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유가족, 세입자대책 요구하며 농성 돌입

중구 순화동 개발지구 작년부터 공사 시작...“7년 동안 이를 벅벅 갈았어요”

2009년 1월 20일 생존권을 요구하며 망루에 올랐다가 경찰특공대의 무리한 진압으로 철거민 5명과 특공대원 1명이 불길에 휩싸여 사망한 용산참사의 아픔이 서울 중구 순화동에 이어지고 있다.


용산참사 당시 희생된 고 윤용헌 씨와 불타는 망루에서 추락해 부상을 입은 지석준 씨는 원래 중구 순화동(순화 제1-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 철거민이었다. 순화동 철거 지역도 용산참사 철거 현안과 똑같은 상가세입자 문제여서 용산 철거가 남 일이 아니었다. 둘 다 전국철거민연합 소속이었고, 참사 전날 용산 철거지역 망루 농성에 연대하러 갔다 참사를 겪었다.

2008년 3월에 철거가 완료돼 7년 세월이 흘렀지만 순화동은 재작년까지 공사를 하지 않았다. 6년 여 동안 공터로 있다 2013년 8월에야 착공신고가 이뤄졌다. 조합 설립 부존재 확인 소송 등 분쟁으로 5년여 동안 사업이 중단된 데다, 2012년 12월 동부건설에서 롯데건설로 시공사가 변경되면서 작년 봄에 본격적인 공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순화동 세입자는 윤용헌 씨의 부인 유영숙(56) 씨와 지석준(45) 씨 두 가구만 남아 있다. 두 가구 모두 유명한 먹자골목인 이곳에 세입자로 들어와 각각 10년, 7년여 동안 장사를 하며 가족과 상가에서 동시에 주거를 겸하며 살았다. 두 가구 모두 시설투자비는 물론, 5천만 원이나 되던 보증금도 못 받고 철거를 당했다. 이들의 요구는 다른 곳에서 장사를 할 수 있도록 생계 대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유영숙 씨는 “여기는 원래 시청직원과 경찰들, 화이트칼라가 많이 찾던 유명한 먹자 골목이었다”며 “미락정이란 식당을 했는데 점심에는 시골에서 김치를 담아다 김치찜을 하고, 저녁에는 고기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지석준 씨는 부인과 함께 ‘민물장어 나루’란 식당을 운영했다. 1층 6개, 2층에 5개의 테이블을 놓고 자신이 주방을 보고, 부인이 서빙을 해 인건비를 줄여 운영했다. 지석준 씨는 “큰돈은 못 벌었어도 저축하고 그냥 살만했다”고 했다. 지석준 씨 가게는 보증금 5천만 원에 권리금도 5천이나 됐지만 역시 한 푼도 못 받았다. 지 씨는 “가옥주가 보증금을 줘야 하는데 저희 같은 경우 (재개발) 조합에서 건물을 사버렸다. 조합에서 얘기를 안 해주는데 철거비용으로 통상 보증금이 갔다는 얘기가 있다. 한 푼도 없이 쫓겨났다”며 “여기는 엄연히 줘야할 이주비도 제대로 안주고 날로 먹었다. 진짜 도둑놈들”이라고 했다.

유영숙 씨는 2007년 순화동 철거가 시작될 무렵엔 투쟁을 잘 몰랐다. 대부분 철거가 그렇듯 강제철거가 들어오면 용역과 싸워야 해서 남편과 지석준 씨가 투쟁과 연대에 주로 나섰다. 하지만 용산참사에 연대 나갔던 윤용헌 씨의 죽음은 유영숙 씨를 바꿔 놨다. 용산참사가 합의에 이뤘지만 정작 자신의 현안이었던 순화동 문제가 풀리지 않아 계속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었다. “용산참사 합의 후에도 유가족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며 투쟁을 계속 했다. 그러면서 다른 유가족들은 장사를 하고 조금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지만, 저는 순화동 지역 공사가 시작되면 농성에 들어와야 해서 장사를 시작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힘들었다”고 했다.


애초 농성은 지난해 4월 터파기 공사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그 즈음 돌입을 고민했다. 하지만 수차례 수술을 받은 지석준 씨의 재수술이 5월에 잡힌 데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다. 세월호 문제 해결 이후로 농성돌입을 미루다 건물이 점점 올라가고 있어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해 지난 18일 천막을 쳤다.

지석준 씨는 아직도 더 수술을 받아야 할 정도 몸이 불편한 상황이다. 당시 불길을 피하다 용산 망루에서 추락해 왼발 뒤꿈치가 여섯 조각이 났고, 허리가 부러졌다. 발목은 양쪽 다 움직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한쪽은 괜찮아졌는데 한쪽은 뼈가 괴사돼 건들면 부서져버린다. 혈액순환도 안 돼서. 그걸 다 긁어내고 내 뼈를 이식해야하는데 재작년 12월에 이식수술이 실패해 작년 5월에 재수술을 했다”며 “수술이 잘 된 것 같다는데 내년 6월에 CT를 봐야하고 인공관절을 해야 한다. 당시 허리가 부러져서 지금도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몸 상태를 전했다.

유영숙 씨는 “이곳이 공터로 있을 때는 마음이 항상 무거웠는데 막상 천막을 치고서 들어오자 마음이 좋다. 싸움이 끝날 수 있는 계기가 왔구나 하니 너무 마음이 편하고 좋다”며 “공사를 하지 않아 몇 년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손만 놓고 보고만 있었는데 이제 속이 편해졌다”고 했다. 유영숙 씨는 “하늘에 있는 저희 남편이 도와 줄 거예요. 내일 (6주기 추모식이 있는) 마석에 가서 도와달라고 얘기해야죠”라고 웃었다.

18일 농성에 돌입하던 날 농성천막을 치는데 눈이 펑펑 내렸다. 지석준 씨도 “천막을 치는데 눈이 펑펑 내려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축복한다고 미친놈처럼 얼마나 좋아했는데요. 7년이잖아요. 7년 동안 이를 벅벅 갈았는데요. 얼마나 괘씸해요”라고 웃었다. 이어 “작년 재수술 때문에 농성이 미뤄져 아쉽지만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승리를 위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천막농성에 돌입한 다음 날인 19일 아침 7시에는 롯데건설 측과 실랑이도 있었다. 아침 7시에 공사차량이 들어가자 차량을 막아섰다. 유영숙 씨는 “롯데는 자기네는 모른다고 했어요. 동부 건설하고 협상을 하라는데 ‘시공사가 롯데로 넘어갔을 때는 이런 문제가 있다는 걸 다 알고 그것까지 감수한 것 아니냐’고 따졌더니 ‘조합에 가서 얘기하라’고 해서 그러면 재개발 조합 사람을 데려오라고 했다. 욕을 해서 사과도 받고 어제 뜯어간 현수막도 다시 받아냈다”고 상황을 전했다.

두 사람은 이제 농성 프로그램을 만들어가고, 천막도 더욱 넓혀 가면서 본격적인 농성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용산참사 진상규명위는 “‘용산참사’ 피해로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당사자들이 다시 힘겨운 투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서울시와 중구청이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도록 외로운 투쟁이 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호소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김용욱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