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운동의 현재와 쟁점

[주례토론회] 2010년대 학생운동에 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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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후반 이후 학생운동의 꾸준한 과제는 학생운동과 노동운동, 각종 사회운동과의 관계 정립 문제에서 출발했다. 연대 사태 이후 학생회의 대표성과 조직적 구심력이 약화되기 시작했고, 1990년대 후반부터 비운동권 학생회들이 본격적으로 출연했다. 이는 곧 운동의 약화를 의미하는 것이었으며, 이때부터 학생운동진영은 담론의 다각화를 공개적으로 표방하기 시작했다. 2003년 21세기 진보학생연합, 학생연대, 전학협이 해소한 것,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21세기 한국대학생연합, 다함께, 전국학생행진 등 새로운 조직을 만들거나 기존 조직형태를 전환한 것은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학생운동의 지도력 상실과 이에 대응한 새로운 학생운동론을 제시하고자 한 시도였다.

2000년대는 NL 계열 활동가들이 대거 참여한 대중조직인 한국대학생연합, 정당조직인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부터 AMC, PD 계열 활동가들이 참여한 대학생사람연대, 전국학생행진 등 대규모 정파들이 자신들의 기관지를 발간하고, 상호 정치논쟁을 진행한 마지막 시기였다. 대표적인 계열로 인식되어 온 NL과 PD는 사구체논쟁에서 축적한 고유의 전략을 상실하거나 약화한 채 새로운 조직노선을 채택했으며, NL과 PD의 구분은 학생운동 내에서 재생산되는 구도를 의미하는 정도로 약화되었다.

이 글은 이후의 학생운동이 보인 행보와 그 결과를 점검하고, 한편으로 학생운동과 유리된 학생들은 지금껏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때는 현재의 학생들이 보여준 실천과 그 확대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춰 의견을 제시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 학생운동에서 가장 긴급하게 채워져야 할 역량과 극복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 의견을 덧붙이고자 한다.

2000년대 각 정파 간의 논쟁은 당운동, 전선체운동 및 이에 대한 비판, 혹은 조합주의와 당사자담론과 이에 대한 비판 등으로 이어지지만, 큰 틀에서 이들의 행보는 두 가지 방향을 향하고 있었다. 첫째는 교육투쟁의 위상 강화와 대학 내 조합적 이해에 복무하는 학생회 활동이었다. 2000년대 학생회를 수권한 학생운동세력, 특히 좌파를 자임하는 세력들은 신자유주의적 대학구조재편 반대라는 정치적 방향을 밝히면서 교육투쟁을 배치하려 노력해 왔다. 이에 비해 한국대학생연합이 취했던 교육투쟁 담론은 고액등록금에 대한 부담과 민주성 결여로 외화되어 왔다. 이와 같은 구도는 현재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등록금에 관한 한대련의 문제의식은 “대학등록금의 액수는 일반 가정에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이미 넘어섰으며, 여전히 대학생들이 고통받는 가장 큰 이유”라는 것과 대통령의 공약 미이행으로 표현된다.1 이명박 정권 이후에는 이러한 투쟁들의 담론은 오로지 “공약 이행”, “절차 준수”라는 담론으로 축소되었다.2

둘째는 여성, 장애인, 생태 등 사회 각 부문 의제들의 중요성이 부각되었다는 것이다. 두 가지 경향의 유산은 2010년대 초반까지도 영향을 미쳤는데, 2011년 등록금투쟁에 대한 전국적 반응과 학내에 여전히 남아있는 여성주의 언론, 동아리들이 바로 그것이다. 이때의 판단은 학생의 계급적 성격 변화와 우경화에 관한 대응, 그리고 소련의 붕괴 이후 한국에 물밀 듯 유입된 포스트모더니즘적 세계관의 수용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러나 학생운동은 남아있던 명맥을 유지하지 못한 채 대중조직에서의 지도력을 대부분 상실했다. 2000년대 교육투쟁은 해가 바뀔 때마다 새 국면을 맞았지만 갈수록 축소되었으며, 구닥다리 운동권이 활동하던 시절보다 대중적 참여도는 오히려 하강했다. 문건들은 운동의 몰락 기점을 1993년에서 2002년으로, 또 2003년으로 계속해서 경신해 나갔다. 총회-점거로 이어지는 전술이 시도됐지만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는 경우는 드물었다.

각 부문으로 뻗어나갔던 학생운동의 관심분야 역시 그 역량 부족과 학생들의 무관심 속에 축소되어 갔다. 장애인운동은 과거 운동의 명맥을 잇는 대학을 찾아보기 어려우며, 여성운동은 반성폭력운동에 대한 학생들의 반감을 견딜 역량을 충분하게 확보하지 못한 채 축소되어 사멸해가고 있다. 대표적인 기구인 총여학생회는 폐지, 체계 개편으로 사라져갔다.3

학생운동의 지도력이 날로 축소되어감에 따라 학생운동의 조직적 재생산과 활동은 학회, 학술동아리, 정치조직의 활동에 국한되어 있으며, 학생회는 수권한다 해도 학생회 사업과 운동조직의 지도력은 실상 무관하며, 조합투쟁을 시도해볼 수 있다거나 수공업적 조직이 원활하다는 이점만이 남은 상태다. 물론 침체해 가는 학생회, 학회 운동의 흐름 속에서도 자유인문캠프와 같이 고전적이지 않은 방식의 학술사업을 추진하는 등 형태를 다양화하는 시도가 있으며, 어떤 활동가들이나 조직은 독립언론이나 청년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노동조합을 꾸리는 등 새로운 형태의 학생운동, 청년운동을 모색하려는 시도도 잇따르고 있다.4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전환된 학생운동은 여전히 학생회 수권을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놓고 있었으나 그 운동적 의미는 사실상 유실되었다. 2010년대 이후 학생운동의 역사를 평가하거나 학생운동의 진로를 모색하는 공개적인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어 조심스럽긴 하지만, 교육투쟁 및 학생회 수권과 다양한 부문으로의 영역 확장을 통해 학생운동의 지도력을 확보하려던 시도가 명멸하면서 학생운동의 한 국면이 한 차례 더 지나갔다고 규정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2000년대부터 2010년대 내내 학생운동과 괴리되어 도서관으로 들어가기만 했단 말인가? 만약 그렇다면 학생들이 폭발적으로 거리에 나왔던 2000년대 후반 이후의 사건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2008년 촛불시위 이후에도 2011년 등록금 촛불이 있었고, 이후 규모는 축소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백 명의 학생을 거리로 이끌었던 2013년 국정원 대선개입, 2013년 ‘안녕들 하십니까’, 2014년 세월호 투쟁을 간과하지 않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2000년대 학생사회의 담론은 어떻게 이동해 왔나? X세대, TTL세대 등 새로운 소비문화의 주체로 호명되었던 1990년대 청년과는 달리 2000년대 이후 청년들은 소비문화에서조차 객체로 전락했다.5 진보 담론이 힘을 얻던 2000년대 중반이 지나면 그나마 남았던 정치이념마저 상실하고, 결국 2000년대 후반 인기를 끌었던 『88만원 세대』라는 책 제목이 상징하는 것처럼 이 사회에서 ‘소외당한 자’ 또는 ‘루저’로서의 자기규정이 덧붙여졌다. 그나마 88만원 세대 담론이 힘을 얻을 때에는 그 담론이 청년유니온의 결성과 이에 관한 사회적 반향으로 이어졌고, 학생사회에서 나름대로 세대담론을 둘러싼 갑론을박이 가능했다. 그러나 “죽어도 바리케이드를 치진 못하겠다는 20대만 더 많아졌다”는 우석훈의 평가처럼 세대담론 또한 실천적인 해답은 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자리를 채운 것이 자기계발 담론이었으며, 여기서도 희망을 찾지 못하자 결국 귀결된 것은 ‘힐링’이라는 단어였다.

운동세력이 관철하고자 노력했던 교육투쟁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운동세력은 교육공공성이라는 개념을 사회운동과의 접점으로 삼고자 했었으나 성과는 미미했다. 학생사회에서 교육공공성 담론은 약화일로를 거듭해 이제는 그 개념의 생소함으로 인해 대중선동에서 그 용어조차 자취를 감추기에 이르렀다. 또한 교육공공성이 내포하는 의미 중 지식의 보편적 공유라는 내용이 있기 때문에, 교육투쟁의 의미를 조합주의적으로 해석할 때는 교육공공성과는 무관한 반응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가령 교육에 관한 국가 책임성 강화는 국립대 확대,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으로의 전환이라는 정책대안으로 나아가는데, 이는 학벌을 해체하는 방향성을 가진다. 학생운동이 서울과 수도권, 지역 국립대에서 상대적으로 많이 잔존해 있음을 감안한다면, 교육투쟁이 조합적 의제로 이해될 때 오히려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소지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6 실제로 교육공공성이라는 개념과 이어지지 않은 결과, 정부에서 등록금 인하 해답을 장학재정 확충과 대학구조조정으로 제시했을 때 이에 대한 반론의 힘은 “반값등록금”이라는 구호의 호응에 비해 참으로 초라했다. 결국 교육투쟁 경험은 조합 투쟁 경험을 남기는 수준에 그치고, 정작 교육공공성 담론은 대중적으로 공감대를 얻는 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학생사회에는 이데올로기적 민감성 역시 병존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민감하기만 할 뿐 이념을 상실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움직임이 일회적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을 뿐이다. 학생의 직업적 특성과 더불어 학생에게 부과되는 사회적 역할이 중첩되어 있기에 사회적 이슈에 대한 학생단위의 반응은 빠르고 다양하다. 2011년 등록금투쟁과 국립대법인화 저지 투쟁 역시 그 기저에는 대통령의 공약 이행과 법안 날치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의 훼손에 대한 분노가 크게 작용했다. 이러한 현상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더 자주 나타나며, 학생회나 학회 활동에 무관심한 학생들이 거리로 나오는 빈도도 이명박 정부에 비해 높아졌다. 이명박 정부에서 촛불시위를 제외하면 비권 학생회가 자발적으로 거리투쟁에 나서는 경우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운동권 학생회를 제외한다면 쌍차, 용산 투쟁도 활동가들과 그들이 수공업적으로 조직한 학생들이 참여하는 집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 ‘안녕들 하십니까(철도파업)’, ‘세월호’ 등 2년 사이에 수차례나 대학생 거리집회가 개최되었으며, 대학생 집회가 별도로 없는 경우에도 정치조직들이 미처 파악하지 못하는 학생들의 자발적 집회 참여가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들 투쟁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담론은 박근혜 정부의 불통과 비민주성에 대한 분노, 정부로서 마땅히 져야 한다고 배웠던 책임감의 상실에 관한 분노다. 이렇게 거리로 나온 학생들은 학생회의 깃발을 신경 쓰지 않고 따로 집회에 참석하고, 학내 교육투쟁에 나서지 않은 학생들도 부지기수다.

조직형태에서도 이러한 특성이 나타나는데, 사회봉사와 자기계발 동아리와 운동권의 학술동아리라는 등식이 점차 깨졌다. 플라톤아카데미와 같은 학술재단에서 운영하는 고전 읽기 세미나 동아리에 많은 관심이 생겨나고 있고, 인권동아리 역시 과거에는 운동조직의 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창설된 동아리들이 사라지거나 운동조직과의 관계를 잃고, 운동조직과 무관한 새로운 동아리들이 같은 영역에서 생겨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즉, 학생의 이데올로기적 민감성과 기동력은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높은 편이지만, 이들이 자신의 이념을 만들어가는 공간은 학교 혹은 별도의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학회들은 어느 순간부터 각론을 언급하기에 바쁘고, 실천적인 과제와 유리되어가고 있다. 과거엔 학생회와 학회가 2~3학년들을 포괄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1학년 1학기만 포괄하는 경우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단순히 바빠져서일 수도 있지만, 정작 그런 학생들이 나중에 언론 활동이나 다른 학술단위 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언론과 학교 지식들이 쏟아내는 개혁과 진보 담론 속에 활동가들이 그 방향타를 솔직하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이러한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종합할 때, 학생운동이 택했던 두 가지 경로, 즉 교육투쟁과 각 부문 의제로의 확장은 양자 모두 학생운동의 성과로 수렴되지 않았다. 교육투쟁에의 접근은 학생을 교육부문의 소비자로 이해하는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접근이었으며, 다양한 부문 의제에의 접근은 해체되다시피 한 종언을 맞았다. 대학생의 성격이 변했다 하여 그것이 대학생의 이데올로기적 민감성을 해체하지는 않으며, 노동계급 중심성을 바탕에 둔 마르크스주의가 패배했다 하여 그 대안이 병렬적인 다양한 부문에의 관심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주지하고자 한다. 전자의 경우 대학교육이 보편화된 서구에서는 오히려 그 이후에 대학생 투쟁이 전체운동과 친화력을 높이고 적극적인 대중투쟁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대학교육의 보편화만으로 학생의 이데올로기적 민감성을 부정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학생의 ‘정치적 무관심’의 원인은 일차적으로 전체운동에서 이념이 실종되고 우경화된 데 있지, 학생이 특수한 집단으로 바뀌어서가 아니다. 후자의 경우 최근 운동세력들의 생태운동과 여성운동 담론 중 자본주의, 노동문제와 분리된 논지를 찾기 어려움을 볼 때, 스스로 담론 유통의 한계를 인정하고 있다고 유추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사실 지금 가장 긴요하지만 비어있는 부분은, 그리고 2000년대와 2010년대 학생운동에 비어있던 부분은 오히려 이념과 정치의 문제다. 물론 이를 채우고자 한 시도가 없지 않았다. 방향성의 타당함은 차치하고서라도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의 활동은 나름대로 그들의 정치를 수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정치보다 학생회 수권이 우선되는 경향, 혹은 소련 붕괴 이후 점차 희석되어 온 이념의 자리를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채워 넣고자 한 경향은 학생운동이 ‘운동’을 잃어버리는 과정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대안적인 이념이 사라진 대학가에서 학생들은 아직도 민주화운동의 경험만을 지겹도록 곱씹으며 해마다 거리로 나서지만, 정작 새로운 질서를 제시할 이념의 부재는 일회적인 폭발성을 지속적인 흐름으로 만들 수 있는 운동의 구심력을 형성하는 데 실패하고 있다.

물론 학생운동과 부문의 고유한 의제를 폐기하자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공간을 버리고서는 운동을 확장할 수도, 부딪히고 실패하는 실천의 경험을 쌓을 수도 없다. 한국에서 대학교육의 보편화와 대학서열의 정착 이후 대학은 노동력과 계급분할을 재생산하는 창구로 전환되었으며, 대학구조조정과 국립대 법인화법(또는 재정회계법)을 통해 시장의존적인 대학제도를 완수하려 하고 있다. 학생의 존재 역시 한편으로 이데올로기적이면서 동시에 어떠한 방식으로건 노동계급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대학에서의 투쟁은 학생들과 가장 쉽게 접점을 찾을 수 있는 투쟁이면서 사회주의라는 이념을 선전 선동할 수 있는 계기다. 따라서 대학에서의 투쟁을 기각할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대학통합네트워크 등 대학사회화 방안을 모색하고, 대학기업화 투쟁을 공세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 제기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다. 비어 있는 이념의 자리를 채우자는 것이다.

이는 현재 교육투쟁에서도 활동가들에게 당면한 문제다. 구조조정 주체들을 만날 때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활동가가 학내에서 발생하는 일상적인 문제들에 둔감하거나 이를 대학기업화의 맥락과 연결시키지 못해서가 아니다. 붕괴한 학생회 질서와 대중지형의 우경화 때문에 조직력이 축소되었을지언정 폭로할 지점을 찾아내는 능력은 십여 년이 넘는 교육투쟁의 경험으로 축적해 왔다. 대학기업화에 맞선 투쟁을 조직할 때 난관에 봉착하는 지점은 결국 고등교육재정과 운영권 문제, 즉 대학이 사립화되어 있다는 데에 있으며, 이를 넘어서는 공공적 대학체제가 무엇인지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교육 이외의 각 부문에 대한 관심과 활동 역시 이미 학생들은 운동세력의 영향권을 벗어나 자체적인 결사를 조직하고 있으며, 이를 부정하거나 기각할 필요는 없다.

사회주의 이념을 학습하고 이를 선전할 수 있는 능력을 보강하지 않고서는 점점 우경화하는 학생회 선거에 대응하는 정치조직마저 끝없이 우경화하는 참혹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물론 학습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각론별 학습을 넘어선 총론 격의 학습이나 토론은 학생사회 내 어느 단위에서도 감히 시도하지 않고 있다. 사회주의의 이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선전하고, 솔직하게 정치토론을 진행할 수 있는 학습모임을 복원해야 한다. 대학부문도 학습과 토론의 대상에서 예외는 아니다. 대학통합네트워크를 중심으로 한 ‘교육공공성’의 실체를 마련해야 한다. 사회주의적 실천을 위해 노동계급과 연대할 기획을 내놓아야 한다. 제2의 민주화 운동을 운운하거나 당장의 학생회 수권에 목숨을 걸기보다 솔직하게 현재 상황을 인정하고 대안을 내놓는 데에서, 반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관점에서 좌파 정치를 재구성해야 한다.

이 같은 과제를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조직도 이 과제에 수반된다. 이 글에서 제기하는 조직은 학회연합이나 학생회연합과 같은 수평적으로 규모만 불린 조직들이 아니다. 일회적인 실천들에 만족하는 선진대중을 모으고 성장시킬 수 있는 당조직과 함께 당조직이 효과적으로 대중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이념만 있고 전국적인, 전체운동을 아우르는 실천을 조직할 당을 준비하지 않은 채 아직도 몇몇 군데 남아있는 비밀서클들처럼 “언젠가 올 혁명을 기다리는” 대기주의적 운동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혹은 앞서 언급했듯 이념이 있는 듯 없는 듯 학생회로 빠져들거나, 혹은 더욱 애매한 형태로 학회활동에만 전념하게 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념이 없는 학회는 기초적인 내용 학습에만 안주하는 것으로 학회로서의 이점도 상실해간다. 이럴 때일수록 단순한 대중단위의 복원만이 아니라, 학생회와 학회 내부가 아니라, 그 밖에서 운동을 조망하고 선도적 투쟁을 계획할 수 있는 당 조직을 건설하고, 그리고 학생사회에서는 오히려 정치토론과 학습의 장을 구축해야 한다.

*주
1. 한대련, <9기 전학대회 자료집>, 2013.

2. 2011년 반값등록금 투쟁의 의식성은 등록금이 과도하게 높다는 문제의식과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 이행이라는 초보적 수준에서 머물렀으며, 이 투쟁은 실질적 반값등록금과 대학구조조정이라는 정부정책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졌다.

3. 이태수, <대학교 총여학생회가 사라진다>, 허핑턴포스트코리아, 2014.10.21.
http://www.huffingtonpost.kr/2014/10/21/story_n_6017732.html

4. 다만 학술운동마저도 이제는 마르크스주의를 떠나 교양 “인문학”, “과학”의 수준으로 회자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변화 양태이다.

5. 최성민, <“청년” 개념과 청년 담론 서사의 변화 양상>,《現代文學理論硏究》50호, 2012, pp.240~241.

6. 일례로 서울대 도서관 개방 문제를 둘러싼 논란의 양상이 사뭇 다르다. 2003년 <대학신문>이 재학생 26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 68.2%가 ‘도서관 열람실의 일반인 개방이 타당하다’라고 응답했으며, 그 이유로 ‘교육의 공공성’이 39.6%, ‘서울대는 국민의 세금을 지원받는 국립대학이므로’가 32.4%를 차지했다. 열람실 개방 범위에 관해서도 ‘전면 개방’이 31.3%로 가장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그러나 2015년 서울대 도서관 증축 이후 개방 열람실 위치 이동 논란이 있자 학내 담론은 ‘일방적인 행정에 대한 불만’ 못지않게 ‘개방 반대’를 요구하는 담론도 만만찮게 높다. 결과적으로 개방열람실 규모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지만, 이는 학내 언론의 논점에도 오르지 못하고 있다(서울대 60년사, <대학신문>). 2012년 민주당이 대선공약으로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내걸었을 때에도 총학생회가 입장 제출을 유보하자 학생들은 ‘서울대 폐지를 찬성하는 총학생회’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이는 운동권 학생회에 대한 불신을 크게 키우는 결과를 낳았다. ‘대응이 늦었다’는 지점이 아니라 ‘서울대 폐지에 찬성한다’는 지점이 여전히 학내에서 유의미하게 회자되고 있으며, 이는 운동권 선본이 출마한 총학생회 선거의 투표율이 비권 선본이 출마한 총학생회 선거 투표율보다 20% 가까이 낮은 결과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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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세상은 실명확인시스템 설치를 거부할 것입니다. 제 19대 대선 운동기간(2017.04.17~05.08)중에 진보네트워크센터(http://www.jinbo.net)에서 제공하는 덧글 게시판을 제공합니다. 아래 비실명 덧글 쓰기를 통해 의견을 남겨주시거나, 아래 소셜계정(트위터,페이스북 등)으로 의견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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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마다

    80년대 그토록 왕성했던 혁명적 학생운동이 왜 소멸했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사회주의 학습 열씸히 하자니.. 실소가 나오는군요. 따지고보면 지금이 과거보다 여건상 운동을 하기는 참 좋은 시대입니다. 군부독재하에서와 같은 지독한 탄압은 존재하지 않고 서적도 자유롭게 접할 수 있고.. 그런데 왜 대학가에서 서서히 사회주의를 비롯한 변혁적 흐름들이 축출당했을까요? 이전보다 더 개방된 사회에서 소위 사회주의 국가들의 실상이 다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 정도를 빼면 사회주의 국가라 부를만한것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1917년을 시작으로 시작된 거대한 사회주의 세계진영이 붕괴했는데.. 무슨 근거로 사회주의 운동을 할수있다는건지 의문스럽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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