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다치면 “짐짝”

"산재 신청 하고 싶어도 못해"...73.2%

  김시한 씨가 환자복을 입고 힘겹게 계단을 오르고 있다. [출처: 울산저널 윤태우 기자]

“서러운 거 다 겪어요. 산업재해 당하면.” 계단을 올라가는 발걸음이 불안하다. 계단을 짚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린다. 김시한(40대 후반, 가명) 씨는 한 달 전 작업장에서 공구를 만지고 있었다. 그 순간 김씨 옆에 있던 쇠기둥이 쭈그려 앉아있던 김씨를 덮쳤다. 김씨는 한 달 째 환자복을 입고 있다. 손을 김씨 등에 얹으면 덩어리가 만져진다. 속살이 찢어지고 터진 게다. 김씨 등 안에는 피가 응고해 만들어진 ‘피떡’이 있다. 쇠기둥을 묶어두지 않아 벌어진 인재다.

김씨의 아내는 그날 식당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오후가 다 돼 남편이 전화를 걸어왔다. 눈물만 나왔다. 당장 식당 문을 닫고 병원으로 향했다. 키도 크고 건장한 남편이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었다. 남편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아프다고만 했다. 김씨는 그날 아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을 못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다. 아내는 내내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지난 한 달, 병원에 있으며 ‘서러운 거’를 다 겪었다. 김씨가 수십 일을 입원해 있는데 회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김씨는 당장 병원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생계비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람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미치겠더라니까.” 회사 총무는 종종 김씨를 찾아와 안부만 묻다 갔다. 총무는 누가 김씨를 찾아오는지 지켜보다 가기도 했다.

회사는 그날 오후 김씨를 A 병원으로 옮겼다. 회사 지정병원이었다. MRI 하나 없는 병원이었다. 김씨는 살이 찢어지는 것 같이 아팠다. A 병원 의사는 “절대 안정을 취하라”는 말만 며칠 째 했다. “간호사가 링겔을 꼽았는지 안 꼽았는지도 모르고 우왕좌왕 하더라고요.” 김씨는 불안했다. 스스로 병원을 옮겨야 했다.

김씨는 옮긴 병원에서 한 달을 입원했다. 2주 동안은 움직일 수가 없었다.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아내와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소변을 눌 수 있도록 도와줬다. 그나마 소변은 누운 상태로 소변 통에 눌 수 있었다. 대변은 눌 방법이 없었다. 김씨는 2주 동안 대변을 누지 않았다. “밥도 못 먹겠더라고. 겁나가.” 김씨는 대변이 나올까봐 불안해 2주 동안 밥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김씨가 다치자 회사는 김씨를 내팽겨치듯 했다. 김씨는 한 달이 지나 스스로 산업재해 신청을 했다. 그제서야 회사가 입을 열었다. “산재 신청하지 말아요. 뭘 해드릴까요.” 회사가 한 달이 다 돼서야 꺼낸 산재 얘기다. “산재 하기로 마음 굳혔습니다.” 김씨가 단호하자 총무는 목소리가 바꼈다. 김씨는 짐짝이라도 된 것 같아 서럽다. 김씨는 현대중공업에서 10년 일한 하청노동자다.

현대중공업노동조합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는 2014년 3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를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벌였다. 이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하청노동자 1520명 중 19.2%가 최근 3년 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산업재해 처리를 한 경우는 403명 중 3.7% 밖에 안됐다. 43.7%가 공상 처리했고 50.4%는 개인비용으로 처리했다.

하청노동자 대부분은 불이익이 두려워서 산재 신청을 하지 못한다. 현대중공업 원하청 노조가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 1050명을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 산재 처리 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50.9%가 불이익이 두려워서라고 답했다. 산재 신청할 경우 해고되거나 업체가 위장폐업 할 수 있고, 자신의 이름이 블랙리스트에 올라 재취업이 어려울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22.3%는 원청의 압력으로 업체가 공상 처리를 강요한다고 답했다. 무려 73.2%가 어쩔 수 없이 산재 신청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하청업체가 산재를 은폐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다. 산재은폐를 노동부 감사를 피하기 위해서 은폐하기도 하고 노무관리 차원에서 은폐하기도 한다”고 했다. 산재가 많이 발생하면 노동부가 해당 업체를 대상으로 감사를 하는데 안전관리 관련 법 위반 사항이 적발되면 과태료 물어야 한다는 말이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하청노동자의 생명과 몸을 경시하는 풍조도 산재를 은폐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산재가 은폐되면 개인의 부담은 경제적으로나 신체적으로 가중된다. 현미향 사무장은 “산재처리 하는 경우 요양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 공상이나 개인비용으로 치료하는 경우 몸이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일한다는 말이다. 산재 처리 하지 않을 경우 노동자의 몸 상태는 더 악화된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산재 사고 발생 시 치료기간은 산재처리 했을 때 22.8주, 공상처리 했을 때와 개인 비용으로 처리했을 때 5.5주와 5.1주였다(노동자건강권대책위원회, 부산/울산/경남 산재은폐실태보고서, 2012). 현 사무장은 산재처리 안하면 재발하거나 후유증이 남을 경우 산재보호(재요양)를 못 받는다”고 덧붙였다.

산재처리를 하지 않으면 산재 사고는 줄어들지 않는다.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아 똑같은 사고가 재발하는 것이다. 현 사무장은 “산재 신청 건 수는 노동부의 산업안전정책에도 영향을 끼친다. 때문에 산재처리 건 수가 사실과 다를 경우 현실이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현 사무장은 “산재가 은폐되면 노동부가 산재 사고에 대처하는 데 적극적일 리가 없다. 노동부에 산재 담당 직원이 그렇지 않아도 적은데 앞으로도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현대중공업은 산재 발생 건 수가 적어 최근 5년 간 산재보험료를 955억 감면 받았다.
덧붙이는 말

윤태우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윤태우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나그네

    어제 오늘 일이 아니죠. 이건 노조가 나서 줘야는데 나몰라라 하는 식이니.일은 업체들이 다하고 ...진짜 멋 같은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