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사거리 마비… ‘95일 전투’가 시작됐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농성 1000일…3주년 되는 그날까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광화문역에서 18일로 1001일째 농성 중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은 농성 3주년이 되는 8월 21일까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와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95일간 출퇴근길을 막아서는 '그린라이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Ueta Jiro]

  '그린라이트' 전투 첫날, 장애인들의 광화문 사거리 점거로 교통이 마비되자 자동차를 타고 지나가던 시민들의 비난이 장애인들에게 쏟아졌다. [출처: Ueta Jiro]

“야이, XX년들아, 병신같은 것들이 어디서….”
“그럼 박근혜한테 가서 할 짓이지 여기서 뭐하는 거야! 어?! 다른 사람들한테 이렇게 피해줘도 되는 거야?”

승용차를 몰고 광화문 사거리를 지나가던 시민이 더는 참지 못하고 운전석 창문을 내리고는 욕설을 퍼부었다. 그의 욕설이 끝나기 무섭게 뒤따라오던 버스에 탄 승객도 창문을 열어젖히고 비난을 쏟아냈다. 횡단보도에 선 채 광화문 사거리를 점거하고 있던 장애인들은 욕설과 경멸 어린 시선을 묵묵히 받아내야 했다.

한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초록색 신호등이 켜지고 길을 건너던 장애인과 인권활동가 200여 명은 횡단보도 위에서 멈춰 섰다. 그들은 그곳에 한동안 멈춰 서서 구호를 외쳤다.

“낙인의 사슬,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를 폐지하라!”

200여 명의 사람들은 그렇게 광화문 사거리 6개의 횡단보도를 하나하나 돌아가며 막아섰다. 서울의 심장, 광화문 사거리 교통이 마비됐다. 단 1분도 기다리기 힘들었던 시민들의 짜증이 자동차 경적을 타고 울려 퍼졌다. 버스와 택시, 승용차의 경적 소리가 짜증에 섞여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경찰의 경고 방송이 흘러나왔다.

“여러분들은 장시간 횡단보도를 점거하며 많은 시민에게 교통불편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지금 즉시 이동해주십시오.”

광화문 사거리 점거는 40여 분간 이어졌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욕설 섞인 짜증과 비난, 힐난의 시선들이 장애인들에게 꽂혔고, 주변엔 언제든 이들을 강제 진압할 수십 명의 경찰이 대기하고 있었다.

“지나가는 시민분들은 10분간 잠시 불편하셨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한국에 사는 장애인들은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때문에 365일간 불편함과 불행을 겪고 있습니다. 단지 10분 지체했다고 경찰은 우리를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습니다!” (박철균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

낮 12시, 광화문 사거리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는 장애인들의 목소리와 함께 자동차 경적 소리와 경찰의 경고방송 소리가 뒤엉켰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광화문 사거리를 점거한 장애인 활동가들. [출처: Ueta Jiro]

[출처: Ueta Jiro]

농성 3주년 되는 날까지 95일간 ‘청와대를 향한 투쟁의 직진 신호’ 밝힌다

가난하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몫을 빼앗겼던 이들이 정부를 상대로 한 전면전에 나섰다.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해 광화문역에서 18일로 1001일째 농성 중인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은 이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와 국무총리와의 면담을 요구하며 광화문 도로점거에 나섰다. 이들은 농성 3주년이 되는 8월 21일까지 이와 같은 총력 투쟁에 나설 계획이다.

공동행동은 지난 2012년 8월 21일, 12시간의 사투 끝에 현재 농성 중인 광화문역 해치마당 인근에 자리를 잡고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위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이들은 농성의 성과로 당시 대선 후보들로부터 ‘장애등급제 폐지, 부양의무제 완화’라는 공약을 받아냈으나 이를 약속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 이후 공약을 파기했다. 그리고 그 후, 활동보조인이 없는 사이 발생한 화재를 피하지 못하고 숨진 고 김주영 활동가를 비롯해 장애와 가난으로 숨진 11명의 영정이 광화문역 농성장에 놓였다.

그러나 1000일간의 투쟁에도 불구하고, 현재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옥죄는 제도는 완화되기는커녕 더욱더 ‘개악’되고 있다고 이들은 비판한다. 공동행동은 “(정부가) 장애등급제는 기만적인 판정체계 도입만으로 끝내려 하고 있고, 부양의무제는 100만 명이 넘는 거대한 사각지대를 외면한 채 소득 기준 일부 완화를 통한 단 12만 명의 복지 대상 확대만을 계획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게다가 최근 정부는 ‘예산 효율화’를 명목으로 3조 원의 복지예산을 줄이겠다고 선포한 상황. 이에 대해 공동행동은 “이는 복지를 크게 후퇴시킬 것이며, 전 국민의 권리 목록에서 ‘복지’를 삭제시킬 것”이라며 우려했다.

이러한 상황을 알리며 공동행동은 18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95일간 95명의 ‘그린라이터’들과 함께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청와대를 향한 투쟁의 직진 신호’인 ‘그린라이트’를 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8일 광화문 광장에서 '그린라이트' 출범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여는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 [출처: Ueta Jiro]

그린라이트 단장을 맡은 이형숙 공동행동 공동대표는 “출퇴근길 횡당보도에서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를 부르짖으며 길을 막으면 시민들은 욕을 하고 비난할 것이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의 투쟁은 더욱 가열차질 것”이라면서 “어떠한 국무총리가 임명되던 우리는 3개월 이내에 그와 면담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그린라이트는 지난 1000일 동안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기만했던 이들을 고발하는 행보가 될 것”이라면서 “지금 이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이 사회는 계속 처참한 소식으로 가득할 것이다. 95일간 전국 곳곳에서 벌어질 그란라이트 투쟁은 분명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투쟁이다.”라고 강조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종교계와 인권시민단체, 노동계, 정당의 연대 발언도 이어졌다.

양한웅 조계종 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은 “종교는 계급과 신분을 넘어 모두가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현재 한국사회는 지극히 반(反)석가적이고, 반(反)예수적이다. 이는 종교가 추구하는 나라가 아니다.”면서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이 죽어가도 쳐다보지 않는 게 현재 한국사회다. 조계종은 차별받고 소외당하는 이들과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는 “복지를 받기 위해 이 사회는 가난과 장애를 증명하라고 한다. 그런데 인권은 증명해야 할 게 아니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이유 자체로 존엄을 보장받아야 한다.”라면서 “가난과 장애를 낙인인 양 증명해야 하는 이 사회를 바꾸는 게 우리들의 싸움”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출처: Ueta Jiro]

[출처: Ueta Jiro]

[출처: Ueta Jiro]

[출처: Ueta Jiro]

  경찰이 광화문 사거리를 점거한 장애여성 한 명을 에워싸고 있다. [출처: Ueta Jiro]

[출처: Ueta Jiro]

[출처: Ueta Jiro]

[출처: Ueta Jiro]

덧붙이는 말

강혜민 기자는 비마이너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비마이너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강혜민 기자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