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의 두 가지 대안, 에너지 전환과 새로운 적록 연대

[주례토론회] 탈핵과 에너지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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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탈핵운동의 쟁점

1.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 설계수명 30년을 경과한 노후 핵발전소의 폐쇄와 수명연장 둘러싼 갈등.
- 월성 1호기는 원안위에서 3차례에 걸쳐 상정되며 격론, 2월 26일 일방 통과됨. 절차상의 문제 등 남아 정치권으로 확대되며 논란 계속될 것으로 보임.
- 고리 1호기는 2017년 앞두고 수명재연장 심사 준비.

2. 신규 핵발전소, 에너지 믹스 문제
- 올해 수립될 제7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신규 핵발전소 확정 등 쟁점 포함.
- 삼척, 영덕 지역주민 대응 전선 본격화(삼척 주민투표, 영덕 반핵군민대책위)
- 7차 기본계획은 고압송전선로 문제까지 직결됨(이미 경기지역 등 고압변전소 갈등 시작)
- 탈핵진영의 에너지 믹스 대안과 탈핵 프로그램 발전 필요성 (한국 탈핵 시나리오)

3. 핵발전소 폐기물 처분 문제
- 경주 중저준위 폐기물 처분장 안전성 우려 속에 가동 개시 결정
-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의 공전과 한미 핵협상
- 핵발전소 자체의 폐로 계획 미비 문제

4. 핵발전과 안전, 인권 문제
- 송전선로 입지 둘러싼 생존권, 인권 이슈 (밀양, 청도 등)
- 핵발전소 주변지역 저선량 방사능 피폭 관련 균도네 가족 소송 (인근 주민, 종사자)
- 방사선 비상계획구역의 확대 문제 (20-30km -> 30-50km)
- 핵발전소 종사 노동자의 외주하청 비율 증가와 안전 관리 부실
-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산 식재료, 건자재 등 방사능 오염 문제
- ‘핵발전소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존재

5. 기술적 문제 논쟁
- 고리1호기 압력용기의 ‘취성화’에 따른 위험성 논란
- 월성1호기 R7 기준 적용 제외 문제
- 인코넬 600 용접재질의 부식과 균열 발생
- 해수담수화시설(부산) 시범 사업 문제
- 고압 송전탑의 인체유해성, 수도권 포화, 계통운용 안정성
- 핵발전소 전산망 해킹

6. 핵 마피아/카르텔 문제
- 원자력문화재단의 해체, 또는 전환 필요성
- 원자력 프로파갠다의 해부와 대응
- 핵발전소 건설과 수출의 이해관계
- 핵에너지를 둘러싸고 작동하는 ‘전문성의 정치’ 극복의 문제

7. 탈핵운동 진영의 쟁점
- 탈핵운동 연대체의 구성과 운영, 전략의 문제
- 핵발전 거버넌스에 대한 참여와 활용의 문제
- 탈핵/에너지전환 시민의 형성과 성장의 과제 (탈핵 공론장)
- 에너지부문 노동자와 탈핵운동의 연대와 전환 기획

2011년 3월 11일 일본 동북부 지진과 쓰나미로 발발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태의 파장이 멈출 줄 모른다.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말처럼 핵발전소는 스위치를 내린다고 가동이 멈추지 않으며 핵분열과 이로 인한 방사능 유출이 스스로 계속되기 때문이다. 핵발전용 원료와 격납용기를 식히는 작업만도 언제 마무리될지 알 수 없는 가운데 냉각수로 투입되어 방사능에 오염된 해수와 담수, 방사능을 띤 수증기의 유출이 계속되고 있어 이 시점에서 상황을 정리해 말하기도 어렵다.

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이 해저 지진인 탓에 천재(天災)라 할 수도 있겠으나, 주류 언론에서조차 그렇게 치부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이제껏 세상에 없던 핵발전 시설을 만든 것도 인간이었고 그것을 관리하는 것 역시 인간이기에 넓은 의미에서 그것은 인재(人災)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자력 업계는 곧잘 ‘100만분의 1’, 즉 노심에서 설계상 사고가 날 확률이 극히 희박하다는 의미의 숫자를 거론하곤 하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도 의미가 없음이 분명해졌다. 핵발전의 상업운전이 시작된 게 불과 50년이 넘었을 뿐이고 전 세계 핵발전소가 440기 정도인데, 이번 후쿠시마의 4기까지 포함해서 그동안 거대한 사고만 쳐도 6기에서 발생했으니 통계적으로도 사고 확률이 최소한 1/100 이상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의 필연

1987년 ≪위험한 이야기≫1를 펴낸 일본의 프리랜서 반핵 운동가 히로세 다카시 선생은 핵발전 산업 관계자가 핵발전소의 사고는 ‘2만 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로 안전하다고 자신하는 것을 비꼬아 당시 가동 중인 핵발전소 200기로 나누면 10년에 한 번 사고가 일어나는 확률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고 있다.

심지어 다카시 선생은 20년 전 자신의 책에서 “후쿠시마 현에는 자그마치 10기가 있죠. 여기서 해일이 일어나 해수가 멀리 빠져나가면 10기가 함께 멜트다운(meltdown)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 사람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말기적인 사태로 몰아넣는 엄청난 재해가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후쿠시마 사고를 정확히 예견하여 읽는 이들을 놀라게 한다. 물론 다카시 선생이 신심을 가지고 일본의 핵발전을 주의 깊게 파고들었기에 가능한 예견이었지만, 핵산업계의 계산에는 이렇듯 아직 경험하지 않아 계산에 들어가지 않은 위험 요소나 인간의 오만가지 실수가 모두 누락되어 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핵발전의 위험성이 핵발전의 원리 자체로부터 온다는 것이다. 발전소 방식이 후쿠시마와 같은 비등경수로(BWR)인지 한국과 같은 가압경수로(PWR)인지, 한반도에 편서풍이 계속 부는지 가끔 동풍도 부는지, 쓰나미가 10m 높이로 오는지 15m 높이로 오는지 하는 이야기는 본질이 아니다. 핵분열을 원리로 하는 발전은 인간이 각종 첨단 장치와 안전 수칙을 가지고 조심스레 통제해야 할 만큼 엄청난 에너지를 발생시킨다는 점, 그리고 발전 과정과 발전 종료 후 폐기물 처리 과정에서 치명적인 방사능을 방출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기 핵발전 시장이 형성될 때까지 민간 발전사들은 수익성과 안전성 확보 부담으로 진입을 꺼렸고 각국 정부는 막대한 투자와 정책적 지원을 시행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어떤 핵발전소를 어디에 어떻게 건설하고 운용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소수의 과학자, 정치인, 기업가의 손에 맡겨져 왔다. 일반인들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하지도 못할 것이고 알 필요도 없다는 것이 이들의 논리였다. 그리고 이들을 거드는 전문가들과 언론이 있다. 반핵 진영에서는 이러한 이들의 행태를 두고 ‘원자력 마피아’, ‘원자력 카르텔’이라 부른다.

그러나 핵발전소에서 일어나는 사고나 폐기물의 방사선에 피해를 입는 이들은 이 카르텔 외부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1979년 미국의 스리마일 아일랜드 핵발전소 사고 때 대피한 수십만 명의 시민들과 피폭당한 노동자들, 1986년 체르노빌 사고 진압에 투입되었던 군인과 노동자들, 한국의 안면도, 굴업도, 위도에서 방폐장 건설 시도에 맞섰던 주민들 모두가 그렇다.

미국과 구소련, 한국의 정부들이 원래 유난히 관료적이고 독재적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핵발전이라는 거대하고 위험한 기술은 그 바탕에 불투명성과 비민주성을 가질 수밖에 없는 탓이다. 핵발전은 한 기가 최소 수십만 메가와트 이상 되는 막대한 출력을 가지며 핵분열 속도 조절이 어려워 일단 핵연료봉이 들어가면 출력을 바꾸기도 어렵다. 또한, 아무리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 이야기해도 우라늄과 플루토늄은 군사무기와 연관될 수밖에 없다. 미국이 다른 나라의 핵발전 개발을 지원해 온 것도 사용후핵연료를 자신들의 눈앞에서 투명하게 관리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소수의 원자력 전문가들밖에 없다는 것이 사회의 ‘상식’이 되어왔다.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핵발전

그래서 핵발전 비중이 높은 나라들은 프랑스 정도를 예외로 한다면 권위주의적이고 비밀주의적인 정부인 경우가 유독 많다. 핵발전소가 많고 사용후핵연료가 많이 발생할수록 이를 철저히 감시할 수 있는 사회체제와 정치제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2003~04년 전라북도 부안을 그토록 들끓게 했던 부안 방폐장 유치 사태가 ‘참여정부’를 표방한 노무현 정부 때 일어난 일임을 상기해 보자. 또한, 북한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북한 역시 핵 개발을 시작한 이후 체제의 폐쇄성과 공격성이 더욱 강해졌다고 추론할 수 있다.

핵발전이 갖는 비민주성은 공간적 불공정성도 낳는다. 현재 한국의 핵발전 단지 소재지는 부산 고리, 월성, 울진, 영광의 네 곳이다. 이 단지들이 입지한 곳은 하나같이 냉각수를 얻기 쉽고 지질이 안정적이며 주민의 반발이 적은 격오지 바닷가들이다. 그러나 고출력의 핵발전소가 생산하는 전기를 사용하는 곳은 수십 수백 킬로미터 바깥의 인구와 산업 밀집 지역들이다. 서울의 경우 전력자급률은 1.9%에 불과한데 경북은 189.4%, 충남은 333.9%에 이른다. 경북의 핵발전소와 충남의 화력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가 고압 송전선을 타고 수도권까지 오기 때문이다. 전력을 생산하는 곳과 소비하는 곳, 생산을 결정하는 이들과 생산과 소비를 담당하는 이들 사이가 완전히 나뉘어 있다는 말이다.

이에 대하여 전력을 많이 쓰는 수도권 주민들이 비난받아야 할 일만은 아니다. 현재 한국의 전력수급 기본계획은 15년 단위로 작성된다. 왜냐하면, 핵발전소 한 개를 건설하는데 드는 시간이 사전 조사와 건설, 시험가동까지 포함하여 10~15년이 걸리기 때문이다. 전문가와 정치인들이 15년 이후의 전력 수요와 핵발전 비율을 결정하면 국민들은 그에 따라 전기를 쓸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만큼 전기 수요가 늘어났으므로 계속 핵발전을 증설하게 된다.

한국에서 핵발전 비율이 어느 정도가 적절하거나 줄일 필요가 있는지는 각 지역의 주민들에게도 심지어 대부분의 정치인에게도 무관한 문제다. 이명박 정부가 2030년까지 핵발전소를 10여 기 더 건설하여 한국의 핵발전 비중을 59%까지 늘리겠다고 결정하는 과정에서도 국민의 참여는 전혀 없었고 대부분의 국회의원조차 개입 기회를 얻지 못했다. 올해 6월까지 결정하겠다는 신규 핵발전소 건설 예정부지 선정에 신청서를 낸 삼척, 울진, 영덕의 주민들에게 그나마 주민투표라는 참여 기회를 준다고 한다면 참으로 기만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비민주적이고 불공정한 상황은 핵발전이나 대규모 석탄화력발전과 같은 중앙집중형 에너지 수급 시스템에서는 불가피하다.

  2007년의 한국의 전력계통도. 밀양에 건설 중인 765kV 계통은 이후 추진된 것이다.
[출처: 전력거래소]

이에 반해 지역분산형 에너지 생산-공급 시스템은 민주주의와 친화적이다. 예를 들어 동네 학교와 집 지붕에 얹는 태양광 발전 패널, 중소형 풍력 터빈, 지열과 바이오가스, 하천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소수력 발전들이다. 이는 거대하고 위험한 기술이 아니라 지역 주민이 충분히 이해하고 공동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는, 절약하는 방식까지 결정하고 시행할 수 있는 기술들이다. 에너지 효율상 유리할 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지속가능한 고용까지 창출할 수 있으며 다른 지역에 폐기물 처리장 같은 민폐를 끼치지도 않는 방식들이다. 에너지 수급 방식이 곧 민주성의 정도와 민주주의의 방식과 직결되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은 가능하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한국에서 탈핵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다행이지만, 아직은 반핵 진영의 논리도 다소 원칙론적이거나 당위적인 주장에 그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탈핵은 이제 막연한 이상이 아닌 구체적인 현실로 논의되어야 한다. 이는 결국 현재 한국의 총에너지 소비의 6%, 그리고 전체 발전량의 30% 정도를 차지하는 핵발전의 비중을 어떻게 소화할 것이냐의 문제다.

물론 산업사회가 도래한 이래 이제껏 우리가 취해 온 자연 착취적이고 극히 낭비적인 삶의 양식을 되돌아보는 것이 우선이지만, 핵발전 없는 녹색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대안의 틀거리가 필요하다. 탈핵 한국 사회를 상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반론은 수출과 소비 증가로 에너지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핵발전 증설이 불가피하지 않느냐는 것과 함께 핵발전을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당장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이는 둘 다 일정하게 부당한 전제를 깔고 있는 주장이지만, 핵발전 비중을 중심으로 다른 접근을 제안할 수 있다. 요컨대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중단할 때 이에 해당하는 전력분은 에너지 수요관리와 효율화로 커버하고 노후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쇄로 인해 발생할 전력 부족분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로 충당하는 시나리오다. 이 과정은 마땅히 한국 온실가스 배출의 유의미한 감축을 수반하는 것이어야 한다.2

  탈핵 에너지 전환 개념도
[출처: 김명진 외, ≪탈핵≫, 이매진, 2011, p.157]

핵발전이 본질적으로 내재하는 위험성, 사회적 비용, 폐기물 처리 등의 중대한 문제를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결국 우리의 논의는 두 가지 다른 전제로부터 출발한다. 우선 에너지 수요의 증대가 필연적이지 않으며, 재생에너지의 잠재력은 핵에너지를 대체할 만큼 크고 점진적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선 에너지 수요 추계부터 다시 잡아야 한다. 아래 그림은 주요 OECD 국가들의 1인당 GDP와 1인당 에너지소비량을 비교한 것이다.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소득이 증가해도 에너지 소비가 그다지 증가하지 않거나 오히려 낮아지는 경향을 보인다. 국민소득 1만~1만 5천 달러 즈음에서 이른바 ‘소득과 에너지 소비의 분리(decoupling)’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경제성장을 위해 에너지 소비가 그만큼 늘어나는 것이 상식이었지만, 1973년의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대다수 선진국은 에너지 다이어트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에너지 체제의 체질 개선을 시도하게 되었다. 또한, 경제가 일정 단계 이상 성장하면 에너지 효율화 기술도 발전하고 단순 요소투입 위주의 성장을 지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는 한국에서 이러한 분리 경향은 5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포함한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서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분리 경향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는 수요관리를 통해 전력소비를 억제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다. 그러나 현행 수요관리 정책은 공급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수준의 위기관리 수단 정도로 활용된 것이다.

  1인당 국민소득과 에너지 소비 비교
[출처: 윤순진, <전력정책의 쟁점>, 2004년 발표문]

한편, 핵발전에서 만들어지는 전력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충분히 가능하지만 실행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단순한 사실이다. 에너지관리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에 따르면 국내 재생가능 에너지의 기술적 잠재량은 2008년도 1차 에너지 소비량인 2억4,075만2천TOE의 7.3배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재생에너지 생산량은 기술적 잠재량의 0.09%인 154만3천TOE에 불과하다. 5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대폭 늘렸다고는 하지만 2024년에도 전체 전력생산의 8.9%를 차지하는 정도다.

이제까지 재생에너지 보급에 대한 의욕적인 투자가 매우 부진했던 것은 수요추세 예측(BAU)에 근거한 경제적인 에너지 공급을 주된 정책 기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존에 투자된 설비의 활용과 현시점에서의 에너지 생산 단가가 판단의 중심이 되어 왔다. 이렇게 되면 이제까지 많은 투자와 정부 지원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폐로와 폐기물 처리 비용이 먼 미래의 것으로 치부되어 단가 산정에는 제대로 반영되지도 않는, 그리고 기저부하를 담당하는 탓에 가동률마저 높은 핵에너지가 저렴하고 유리한 수단으로 나타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특히 핵발전 중심의 에너지원 구성은 강한 경로 의존성을 갖기 때문에 다른 에너지원 개발을 그만큼 더욱 후순위로 밀리게 만들어 왔다.

최근 박년배 교수가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한국에서 2050년까지 원자력과 석탄, 액화천연가스 등의 전력 설비 비중을 각각 3.4%, 0%, 3.5%로 대폭 줄이고 재생가능 에너지 전력 설비 비중을 93.0%로 높인 ‘지속가능 사회 시나리오’대로 전력수급계획을 짤 경우 누적비용이 667조 원 정도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2050년까지 ‘원자력 38.7%, 석탄 19.1%, 천연가스 11.3%, 재생가능 에너지 30.8%’의 전력 설비 비율로 ‘정부정책 시나리오’를 짜면 지속가능사회 시나리오의 90% 수준인 605조 원 정도가 드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준 시나리오의 누적비용은 554조 원이다.

요컨대 지속가능사회 시나리오를 따르더라도 드는 비용은 기준 시나리오나 정부정책 시나리오 대비 약 1.2배 정도이므로, 한국의 경제 수준을 감안하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온실가스 감축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탈핵을 위한 우리의 선택지가 훨씬 구체화되는 셈이다.
재생에너지 확충에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여전히 많다. 시간대별, 계절별 발전량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그리드와 저장 설비가 개발되어야 하고 당분간 존재하는 단가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의 지원도 필수적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핵발전에 막대하게 이루어졌던 투자와 사회적 지원의 저울추를 재생에너지 쪽으로 돌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탈핵과 정의로운 전환

탈핵은 과정과 결과도 정의롭고 공평한 것이어야 한다. 핵발전 중단이 정책적으로 결정된다 하더라도 당장 핵발전소 운영과 관리가 불필요해지거나 관련 기술과 수요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다른 발전과 제조업 등 에너지집약형 산업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 과정과 결과의 결정, 그리고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있어 정보의 공개와 참여는 충분히 보장되어야 한다. 또한, 직간접적으로 에너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과 가족들에 대한 피해는 최소화되어야 하고 발생하는 부담을 국가와 사회가 같이 짊어져야만 한다.

이미 국제노총(ITUC) 등 세계의 노동조합 운동은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및 산업과 고용의 변동에 대해 '정의로운 전환'의 원칙으로 대응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요컨대 기본적으로 ‘건강한 생태계’를 바탕으로 한 녹색 경제로의 전환 과정에서 고용 불안이 발생한다면 이를 제거하고 노동자 및 지역 사회의 이익과 노동기간의 손실 없이 고용이 유지되도록 한다. 이러한 목적으로 프로그램을 작성하고 필요한 기금을 조성한다는 것이다.

재생에너지가 화석연료나 핵산업보다 잠재적인 고용 창출 능력이 더욱 큰 것은 여러 연구에서 증명되고 있다. 게다가 재생에너지는 소규모 분산적으로 이루어지는 성격 덕분에 지역에 밀착하여 지속적으로 창출되는 일자리가 다수다. 여기에는 태양광, 풍력 발전뿐 아니라 주택에너지 효율화나 환경관리 같은 다양한 녹색일자리까지 포함된다.

그러나 낙관적인 일자리 전망과 전환 프로그램을 제시한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그대로 따라온다는 보장은 없다. 전환을 선도하는 주체가 정부가 되든 시민사회가 되든 거기에 신뢰를 보내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자신의 현 직무와 생계의 유지가 더 우선적인 관심일 터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2006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수행한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조합원 의식조사’ 결과는 한국 핵발전 종사자들이 가진 생각의 일단을 보여준다.3 이 조사에서 환경 운동 진영과 원자력 산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견은 근본적으로 대립적이라 보는 비율이 압도적(67.1%)이지만, 그러한 갈등 중 상당 부분은 관점과 정보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대화를 통해 이견을 좁힐 수 있다는 의견이 절반 이상(59.1%)을 차지한다.

향후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가져야 할 방향에 대해서는 원자력, 화력 중심의 기존 체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도합 76.2%로 나타났다. 반면 대체에너지의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80.2%에 달했다. 두 개의 결과는 일견 모순되는 것으로 보이지만, 조합원 다수가 중 단기적으로는 원자력과 화력을 대체할 에너지원을 발굴하기 어렵다는 현실론과 장기적으로는 대체에너지를 개발하여 다변화해야 한다는 이상론을 모두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 가능할 것이다.

[표] 환경운동과 원자력 산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의견
[출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조합원 의식조사 및 정책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 2006. 7.]

[표] 한국 에너지 정책의 방향에 대한 의견
[출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조합원 의식조사 및 정책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 2006. 7.]

이는 핵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견에서도 뒷받침된다. 한수원 조합원들 대다수의 생각은 핵발전이 기술적으로 안전하다는 것이 압도적이다. 이 때문에 앞으로의 한국 원자력 산업도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한국 원자력 산업의 전망에 대해서 더욱 성장할 것(55.6%)이거나 큰 변화가 없을 것(32.2%)이라는 응답을 합하여 과반수가 긍정적 전망을 하고 있으며, 점차 입지가 축소될 것이라는 응답은 11.7%에 불과했다.

[표]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에 대한 의견
[출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조합원 의식조사 및 정책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 2006. 7.]

<그림> 원자력산업 고용변화 전망에 대한 의견
[출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조합원 의식조사 및 정책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 2006. 7.]

빠른 시일 안에 원자력산업 축소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희박함에도 이를 가정한 고용 변화 전망에 대한 질문에 조합원들은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다소 고용위축과 불안이 초래될 것’이라는 예상이 58.3%, ‘빠르게 고용불안이 초래될 것’이라는 응답이 15.0%인 반면, ‘현 발전소는 유지되므로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답변은 26.5%였다.
사회적으로 탈핵 여론이 형성되기조차 아직 쉽지 않은 길인데, 핵산업 종사자들의 의견을 바꾸는 일은 더욱 어려울 것임을 보여준다. 최근의 반핵 운동과 탈핵 프로그램 모색이 단지 핵발전 중단뿐만 아니라 노동과 생태 사이의 간극을 해소하는 새로운 주체와 운동 형성으로 나아갈 수는 없을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새로운 적록 연대를 생각하자

돌이켜 보면 한국의 노동 운동은 환경 운동, 혹은 생태적 이슈를 결코 외면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한국의 환경 운동과 노동 운동 모두 한국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태동하여 민주화 투쟁의 성과에 힘입어 성장했고 민주화 투쟁의 거대한 흐름에 각각 한 몫을 담당했을 뿐 아니라, 운동의 구성 인자도 상당 부분 겹쳐 왔다.

1980년대 초 산업화의 그늘과 폐해를 지적하는 환경 운동의 목소리는 노동자들의 권리 주장과 마찬가지로 정권에 의해 불손하고 불법적인 행위로 간주되었고, 그 결과 공해추방 운동은 반정부 운동으로 간주되어 탄압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가 빠르게 성장하면서 시민사회 형성을 위한 토양도 성숙해 갔다. 시민들은 민주주의와 기본권 말고도 삶의 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밀도가 높고 자원이 부족하여 환경수용력이 작은 한국에서 살다 보니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은 곧바로 환경 운동에 대한 관심과 참여로 이어졌다. 결국, 1987년 이후 노동 운동이 사회 운동의 주력이 됨과 동시에 시민운동이 등장했고 그중 환경 운동의 성장과 발전이 가장 두드러졌다.

1988년 7월 2일 15세의 나이로 숨진 문송면은 산재추방 운동의 한 계기가 되었다. 서울 양평동의 온도계 공장에서 일하다 두 달 만에 수은중독으로 고통에 몸부림치다 숨진 그의 비극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렀다. 그는 죽기 사흘 전에야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그로부터 20일 후에는 정부 기업이던 원진레이온에서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수백 명이 직업병에 걸린 일이 알려졌다.

공장이 폐쇄되기까지 사망한 노동자가 15명, 이후 투병생활을 하다 죽은 노동자들까지 합하면 총 97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이 직업병을 인정받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기까지 10년이 걸렸다. 원진레이온 출신 노동자 800명이 회사 매각 당시 받은 보상금 중 절반을 모아 세운 직업병 전문 병원이 원진 녹색병원이다.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노동 운동은 환경문제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산안보건 활동을 강화하게 되었고, 환경 운동도 공장이 유발하는 오염뿐만 아니라 노동자들의 건강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백혈병 집단발병 사망 사건과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 돌연사 사건, 석면 피해 사례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그러나 환경 운동과 노동 운동은 관심사와 접근 방식이 달랐고 직접적인 왕래와 연대는 점차 줄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런 차이는 환경 운동이 공해피해자 중심의 계급적 공해추방 운동에서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탈계급적 시민운동으로 변화하면서 더욱 뚜렷해졌다. 태동 당시부터 생산력주의에 비판적이었던 환경 운동은 노동 운동이 부의 재분배에만 관심을 둘 뿐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폐기체계의 반생태적 성격에는 관심이 적다고 여긴 반면, 노동 운동은 빠르게 성장한 환경 운동이 환경파괴에 내재한 계급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무시함으로써 계급 모순을 희석하고 체제유지적인 보수성을 지니게 되었다고 보았다. 실제로 환경 운동과 노동 운동은 새만금, 김포매립지, 대전 원자력시설 안전성 문제 등에서 대립하기도 했다. 기업의 사업 수주와 프로젝트 지속에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개별 노동조합의 입장이 상급노조나 시민사회의 입장과 충돌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에도 노동 운동과 환경 운동의 연대는 끊이지 않았다. 특히 신자유주의 체제가 전면화되면서 시장화의 위협에 맞서 ‘사회공공성’이라는 가치를 매개로 한 노동-환경 연대가 발전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 공공부문, 특히 발전산업과 가스산업에 대한 정부의 민영화 계획에 대항해 투쟁하면서 노동조합은 환경단체를 포함한 시민사회단체들과 협력을 확대․강화할 필요를 느꼈고, 이에 따라 2005년 ‘에너지노동사회네트워크’가 출범하게 되었다. 이후 에너지산업의 사유화 반대와 지속가능한 에너지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활동이 꾸준히 이어졌다.

2007년에는 전국철도노조와 운수연대, 궤도연대, 교통연대, 민중연대, 환경운동연합 등이 정부의 철도산업 구조조정에 맞서 시민의 안전과 공공성 등을 화두로 ‘철도·지하철 안전과 공공성 강화를 위한 시민사회노동 네트워크’를 창립했다. 네트워크는 대중교통 요금 문제부터 역사 민간위탁과 상업시설 도입, 분진·석면 등 지하 환경, 장애인·노약자 등 교통약자 문제 등을 의제로 잡았다.

이러한 공동활동 경험은 최근 진척을 보이는 기후변화 대응 공동기구(기후정의연대)로 이어지는 토대가 되었다. 최근 몇 년간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회의에 대응하기 위해 환경단체와 노동조합들이 공동참가단으로 결합하는 한편 기후변화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노동 운동이 환경문제에 거시적인 조망을 가지고 수미일관하게 대응한다고 평가하기는 어렵다. 불안정 고용과 지역 사회의 황폐화 같은 더욱 다변화된 문제를 포함하여 대안을 강구하는 데까지 나아가지도 못하고 있다. 고용과 환경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이를 지혜롭게 소화할 정책담론과 사회적 논의 틀도 부재한 형편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의 탈핵 전환은 에너지 체제의 전환이자 탈핵을 지혜롭게 소화해 내도록 집단적 주체, 즉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존재의 전환이기도 할 것이다. 자본과 정부에 의해 탄압받는 노동자와 시민 사이의 단순한 연대를 넘어 반자본주의적 생태사회를 함께 만들어 내는 연대의 주체가 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생산 따로, 투쟁 따로, 연대 따로의 운동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가를 함께 결정하는 대중 운동이 가능하다면, 다른 기술적인 문제는 그러한 동력과 집단적 지혜를 가지고 함께 풀어 가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후쿠시마 사고로 촉발된 탈핵 논의가 앞으로는 새로운 적록 연대에 대한 모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정의로운 전환≫(김현우 지음, 나름북스, 2014)에 수록

*주

1. 히로세 다카시, ≪원전을 멈춰라≫(이음, 2011)로 재출간되었다.
2. 이 절은 주로 김현우, <한국 사회의 탈핵 시나리오를 생각한다>, 에너진포커스 27호(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2011. 5)를 요약한 것이다.
3. 이 조사는 수력발전 종사자 5.2%를 포함하고 있으나 95% 가량이 원자력 종사자들이므로 핵발전 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의식 조사로 보아도 무방하다.

*참고문헌

김수진 외,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 도요새, 2011.
김승택, <녹색성장이 노동시장에 미치는 효과>, 녹색성장과 녹색일자리 전환전략의 모색 토론회 자료집, 2009. 7.
박년배, <발전 부문 재생가능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장기 시나리오 분석>,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논문, 2011. 2.
윤순진, <전력정책의 쟁점>, 2004.
존 번 외, ≪에너지혁명: 21세기 한국의 에너지 환경 전략≫, 매일경제신문사, 2004.
한국노동사회연구소, ≪한국수력원자력 노동조합 조합원 의식조사 및 정책 수립을 위한 조사연구≫, 2006. 7.
히로세 다카시, ≪원전을 멈춰라≫, 이음,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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