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 위기, 하청구조부터 해소해야

조선산업 위기와 현대중공업 구조조정

  현대중공업은 올해 1분기 신규 수주액이 30억1700만달러로 지난해 1분기 59억4900만달러에 견줘 49.3% 줄었다. 수주잔량도 지난달 말 489만6000CGT(100척)로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에 밀려 세계 3위로 내려앉았다. [출처: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각축하는 한중일 조선산업

한국의 조선산업은 지난 30여년 동안 비약 성장해 2000년대 이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최고의 조선산업 국가로 올라섰다. 1990년대 중반 세계 조선산업 1위 자리를 지켜오던 일본은 조선산업이 불황으로 접어들 것으로 예측해 건조 시설과 조선 인력을 대폭 축소하고 선박 표준화를 단행했다. 한국은 호황에 대비해 오히려 설계 인력과 건조 시설을 크게 늘렸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등 이른바 ‘빅3’ 조선소를 중심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선박의 생산 품질을 높였다. 생산 선박의 종류도 대형 컨테이너선, LNG선(액화천연가스 운반선), 해양시추설비 들로 다양화했다. 우수한 조선산업 설계인력을 대거 확보하고 조선기자재 산업을 성장시켰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의 예상과 달리 조선 호황이 계속되면서 전세계 선박 주문이 폭주했다. 일본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고 한국으로 수요가 집중되면서 한국은 조선산업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섰다. 일본은 무리하게 선박 표준화를 추구하다가 선주들의 설계 변경 요구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반면, 우수한 설계인력을 확보한 한국은 주문형 맞춤 생산에 능동 대응할 수 있었다. 설계 변경이 잦은 해양플랜트 제작에 한국이 강세를 보이는 까닭도 풍부한 설계인력을 바탕으로 설계유연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중국 조선산업이 급부상했다. 2010년대 들어와 중국은 선박수주량 세계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 선박수주액은 한국이 중국에 1.1%p 차로 간신히 우위를 유지했지만 추세로 보면 수주액도 중국에 세계 1위 자리를 내주는 건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중국은 2010년 3000여개에 이르던 조선소 가운데 2700여개 조선소의 폐업을 추진하고 50여개 대형 조선소(‘화이트 리스트’)를 중심으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다.

일본은 아베 정권의 양적완화 정책에 따른 엔화 약세로 가격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조선산업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일본 조선산업의 선박 수주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중일 3국 가운데 지난해 시장점유율이 증가한 곳은 일본뿐이다. 일본은 지난 1월 선박수주량 세계 1위를 차지했다. 2008년 3월 이후 6년 10개월만이다.

2013년 일본은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다. IHI마린유나이티드와 유니버설조선이 합병해 재팬마린유나이티드사를 설립했다. 미쓰비시중공업과 이마바리조선소의 LNG 선박 부문을 떼어내 통합하면서 MI LNG사가 출범했다. 일본조선공업협회 회원사는 2011년 35개에서 2013년 17개로 절반가량 줄었다.

한계로 작용했던 선박 표준화도 일본 조선산업 부흥에 한몫하고 있다. 과거 일본은 효율을 위해 조선산업에 기술개발과 투자를 하지 않고 벌크선과 컨테이너선 등의 선박 표준화(표준선) 전략을 추진했다. ‘맞춤형 주문생산’이라는 조선산업의 특성을 무시한 일본의 표준선 전략은 수많은 선주사들의 발길을 한국으로 돌리게 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일본 중형 조선소들은 오히려 선박 표준화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중국이 장악하고 있는 컨테이너선과 벌크선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일본은 또 수십년동안 중단했던 선형 개발을 최근 다시 시작했다. 대형 도크까지 투자하고 있어 한국과 전면 경쟁도 우려된다.

2010년대 들어와 한국 조선산업은 위기를 맞고 있다. 먼저 수출액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산업연구원 산업통계에 따르면 한국 조선산업 수출액은 2011년 541억달러에서 2012년 378억달러, 2013년 359억달러로 급감했다. 전체 산업 수출액에서 조선산업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9년 11.74%를 꼭지점으로 2010년 10.07%, 2011년 9.76%로 낮아지다가 2012년 6.93%, 2013년 6.43%로 뚝 떨어졌다. 조선산업 생산액도 2011년 78조3439억원에서 2012년 66조6249억원으로 급락했다. 중국의 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일본은 친환경 선박(에코십) 강세에 엔화 약세까지 탄력을 받고 있는 데 견줘 한국만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는 추세다.

저유가 시대 해양플랜트 위축

지난해 세계 선박 수주량은 전년대비 34.7% 감소한 3970만CGT(표준화물선환산톤수)였다. 건조량은 2010년 이후 연평균 10%씩 줄어 전년대비 6.8% 감소한 3474만CGT였다. 지난해에는 상선뿐 아니라 해양플랜트도 수주가 부진했다. 셰일가스 생산량이 늘면서 국제 원유가격이 급락했고 비싼 비용이 들어가는 심해 석유시추 설비 수요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저유가가 지속되면 해양플랜트 수주는 줄고 대형 유조선과 가스 운반선 수요는 늘어난다. 지난해 한국 조선 3사는 해양 분야에서 총 115억달러를 수주했다. 2013년 243억달러에 견줘 52.7% 줄었다.

지난해 한국 조선산업의 선박 수주량은 전년대비 36.4% 감소한 1178만CGT다. 수주액은 32.3% 감소한 314억달러고 건조량은 전년대비 3.7% 감소한 1203만CGT다. 해양은 수주액이 절반 넘게 감소했고 전통 상선들이 모두 부진한 가운데 LNG선과 LPG선이 전체 수주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올해초 수주잔량은 전년초대비 5.1% 감소한 3328만CGT으로 앞으로 약 2년치 일감을 확보한 상태다.

셰일가스 생산량이 줄지 않는 한 해양플랜트 수주 침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저유가가 지속되면 에코십 효과가 줄어 전통 상선의 에코십 수요도 줄어들 전망이다.

사내하청 블랙홀 해양사업부

통계청이 해마다 발표하는 광업제조업조사 조선산업 현황에 따르면 10인 이상 조선업체는 2000년 584개에서 2012년 1275개로 늘었고 종사자수도 2000년 7만6659명에서 2012년 13만9363명으로 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 시기 설계인력을 중심으로 기술직 노동자들이 크게 늘어났고 사내하청노동자가 폭증했다.

2013년 9대 조선소 기능직 직영 노동자수가 전년대비 277명 감소한 데 반해 기능직 사내하청노동자는 전년대비 1만4669명 증가해 사내하청 인력이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섰다. 기능직 대비 하청 비율은 1990년 21.2%였지만 2013년엔 294.1%까지 높아져 기능직 직영 노동자 1명당 사내하청이 거의 3명에 이르고 있다.

일본에 견줘도 한국 조선산업의 사내하청 비율은 지나치게 높다. 2013년 일본의 사내공은 1만3261명이고 한국의 사내하청노동자와 유사한 사외공은 2만4218명이다. 사내공 대비 사외공의 비율은 182.6%다. 일본에서 사외공이 가장 많았을 때도 이 비율은 210%를 넘지 않았다.

사내하청노동자가 가장 많이 늘어난 부서는 해양사업부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의 해양사업부 기능직 직영 인력은 2007년 3171명에서 2013년 3888명으로 717명 느는 데 그친 반면 하청노동자는 2007년 1만2442명에서 2013년 3만5576명으로 2만3134명이 늘었다. 6년 동안 거의 3배 가까이 증가했다. 3대 조선소 해양사업부에서 기능직 대비 하청 비율은 90.1%에 이른다. “해양은 열에 아홉은 하청”이라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다.

해양플랜트 수주 감소는 해양사업부 하청노동자들의 대규모 감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은 지난해 말 579개 사내하청업체 4만1059명이던 사내하청노동자가 올해 3월 들어 534개 업체 3만7942명으로 45개 업체 3117명이 줄었다. 이들 대부분은 해양사업부 사내하청노동자들이다.

하청구조가 조선산업 발전 저해

한국 조선산업의 성장은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한 것이 아니라 사내하청이라는 대규모 불안정 일자리만 창출했다. 대형 조선소들이 하청구조를 유지하는 이유로 무엇보다 노동비용 절감을 들 수 있다. 정규직과 하청노동자의 월평균 임금격차를 100만원으로 잡았을 때 1만명의 하청노동자를 고용할 경우 월 100억원, 연간 1200억원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2만명의 하청노동자를 고용하면 월 200억원, 연간 2400억원의 비용이 절감되고, 3대 조선소 해양사업부처럼 하청노동자를 3만6000명 고용할 경우 월 360억원, 연간 4320억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량 변화에 신축 대처하고 노동조합의 힘을 무력화시키는 것도 하청화의 또다른 이유다.

하청구조는 비용 절감 같은 당장의 성과를 가져올 수는 있지만 한국 조선산업의 장기 성장과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크다. 하청노동자의 급증은 산재사고의 빈발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현대중공업 울산공장에서만 9명의 하청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었고, 현대중공업 군산공장 1명, 현대삼호조선 2명, 현대미포조선 1명을 합치면 현대중공업그룹에서만 모두 13명의 하청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했다.

조선산업의 특성상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안정된 숙련기술자들을 확보해야 하는데 하청구조는 안정된 일자리 확보와 기술 숙련을 사실상 불가능하게 한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 김형균 정책실장은 “하청구조가 기업의 발전을 저해한다”며 “현대중공업이라는 세계적인 조선업체가 단기적인 성과 때문에 하청 저임금 구조를 유지하고 이것 때문에 악순환의 고리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김형균 실장은 “회사가 위기에 허약한 구조를 만들어놓고 그 위기를 노동자에게 전가하려고 한다”고 비판했다.
덧붙이는 말

이종호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대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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