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하청업체 산재사망 대부분 인재

산업재해와 하청노동자

  지난해 10월 3톤 중량물이 떨어지면서 하청노동자를 덮쳤다. 재해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날카로운 중량물엔 보호덮개를 씌워야 한다는 기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참사였다. [출처: 울산저널]

  “이게 새지 사람입니까. 높은 크레인 위에서 안전그물망도 없이".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가 고공에서 위험하게 일하고 있다. [출처: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지난해 4월 29일 오후 8시 40분께. 울산 현대중공업 제4안벽 철판 하역장에서 하청노동자 A씨는 트랜스포터를 마주보고 운전사에게 손으로 신호를 보냈다. “뒤로~ 뒤로~!” A씨는 트랜스포터의 헤드라이터와 야광봉을 의지해 보지만 여느 때처럼 어둠은 빛을 삼키기 일쑤였다. A씨의 뒤엔 최소 15m 높이의 안벽(낭떠러지)이 있었다. 안벽 밑은 바다였다. 안벽 앞에 안전 난간은 없었다. 이 날은 비가 45도 각도로 내렸다. 계속 신호를 보내며 뒷걸음질 치던 A씨는 안벽 밑을 밟았다. A씨는 바다로 떨어졌다. “로프를 찾아!” 함께 신호하던 A씨의 동료들은 다급하게 구조장비를 찾아 나섰다. 구조장비가 있어야 할 자리엔 장비가 없었다. 이들이 장비를 구하러 간 사이 119 구조대가 도착했고, 구조대는 이후 도착한 현대중공업 잠수부들과 함께 A씨를 수색했다. 실종 1시간 30분이 지난 후에야 A씨는 인양됐다. A씨의 몸은 이미 싸늘했다.

지난해 현중 산재사망자 모두 하청노동자
외주화 과정에서 안전관리는 뒷전
하청노동자 작업중지권 요구 어려워


지난해 현대중공업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수는 9명이다. 산재 사망자 9명은 모두 하청업체 노동자다. 2005년부터 2014년까지 지난 10년 간 하청업체 산재 사망자 수는 원청업체 산재 사망자 수의 두 배가 넘는다. 조선업 대기업이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에 밀어내는 관행이 확산되면서 하청노동자의 안전문제는 뒤로 밀려나고 있다.

노동단체 관계자들은 지난해 발생한 8건의 산재사망사고 대부분이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던 인재라고 지적했다. 현미향 울산산재추방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안전시설의 미비를 산재사망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A씨는 당시 안전 난간도 설치돼 있지 않고, 조명도 매우 약한 상태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랜턴이나 헤드랜턴도 제공받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구조장비만 제 위치에 있었어도 바다에 떨어졌더라도 A씨가 목숨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석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이하 하청지회) 노동안전부장은 “지난해 10월 천 벨트가 날카로운 부분에 닿아 끊어져 3톤 중량물이 하청노동자를 덮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도 날카로운 부분에 보호덮개를 씌워야 한다는 기본적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참사”라고 했다. 지난해 3월 족장 붕괴로 하청노동자가 추락해 목숨을 잃은 사건도 안전 작업을 위해 설치해야 할 족장을 중량물 적재를 위해 불법적으로 설치하면서 발생한 사고다.

노동단체 관계자들은 실질적 노동자 작업거부.중지권 부재도 산재사망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현 국장은 “원칙적으로는 악천후에 작업을 거부할 수 있지만, 하청노동자인 A씨는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석 노안부장도 “지난해 3월 해상추락사고 당시 사고 전 하청업체는 위험을 예상하고 작업중지를 요구했으나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원칙적으로는 하청노동자도 작업중지권이나 거부권을 가지고 있지만, 하청노동자가 이 권리를 사용하면 해고되는 등 불이익을 받는다. 고용의 불안정성 때문에 위험을 감지해도 작업을 거부하거나 중단하고 안전조치를 요구할 수 없다”고도 말했다.

정 부장은 “안전시설 미비와 작업중지권 부재는 모두 업체의 이윤과 관련 있다. 빠른 시간 내에 업체가 이윤을 내려는 과정에서 안전시설이 뒷전으로 밀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이 톱니바퀴 물리듯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작업이 중지되면 혼란이 온다. 때문에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사용하면 업체는 손해배상청구 등으로 해당 노동자를 불이익 조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청노동자도 안전에 문제제기 가능해야
“위험작업은 원청이 관리할 필요 있다”


전문가들은 위험한 작업일수록 안전관리 비용이 더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안전관리 능력이 있는 원청이 관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재 대기업은 위험한 업무를 거의 하청업체에 맡기고 있다. 현미향 산추련 국장은 “산재문제를 해결하려면 위험작업은 도급을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위험작업에 대한 도급이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하청지회는 최근 합의된 작업중지권이 하청노동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하청지회의 조직력이 강화돼야 한다고도 했다. 하청지회 한 관계자는 “2014년 임단협에서 노조가 작업중지권을 가지게 됐지만 작업중지권이 하청노동자의 안전까지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하청노동자들이 안전에 문제제기를 하려면 원청업체가 원하청 전체의 안전을 관리한다는 확실한 규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원하청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 섞여 일하는 만큼 원청이든 하청이든 안전시설이 미비한 곳이 발견되면 안전시설 설치요구를 할 수 있다”면서도 “현대중공업 원청노조 활동 과정에 하청노조 건강권 활동도 함께 반영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올해 초까지 이어진 2014년도 임금과 단체협약 교섭에서 노조가 작업중지권을 갖도록 처음 합의했다.

현대중 “지난해 안전관리에 3000억 원 투자”
하청지회 “여전히 위험하다”


안전관리가 미흡하다는 지적에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4월 3000억 원을 들여 안전 점검·관리를 강화했다고 답했다. 현대중공업은 당시 특히 위험한 작업이 많은 하청업체 노동자의 안전 확보에 집중 투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하청지회의 생각은 달랐다. 정동석 노안부장은 “현대중공업이 3000억 원을 안전 관리에 투자했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 돈을 어디에 썼는지 모르겠다”며 “안전요원은 여전히 부족하고, 여전히 노동자들은 안전시설도 없이 일할 때가 많다”고 했다. 그는 “원청의 경우 전문적인 안전요원이 있지만, 하청에는 안전요원이 현장 작업도 병행한다. 안전에만 집중하는 안전 요원은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는 “하청노동자들은 지금도 높은 크레인 위에서 안전그물망도 없이 일한다. 노동자들이 새라도 되는 줄 아는가”라고 했다.

이를 감시 감독해야 할 고용노동부는 사고 이후에야 미비한 안전시설을 갖추도록 지시했다. 이들은 ‘과거보다 안전시설이 좋아졌다’는 데 방점을 찍는다. 원하청의 고용구조보다는 노동자 개인의 안전 부주의에서 사고의 원인을 찾기도 한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관계자는 “노동부는 지난 1월부터 노동자들에게 안전모 쓰기를 강조하는 등 안전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지속적으로 특별근로감독도 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4년 이후 중대재해 책임자 구속 처벌된 적 없어

노동단체들은 산재사망사고의 책임을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와 원청업체 안전관리 책임자 등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등 3개 노동단체는 지난 3월 현대중공업 대표이사와 조선사업부.해양사업부 대표를 산업안전보건법 다수 위반으로 울산지방검찰청에 고발했다.

지난해 3월 25일 발생한 족장 플랫폼 붕괴에 따른 해상추락 사고 건과 4월 21일 발생한 LPG선 화재사고로 인한 질식사 건 등 두 건은 검찰에서 기소처분을 내려 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사건 중 나머지 사건은 아직 기소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현미향 사무국장은 “나머지 사건은 현재 노동부에서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산재사망사고에 대해 사법처리한다 해도 안전관리 책임자의 처벌 수위는 매우 낮다고 지적한다. 신지현 민주노총울산노동법률원 변호사는 “소송까지 가는 경우엔 주로 안전 조치 미흡으로 인한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의 책임을 묻게 되는데, 처벌이 어렵고 처벌된다 하더라도 벌금형에 그친다. 액수도 최대 3000만원까지지만 보통 1000만원 수준에 그치게 된다”고 했다. 현미향 사무국장도 “산재사망 이후 법적 다툼으로 넘어가도 벌금이나 집행유예 등으로 처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벌금의 액수도 요즘은 수십만 원 정도로 관련자들이 거의 부담이 없는 수준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금까지 현대중공업 산재사망사고로 인해 안전관리 책임자가 구속 처벌된 적은 거의 없다. 보름동안 노동자 네명이 연속 사망해 2004년 2월 현대중공업 안전보건총괄중역 등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것이 현대중공업 산재사망사고 책임자 구속 사례의 전부다.

신지현 변호사는 “현행법은 중대한 산재사망 사고가 발생해도 원청업체든 하청업체든 업무상과실치사죄로 처벌하지 않고 산안법상 벌금형으로만 처벌하는데 그 액수가 지나치게 낮다. 현재 처벌 수준으로는 기업들이 산재 예방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산안법으로 원청을 처벌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원청에 대해 실질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업살인법 제정 등 기업주 처벌 강화해야

이에 노동계에선 산재사망에 대한 기업주의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현미향 국장은 “노동자 한 명이 죽어도 사업주들에게 큰 책임과 처벌이 안 따르니까 사업주들이 산재예방을 안 한다”며 “산재사망은 사업주에 의한 명백한 노동자 살인행위다. 노동자 산재사망에 대해 사업주에게 분명한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지현 변호사도 “산재사망이 발생했을 경우 경영책임자에 대해 가중처벌 조항을 둔 특별법을 제정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하는 등으로 사업주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미향 국장은 또 “기업주들의 처벌강화와 함께 하청노동자들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고용문제도 풀어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덧붙이는 말

최나영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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