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공장 내려다보며 고공농성 1년, 봄은 왔을까

[인터뷰]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복투 대표, 최장기 굴뚝 고공농성

그와의 인터뷰는 쉽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그와의 인터뷰가 성사됐다. 전화기 너머 불어오는 거센 바람 소리가 종종 그의 목소리를 집어 삼켰다. 45미터 굴뚝위로 오른 지 1년. 365일간 하늘 밑에서 살아온 차광호 스타케미칼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대표와의 한 시간 남짓한 전화인터뷰가 시작됐다.

[출처: 뉴스민 자료사진]

“잠은 좀 주무셨나요?” 굴뚝농성 초창기 몇 달 동안 불편한 잠자리와 더딘 시간 때문에 꽤나 고생을 했던 그였다. 다행히 최근에는 계획대로 굴뚝 생활을 이어가는 것에 적응을 한 모양이었다. 아픈 곳은 없느냐 물었더니 ‘몸이 온전하지는 않지만 대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려고 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루 두 번, 총 두 시간에 걸쳐 꼬박꼬박 운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굴뚝농성장 빨리 걷기, 팔굽혀 펴기, 제자리 뛰기, 앉았다 일어섰다 반복, 줄넘기까지.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더는 체력을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운동을 해요. 지금까지 발이 아파서 한두 번 운동을 거른 것 말고는 꼬박꼬박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번 계획이 어긋나기 시작하면 생활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 내린다. 홀로 매일을 버텨야 하기에, 자신을 통제하고 규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숨 쉴 구멍은 있어야 했다. “서너 달 전 부터는 일요일만큼은 시간표 없는 자유 시간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어요. 그래서 항상 일요일이 굉장히 기다려집니다” 웬만해서는 감기에 잘 걸리지 않는 체질 덕에 모진 한파 속에서도 용케 몸살 한 번 걸리지 않고 겨울을 버텨냈다. 하지만 육체적 고통만큼 견디기 힘든 것은 정신적인 고통이다. 1년간, 홀로, 불 꺼진 일터가 내려다보이는 굴뚝 위에서 버텨낸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최근 노동자들의 연이은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난 사람이 차광호 대표였다.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 양우권 열사가 지난 10일 목숨을 끊은 곳은, 생전에 자신을 그렇게도 괴롭혔던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내려다보이는 공원이었다. 그리고, 차광호 대표역시 20년의 청춘을 바쳤던 공장이 내려다보이는 하늘 아래에 자리를 잡았다. 20년 동안 그의 손길이 닿았던 공장 기계들은 가동을 멈춘 지 오래였다. 불 꺼진 공장의 거무죽죽한 모습을 매일 내려다봐야 하는 심경이 오죽할까. “기계를 점검하는 일을 했어요. 그래서 공장에 안 가본 곳이 없어요. 노조 활동을 하면서도, 일을 하면서도 공장 구석구석을 돌아다녔고요. 공장을 내려다보면서 내가 만졌던 그 기계들이 지금쯤 어떻게 돼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동료들과 웃고 울었던 기억도 많이 나고요. 그리고 빨리 공장 불빛이 켜져서 다시 쫓겨난 노동자들과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드네요”

차광호 대표도 잇따른 노동자들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힘들고 아팠다. 그럴수록 이를 악물었다. 버텨내는 것이 가장 중요해졌다. “5월 들어와서 노동자들의 비보가 계속 들려올 때마다 무척 힘들었어요. 노동자로 살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노동자들의 죽음은 그 자체로 또 다른 고통이었습니다. 배재형 하이디스 전 지회장의 경우 2007년 투쟁 당시 하이디스 안에서 1박 2일 투쟁을 같이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노조 부지회장이었던가...(소식을 듣고) 더욱 견뎌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돌아가신 두 분의 억울함을 풀려면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견디고 있습니다”

승리했던 노동조합 ‘노노갈등’ 유발한 회사...남은 11명의 질긴 싸움

오는 5월 26일. 차광호 대표가 스타케미칼 공장 안 굴뚝에 오른 지 1년이 된다. 1년의 고공농성 투쟁은 지난 20년간의 스타케미칼 투쟁의 역사를 지키는 일이기도 했다. 스타케미칼의 전신인 한국합섬은 2006년, 경영상의 이유로 대규모 정리해고를 강행했다. 노동조합은 투쟁에 나섰고 결국 ‘정리해고 철회’라는 승리를 얻어냈다.

하지만 2007년, 한국합섬은 파산을 선언하고 공장을 떠났다. 다시 노동조합의 투쟁이 시작됐다. 오랜 공장사수 투쟁 끝에 2010년 스타케미칼이 한국합섬을 인수했다. 노동조합은 새로운 사용주로부터 노동조합과 고용, 단체협약 승계를 약속받았다. 하지만 회사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헐값에 공장을 인수한 스타케미칼은 비정규직 공장을 만들기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노동조합의 반대에 부딪히자 일방적으로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그리고 2013년 1월, 김세권 대표이사는 일방적으로 청산을 선언했다.

회사는 교묘했다. 과거 노동조합이 승리했던 역사를 회사는 모를 리 없었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을 깨야 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노 갈등을 유발시키는 것이었다. “회사가 노노갈등을 유발시켜 노동자들을 쫒아냈어요. 일방적인 공장 가동 후에 권고사직을 쓰게 했습니다. 2월 4일 작성된 (청산 관련 노-사) 합의서에는 권고사직을 쓴 사람은 공장 재가동시 고용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의 자발적 퇴직과 권고사직서 작성을 부추겼다. 조합원 168명 중 139명이 권고사직서를 썼다. 29명은 해고를 당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26일, 해고자 중 일부가 회사로부터 위로금을 받고 이탈했다. 그 날부터 차광호 대표의 고공농성이 시작됐다.

스타케미칼 사태는 자본의 ‘먹튀’ 문제였다. 모기업인 스타플렉스가 스타케미칼에 투자한 돈의 사용처도 불분명했고, 부당내부거래 의혹도 일었다. 스타케미칼은 적자에 허덕였지만 스타플렉스는 막대한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그리고는 일방적으로 공장 청산을 선언했다. 자본의 먹튀 문제는 블랙홀과도 같았다. 여기저기서 먹튀 문제가 튀어나왔지만 누구도 브레이크를 걸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장기 투쟁에 돌입하지만 지쳐 떨어져나가기 일쑤였다.

발레오공조, 쌍용차, 하이디스 등도 그랬다. 노동자들은 장기투쟁에 나서거나, 장기투쟁에 지쳐 떠나야 했다. “자본의 먹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확한 자료예요. 기업 내부의 재무재표부터 계약서, 온갖 문건 등의 자료가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자본은 이런 자료를 일방적으로 처리해버려요. 노동자들은 손을 댈 수가 없죠. 정치가 이를 막아내고 법적인 규제를 만들어야 하는데,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패하면서 대응이 쉽지가 않아 졌어요”

아내가 처음으로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불 꺼진 공장의 굴뚝에서 투쟁을 하고 있지만 회사는 이 조차도 허용치 않았다. 회사는 굴뚝농성과 공장 천막농성을 이유로 업무방해 가처분 신청을 냈다. 해복투 11명이 하루 100만원 씩 벌금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구지법 김천지원은 지난 3월 30일, 해복투 조합원 1인당 하루 50만 원씩을 회사에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지금까지 3억 6천 만 원이 넘는 벌금이 쌓였다.

[출처: 뉴스민 자료사진]

멀리서 남편과 아들을 바라봐야 하는 아내와 부모님의 걱정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족 이야기를 할 때 차광호 대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1996년 38일간의 파업투쟁 당시, 도시락을 싸 오며 그를 응원했던 애인이 지금은 아내가 돼 있다. 아내는 차광호 대표의 노동조합 활동을 묵묵히 응원하고 지원했다. 지난해에도 아내에게 ‘농성에 들어가니 집에 당분간 못 들어 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굴뚝에 올랐다. 항상 그를 지지하던 아내지만 최근 들어서는 조금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농성을 하는 것도 반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굴뚝농성 1년이 돼 가니까...지난 일요일에는 전화로 ‘언제 내려올 거예요? 빨리 내려왔으면 좋겠어요’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많이 아팠어요. 전화하면서 좀 울기도 했어요. 제가 ‘지금이라도 내려오길 바라면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내려가서도 계속 투쟁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더 장기화되고 힘들어질 것이 자명하다. 그래도 내려갈까, 아니면 위에서 버티면서 투쟁을 이끄는 게 나을까’ 라고 했어요. 집사람이 제 성격을 아니까 고민하는 것 같더라고요. 화요일에 마지못해 굴뚝농성을 승낙했어요. 마음이 한결 편해졌죠”

부모님은 굴뚝농성을 시작할 때부터 ‘빨리 내려오라’며 호통을 쳤다. 게다가 지난 3월 12일, 부모님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갈비뼈가 부러지며 장출혈이 왔고, 팔목도 부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이었다. 고비는 넘겼지만 마음에 돌덩이가 들어앉았다. 아픈 부모님 곁에 가지도 못한 채, 어버이날을 맞았다. 예전에는 휴가를 내서라도 어버이날에는 꼭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던 효자였으니, 부모님의 원망도 이만저만이 아닐 터였다. “처음에는 호통을 치시던 아버지가, 요 근래에 와서는 ‘그래 몸 건강히 있어라’고 이야기 해요 사실 그 마음이 더 아프죠”

길고 더딘 투쟁이지만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11명으로 이뤄진 스타케미칼 해복투는 아직 노동조합을 포기하지 않았다. 가장 힘이 들었을 때 굴뚝을 찾아왔던 희망버스도 든든한 힘이 됐다. 그는 희망버스로 농성장을 찾아온 1천 명 정도의 사람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혼자가 아니구나, 이 동지들을 믿고 농성을 이어가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에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다. 특히 차광호 대표는 해복투 동지들의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짓는다. 이제는 보지 않아도 마음을 꿰뚫고 있는 사이라고 했다. 해복투 동지들은 매 끼니때 마다 독심술을 부리는 듯 했다.

차광호 대표는 “내려오면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딱히 없다”고 답했다. “동지들이 밑에서 음식을 올려다주는데, 이제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먹고 싶어 하고,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꿰고 있어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뭐가 먹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 음식이 올라오더라고요. 콩나물 비빔밥이 먹고 싶은 날이면 정말 그 음식이 올라와요. 말이나 표현을 하지 않는데 말이죠” 그러다가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이 있다고 했다. 아내가 끓여주는 김치찌개. 그리고 혼자가 아닌 여럿이 둘러앉아 먹는 식사. 1년 동안 매일 혼자 밥을 먹으니 혼자 먹는 밥이 지긋지긋 한가보다.

고공농성 1년을 맞는 5월 26일 오후 2시, 경북 칠곡군 구미국가산단 고공농성장 앞에서는 ‘굴뚝농성 1년 결의대회 및 문화제’가 열린다. 하루 전인 25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음식연대의 날’을 진행한다. 매일 홀로 밥을 먹는 차광호 대표와 멀리서나마 함께 음식을 나눌 수 있는 기회다. 6월 12일에는 서울 용산구에 위치한 주점 ‘슘’에서 ‘스타케미칼 해복투 투쟁기금마련 후원주점’도 열린다. 고공농성의 슬픈 신기록을 세우고 있는 차광호 대표와 해복투 조합원들을 응원하기 위한 자리다.

마지막으로 차광호 대표에게 ‘걱정하고 있는 조합원들과 시민들에게 한 말씀 해 달라’고 요청했다. “스타케미칼 사태 해결을 위해 굴뚝에 올라왔습니다. 많이 알리고 조직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자리에서 자본의 탄압을 이겨내고 노동자의 가치를 실현해 낼 때만이 스타케미칼 먹튀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평등한 사회를 위해 함께 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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