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죽음에 그만하라 말할 수 있나?"

[인터뷰] 단원고 2학년 4반 故 임경빈 학생 어머니 전인숙 씨

“우리 경빈이는 사고 첫 날 왔어요. 아침에 사고가 났는데 배 주변에 있던 아이를 오후 6시가 넘어 발견했대요. 그 시간 동안 정부는 무얼 했을까요? 애초에 구조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듭니다. 사고가 난 뒤 전원 구조 했다고 안심시켜놓고 살린 아이가 한 명도 없는 거에요. 여론이 악화되니까 유병언 회장의 죽음을, 세월호 특별법 만들자는데 유가족이 세금 도둑 이래요. 세월호 인양하자니까 특별법 정부 시행령안을 발표했다가 여론 안 좋아지니 다시 배상‧보상 이야기를 꺼내고……정부는 단계를 밟아가며 물 타기를 하고 있지만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줄곧 이야기해왔던 건 단 하나 ‘진상규명’입니다. 내 자식이 죽었는데 그 과정이 온통 의문이에요. 그걸 밝혀야 하는데…”

지난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 쌩쌩 달리는 자동차 소리가 울음도 분노의 목소리도 삼키는 그곳에서 단원고 2학년 4반 故 임경빈 학생의 어머니 전인숙 씨를 만났다.

참사 1년, 억울한 아이들이 함께 있다

참사 1년 ‘이제 경찰은 우릴 유가족이 아닌 폭도 취급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던 엄마. 가만히 있으면 다 해주겠다는 정부를 믿고 진상규명을 기다렸지만 돌아온 것은 세월호 특별법을 무력화 시키는 정부 시행령이었고 배상.보상안이었다. 돈으로 국민과 유가족을 갈라놓으려는 정부의 행태에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거리로 나섰다. 언제까지고 사람들이 원하는 순수한 유가족일 수는 없었다.

  단원고 2학년 4반 고 임경빈 학생 어머니 전인숙 씨 © 강성란

“아이들이 좋은데 갔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애들이 억울해서 아직 좋은 곳으로 못 갔을 거란 생각을 해요. 경빈이도 엄마 옆에서 싸우는 거 보고 있을 거 같고. 계속 내 옆에 있는 거 같고. 그래서 죽자사자 싸워요. 헌데 변한 건 별로 없어 실망스러울 때도 많아요. 도대체 왜 싸우냐고 바뀔 거 같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변화의 시작을 위해서라도 싸워야죠. 하지만 아이들 이야기를 할 때 코웃음을 치거나 비방하는 사람들을 보면 용서가 안돼요. 아이도 내 옆에서 보고 있을 텐데……”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인터뷰 이틀 전 이준석 세월호 선장의 사형 구형 소식이 전해졌지만 마음만 더 복잡하다. 그 한 명의 책임으로 끝내기엔 너무 많은 생명이었다.

저 벚꽃 만발한 4월, 고개를 들 수 없다

“배를 인양해 문제가 뭐였는지 조사부터 하고 그걸 가지고 재판이든 뭐든 해야 할 텐데 배는 바다 속에 그대로 있고 재판은 재판대로 진행되는 걸 납득할 수 있나요?”

엄마의 눈이 허공으로 향했다. 그리고 놀란 듯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다 속에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안 겪어본 사람은 몰라요. 우린 그래도 애들을 품안에 데려오기라도 했지. 아직도 저 바다에 새끼가, 돌아오지 않은 아이가 있는 실종자 가족들의 그 아픔은 감히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어요.”

벚꽃 피는 1년 전 아이를 보내고 다시 돌아온 4월. 벚꽃 만발한 길을 차마 고개 들고 걸을 수 없어 바닥만 보는 엄마는 속이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또 다른 엄마를 생각하며 울었다.

“간담회에 온 어떤 분이 아이에게 매일 노란리본을 달아줬대요. 헌데 그 학교 선생님이 ‘너 어느 당이냐?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그랬나 봐요. 세월호에 대해 밝혀진 건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고 모두 죽었다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어요. 헌데……선생님이 어떻게 그런 말을 입에 담나요? 자기 제자일 수도 있었을 아이들이 그렇게 됐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아이들이랑 같이 오시지..."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바다 속에 아이들을 두고 돌아온 담임 선생님을 원망했고, 사람들은 ‘살아 돌아온 것도 죄냐’고 손가락질했다.

“선생님도 사람이니까 이해하려고 노력해요. 헌데 그 이후에 선생님을 못 만났어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 자리에 함께 해야 할 것 같은데…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엄마, 아빠 역할 하러 같이 가신 거잖아요. 가족들은 이렇게 거리로 나왔는데……”

아이를 잃은 엄마에게 살아 돌아 온 교사의 아픔을 이해해달라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다.

왜 아이들은 구명조끼도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배를 타서 서로의 조끼를 벗어줘야 했을까. 선박 사고가 났을 때 가장 기본은 구명조끼를 입고 선상에 나와 있는 것이라던데 왜 교사들은 이를 알지 못하고 아이들과 함께 가만히 있었을까. 최소한의 안전 교육만 받았다면 더 많은 이들이 살아 돌아오지 않았을까.

“올라오신 선생님들 중에 아이를 양 손으로 꼭 품고 오신 분도 계세요. 끝까지 아이들 곁을 지키다 가신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요.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선 아이들이랑 같이 나오시지, 가만히 있지 말고 같이 나오시지…… 안타까움이 남는 거죠. 학교에서 제대로 된 안전교육이 이루어져야합니다. 지금 하는 민방위 훈련, 소방안전교육이니 이런 것들 말고 제대로 된 교육 말입니다.”

엄마는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막기 위해서는 일상적이고 체계적인 안전교육이 필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우리가 마지막이어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씨랜드 참사에서 시작된 인재에 더 이상 아이들을 희생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아이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부정부패를 알리고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을 갖게 해야 한다고. 우리는 아이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야 한다고.

30명이면 30명 모두 다른 아이로 길러달라

이야기는 자연스레 ‘가만히 있으라’는 현 교육으로 흘렀다.

“간담회를 하며 만난 학생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배울 점이 많아요. 아이들은 정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죠. 살면서 정치도 알아야 하는데 학교가 막을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어요. 사회 문제를 제대로 알려주었으면 해요. 한 학급에 30명이라면 30명 모두가 다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교육을 시켜주길 바래요.”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실어주지 않은 언론에 대해 엄마는 할 말이 많았다.

“아이들의 다양한 사고와 균형 잡힌 시각을 위해 다양한 언론을 접하게 해주세요. 조중동을 보지 말라는 게 아니라 그와 다른 시각을 가진 언론도 함께 보여주시라는 거죠. 노란리본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잊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알려주세요.”

세상일에 관심 없이 살다가 자신의 발등을 찍었다고 토로하던 엄마는 4·16 이후 ‘연대’혹은 ‘투쟁’이라는 말의 의미를 배우고 살고 있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종북’, ‘좌빨’이 됐지만 늘 지지해주는 교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출처: 전교조]

“우리 경빈이 18년 키웠으니 앞으로 18년은 싸우겠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야기하죠. 엄마니까요. 하지만 진실이 밝혀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명예 주민등록증 속 경빈이 얼굴이 배우 박해진을 닮았다는 이야기에 빙그레 웃는 엄마는 인터뷰를 마친 뒤 다시 세월호 광장 발언대에 섰다. (기사제휴=교육희망)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강성란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