 있다는 새로운 사회의 모습에 대한 청사진까지 함축하고 있는 것이었다.

2013년에 알바연대는 기존의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하는 ‘최저임금연대’에 참여하지는 못하였다. 그 대신에 2013년 5월에는 다른 단체들과 함께 ‘최저임금1만원위원회’를 구성하여,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6월 8일부터 27일간 농성을 하였다. 최저임금1만원위원회는 알바연대의 주도로 청년좌파, 좌파노동자회, 노동당 청소년위원회, 노동당 청년학생위원회, 연구공간L,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충남비정규직지원센터 등이 함께 하였다. 알바연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주장하며 과감하게 직접 행동을 벌였다. 경총 건물 처마 위를 점거하고 경총의 최저임금 동결 주장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고, 경복궁 신무문 위로 올라가 ‘나쁜’ 시간제일자리를 양산하는 정부 정책을 비판하였으며, 최저임금위원회 앞에서 ‘최저임금 1만원 대회’를 열기도 하였다.

2014년에 들어와 알바노조는 ‘최저임금연대’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였다. 이것은 시민사회에서 알바노조가 대중적 인지도가 생기고 최저임금에 의해 자신의 임금이 정해지는 알바노동자의 권익을 대표하는 유력한 조직으로 평가받게 되었음을 의미하였다. 알바노조의 참여로 기존에 다소 관성적으로 운영되던 최저임금연대는 양대노총 요구안뿐만 아니라, 알바노조와 청년유니온 등의 자체 요구안이 함께 논의되면서 예년에 비해 보다 활력을 갖게 되었다.

최저임금연대에 가보면 민주노총, 한국노총, 여성노조, 참여연대 등의 단체들이 있어요. 저희가 들어가니까 묘한 긴장감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각 단체 요구안이 이미 다 나왔고, 민주노총에서 6,700원, 청년유니온이 7,500원, 우리가 만원. 원래 우리가 없었을 적에, 알바노조가 존재하지 않았을 때의 요구안이라는 건 거의 민주노총의 요구안이었는데, 우리가 존재함으로써 청년유니온도 요구안 조사작업을 시작했고, 그나마 좀 높게 나온 것 같아요. 이제 회의 끝나고 물어보는데, 올해 최저임금연대 분위기는 참 많이 다른 것 같다고 그러대요. … 작년 같았으면 그냥 민주노총 하자는 대로 할텐데, 좀 다른 것 같다, 이래저래 의견도 물어보고. … 저희는 협상안이랑 요구안이랑 다를 수 있다, 분리해서 운동이 풍성해질 수 있는 안으로 가야되지 않겠냐, 그런 거를 계속 요구했어요. (연구참여자 N)

최저임금연대 이외에 알바노조는 ‘최저임금대폭인상 생활임금쟁취 서울지역연석회의’에도 참가하고 있다. 이 연석회의는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가 주도하고 청년유니온, 진보정당 서울시당, 사회진보연대, 전국학생행진,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등이 참가한다. 연석회의 차원에서 지난 6월 13일에 청년유니온과 알바연대가 광화문에서 공동 문화제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현재까지 최저임금 1만원 인상 주장이 다른 단체나 조직으로부터 적극적인 지지를 받지는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은 OECD 주요 회원국의 법정최저임금 수준으로의 대폭 인상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바노조를 대표하는 슬로건이자 요구로서 알바노조의 존재와 활동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도록 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나. 프랜차이즈업체와의 교섭

2013년 8월에 합법노조가 된 알바노조의 고민은 노동조합다운 교섭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섭 사례를 만들어 다양한 사례들을 축적함으로써 일반노조로서의 활동 정체성을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첫 번째 교섭 사례는 지하철 상가에 주로 입주해 있는 액세서리 프랜차이즈업체((주)레드아이)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조합원의 문제제기에서 시작하였다. 알바노조가 주최하는 노동법교육에 참여한 한 대학생 조합원이 주휴수당과 야근수당 규정을 알게 되어 자신이 일하던 ‘레드아이’ 매장 관리자에게 자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였다가 해고를 당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해고를 당한 이 알바노동자가 노조에 상담을 요청하여 자문 노무사와 함께 대책을 논의하여 프랜차이즈 본사를 상대로 공문을 발송하였다. 회사에 대한 압박으로 본사 사장이 직접 알바노조로 전화를 하여 논의가 시작되었고, 알바노조는 본사에 정식으로 교섭 요구 공문을 보냈다. 10월 2일 알바노조는 이후 업체 측과 교섭에 들어갔다. 업체와 맺은 ‘단체협약’은 부당해고 사과 후 복직, 근로기준법 준수, 매장 종업원들 의자 설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1. ○○○점에서 근무하는 이○○ 조합원에 대한 해고통지가 부당함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이를 철회한다.
2. 향후 레드아이에서 채용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 대해 법정수당·휴게시간 등 노동법을 준수한다.
3. 레드아이에 채용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의 휴게를 위해 전 매장에 의자를 설치한다.
4. 성폭력 및 성희롱에 대응할 수 있는 신고 및 징계절차를 확고히 마련하고 연 1회 성평등 교육을 전 직원이 이수할 수 있도록 교육체계를 마련한다.
5. 레드아이에 채용된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근무조건, 해고 등 아르바이트 노동자의 처우와 관련된 사항을 논의하기 위한 노사협의회를 설치하고, 조합에서 추천한 1인 이상이 근로자위원으로 참여한다.
6. 위 사항을 기본협약으로 정하고 차후 단체교섭을 통해서 단체협약안을 체결한다.


두 번째 교섭은 2013년 11월 경 가톨릭대 재학생이 아르바이트를 하던 학교 근처 삼겹살전문 프랜차이즈점(구이가)의 가맹점주를 상대로 주휴수당 지급을 요구한 것에서 시작하였다. 알바노조 가톨릭대분회에서 학내에 붙인 주휴수당 홍보 대자보를 보고 비조합원이었던 한 학생이 분회에 주휴수당 미지급 관련 상담을 하게 되고 조합원에 가입하였다. 노조 차원에서 검토한 결과, 근로계약서 미작성, 야근수당 및 주휴수당 미지급, 해고절차의 위법성 등이 발견되었다. 분회 차원에서 가맹점주에게 문제를 제기하였으나 시정이 되지 않자, 노조 차원에서 압력을 가하게 되었다. 우선 알바노조는 학교에 대자보를 부착하고 유인물을 만들었고 집회신고를 내기도 하였다. 부천 노동청 앞에서 인근 상권에 대한 특별근로감독 실시를 하라는 요구를 하고, 가맹점주에게 법적인 조치를 할 것이라는 통보를 하였으며, 가톨릭대분회와 성공회대분회 조합원들이 가게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였다. 이후 해당 업체의 사용자는 미지급 주휴수당 지급에 동의하여 11월 16일에 합의문을 작성하게 되었다. 체불임금 지급, 법 준수, 임금명세서 지급, 정기 협의, 협약 사항 게시, 가맹본부에 단체교섭 제안 등의 내용을 담게 되었다. 특히 뜨거운 불판을 교체하는 등 고깃집 알바들이 처한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여, 응급약품과 장갑이나 집게 등 안전장비를 구비하고, 상해를 입을 경우 근무시간 내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치료가 가능하도록 조치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알바노조 설립 이후 이루어진 이 두 건의 교섭 사례는 그 이전 노동부 진정에 의존했던 문제제기와는 다르게 알바노조가 개별 조합원의 문제를 확대해 해당 업체 전체의 알바 노동자의 처우개선과 권리 신장을 도모할 수 있는 직접적인 경험을 제공해 준 것이었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알바노조의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고 조합원을 확충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고 알바노조 활동가들은 인식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들이 계속 있을 건데, 저희 입장에서도 쉬운 것은 받아서 노동청에 넘겨주면 되거든요. 알바연대 때 했던 것처럼. … 문제는 노동청으로 갔을 때 구제되는 건 그 개인, 문제제기한 개인만 권리구제가 되는 것이지, 거기서 일하는 전체 알바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없고, 그리고 그런 과정들 속에서 알바들이 조직화될 수도 없기 때문에 저희가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사례들을 계속 쌓아나가야, 알바노조를 신뢰하고 조합원이 되고 이런 알바들이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해요. …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그런 방식으로 문제해결을, 사용자랑 직접 만나서, 서면으로 요구안을 제시하고, 같이 합의하고, 이렇게 해야 알바들도 힘을 받을 수 있다, 내 문제를 노조가 저렇게 나서서 이렇게 해결할 수 있고, 나만의 문제만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 가게에서 일하는 전체 알바들의 문제가 좋아지는 이런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구나라는 인식을 시켜줘야겠다, 이런 생각에서 이렇게 하는 거죠. (연구참여자 M)

다. 노동상담의 전문화

알바노조는 노동상담 업무를 통해 개별 알바노동자의 권리구제를 위한 실질적 수단을 제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창립총회에서 제출된 2014년 사업계획 중 조직사업의 첫 번째 항목이 ‘알바노조 부설 알바상담소 운영’이었다. 알바상담소는 2014년 5월부터 운영에 들어갔다. 현재 노조 상근자 2명과 자문 노무사 1명이 상담 업무를 하고 있다. 노동상담은 주로 홈페이지의 온라인 상담을 통해 접수되는데, 향후 알바상담소 별도의 인터넷 카페로 집중되도록 할 계획을 갖고 있다. 지난 5월 알바상담소가 운영을 시작한 이후 접수되는 상담 내용의 대부분은 임금체불 문제라고 한다. 특히 주휴수당 미지급, 수습을 이유로 한 계약 초기 급여 미지급, 급여를 정기적으로 주지 않는 문제, 그리고 업무 소홀시 벌금 부과로 인한 급여 삭감, 사직 의사 표현시 임금의 일부 체불, 최저임금 미지급, 추가근로 수당의 미지급 등으로 매우 다양한 법위반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 그 외에도 부당해고나 산업재해 처리 등도 접수된다.

또한 알바상담소가 보다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최근에는 알바상담소 서포터즈를 모집하고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알바상담소 서포터즈는 알바상담소를 홍보하고, 기초적인 상담에 필요한 지식을 익히며, 대학교나 홍대 상권 등지에서 알바의 노동권과 관련된 캠페인을 벌이고, 네이버지식인에 올라오는 각종 알바 상담에 답글을 다는 등의 활동을 한다. 현재 1기를 모집하여 30명의 서포터즈들이 체계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 서포터즈에 지원한 이들은 기존의 대학생 조합원, 노무사 준비생, 로스쿨 준비생 등이고, 30명 중 10명은 비조합원들이라고 한다. 9월부터 교육이 시작되어 12월 말에 1기 서포터즈 활동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4. 평가와 과제

알바노조는 신생 조직이다. 알바연대 시기까지 포함해도 아직 2년도 되지 않았고, 알바노조 설립을 기점으로 보면 이제 겨우 1년이 조금 넘었다. 따라서 활동에 대한 평가는 매우 신중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알바연대/알바노조는 한국의 불안정 노동자 또는 프레카리아트(precariat) 운동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지금까지 한국의 불안정 노동자운동이 주로 대기업의 사내하청 노동자나 공공기관의 직접고용 비정규직을 중심으로 성과를 내왔다고 본다면, 알바연대/알바노조가 마치 유목민처럼 산재되어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방치되어 왔던 단기계약직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을 주요 조직대상으로 삼고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려 고군분투해 온 것은 한국사회의 불평등 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주체적 노력으로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특히 열악한 재정적 자원 하에서도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을 조직 설립 초기부터 지속적으로 벌여오면서 의제의 사회화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점, 그리고 알바노동자 당사자의 문제제기를 개인의 권리구제에 그치지 않고 프랜차이즈 본사를 상대로 ‘갈등의 사회화’를 위해 노력하고 사용자와의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 협상의 경험을 축적하였다는 점 등은 특기할 만하다. 또한 최근에 들어와 알바노동자를 위한 전문적인 상담체계를 구축하여 본격적인 활동에 나선 점 등은 주목할 만하다.

마지막으로 현재 알바노조가 직면하고 있는 내외부적 과제에 대해 살펴보도록 한다. 우선 알바노조는 지난 1년 동안 조합원 규모의 측면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하였다. 2013년 8월 알바노조가 노조설립신고서에 제출한 조합원 명부에 기재된 수는 단 10명이었다. 이후 11월 알바노조 창립총회 당시 집계된 조합원은 136명이었고, 2014년 7월 현재 321명을 기록하였다. 노조의 상근 활동가들이 파악하기로는, 전체 조합원 중 약 3분의 1 정도는 대학별 분회 또는 학생운동단체를 통해 가입한 ‘학생 대오’들이고, 나머지 약 3분의 2 정도는 언론 보도를 접하거나 개별 상담을 통해 가입한 조합원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개별 가입 조합원들의 인구학적 구성이나 노조 참여 의사 등이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알바노조 조직의 주축은 아직까지는 상당한 정치의식을 갖춘 대학생 그룹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조합원 구성의 특성은 조합원 실태조사를 통해서도 어느 정도 유추해 볼 수 있었다.

지난 7월 본 연구조사를 위해 실시한 알바노조 조합원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김종진, 2014), 총 321명의 조합원 모집단 중 조사에 응한 표본 집단은 100명이었다. 실태조사는 노조가 보유한 조합원 연락처를 통해 온라인으로 배포되어 수거되었고, 그 과정에서 노조 활동가들이 조합원과 유선으로 접촉하여 참여를 독려하였다. 따라서 이 표본은 아마도 알바노조의 활동에 비교적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사를 가진 조합원 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의 속성을 몇 가지 살펴보도록 한다. 먼저 조합원의 인구학적 속성을 보면, 남성이 60.8%로 많고, 대다수(96.9%)가 미혼이며, 72.2%가 수도권에 거주한다. 최종학력을 보면, 4년제 대학교 재학 이상이 87.5%로 압도적인 수치를 차지하는 반면, 고졸 이하는 9.4%에 불과하다. 또한 경제활동과 관련하여, ‘현재 아무런 경제활동을 하지 않음’(학생 포함)이 55.7%, ‘현재 취업하고 있음’이 28.9%, ‘실업상태에서 현재 구직 활동 중’이 10.3%, ‘취업준비 또는 진학준비’가 5.2%로 조사되었다. 다시 말해 조합원의 다수가 대학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대학 재학 이상의 조합원들을 상대로 학생운동 경험을 물었을 때, 학생운동단체에 가입하고 있거나 가입하였던 사람이 60.8%, 과/학부 대표를 경험한 사람이 21.5%를 차지하는 등 학생운동 경험이 상당히 높은 조합원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지난 1년간 집회나 시위 등에 직접 참여한 적이 1번이라도 있는’ 조합원이 92.4%를 차지할 정도로 응답자의 정치의식이나 정치 참여도가 매우 높은 특징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알바노조의 조합원 구성은 비교적 정치의식이 높은 학생 집단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나머지 조합원들은 알바노조의 활동을 여러 경로로 접한 개별 가입자로 이루어져 있다. 노조의 입장에서는 이 후자의 집단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고, 알바노조에 무엇을 기대하고 있으며, 어떻게 노조 활동에 참여시킬 것인지에 대한 계획과 전망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고 자체적으로 냉정하게 평가를 하고 있다. 즉 현재까지의 성과는 언론의 주목에 기댄 바가 크고, 개별적으로 가입하는 조합원들이 동원이나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조직화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는 것이다. 개별적 가입을 통해 조합원이 된 사람들이 실제 주체화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어야 한다고 알바노조 활동가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알바노조는 올 초부터 조직팀을 보다 체계화하여 조합원 교육 및 관리에 힘을 쏟고 있다.

일반 시민단체 회원으로 후원해주는 느낌으로 하는 조합원들도 많기 때문에, 대학생들 중에도 그런 친구들이 꽤 있어요. 그래서 알바노동자 대오를 만들어야 돼죠. 그러려면 우리 모르게 가입한 이 2백명의 조합원들, 이 손에 잡히지 않는 조합원들을 만나서, 이들이 언제 움직일 수 있고, 어느 정도를 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로 결의할 수 있는지, 우리가 다 손에 잡아봐야 해요. 아무도 모르지 않느냐, 이백명에 대해서 어떤 사람인지, 그래서 조직팀을 강화해야겠다 이런 생각을 했죠. (연구참여자 N)

다음으로 개별 가입 형태의 일반노조로서 알바노조의 특성에 맞는 조직화 및 교섭 모델을 중장기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과제가 있다. 알바노조 내부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지역 단위의 조직화 및 교섭을 고민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점 지역의 선정과 자원의 집중적 투입을 통해 특정 지역상권에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의 지역협약의 체결을 중장기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알바노조는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진보정당의 지역위원회, 진보적 지방자치의원 등과의 연합(coalition)을 꿈꾸고 있다. 그 첫 발을 내딛기 위해 알바노조는 홍대 지역을 지역거점으로 만들려는 시도를 올해부터 하고 있다.

향후의 그림은 지역노조고, 이것이 기반이 되는 지역정당, 이 두 개가 결합되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은 실제로 돈을 낼 수 있는 능력도 많지 않고, 조직적 힘이 모아질 수 있는 가능성도 별로 높지 않고, 단지 사건은 되게 많고, 뭔가 지원해줘야 하는 일은 되게 많은데, 역량이 잘 모아지지 않는, 이런 굉장히 어려운 존재들이기 때문에, 그걸 지지하는, 거기에 동조하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 정규직 노동자든, 교사든, 학생이든,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이 운동을 엄호하고 지지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정당운동으로 조직되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이 운동의 결합을 생각하고 있어요. (연구참여자 M)

결론적으로, 알바노조는 좌파정당운동의 한 세력이 불안정 노동자의 조직화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대중운동의 창출을 고민하는 연장선상에서 출발하였고 가장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고 거의 아무런 이해대변 제도에 포괄되지 못하고 있는 알바노동자를 핵심적인 조직 대상으로 하고 있다. 알바노조는 ‘최저임금 1만원’이라는 대표적 슬로건에서 알 수 있듯이, 단기적으로 실현 가능한 정책 대안보다는 명확한 운동 정체성의 표현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최저임금연대’ 기구에 참여하는 등 기존의 주류 조직노동 진영과는 우호적 연대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신생조직으로서의 알바노조는 현재까지 다양한 캠페인 활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시민사회에 알려내고 상당한 규모의 조합원을 조직하였고 몇 차례의 교섭 활동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였다. 이러한 현재까지의 성과가 앞으로 어떻게 더 발전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주)

* 본 발표문은 한국노동연구원의 2014년 기초연구과제(연구책임자: 박명준)의 일환으로 작성되었다. <노동이해대변의 다양화와 정책과제>(2014 근간)로 보고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1) 이 4명은 청년유니온 1기에서 위원장, 사무국장, 정책기획팀장, 20대 모임팀장으로 활동하였고, 마지막 1명은 이후 2기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 청년유니온 창립총회 자료집에 실린 자문위원들(9명)의 소속을 살펴보면, 전국지역업종일반노동조합협의회, 전국실업극복단체연대,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민변노동위원회, 전국사무연대노조, 민주노동당 노동법률지원단, 열린인사노무법인 등이다.

3) 청년유니온의 영문 명칭은 Youth Community Union이다.

4) 대표적으로 주휴수당 캠페인의 실무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활동가는 이후 3기 청년유니온의 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5) 1기 위원장은 이후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 캠프에 참여하였다.

6) 전태일 열사가 주도한 평화시장 노동자 모임에서 그 명칭을 가져왔다.

7) 2012년 2월 현재 지역 청년유니온이 공식 출범한 곳은 대전 1곳이었지만, 지역모임이 운영되고 있는 곳은 원주, 청주, 서울, 인천, 경기, 대구, 부산 등 7곳이었고, 지역모임이 준비 중인 곳은 광주 1곳이었다. 이에 따라 2012 정기총회에서는 규약을 개정해 기존의 지역모임 규정을 ‘지역지부’ 규정으로 바꾸어 전국 조직으로의 발전을 준비하였다(청년유니온 2012 정기총회 자료집).

8) 2기 집행부에는 1기부터 열성 조합원으로 참여하였던 활동가들과 함께 외부로부터도 활동가가 보충되었다. 특히 중요한 것으로는 정책기획팀장으로 진보정당 국회의원실 보좌관을 영입하였고 이를 통해 제도 정치권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1기에서도 정책기획 담당자는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이었고 그가 가지고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청년유니온 활동에 큰 자원이 되었었다.

9) 이외에도 서울시는 청년유니온 1기 임원(위원장, 사무국장)을 역임하였던 두 명을 청년부문 서울시 명예부시장으로 임명하면서 파트너십을 유지하기도 하였다.

10) 9명 중 4명의 인건비는 서울시의 혁신일자리사업 지원을 통해 지급되고 있어, 자체 예산으로는 5명의 상근자 인건비를 충당하는 셈이다.

11) 2014년 2월의 조합원 총회에서 3기 임원진 선거의 투표 참여율이 50%를 조금 넘겼다.

12) 지역지부의 재정은 조합비의 경우 각 지역 조합원이 납부한 조합비의 절반을 해당 지부로 내려보내고, 후원회비의 경우에는 각 지부별 지정후원금의 전액을 해당 지부가 사용한다.

13) 청년유니온, “2014년 사업계획(안)”, 2014년 청년유니온 총회 및 대의원대회 자료집(2014. 2. 22), 40-41쪽.

14) 애초 알바노조 창립총회의 노조 규약에는 조합원 자격을 “임시직·계약직·시간제 등 사회적으로 아르바이트라 불리는 노동을 하고 있거나 관련 구직자”로 제한하였으나, 2014년 초의 임시총회에서 이러한 제한을 모두 풀었다.

15) 알바연대의 정기소식지는 매월 발행한다. 창간호는 2013년 2월에 발간되었고, 알바노조 설립 이후에는 알바노조 명의로 발행된다. 최저임금 1만원 캠페인을 강조하기 위해 소식지 제호도
최신기사
기획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온라인 뉴스구독

뉴스레터를 신청하시면 귀하의 이메일로 주요뉴스를 보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