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한순간에 무능해지지 않는다

세월호 사고 7개 재판 진행중 ... 곳곳에서 기록작업

재판정은 기소된 사건만 다룬다는 한계 있다
세월호 법정 재판과정 30개 수첩에 기록해 팩트에 접근


오준호 작가는 지난 해 6월 10일 첫 공판 준비 기일을 시작으로 5개월 동안 세월호 참사 재판을 방청하고 기록했다. 그는 선원 재판은 33번 가운데 31번을 방청했고 청해진 재판과 해경 재판까지 합치면 40회 이상 방청했다. 그가 재판 과정을 기록한 수첩은 30개 분량이다. 오 작가는 이를 모아 <세월호를 기록하다>라는 책으로 묶어냈다. 오준호 작가는 세월호 사고를 선박 관리, 선원 과실, 구조적인 문제로 나눠 설명했다.

  4월 16일 울산대공원 동문에서 열린 세월호 1주기 울산시민추모제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세월호를 운항한 청해진해운은 2003년 3월에 일본에서 ‘세월호’를 들여왔다. 세월호는 1989년 9월에 일본 미쓰비시중공업 시모노세키 조선소에서 건조한 카페리선으로 2003년 2월까지 운항하다 2월에 퇴역했다.

청해진해운은 돈을 더 벌려고 세월호를 사들였다. 인천~제주 사이를 운항할 목적이었다. 세월호를 운항하기 전에 항만청에 가서 배 수익률이 얼마인지 검증받아야 했는데 그때 공무원에게 3천만원까지 뇌물을 주고 노선을 따냈다. 노선을 따냈어도 배가 한국 안전기준에 맞는지 검사받아야 한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증축해 화물칸을 늘릴 계획이었다. 배를 증축하기 전에 한국선급이라는 곳에 가서 고치기 전에 안전할지 검사받아야 한다. 한국선급은 위험하지만 짐 적게 싫으면 괜찮다고 했다.

한국선급은 증축을 허가했다. 선체는 증축으로 인해 윗부분이 무거워졌다. 배 아래에는 배가 균형을 잡도록 평형수를 채워야 하는데 그곳에는 짐이 가득 실리곤 했다. 무게 중심이 맞지 않으면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졌다가 다시 일어나는 복원력이 약해진다. 승무원이 회사에 항의하면 그냥 운항하라는 지시가 내려졌다.

선박에 짐을 실으면 짐이 움직이지 않게 묶어야 한다. 이를 ‘고박’이라고 하는데 묶는 절차가 매우 엄격하다. 하지만 세월호는 짐을 과밀하게 실어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 고박업체는 청해진해운이 시킨대로 일했다고 주장한다. 회사와 고박업체는 재판에서 서로 싸우다가 “최종적인 책임은 선원에게 있으니까 우리는 책임이 없다”고 서로 말했다. 법정은 이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과실이라도 공범관계를 인정했다.

세월호 사고를 고박업체 탓으로 볼 것인지, 청해진해운으로 볼 것인지, 선원 과실로 볼 것인지는 정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누구 책임이 얼만큼인지 모르니까 누구의 책임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고박업체와 선박회사가 피터지게 싸운 부분이 이 부분이다. 유족과 시민은 세월호 사고의 구조적인 진실을 밝히자고 배를 인양하라고 했지만, 청해진해운 변호인단은 또 다른 측면에서 진실을 밝히자며 인양하자고 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조타실에는 8명이 있었다. 사고를 당하면 각각 역할을 분담해 구명정을 책임지는, 구조 요청하는 사람 등 역할을 나눠야 하지만 선원들은 모두 각각 구조요청을 하는 등 역할을 나누지 못했다. 선원들은 해경이 왔을 때 탈출했다. 오 작가는 세월호는 평소에 화물 싣는 배였으므로 승무원에게 승객을 책임지는 마인드가 형성이 안 돼 있었던 것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조타실 선원은 평소에 승객과 만날 일이 별로 없었다. 조타실은 그랬던 반면 중간부에서 일하던 승무원들은 자기 역할을 한다. 박재형 씨도 끝까지 구명정을 나눠주다가 목숨을 잃었다. 승객과 마주보거나 관계했던 사람들은 자기 역할을 해낸 것이다. 검찰은 프레젠테이션 파일에 조타실 선원 죄를 나열하고 빨간 글씨로 ‘30년 구형’이라고 썼다. 검찰은 감정적인 이미지로 사형을 구형했고 한 여성 선원은 30년을 구형받았다.

사고 당시 세월호는 복원성이 좋지 않아 많이 기울고, 이로 인해 짐이 옆으로 밀려나오고, 물이 새들어왔다. 하지만 세월호는 안전점검 테스트를 다 통과했다. 세월호 뿐만 아니라 2011~2013년 사이에 점검받은 여객선 1만1000여 개 점검 통과율은 100%였다. 여객선 사고는 2배 증가했다.

사람은 한순간에 무능해지지 않는다
“세상 기울어지지 않게 평형수 채우자”


세월호 박 모 승무원은 사고 당시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한 사람이다. 이 승무원은 배가 위험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 교육도 받지 않은 사람이었다. 급하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방송을 시작했다. 물이 들어오고 있는데도 구명조끼도 안 입고 그 방송을 한 시간 동안이나 했다. 판단 마비 상태에 있었던 것이다.

  오준호 작가가 울산대학교 시청각실에서 강연하는 모습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무능이라는 건 뭘까. 사람이 어느 한 순간에 무능해지지는 않는다. 해경은 2011년 이후 대형사고가 늘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조장비나 인력을 상시로 보유하는 건 무리라며 이를 민간에 맡기면 된다고 발언했다. 오준호 작가는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한 민영화 과정이 사고와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1987년 영국에서는 엔터프라이즈라는 로로선이 문을 안 닫고 출항하다가 90초 만에 200명이 수장된 사고가 있었다. 그 뒤 영국에서는 기업살인법 제정운동이 벌어졌다. 직원은 왜 문을 닫지 않았을까? 빨리 출항하라고 하니까. 매뉴얼에 안전수칙은 있지만 작업자가 이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버튼 안 누른 사람보다 기업 책임이 크다.

재판부는 기소된 내용에 대해서만 판단한다. 무책임한 사회 구조는 누가 책임져야 하나. 한 해 산업재해로 사망하는 사람이 2천 명이 넘는데 기업을 처벌하지 않는 사회다. 세월호 진실을 규명하자는 시민을 물대포로 진압하는 정권에 진실 규명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런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개인은 무얼 할 수 있을까.

오준호 작가는 사람과의 관계맺음으로 ‘평형수’를 채우자고 했다. 오 작가는 “사고 이후 안전점검을 공공기관이 하게 하는 등 최소한 선박 관련 몇 개 규정은 강화됐다”며 정부 대처가 크게 실망스럽지만 작은 변화를 이뤄내는 건 개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세월호특별법 특별조사위원회가 재판을 넘어서는 진실규명과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특조위는 정부 시행령 문제로 아직 어떤 진실도 밝히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를 기록하다> 역시 재판 일부분을 담은 기록이다.

오준호 작가는 ‘4.16 세월호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으로 참여해 피해자 목소리 기록에 참여했었다.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 성수대교 붕괴 사고 등 대형사고에도 피해자 목소리를 기록한 책은 없었다. 작가단은 세월호 유족을 상대로 취재했으나 경찰 스파이 아니냐고 쫓겨나기도 하고, 어떤 작가는 서명 받다가 상인에게 항의(뭐가 특별하냐 교통사고로 죽는 이도 많았는데 등) 받기도 했다. 세월호 유족은 처음에는 마음을 열지 않았으나 작가들은 <금요일엔 돌아오렴>으로 세월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기록했다.

오준호 작가는 안산 단원고등학교와 미장원 등을 돌며 세월호 사고를 어떻게 보느냐고 질문했다. 질문을 받은 사람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침묵이 흘렀다. 질문하는 사람도 갑갑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오 작가는 지난해 6월 10일 세월호 선원을 대상으로 열린 첫 재판을 방청한다. 이때부터 오 작가는 세월호 재판기록을 시작했다. 그는 재판을 보다가 사고 진상을 규명하는 것은 무엇이 가장 신빙성 있는 팩트인가를 기록하는 일이라고 여겼다. 누군가가 친절하게 주지 않는 팩트라면 재판정에서 싸우는 과정에서 팩트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오준호 작가는 21일 오전 울산시민아이쿱생협 삼산공간, 오후에는 울산대학교 시청각교육관에서 <세월호를 기록하다> 저자로서 강연했다.

세월호 사고 7개 재판 진행중

세월호 사고 뒤 재판은 7개로 분류돼 진행돼 왔다.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 임직원, 진도VTS(해상교통관제센터) 소속 해경 13명, 당시 목포해경 소속 123정장, 한국선급 검사원, 구명뗏목 정비업체 관계자 4명, 세월호 증선 인가 등의 과정에 금품을 주고 받은 전현직 공무원 등이다.

승무원과 선장에 대한 항소심(2심) 재판이 4월 28일 마무리됐다. 재판부는 2심에서 세월호 선장에게 살인에 대한 미필적고의를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 다른 승무원에게는 각각 징역 1년6개월~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1심에서 선원 외 청해진회사를 주요하게 다뤘다. 1심서 업무상 과실과 배임횡령 등으로 징역 10년 선고, 2심에서 7년이 선고됐다.

세월호 관련 책 여러권 나와

10년 쯤 시간이 지난 다음에 2014년 4월 16일을 기억해보면 사람들은 ‘물에 빠진 선체, 학생들, 노란 리본’과 같은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기록이 없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는 잊혀져간다. 세월호를 기록하는 이들은 ‘기록’과 ‘진상규명’, ‘세상의 변화’를 위한 작업을 곳곳에서 하고 있다. 사고 1년이 지난 사이 세월호를 기록한 책이 여러 권 나왔다.

세월호 사고를 다룬 책으로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사회운동),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생각의 길),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인문학협동조합, 현실문화),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한울아카데미), <금요일엔 돌아오렴>(4.16 세월호참사 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 <세월호를 기록하다>(오준호, 미지북스) 등이 있다.

한편 경기도교육청 안산교육회복지원단은 오는 연말 출간을 목표로 세월호 희생 학생과 교사 260여 명의 전기 발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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