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외직접투자 세계 13위? 현지 노동자 인권은?

베트남·방글라데시·필리핀 한국기업 인권실태조사 결과 발표

한국의 지난해 해외직접투자(FDI)는 전년 대비 14% 증가해 세계 13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해외투자 증가와 함께 잇따르는 현지 인권 침해는 긴 장벽으로 둘러쳐져 정확히 알기도 힘든 현실이다. 한국 인권노동단체들이 현지실사를 토대로 구조적인 문제를 파헤쳤다.

공익법센터 어필, 국제민주연대 등 8개 단체가 연대한 ‘기업과 인권네트워크’가 29일 오후 서울시 NPO 지원센터 ‘주다’에서 ‘해외한국기업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발표회를 열고 베트남, 방글라데시와 필리핀에 진출한 한국 기업 인권침해의 현실과 구조적인 문제를 짚었다.


우선 베트남에서 한국계 기업의 투자 비중은 증가했지만 노동법을 지키지 않는 기업들로 인해 노동자들의 파업 규모가 크게 확대된 것으로 밝혀졌다.

베트남 현지 조사한 김종철 공익법센터 어필 상근변호사는 “베트남 노동총연맹(VGCL)을 토대로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서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약 800여 건의 파업이 일어났으며 이는 전체 파업 건수의 26%로 대만 다음으로 높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올해 호치민에서만 18개 기업에서 파업이 일어났으며, 박닌에서는 28회의 전체 파업 중 26회가 외국투자기업에서 발생했는데 이 중 한국기업에서의 파업 회수는 16번에 달했다.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는 대게 회사들이 노동법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치민시 노동연맹에 따르면 올해 한국기업에서 일어났던 18건의 노동 분쟁 중 일부는 최저임금에 따른 급여나 보너스 미지급 등을 이유로 발생했다. 임금을 체불하고 도주한 회사, 이직을 막기 위해 ‘테트’라는 베트남의 구정 후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사측의 입장에 맞서 일어난 파업도 있었다.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임금이 문제가 된 경우도 물론 있었다.

김종철 변호사는 “베트남 노동법 자체는 엄격하게 노동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있지만 이행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면서 “노동조합이 대표성을 보장받지 못해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지만 노조의 활동도 늘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글라데시, 노조 설립은 까다롭지만 해고는 자유

현지에 진출한 영원무역 노사분쟁 중 잇따라 노동자가 사망하면서 국내에서도 큰 논란이 된 방글라데시에 대해서는 재하청과 해고 관행, 노동자에 대한 다중적인 폭력과 공권력 개입이 주요한 문제로 지적됐다.

현지를 조사한 류미경 민주노총 국제국장에 의하면, 방글라데시에서는 ILO 노동협약의 핵심 8개 중 7개를 비준한 것을 보면 4개만 비준한 한국보다는 나은 상황이지만, 노동법은 형식적이고 노동조합도 거의 조직되지 않은 상태다. 노조 설립 요건은 매우 까다로워서 30% 이상이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해야 노조를 만들 수 있다. 노조 설립은 까다롭지만 해고는 자유로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류미경 국제국장은 “현지 노동자는 관리자들에게 불만을 제기하면 백지에 서명을 받아 가는데 나중에 이 서명은 사직서가 된다고 한다”면서 “심지어 주기적으로 50-60%의 노동자들을 갈아치우는 회사들도 있었다”고 밝혔다.

지역의 유지들, 구사대들이 노조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동원되는 문제는 특히 심각했다. 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시골에서 상경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측이 노무관리를 위해 지역 폭력배들을 동원한다. 또 수많은 공권력이 노사관계에 투입되고 있는데 산업부대가 따로 있고, 대테러부대에, 회사가 자체적으로 고용하는 경비 인력도 있다. 이들에 활동가들이 납치돼 살해되는 사례도 전해졌다.

류 국장은 개선 방안으로 “글로벌 브랜드를 압박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공급사슬망 전반에 걸쳐서 국제 기준이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바닥으로의 질주가 아닐 수 있도록 의류산업 생산국 전반의 임금 인상을 위한 국제적인 연대운동이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필리핀 인권, 환경 파괴하는 한국 공기업 투자 사례도

한국이 11번째 해외 투자국인 필리핀에 대해서는 개별 기업 뿐 아니라 공적개발원조(ODA)나 대외경제협력기금(EDCF) 등 공기업의 문제도 파헤쳐졌다.

현지를 방문조사한 국제민주연대에 의하면, 필리핀은 한국의 EDCF의 중점지원국으로 베트남, 방글라데시에 이어 지원규모 3위를 차지하고 있는데 해당 사업 과정에서 현지 주민의 인권과 환경이 파괴되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한국수출입은행이 필리핀에 차관계약을 체결한 할라우강 다목적댐 사업, 2010년 한국수자원공사가 최고가를 제시해 최종 낙찰자로 선정된 안갓댐 수력발전소, 지분권을 가지고 있던 LG상사가 2008년 대한광업진흥공사와 함께 경영권을 획득하여 운영하고 있는 라푸라푸 광산이 대표적이다.

할라우강 다목적댐 사업의 경우 현지 주민들은 침수로 인한 주민 공동체 파괴, 거주지와 생계 기반의 박탈과 미흡한 대책, 지진 홍수 등의 자연재해 가능성 증가, 생태계 파괴 등의 문제를 호소하고 있다. 안갓댐 수력발전소의 경우에도 비자발적 이주, 보상대책 부재, 열악한 이주정착시설의 문제가 나오고 있다. 라푸라푸 광산에 대해서도 주민 건강 문제와 생태계 파괴 불법탐사 의혹 등이 불거진 상황이다.

강은지 활동가는 “안갓댐 수력발전소의 경우 당국은 댐 붕괴 위험을 문제로 주민에 대해 지난 9월 중반까지 이주하라는 강제퇴거 명령을 했었다”면서 “붕괴될 위험이 있는 댐을 수자원공사가 산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현지 주민들은 운영권만 산 것이 아니라 필리핀 정부와 이면계약이 있었던 것 같다”며 현지 정부와의 유착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외 노조를 건설하려고 하면 일감을 빼돌리거나 직장을 폐쇄해 노조를 탄압하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목됐다.

강은지 활동가는 “산업안전, 초과근무도 심각하지만 노조에 대한 인식, 노조 파괴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문제인 것 같다”면서 “노동자운동이나 인권운동을 탄압하기 위한 활동가 살해 역시 계속되는 문제인데 한국 기업들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편, 토론자로 참여한 유정 좋은기업센터 팀장은 “2003년 10월 국제민주연대가 발행한 ‘해외한국기업 인권현황 백서’ 후 10년 이상이 지났지만 한국 기업들의 인권 침해는 여전하다”고 밝히는 한편, “이제는 대기업이 진출하고 있듯 더 이상 비용 문제가 인권을 등한시하는 변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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