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민중의 저항과 좌파, “이념 없는 분노...이론적 혁신 필요”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국제워크숍 <아시아 사회주의 워크숍: 홍콩/대만>

식민과 냉전의 경험을 공유하는 홍콩과 대만의 역사적이고 현실적 모순에 대해 ‘사회주의’라는 비판적 사상과 운동을 매개로 이해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홍콩과 대만 좌파의 굴절과 분노는 있지만 이데올로기가 없는 저항에 주목하면서 아시아 역사와 현실에 기초한 이론 혁신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27일 성공회대에서 열린 동아시아연구소 국제워크숍 <아시아 사회주의 워크숍: 홍콩/대만>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여대락 홍콩교육학원 강좌교수는 청나라 말기부터 홍콩 좌파의 발전을 제약해온 요인들로 이 같은 인식의 단초를 제공했다.


여 교수는 홍콩이 아편전쟁 뒤 1842년 영국에 넘어갔지만 중국 대륙의 정치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좌우를 정리하는 것은 곤란한 측면이 있다며 홍콩의 특수성들에 대해 논했다. 이를테면, 1920, 30년대 홍콩에서 발생한 총파업, 일련의 노동운동은 중국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1945년 이후 공산당과 국민당 사이 내전과 1989년 천안문 사태도 각각 홍콩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영국 식민정부는 이를 모두 허용했는데 그래야만 평형과 안정을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대락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홍콩에서 좌우는 중국 공산당과 가까우면 좌파, 국민당과 가까우면 우파로 불렸다. 이러한 홍콩의 좌우는 1949-1970년 중반까지 고유의 교육제도와 기업, 은행 등을 운영하면서 대중을 포섭하는 각각의 기제를 운영하면서 진영을 재생산했다.

여기서 홍콩 좌파는 모택동 사상에 기초해 상대적으로 진보의 문화를 구성하고, 노동자 계급을 단결시키고자 했다. 홍콩 좌파는 60년대 친중공 세력의 대규모 운동, 노동자 파업을 주도했고 이는 자본주의 비판으로 발전했다. 전체적으로 중국 대륙의 혁명 세력에 영향을 받은 것이었고 보다 많은 반영국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좌파의 시각에서 홍콩의 기능은 장기적으로 중국의 수출, 외화 소득의 창구였고 소련의 수정주의, 미국의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아시아적 활동의 토대였다. 그래서 홍콩의 좌파는 식민정부를 전복하기 보다는 장기적으로 이용하는 애국 전략을 택했다. 이 때문에 파업을 하더라도 최후의 상황에서는 안정을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좌파는 좌파적이지 않은 상황으로 전개됐다고 여 교수는 지적했다. 이러한 가운데 60년대부터 학생운동, 70년대 지역운동, 반철거운동, 새로운 노동운동은 기존 좌우에서 독립한 운동으로 발전했다. 좌파는 애국을 좌파의 임무로 봤고, 독립 좌파들은 중국과 자본주의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홍콩 좌파는 결국 80년대 초 중영단판 과정에서 정치적인 타협을 받아들였다. 당시부터 이데올로기에 관한 토론은 완전히 사멸했고 새로운 보수주의가 출현했다. 우산운동을 계기로 전개된 여러 토론도 이때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여대락 교수가 홍콩 좌파의 우익화 과정에 대해 말했다면, 서수혜 대만창화사범대학 부교수는 대만 좌파의 성격에 대해 제기했다.

서수혜 부교수는 ‘전후 대만 좌파의 사상계보와 항일세대의 좌우파 사상 전승을 함께 논함’이라는 제목으로 전후 대만 좌파 사상적 전승이 반드시 일제 강점기 좌파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개인의 신념과 이데올로기적 선택의 결과에 더 가깝다고 지적했다.

세계 경제 위기 이후 대중운동, 20세기적 정당의 사멸

진신행 대만 세신대학 부교수는 이러한 좌파의 굴절을 보다 지구적 맥락에서 접근해 들어갔다. 진 부교수는 2008년 이후 지구적 경제위기를 1929년 대공황과 유사하다고 전제하고 1930년대에는 사람들이 당시 지구적 사회주의 운동에 나섰지만 현재에는 대중저항운동이 일어나더라도 사회주의적 시야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고 봤다. 대신 대만의 경우, 1980년대 이래 각종 민주 담론 속에서, 그가 ‘쁘띠부르주아의 정의관’이라고 부르는 ‘주체성’이라는 어휘가 핵심적으로 등장했다고 한다.

문제는 현재 학생운동의 특징은 대다수의 열정적이고 지속적인 헌신성에 비해 운동조직은 느슨하고 운동담론은 부박하다는 것이라고 그는 제기했다. 대만 80년대 학생운동에서는 조직에 대한 ‘주체성’의 양도가 이뤄져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는 공공의 일로 간주됐지만, 현재의 정당정치 혐오의 정서 속에서 어떠한 정당이나 유사 정당 조직도 수많은 자발적 참여자와 대중을 움직이도록 지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진 부교수는 왕후이가 2008년 이후 세계 각국에서 일어난 저항의 조류에 대해 대의민주제에 대한 문제제기라고 정의했다는 점을 들면서, 월가점거운동, 아랍의 봄을 포함해 우크라이나 마이단 운동과 최근 우산운동까지 이러한 대규모 저항은 구체적인 구호가 다르고, 그 후과도 다르지만, 동일한 것은 그들이 운동의 촉발자, 지도부, 또는 정치 집중의 초점으로서 20세기적 의미의 정당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꼽았다. 좌익이든 우익이든 또는 자유파이든 사회주의이든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대만의 경우, 해바라기 운동 뒤 지난해 말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대패했고 2016년 민진당이 재집권할 수도 있지만 대중은 다시 거리로 나올 수 있다는 것이 진 교수의 견해다.

그러나 진 교수는 여기서 긍정적인 면은 ‘정부가 무능하다’는 질정 속에서 대만 재벌들이 진정한 통치 집단이라는 사실이 갈수록 명확해지고 있다는 점이라면서 운동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노동자 계급의 운명적 연대를 강조하는 것이며 ‘문제는 자본주의’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진 교수는 특히, 유럽의 1848년 이전의 상황과 유사한 현재, 애초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한 인식과 비판에서 온 것이었다며 이 같은 의미에서 2010년대는 여전히 사상적으로 빈곤하다기 보다는 오히려 풍부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분노한 사람은 있지만 이데올로기는 없다”

‘신자유주의와 아시아 사회주의’를 논한 마지막 세션에서는 이론 혁신을 위한 실마리를 풀어갔다.

여대락 홍콩교육학원 강좌교수는 아시아에서 사회주의를 사고한다면, 아시아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며 유럽의 사회주의 사조, 전통맑시즘, 유로코뮤니즘 등은 각자의 방식으로 19세기의 문제에 대해 서로의 답변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점에서 그는 제국주의의 영향, 민족해방, 현대 국가 형성의 문제, 중국과 공산당을 아시아가 공유하는 화두라고 봤다. 그의 시각에서 현재 이런 아시아에는 분노한 사람들은 있지만 이데올로기는 없다며 체제 자체를 뒤집을 수 있는 역량의 부재가 한국, 홍콩 그리고 대만 좌파가 처한 모두의 현실이라고 봤다.

장영석 성공회대 교수는 사회주의라는 개념은 굉장히 모호해졌다며 사실상 도덕적인 수준으로 저하됐다고 진단했다. 결국 이론의 차원에서 맑스주의로 돌아가더라도 아시아 각국 좌파 진영에 천착하면서 이론을 혁신하는 작업이 필요한 한편 중국식 마오주의의 관료주의가 직면한 문제점을 제도적 실천적으로 극복하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봤다.

백원담 동아시아연구소 소장은 신자유주의 축적구조를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우리가 가진 물적 토대는 무엇이며 어떻게 동력을 형성시킬 것인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점에서 금융에 포섭되고 노동이 유연화된 현재 새로운 정치가 일어날 수 있는 장소는 ‘글로벌 시티’, 도시인데, 이 도시화는 1세계뿐 아니라 3세계가 가장 강력하다면서 저항의 동력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고 말했다.

이날 국제워크숍에서는 ‘홍콩/대만 청년 좌익의 이론과 실천’ 등도 논의됐다. 연광석 연구원의 기획과 통역으로 진행된 이번 워크숍에 이어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는 10월 로자룩셈부르크재단과 함께 ‘아시아 사회주의와 유럽 사회주의 워크숍’을 진행하며 이때까지 몇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논의를 심화시킨다는 계획이다. 논의된 내용은 서적으로도 발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