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가 집어삼킨 병원, 그 속에 방치된 노동자들

장시간 노동 간호사도 인력 부족, 비정규직은 안전 사각지대에 방치

메르스 확산의 진원지는 병원이었다. 환자와 병원 노동자, 그리고 의료진까지 감염에 노출됐다. 수많은 의료진이 동원돼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메르스 환자 발생 한 달. 벌써 23명이 사망했고 격리조치를 받은 사람은 1만 명을 넘어섰다. 메르스의 온상이 된 병원은 ‘두려움’이라는 바이러스를 퍼뜨렸다. 그리고 병원노동자들은 그 두려운 공간에 남아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정부의 무능한 대처, 그리고 허술한 병원의 의료체계가 남긴 바이러스 덩어리를 처치하는 것은 모두 노동자들이 몫이 됐다.

하지만 병원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만성 인력부족에 허덕이던 병원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를 강화하는 것 뿐이었다. 제대로 된 안전교육조차 받지 못한 채 현장으로 파견된 간호사들은 인력부족으로 파김치가 됐다. 아예 안전관리 대상에서 배제된 간병, 환자이송, 청소노동자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무방비로 바이러스에 노출됐다. “메르스로 인해 돈벌이 경쟁으로 내몰린 한국사회 의료체계의 민낯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18일, 국회 앞에서 열린 병원노동자 당사자 증언대회에 참가한 이정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장은 이렇게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도 받지 못한 채 투입된 간호사들,
하루 12시간씩 격리병동서 장시간 노동...소진되는 인력


국가지정 격리병상을 운영 중인 서울의료원. 그 곳에서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김경희 씨는 하루 중 12시간을 격리병동에서 보낸다. 메르스 발병 초창기, 병원은 ‘사스’처럼 금방 지나갈 줄 알고, 11명의 간호사로만 전담 인력을 꾸렸다. 하지만 감염자가 늘어나면서 간호 인력이 부족해졌다. 병원은 일반병동을 폐쇄하고, 각 병동에서 임의로 간호사를 차출해 격리병동에 배치했다. 김경희 씨 역시 방호복 착용 연습만 끝내고 곧바로 메르스 전문병동으로 배치됐다. “병원에 근무하면서 메르스 발병 전까지 전문 병동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메르스가 장기화되면서 간호사가 전문병동으로 파견됐지만 체계화된 인력이 없어요”

인력 감축으로 이윤을 극대화해오던 병원은 메르스 발병과 같은 긴급 상황에 대처할 준비를 전혀 갖추지 못했다. 급하게 배치된 간호사들은 12시간씩 장시간 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노동자들은 병원에 임시방편적 조치가 아닌, 간호인력에 대한 충분한 안전 대책, 휴식, 교육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문병동에 동원된 간호사들은 12시간씩 장시간 노동을 하고 있어요. 장시간 환자에게 노출돼 있으면 감염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죠. 그래서 병원에 간호사와 의료진의 3차 감염을 막을 수 있도록 숙소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어요. 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병원 내 일부 직종은 메르스와 관련한 구체적 교육도 받지 못했어요” 김 씨는 갈수록 병원의 모든 인력들이 소진돼 가고 있다며 참담함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대병원 간호사 김경애 씨도 지난 5월 31일 밤근무부터 메르스 환자를 보기 시작했다. 갑자기 투입된 까닭에 방호복 착용법도 훈련받지 못했다. 확진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었지만 지침이나 매뉴얼도 마련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그냥 그림을 보고 방호복 착용을 하라고 했어요. 결국 간호사들이 쉬는 시간에 자체적으로 매뉴얼이나 대응방안을 만들었습니다” 의료진 감염을 막기 위해 숙소를 마련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일반인처럼 군다’, ‘오버한다’는 비아냥거림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두 명의 아이가 있는 집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집을 싸서 혼자 사는 친구 집에 얹혀 지내기도 했다. 결국 노동조합의 문제제기로 숙소가 마련됐고, 김 씨를 비롯한 간호사들은 숙소생활을 시작했다. 노동시간은 그나마 서울의료원보다는 짧았다. 김 씨는 8시간 근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간호사 인력부족으로 노동강도가 강화되는 것은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최소한 환자 한 명당 간호사 1명, 주말에는 두 명의 간호사가 필요합니다. 방호복을 입고, 습기가 차 잘 보이지 않는 고글을 찬 채 저항하는 환자를 돌보고 체위를 변경하는 등의 일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30분만 지나도 두통과 울렁거림이 심해집니다. 하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 밖에 나오지도 못해요” 격리병동에서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병원은 의료진에게 불안감만 부추긴다. “병원은 보호장구가 비싸고 국내에는 얼마 남아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해요. 그래서 한 번 (병동에)들어갈 때 다 해결하고 나오려고 하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잖아요. 많이 불안하죠” 인력은 부족한데 환자는 늘어나고 있어 매번 신속한 대처가 어렵다. 간호사들은 지금의 인력과 대응체계로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김 씨는 두 아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헛되지 않도록, 온전히 환자 치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인력 충원과 안전한 보호장비가 제공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메르스 온상지인 병원서 방치된 비정규직 노동자들

병원 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메르스의 사각지대에 방치돼 있다. 이들은 안전관리 대상에서 제외돼 어떠한 안전 교육도, 보호 장비도 제공받지 못한다. 이미 7명의 간병노동자가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고, 그 중에는 감염 증상이 발생한 지 10여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됐던 노동자도 있었다. 삼성서울병원 환자이송 노동자 역시 증상이 발생한 뒤에도 9일간이나 계속 일을 해야 했다. 불안감에 환자 곁을 떠나는 간병노동자도 늘어나고 있다. 간병노동자 최정남 씨는 “환자들은 불안해하고 간병인들은 일을 그만두고 있다. 하지만 간병인들이 일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입을 열었다.


“병원도 정부도 간병인에게 메르스에 대한 정보를 아무것도 주지 않아요. 예방대책, 관리대책도 없어요. 아무래도 정부와 병원은 간병인이 메르스에 걸리든 말든 상관이 없나 봅니다” 최소한의 안전장비인 마스크조차 자비로 구입해야 한다. 간병인이 감염됐을 때, 정부와 병원이 하는 일이라고는 책임전가밖에 없다. 산재보험도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정부는 우리를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고, 병원은 소속 직원이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합니다. 마치 투명인간 같아요”

환자이송 노동자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보라매병원 환자이송 노동자 박영복 씨는 “삼성서울병원 환자이송 비정규직 노동자가 메르스 확진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에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며 “특히 메르스 바이러스와 관련한 구체적 정보나 교육도 받지 못해 걱정스럽다”고 토로했다. 삼성서울병원 환자이송 노동자가 확진판정을 받고나서야, 병원에서는 박 씨에게 체온계와 문진표 그리고 간단한 책자를 건넸다. 스스로 체온을 기록하고 상태를 체크하라는 것이었다. 그 외에는 어떠한 교육이나 안전대책이 없었다. “만약 메르스 증상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스스로 검진을 받을 수 있을까요. 저희는 최저임금을 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입니다. 격리라도 되면 생계 문제가 걸릴 수밖에 없어요. 증상을 느낀다고 하더라도 생계 걱정 때문에 검진을 주저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17일, 대구 경북대병원에도 메르스 양성환자가 처음으로 이송됐다. 병원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은 병원 측에 메르스 예방 교육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예방 교육을 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였다. 병원은 일회용 마스크 하나 지급하지 않았다. 경북대병원 청소노동자 이계옥 씨는 울분을 터뜨렸다. “1회용 마스크라도 달라고 했는데 병원은 용역회사에 이를 떠넘겨요. 용역회사는 ‘마스크가 매진돼 구할 수 없다’며 직접 사거나 눈치껏 얻어서 쓰래요” 병원과 용역회사가 책임전가를 하는 사이에 노동 강도는 날마다 강해졌다. 청소를 비롯해 병원소독까지 청소노동자의 업무가 됐다. 결국 며칠 전, 보호복을 입고 소독을 하던 청소노동자가 쓰러지는 상황까지 발생했다. “선별진료소가 밖에 설치돼 있는데, 그 천막을 소독하다가 한 명이 실신을 했어요. 그 뜨거운 햇빛에 보호복을 입고 소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지쳐 쓰러진거죠”

메르스 사태를 계기로, 병원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안전, 공공의료체계의 체질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병원의 이윤창출을 위해 무리하게 추진해 왔던 외주화가 의료서비스의 부실과 노동자 안전에 치명타를 안겼다는 지적이다. 공공의료 확충과 의료체계 재정립에 대한 요구도 이어지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병원 비정규직 확대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위협한다는 사실이 드러난 만큼, 병원 업무 외주화를 중단하고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며 “더 나아가 공공병원을 확충하고, 공공병원부터 지역 보건소에서 지방의료원, 국립대병원 간 진료 의뢰, 협력체계를 갖춰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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