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주례토론회] 한반도 정세와 남북관계


1. 동북아에서 냉전의 유지와 평화체제의 모색

분단 70년이 되었지만 한반도에는 아직도 20세기의 산물인 국제적 냉전과 적대적 남북관계가 청산되지 않고 있다. 한반도는 여전히 1953년 이후 여전히 '정전상태'가 유지되고 있고, 남북관계도 불안정한 공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소련과 동구 사회주의권이 붕괴된 후 세계적으로 탈냉전의 흐름이 대세를 이루었지만,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지역에는 여전히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다. 동북아 지역의 군사적 불안정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이러한 현상은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에서 기인한다.

첫째, 냉전해체의 비동시적 진행에 영향을 받고 있다. 냉전해체의 비동시적 진행이란 세계적 차원과 동북아 수준, 한반도 수준의 냉전해체가 시간상 차이를 두고 진행되고 있는 현상을 말한다. 세계적 차원의 냉전해체는 소련, 동구 등 사회주의권의 붕괴를 시작으로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고, 한국과 소련, 중국간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동북아시아 지역의 냉전 해체로 이어졌다. 그러나 냉전의 한 축이었던 북미.북일관계의 정상화과정이 지체되면서 동북아의 냉전해체는 여전히 진행 중인 상태에 머물러 있다.

둘째, 계속된 '북한붕괴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사회주의체제를 여전히 고수하면서 북미 간 갈등과 대결이 계속되고 있다.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냉전으로 분단됐던 독일이 세계 냉전의 해체와 함께 통일이 됐지만, 동일한 이유로 분단된 한반도는 여전히 분단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이것은 동북아 냉전에는 특수성이 있으며, 그 특수성의 핵심인 북미간의 대결구도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셋째,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이 한반도문제에 대한 영향력의 확대를 위해 경쟁하면서, 한반도문제의 '국제화'가 심화되고 있다.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과 중국은 상호 협력을 하는 한편, 동북아지역의 미래에 상대방이 미칠 영향에 대해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동북아에서 냉전 해체 이후 자국의 이익을 중심으로 지역의 강대국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동북아 질서가 아직까지 안정적으로 형성되지 못한 것이다. 특히 북미관계의 후퇴와 진전이 반복되면서 한미동맹, 북중동맹을 강화하려는 움직임 또한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2000년대 들어와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6자회담 개최와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의 진전 등으로 동북아에 남아 있는 냉전의 유산도 해소될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남북이 세계적인 냉전의 결과로 분단이 된 만큼 남북관계는 세계와 동북아의 탈냉전 분위기에 크게 영향을 받아왔다. 1960년대 후반 미국과 중국의 정치적 화해가 이뤄지면서 한반도에도 대화의 기운이 조성되었다. 1972년 7․4남북공동성명 발표를 계기로 남과 북은 한편으로는 대화하고, 다른 한편으로 정치 군사적 경쟁을 계속하는 시기를 맞게 된다. 1980년대 후반 세계적으로 냉전이 해체되면서 남과 북도 1990년 9월 4일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남북총리회담)을 개최한 이래 1992년 9월가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총 8차례의 회담을 열었다. 특히 남과 북은 1991년 10월 평양서 열린 제4차 회담에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채택에 합의했다. 또한 1991년 12월에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이 채택되었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으로 남과 북은 본격적으로 대결보다는 남북공존의 길로 들어서게 되고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이뤄지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남북기본합의서의 합의가 재확인되기까지는 다시 8년이 흘러야 했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화해와 협력을 통해 통일을 모색하는 단계로 발전했다. 이후 남북 간에는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사업 등 다양한 협력사업이 진행되었고, 2007년 10월 2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는 안정적인 대화틀을 확보하게 되었다.

한편, 동북아에 항구적인 평화안보보장체제 수립을 위한 6자회담이 남북관계 진전과 함께 병행 추진되었다. 2003년 8월부터 2007년 10월가지 모두 6차례 열린 6자회담은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한국.북한.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6개국이 참가하는 다자회담으로 출범하였다. 그러나 2007년 6자회담에서 2․13합의를 통해 한반도비핵화, 북미 관계정상화, 북일 관계정상화, 경제.에너지협력, 동북아평화안보체제 실무그룹회의가 구성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동북아안보체제를 논의하는 틀로 변모되었다. 1989년 세계적인 탈냉전 이후 20여 년이 지난 시점에서 동북아에서 냉전을 종결하려는 구체적인 대화의 틀이 마련된 것이다.
하지만 남북정상회담 합의와 6자회담 9.19공동성명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으면서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은 모색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난 70년의 경험을 통해 볼 때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의 평화와 직결되어 있다. 동북아의 평화 없이 한반도의 평화가 보장될 수 없으며, 한반도의 평화 없이 동북아의 평화를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지난 70년의 역사는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협력관계가 동북아에서 탈냉전, 평화안보체제 형성과 병행되어야 가능하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에서 가장 중요한 선결과제는 평화협정 체결이다. 2010년 1월 11일 북한은 외무성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 당사국간 한반도 평화협정 회담을 제안했다. 2009년 12월 8~10일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방북해 북한측과 협의한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다. 보즈워스 대표와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 간 회담을 통해 북한과 미국은 평화협정과 6자회담 재개에 대해 공통의 이해에 도달했다. 미국이 북한의 요구인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수용하고, 북한이 미국의 요구인 6자회담 재개 및 9.19공동성명의 이행을 수용한 것이다.

이것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논의가 동시 병행으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시사했다. 논의틀과 관련해 북미는 한반도 비핵화를 기존처럼 6자회담에서 논의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는 4자대화를 통해 진행하기로 잠정 합의하였다. 이때부터 북핵문제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가 동시에 병행 추진되기 시작했다.

그동안 한국, 북한, 미국간에 논란이 되어 온 한반도평화체제의 이행방안, 평화협정의 주체 등에서도 당사국간에 의견 접근이 이루어졌다. 2006년 11월 1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북한의 핵 폐기 후 체제보장 문제와 관련, 한국.미국.북한 3국이 '종전협정'(종전선언)에 서명하는 방안을 언급하였고, 한국과 북한도 이에 동의하였다.
이를 통해 종전선언->평화협정->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한반도 평화체제프로세스가 잠정적으로 마련되었고, 평화협정의 당사국도 '3자 또는 4자'로 합의되었다. 2007년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합의인 10․4선언에도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 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는 남북 간 합의내용이 담겼다. 여기서 4자는 남.북과 미국, 중국을 의미한다. 1953년 정전협정의 서명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 중국에 남한까지 포함하는 구도이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북한의 전략적 선택과 압박에 미국이 호응하면서 구체화된 것이다. 과거 북한은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을 맺은 이후 평화협정 체결, 정전협정 무용론을 꾸준히 제기해왔다. 북한은 1974년 3월 최고인민회의 제5기 3차회의에서 미국 의회에 보내는 편지를 채택해 △상대방에 대한 불가침 서약과 무력충돌의 위험성 제거 △군수물자 반입 중지 △외국군의 빠른 기간 내 철수 △미군철수 후 남한의 외국군 기지화 불가 등을 내용으로 한 평화협정 4개항을 제시했다.

그러나 북한은 2000년 10월 12일 '조미공동코뮈니케'를 통해 정전협정 체결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이 '평화보장체계'를 체결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에서 벗어나 북미협의가 보장되는 가운데 미국이 주장하는 다자방식의 평화협상에 동의했다. 북한의 이 같은 입장 변화는 미국이 반대하는 한 북미 양자협정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다 한국과의 관계 진전 등을 감안한 것이다.

또 다른 쟁점인 주한미군 주둔문제는 이미 1990년대 초 북한이 미국에 주한미군의 성격변화를 전제로 '주한미군 용인'의사를 밝혔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도 다시 한번 확인됨으로써 평화협정 체결 단계에서 심각한 쟁점이 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시간적으로 보면 평화협정 체결은 당사자간 합의만 되면 빨리 할 수 있으나 평화체제 구축에는 상당한 기간의 준비작업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평화협정의 프로세스, 협정의 주체 등이 어느 정도 확정되었고, 동북아평화안보체제의 논의틀이 마련됐기 때문에 6자회담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과 한반도비핵화, 북미.북일관계의 정상화 등이 병행적으로 추진될 경우 한반도평화체제 구축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6자회담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북핵문제는 합의가 아니라 상호 신뢰가 필요하다. 특히 미국이 구상하고 있는 포괄적 패키지론이 가지고 있는 비대칭성을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관건이다. 즉 북핵폐기는 불가역적(irreversible)으로 비교적 단기에 이룰 수 있지만, 반대로 체제보장과 경제적 지원은 시간을 두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언제든지 가역적(reversible)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은 2000년대에 들어와 북미합의, 6자회담 합의가 한국.일본.미국의 정권 교체에 따라 뒤집어지거나 재검토되는 경험을 여러 차례 했다. 한.미.일은 6자회담을 통해 북핵시설 철거, 핵무기와 핵물질 폐기, 비핵화 검증 등 3개 분야를 수년간에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한미일에서 정권교체가 되더라도 합의사항이 유지될 수 있다는 신뢰를 북측에 어떻게 줄 것인가가 관건이다.

불가역적인 북핵폐기와 불가역적인 북미관계정상화 프로세스가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라 이행되고, 보장된다면 6자회담은 순항할 것이다. 그러나 6자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북미관계 정상화 과정에 상당한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여 한․미․일이 목표로 하는 것처럼 수년 내에 북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북핵폐기와 북미관계정상화 및 평화협정 체결이 장기간에 진행될 수밖에 없다면 단계별로 달성가능한 현실적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평화협정 체결에 앞서 종전선언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 것이다.

2. '북한붕괴론', '급변사태론'과 남북관계의 후퇴

이명박 정부는 이전 정부들(노태우-김대중-노무현)의 포용정책을 부정하고 차별화를 추진했다. '북한붕괴론'의 시각에서 보고, 급변사태와 흡수통일을 기대한 것이다. 통일은 우리가 노력하여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저절로 다가올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북한의 굴복과 붕괴를 도모하는 압박과 제재의 대결정책을 선호하게 됐다. 북미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문제도 '비핵.개방.3000', '선북핵해결 후남북관계 개선'이라는 핵 연계전략을 고집해, 핵문제 해결에 기여하지도 못하면서 북한의 핵 능력을 증대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는 시도 때도 없이 북한의 경제위기를 강조했다. 그러나 남북경협이 중단된 이명박 정부 기간동안 북한의 경제가 후퇴했다는 명확한 근거는 하나도 없다. 예를 들어 북한의 식량가격이 수급상황에 따라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식량가격이 오른 상황만 주목했다. '급변 사태' 라는 색안경을 끼고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상적 모습, 과거부터 존재했던 현상들을 견강부회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갑자기 사망하고 젊은 김정은체제가 등장하자 다시 '북한붕괴론'이 고개를 들었다. 김정은 제1위원장의 권력기반이 약해 권력투쟁이 일어날 것이라든지, 집단주의체제로 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심지어 어린 나이로 권력승계 준비가 전혀 안 돼 김정은체제가 오래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김정일의 후광 속에서만 활동했지 단독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국정을 운영해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그러나 안정적으로 권력승계를 마무리 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정치적 리더십 확보뿐 아니라 권력엘리트의 재편과 단합을 이끌면서 당․정․군의 핵심 실세들을 신속하게 장악했다. 김정은 체제의 안정은 적어도 권력정치 차원에서는 확고부동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3년 12월 장성택 행정부장의 숙청사건도 북한체제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것이라기보다는 김정은 체제가 공고화되는 과정에서 일어났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과 미국은 북한의 '급변사태'를 명분으로 '키 리졸브-독수리 한미 군사연습'을 강화하고 있다. 한미 양국군의 '북 급변사태' 대응 시나리오인 '개념계획 5029'는 △핵과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 무기 유출 △북의 정권 교체 상황 △쿠데타 등에 의한 내전 상황 △북 주민 봉기 △북쪽 내 한국인 인질 사태 △대규모 북 주민 탈북사태 등 6~7가지 유형을 상정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합동군사훈련이 상정하고 있는 사태가 모두 단기간에 현실화될 것이라는 징후는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한미 군사연습은 안보 강화보다는 한반도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한 우려와 대비가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6자회담 재개일 것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려면 '급변사태' 색안경을 벗고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것이 주기적으로 불거지는 '한반도 위기설'을 근원적으로 잠재울 수 있는 지름길이자 남북정상회담의 가능성을 현실화할 수 있는 기본전제이다.

3. 북한변화론과 '과정으로서의 통일'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은 대박'이라고 언급했다. 이 발언이 통일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통일이 가져다 줄 정치적, 경제적 효과를 염두를 둔 것이라면 의미 있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남북의 화해협력을 추진해야 하는 '통일 과정'을 무시하고 단기간에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면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2000년 남북은 첫 정상회담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 개념에 합의했다. 법과 제도상의 완전한 통일이 아닌 '사실상의 통일'로 가는 프로세스를 상정한 것이다.

아직까지 '사실상의 통일'이란 개념은 일반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다만 6.15공동선언의 정신에 입각해 '10.4선언'의 합의내용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곧 '사실상의 통일'을 의미한다고 설명하면 조금은 쉽게 와 닿을 수 있을 것이다. 남북이 힘을 합쳐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 교류협력을 통해 경제공동체를 만드는데 총력을 기울여 '사실상의 통일'을 만들어가자는 것이다.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이란 개념은 독일에서 유래된 것으로, 김대중 정부 시기 대북정책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였다. 남북연합을 구성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여 남북협력사업을 공동으로 추진하고, 남과 북이 서로 오고가고 돕고 나누면서 통일된 것과 비슷한 상황부터 실현한다는 내용이다. 북도 '남북연합' 대신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고 불렀지만 이같은 개념에 동의했다. 6.15공동선언(제2항)에는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명기됐다.

통일은 화해 협력으로 시작하여 변화와 창조의 과정을 통해 현재진행형으로 만들어 나가야 되며, 이를 위해 화해협력->남북연합(남북연방='사실상의 통일')->완전통일['법적통일'(de jure unification)]의 단계를 밟아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남북이 6.15공동선언을 통해 '사실상의 통일' 개념에 합의했다면, 2007년에 있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로 나온 남북정상선언(10.4선언)은 '사실상의 통일'로 가는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규정했다.

우선 남북정상회담을 수시로 개최하고, 남북협력을 위한 대화기구에 대해 합의했다. 남북협력을 위한 총괄수행 조정기구로 총리급회담, 경제공동협력을 위한 부총리급 경제회담, 군사적 신뢰구축을 위한 국방장관 회담 등에 합의했다. 또한 남국 국회(의회)회담에도 합의했다. 의회 차원의 남북 대화는 통일로 가는 길목에 남북이 함께 만들어야 할 법과 제도의 틀을 마련하는데도 필요하다.

남북이 의회회담을 통해 서로의 이해 폭을 넓혀가며 법과 제도적 측면에서 많은 합의를 이뤄 정치권력이 5년마다 바뀌는 남측 당국의 정치적 의지에 따라 남북관계가 널뛰지 않고, 안정적으로 남북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방안은 남측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에 나와 있는 연합 기구인 정상회의, 각료회의, 남북 평의회 구성과도 비슷하다. 또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정상회담에서 낮은 단계 연방제에 대해 김대중 대통령의 질문에 답변했던 내용 중 정상, 정부 각료, 의회 차원의 협의 기구 구성과도 유사하다.

즉 '10.4선언'은 6.15 공동선언 제2항에서 합의한 연합-낮은 단계 연방의 공통성을 인정하는 방향에서 전면적인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안정적 협의 틀을 마련한 셈이다. 특히 장기적으로 '연합(연방)기구'를 논의할 수 있는 단계까지 진입할 수 있는 전망을 열어놓았다.

또한 남과 북은 남북관계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요인 중 하나인 한반도비핵화를 위해 6자회담의 합의사항인 '9.19 공동성명'과 '2.13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되도록 공동으로 노력하기로 했다. 남과 북은 현 정전체제를 종식시키고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해 나가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직접 관련된 3자 또는 4자 정상들이 한반도지역에서 만나 종전을 선언하는 문제를 추진하기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언급처럼 '통일이 대박'이 되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평화와 공존, 공동 번영으로 갈 수 있는 '사실상의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민들은 잘못된 대북정책과 남북관계 악화로 통일하면 '대북퍼주기', '종북', '통일비용'처럼 부정적 단어를 연상케 됐다. 박근혜 정부가 남북정상회담 의지가 있다면 이러한 인식을 바꿀 통일담론과 통일교육을 확산시켜야 한다. 한반도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남북 교류협력을 통해 경제공동체를 만드는데 힘써 '사실상의 통일'을 추진할 경우 통일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뿐 아니라 우리 경제가 새로운 성장기반과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이러한 인식의 대전환을 시도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통일이 갑작스럽게 이루지지 않고 오랜 교류와 협력을 통한 '준비 과정'을 거쳐야 하듯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계기를 통해 단계적으로 변화할 여지는 있을 것이다. 불행한 일이지만 김영삼 정부 말기 때 갑작스럽게 남북정상회담에 나섰던 것처럼 주체적 준비와 판단이 아니라 북미대화와 6자회담의 진전이라는 외부적 요인에 떠밀려 남북정상회담에 나서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

4. 남과 북은 '북핵'과 '냉전적 정치구조'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큰 틀에서 보면 2013년 개성공단 회담 타결이후 남과 북이 정체된 남북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환경 조성에 나선 것은 분명하다. 박근혜 정부는 대북정책공약 중 하나인 이산가족상봉을 되도록 임기 초반에 실현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고, DMZ평화공원 조성, '실크로드 익스프레스(SRX)'구상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를 개선해야 한다. 그래야 MB정부와의 차별성도 드러낼 수 있다.

북미대화와 남북대화를 포괄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대외노선을 김정은시대의 기본노선으로 확정한 북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게 만드는 남북관계의 장기간 경색이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해외자본 유치와 경제협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남북대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재개와 이산가족상봉에 합의한 후 다시 남북대화가 중단됐던 경험은 대화의 수요자체가 현실로 그대로 이어지지 않다는 점을 보여줬다. 더욱이 과거 2차례 남북정상회담 성사와 이명박 정부 때의 남북정상회담 무산과정을 되돌아볼 때 남북정상회담이 실제로 성사되기까지는 수많은 우여곡절과 돌발변수가 가로놓여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여러 가지 국내외의 난제들을 지혜롭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안고 있다.

우선 손발이 맞는 않는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안보라인의 부조화를 해소해야 한다. 북한은 '대화와 대북강경정책은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대화는 대화이고 할 이야기는 해야한다는 식의 대북 강경발언'은 언제든지 남북관계를 긴장으로 몰아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대화의 진정성'이 있다면 조율된 대북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내야 할 것이다.

둘째, MB정부의 '유산'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야 한다. 남북의 경제협력과 사회문화교류를 막고 있는 '5.24조치'를 해제하고 중단된 금강산관광을 재개해야 한다.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대북 기조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5.24조치' 해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필요할 때마다 언급해 왔다. 박 대통령 취임 직후였던 2013년 3월 청와대 관계자는 '금강산 관광 재개나 5.24조치 해제 문제에 대해 이전 정부처럼 '무조건 안 한다'는 입장을 취해선 안 된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비정치적.인도적 교류를 통한 남북 간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럽게 정치적.군사적 사안에 대한 해결 방식을 찾아가겠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밑그림 상 남북 간 전면 경제교류 중단을 내세우는 '5.24조치'는 언젠가는 반드시 해제해야 할 현안이다. 다방면적인 교류와 협력이 이뤄져야 남북 당국간 회담도 성과를 낼 수 있다.

셋째, 2013년 8.15경축사에서 밝힌 것처럼 '안보패러다임'에서 '평화패러다임'으로 전환해야 한다. '튼튼한 안보'에 대한 강조와 대북압박으로는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는 MB정부 5년간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평화를 만드는 상호 신뢰' 형성에도 적극 나서야 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취임이후 '안보 변수'를 활용해 지지율을 높이는데 일정한 효과를 봤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정상회담 언급은 그 같은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점을 사실상 자인한 셈이다. 박 대통령이 '돌다리도 두들기며 가겠다'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진 현실적 한계를 인식한 가운데 정상회담을 언급했다면 북한이 손을 내밀었을 때 '포괄적 협상'을 통해 기회를 활용할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냉전수구적 정치구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강하지만 아직까지 박 대통령에게 기회는 남아 있다.

중요한 것은 '돈으로 안보를 사는 대타협'이 아니라 '안보로 안보를 사는 대타협'일 것이다. 북한의 안보를 보장함으로써 남한의 안보를 확보하는 대타협이다. 남북대화와 비핵화 6자회담, 평화협정 논의가 맞물려 상호 촉진되는 선순환구조를 정착시키는 방안이다.

가장 관건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기초해 우선 남북대화를 복원해 남북관계를 정상화하는 한편, 비핵화문제를 북미대화 또는 6자회담을 통해 해결하려는 정책 분리, 즉 남북대화와 북핵문제를 분리해 대응하는 선택을 박근혜 대통령이 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박근혜 정부가 표방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초기 로드맵은 사실상 실패했다. 2013년과 2014년 한반도의 봄은 긴장고조와 전쟁위협으로 일관됐다. 말로는 전면전 상황과 다를 게 없었다. 정전협정 백지화와 남북 불가침 합의 파기를 내세워 핵타격과 워싱턴 불바다 그리고 벌초론까지 내세운 북한, 도발시 원점뿐 아니라 지원세력과 지휘세력까지 섬멸한다는 한국의 단호한 응징의지는 '전쟁상태'나 다름없었다. 언제까지 이 같은 대결과 긴장을 지속할 것인가?

지난 1월 30일(현지시간) 발레리 게라시모프 러시아군 총참모장(합참의장)은 국방부 고위급 회의에서 '북한, 베트남, 쿠바, 브라질 국방부와 대규모 군사회담을 하고 총참모장 수준에서 접촉을 확대할 것이며 이들 국가의 육해공군이 참여하는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힌 것으로 보도됐다. 서해안에서 중국과 합동군사훈련을 하는 러시아가 북,중,러 합동군사훈련을 한반도 주변에서 실시할 경우 한미합동군사연습, 한미일합동군사훈련 확대와 맞물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남북관계 개선 환경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다.

올해 신년사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은 처음으로 최고위급회담(남북정상회담)을 직접 언급하며 '북남 사이 대화와 협상, 교류와 접촉을 활발히 하여 북남관계에서 대전환, 대변혁을 가져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전반적으로 지난해 내놓은 '중대제안', '특별제안',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 '측근 3인방'의 인천방문 시 발언 등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평가된다.

김 제1위원장은 '남조선당국이 진실로 대화를 통하여 북남관계를 개선하려는 립장이라면 중단된 고위급접촉도 재개할 수 있고 부문별회담도 할 수 있다고 봅니다'라며 '분위기와 환경이 마련되는데 따라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라고 밝혔다. 최고지도자가 직접 2013년 11월 박근혜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언급에 화답하며,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한 '대통로'란 발언이 정상회담을 의미한다는 점을 공식 확인한 것이다. 정상회담까지 언급하며 박근혜 정부가 적극적으로 남북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 셈이다.

김 제1위원장이 강력하게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밝히고, 박근혜 정부도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1월중에 남북고위급접촉(회담)이 열릴 것으로 전망이 우세했다. 그러나 북미간 '탐색적 대화'를 위한 첫 시도가 불발되고,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계속 걸림돌이 되면서 6자회담과 남북대화 재개 시점은 불투명해졌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북한이 체제의 안정과 경제난 완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남북대화 의지를 보일 것으로 평가를 하고 있지만 북한은 올해 당대회 개최를 염두를 두고 남북관계 개선에 일정한 성과를 내려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북한은 남북관계를 풀기 위해 다양한 대화를 공세적으로 제의하며 유연한 태도로 실제 성과를 내려는 태도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박근혜 정부는 10월 4일 북한 '측근3인방'의 방한을 계기로 12월 중순경 남북관계 개선에 나서기로 외교안보라인에서 의견이 모아진 듯하다.

그러나 남북대화에 임하는 남북 간 동상이몽의 간격이 워낙 커 금강산관광 재개라는 시험대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오바마 행정부 외교라인의 갈등과 무능력, 대북강경파의 견제 등으로 상반기 안에 북미대화와 6자회담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해와 같이 혼란스럽고 무기력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대화가 열린다고 해도 실타래처럼 꼬인 남북관계가 진전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낙관적이지 않다. 일단 대북전단 살포 중지와 금강산관광 재개가 변수다. 2월 안으로 두 가지 문제('소통로')에 진전이 있어야 '대통로'로 이어지는 국면이 열릴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보다는 대화와 교류가 활성화되겠지만 그 과정에서 대전환을 기대하기에는 구조적 제약이 너무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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