乙과 乙의 눈물

이주노동자 죽음과 미나리꽝 소작농민

지난 5일 울산 울주군 청량면에 있는 한 미나리꽝에서 일하던 네팔 이주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주노동자를 고용한 사장은 땅을 빌려 농사짓는 소작농민이다. 소작농 사장은 낮은 단가에 미나리꽝 농사를 계속 지어야할지 고민이다. 단가 400원짜리 미나리 한 단은 소비자 장바구니에 1,400원에 담긴다.

미나리꽝에서 일하던 네팔이주노동자의 죽음
허리춤까지 차오르는 논에서 일하다 습진 걸려
병원진료 받았지만 의사 말 못믿고 고향가고싶다


지난 5일 오전 8시 50분께 울주군 청량면 용지마을 한 미나리꽝 농장에서 일하던 네팔 이주노동자가 목 매 숨졌다. 숨진 네팔 이주노동자 라이 자아 구마르씨(35)는 일하다 걸린 습진으로 고생하다 이를 큰 병으로 오해해 신변을 비관해오다가 작업장 바로 뒤에 있는 40m미터 송전탑 꼭대기까지 올라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울주군 청량면에 있는 미나리꽝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구마르 씨는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 미나리꽝에서 일했다. 미나리꽝 농장은 11월부터 4월까지 한 겨울에 물 속에서 하루 12시간씩 작업하다 보니 사타구니에 습진을 달고 산다. 숨진 구마르 씨가 이를 에이즈라고 여겼다. 농장주는 구마르를 위해 큰 병원에서 에이즈검사까지 했다. 단순 습진이니 의사 처방대로 약 바르면 낫는다고 했지만 구마르는 고국에 돌아가 정확히 질병을 확인하고 싶어했다.

농장주는 오는 16일자 네팔행 비행기를 예매해 그의 귀국행을 도왔다. 농장주는 구마르가 숨지기 전날에 임금도 했다. 사고 당일 아침 구마르가 송전탑에 올라가는 것을 다른 네팔 이주노동자들이 말렸지만 누구도 송전탑에 올라가 그를 끌어내리진 못했다. 송전탑에는 고압 전기가 흘렀다. 119 구조대와 경찰이 출동했지만 한전 직원이 도착해서야 시신을 수습했다.

  울주군 청량면 용지마을 미나리꽝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함께 일하던 동료와 농장주는 당혹스러웠다. 경찰은 우울증이나 향수병으로 추측했다. 울주경찰서는 구마르의 병원 진료기록과 의사 진단, 월급통장 등을 확인했으나 농장주의 가혹행위는 발견하지 못했다.

시신은 화장하지 않고 네팔까지 옮긴다. 운송료는 네팔 정부가 부담한다. 우리나라는 자살하면 국가로부터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지만, 네팔은 이주노동자가 자살해도 운송료는 물론이고 국가가 가족에게 위로금까지 지급한다. 시신 운송료는 우리 돈으로 500~600만원, 가족위로금은 800만원이다. 시신을 안치하는 6~7일 동안 병원비는 농장주가 내기로 했다. 구마르의 죽음에 놀란 농장주는 가족에게 별도의 위로금을 전하기로 했다.

주한 네팔대사관 담당자는 7일 오후 사고현장을 찾아 경위를 듣고 시신 인도절차를 밟았다. 8일 오후에는 경기도 한 공장에서 일하는 구마르의 친형도 현장에 다녀갔다. 숨진 구마르는 네팔에 아내와 자녀 3명을 두고 있다. 구마르는 돈을 벌려고 한국어를 배워 어렵게 한국에 농업연수생으로 왔다.

미나리 한 단 400원이면 뜨지도 않고 갈아엎을 판
젊은 한국인 한 명 없이 70대 노인만 일꾼
이주노동자 더 쓰고 싶어도 턱없이 부족한 인력시장
불법노동자 사용했다며 기자사칭 사기꾼에게 돈까지 뜯겨


울주군 서생면 일대 미나리꽝에는 한 농장에 25명이 일한다. 이주노동자는 6명 정도다. 이주노동자는 물이 찬 논에 들어가 미나리를 뿌리채 삽으로 떠서 씻는다. 비닐하우스에서 미나리를 손질해 포장하는 일은 대부분 70대 할머니들 몫이다.

  울주군 서생면에 있는 미나리꽝 농장 작업장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땅을 빌려 미나리 농사를 짓는 A씨는 20년째 미나리 농사를 짓지만 언제 손 놓을지 모른다. 그만큼 일할 사람 구하기가 어렵고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서다. 미나리 판매가격은 20년 전과 별 차이가 없다. ‘할머니’들이 용돈 벌이로 오지만 일꾼은 구하기도 어렵다. 미나리 뜨는 작업에는 이주노동자를 쓴다. 주로 70대인 할머니 일꾼은 하루 8시간 일하고 일당 4만2천원을 받는다. 농촌 이주노동자는 3년 허가로 온다. 이들에겐 최저임금을 지급한다.

농업비자로 들어오는 이주노동자는 숫자가 한정돼 있다. 일손이 없으면 간혹 불법체류노동자를 채용하기도 하지만 이들을 구하기도 어렵다.

농가는 이주노동자를 채용하기 위해 지역 고용지원센터에 내국인 취업자를 우선 신청한다. 내국인 신청자가 없으면 14일 뒤에 외국인 노동자를 신청한다. 산업인력공단이나 농업중앙회를 대행업체로 선정한 뒤 외국인 표준근로 계약서 작성 대행비를 1인당 365,000여원 납부 한다. 표준근로 계약서 작성 뒤 70~80일이 지나면 외국인 노동자를 인도받는다.

A씨는 두 달전 기자를 사칭한 사기꾼에게 당했다. 모 언론사 기자라며 찾아온 사기꾼은 이 농장에 불법체류노동자 고용 신고가 들어와 조사나올 예정이라며 무마 댓가를 요구했다. A씨는 사기꾼에게 30만원을 건넸다. A씨는 찜찜해 기자협회에 전화했더니 등록된 기자가 아니라는 답을 들었다. 경찰에 신고하고 싶었으나 잠시 불법체류노동자를 사용한 게 걸려 신고도 못했다.

농업직불제도 말썽이다. 땅 없는 소작농인 A씨는 임대계약서를 써야 혜택을 받는데 땅 주인은 자기가 직불제 혜택을 보려고 임대계약서 작성을 꺼린다. 계약서가 없으면 고용노동부를 통한 이주노동자 사용도 못한다. 다행히 A씨는 땅 주인과 임대계약서를 썼지만 주위에 임대계약서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소작농이 많다.

A씨가 농협을 통해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 미나리를 팔면 한 단에 400원 받는다. 400원짜리 미나리는 소비자에겐 1,200원 넘는 돈에 팔린다.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대형 유통업체가 앉아서 더 많은 유통마진을 챙긴다.

A씨가 미나리 50단을 2만원 받고 팔면 차에 싣는 돈 308원, 운송료 2,500원을 내고,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 판매수수료 4%를, 농협에도 수수료 0.5%를 낸다. 여기에 인건비, 자재비, 땅 임대료를 빼면 돌아오는 게 없다. 그나마 버티는 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특수 때 반짝이나며 가격이 올라 50단 묶음 가격이 2만원에서 7만원 이상 치솟을 때 뿐이다. ‘반짝경기’마저 없으면 미나리꽝을 갈아엎는다.

A씨는 땅 없는 농부를 위한 농정을 기대한다.

농업 포기한 한국 농업정책 현주소
울산에만 124명 하루 12시간 노동

 
국내 농축산업에 이주노동자가 들어온 건 2003년부터다. 정부는 농촌 고령화로 노동력 공백이 생기자 농업부문 산업연수제를 도입했다. 첫해 923명이 외국인 농업연수생으로 들어왔고, 2004년 고용허가제로 바뀌면서 농축산업 분야 고용허가 쿼터제가 생겼다. 농축분야에 이주노동자는 2007년 3,600명, 2014년 6천명이 배정됐다.

고용노동부는 2012년까지 사업주에게 선착순으로 이주노동자 고용 기회를 줬다. 농축산업 사업주는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서를 발급받으려 고용센터 앞에서 장시간 대기했다. 2013년부터는 평가지표에 따른 점수제로 바꿔 이주노동자를 배정한다. 하지만 농촌 일손이 부족해 이주노동자 고용 수요는 높고 인력은 부족하다.

  울주군 청량면과 서생면 미나리꽝에는 많은 이주노동자가 영하 추위에도 물 속에 들어가 아침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일한다.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법무부 통계를 보면 울산에는 2014년 12월 기준 2만 5,885명의 외국인이 등록돼 있고 그 가운데 농업부문 종사자는 142명으로 신고돼 있다.

201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농업분야 산업연수생 실태조사를 했다. 조사 내용에 따르면 농업분야 산업연수생 숙소는 비닐하우스나 컨테이너 등 가건물 형태가 67.7%에 달한다. 고용주로부터 폭언(75.8%)이나 폭행(14.9%)을 당하고 여성은 성폭력을 당한 사례가 30.8%나 됐다. 이주노동자들이 고용주 부담으로 병원에서 치료받은 경우는 18.5%에 불과했다.

아파서 병원에 가고 싶었지만 못 갔다는 응답은 43.5%였다. 병원에 못 간 이유(복수응답)는 병원에 가도 의사소통이 안될 것 같아서가 48%, 병원이 어디 있는지 모르거나 어떻게 가야하는지 몰라서가 45.7%, 병원비용이 많이 들 것 같아서 40%,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서 38%, 고용주가 보내주지 않아서가 13%였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은 원칙적으로 모든 사업장의 사용자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시행령은 '농업, 임업, 어업 및 수렵업 중 법인이 아닌 자의 사업으로서 상시 근로자 수가 5명 미만인 사업'을 적용 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예외적으로 사업주의 신청에 의해 근로복지공단의 승인을 받은 경우에는 임의 가입이 가능하지만 고용주가 산재보험에 가입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주노동자와 소작농민 사이의 갑은 누구일까. 유통시장을 거머쥔 대기업도 땅을 빌려주는 지주도 아니다. 농업을 살리지 못하는 정부 농업정책과 사회구조를 바꾸지 못하는 사회구성원 전체가 갑이다.
덧붙이는 말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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