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렁이처럼 천천히 사회적 투쟁으로 나아가는 기륭 오체투지

24일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 오체투지 행진 3일째 현장

유흥희 금속노조 기륭전자 분회장은 이마를 땅에 박고 두 손 두 발을 뻗어 온몸을 엎드리는 오체투지를 시작하자마자 서글픔이 몰려왔다. 10년을 싸워 어렵게 복직한 회사는 야반도주를 했고, 그 오랜 세월동안 정리해고 비정규직 철폐를 외쳤지만 재계와 정부 여당은 관련법을 더 개악한다고 난리다.


98년 IMF이후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정책이 휘감은 차별의 세상에 하얀 민복을 입은 행렬은 지렁이처럼 꼬물거리며 천천히 나아가고 있었다. 말이 좋아 자신의 몸을 낮추고 스스로 고통을 겪는 오체투지지만 눈까지 펄펄 내리는 땅에 코를 박자 얼마 못가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유흥희 분회장은 서러움이 복받쳤지만 그나마 함께 차가운 땅에 엎드려준 곳곳의 동지들이 있어 힘이 됐다. 그렇게 오체투지 첫 날을 보내고 맞은 다음 날 아침은 온 몸이 쑤시고 힘들었다.

지난 22일 시작된 오체투지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3일째에 이르렀다. 북치는 소리에 맞춰 열 걸음을 걷고 다시 북 소리에 온몸을 보도블록 위에 뻗으며 대방동 기륭전자 본사 농성장에서 여의도 국회 앞을 거쳐 마포대교를 건넜고, 공덕을 지나 충정로 종근당 사옥까지 왔다. 염화칼슘이 섞인 눈이 녹아 스며든 보도블록 위에 엎드리는 통에 까맣게 물든 하얀 민복과 얼굴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의 고통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렇게 청와대까지 가는 과정에서 둘째 날엔 엘지 유플러스 등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현장을 지났고, 국회 원내 3당 원내대표실을 찾아가 비정규직 법안 개정 관련 질의서를 직접 전달했다. 국회에 들어갈 땐 더러워진 하얀 민복을 벗고 들어가라는 통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질의서를 전달하러 갔는데 우리 복장이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말 한마디에 울컥 했어요. 너무 성질이 났어요.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이 더럽다고 생각하느냐. 비정규직 삶은 이보다 더한 삶이다’고 따졌어요. ‘지금 쫓겨나고 거리에 나와 있는 사람은 이 옷보다 더 밑바닥 삶인데 비정규직, 정리해고 법을 개악한다고 하니 우리가 국회에 오는 것이 아니냐’고 항의했어요”



유흥희 분회장은 이번 오체투지 투쟁의 의미를 두고 “기륭노동자들이 승리했지만 돌아갈 일터도 없고, 수많은 비정규직, 정리해고 사업장 노동자들이 고공에 올라가야 하는 현실 앞에서 이제 기륭 투쟁은 법적 투쟁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며 “결국 비정규직, 정리해고 제도가 폐기되지 않고서는 국민은 행복하게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온몸으로 겪은 당사자인 우리가 국회와 국회를 통치하는 대통령에게 법안 폐기를 얘기하러 가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첫 날부터 오체투지 행렬에 함께 했던 송경동 시인은 “수많은 연대 투쟁을 통해 사회적 합의까지 이루어도 다시 내팽개쳐지는 게 노동자들의 운명이란 것을 기륭 투쟁에서 확인했다”며 “신자유주의 고용유연화 정책 자체를 뜯어고치지 않고는 어느 누구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서 안전할 수 없기에 마지막으로 자신들의 온몸을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사회적 투쟁에 내 놓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는 더 이상 기륭투쟁이 아니다. 오체투지 행진단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법제도 전면 폐기를 위한 행진이고 교섭대상은 썩어 빠진 국회와 정부, 대통령”이라며 “이 절은 청와대나 국회를 향해 몸을 낮추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낮은 바닥에서 함께 출발하자는 뜻이다. 광범위한 연대를 이뤄내고 내년 초부터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와 노동운동이 전면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적 투쟁을 해보자는 호소이고 꿈”이라고 덧붙였다.

24일 오체투지를 끝낸 행진단은 종근당 사옥 앞에서 거리문화제를 이어갔다. 이날 문화제에선 기륭노동자들을 위한 특별한 크리스마스카드가 전달되기도 했다.

오체투지는 크리스마스인 25일에도 이어진다. 오체투지 행진단은 25일 오전 11시에 종근당을 출발해 오후 1시 30분에 정동 민주노총을 거쳐, 3시 30분에 씨앤엠 농성장, 오후 5시에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도착해 기도회를 할 예정이다. 26일엔 오전 10시 50분까지 청와대 앞 청운동사무소까지 행진해 기자회견을 개최할 예정이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용욱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