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성원전 인접지역 “절망의 땅 벗어나고 싶다”

재가동 반대 여론 커도 묶어낼 사람 없어

원전 최인접지역 주민을 만나다(1)

경주 월성원전 1호기가 지난 23일 오후 2시를 기해 발전을 재개했다. 운영허가기간 만료로 2012년 11월에 발전을 멈춘 뒤 946일 만에 재가동에 들어간 것이다. 현재 ‘월성원전 인접지역 나아·나사리 이주대책위’는 양남면 한수원 월성원전 남문 앞에 농성천막을 치고 이주대책을 요구중이다. 경주지역은 양남면 주민 대다수가 월성 1호기 재가동에 반대했지만 이를 묶어 내고 조직할 정치권과 시민단체 활동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경주시 양남면 월성원전 바로 앞에서 미역을 채취하는 양남면 주민.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원자력안전위원회는 올해 2월 26일 월성 1호기 재가동을 2022년 11월 20일까지 허가했고, 지난 10일 재가동을 승인했다. 재가동을 두고 원전 최인접지역 주민인 양남면은 갈등이 컸다.

월성원전 1호기가 발전을 재개하기 전 주민수용성 문제가 불거졌다. 양남면 주민은 재가동과 보상금 수용을 주민총회에서 압도적으로 반대했지만, 주민단체인 동경주대책위원회(양남, 양북, 감포)와 경주시가 5월 29일 한국수력원자력의 보상금 제시안을 수용했다. 동경주대책위는 1,310억 원을 한수원으로부터 지원받는데 합의, 보상금 60%인 786억 원을 동경주의 양남면, 양북면, 감포읍에 쓰고, 나머지 40%는 경주시가 쓰기로 했다. 동경주대책위는 올해 3월 단식투쟁까지 벌이며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월성1호기 수명연장 허가를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던 바 있다.

재가동과 보상급 합의에 앞서 양남발전협의회는 합의 하루 전날인 5월 28일 보상금 수용 여부를 두고 주민총회를 열었다. 그 결과 전체 마을 22곳 가운데 반대 17곳, 찬성 3곳, 의견수렴 미실시 2곳으로 집계됐다. 주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29일 주민단체 대표가 보상금 수용과 재가동에 합의하자 다수는 침묵하고, 양남면 주민 가운데 일부가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농성을 진행중이다.

‘월성원전 인접지역 나아·나사리 이주대책위(위원장 김정섭)’는 지난해 8월부터 월성원전 앞에서 농성중이다. 대책위는 주민 생존권과 이주를 요구중이며 주민 73명(집 소유주만 해당)으로 시작해 지금은 53명 가량 참여한다. 나아·나사리 전체 세대수는 약 350호에 인원은 1천명가량 된다.

김정섭 이주대책위원장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급격하게 양남면 나아리 부동산 거래가 끊기고 횟집이나 바닷가에 찾아오는 관광객 수가 줄었다고 했다. 대책위는 타 주민으로부터 “개인적 욕심으로 대책위를 꾸렸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받고 있다. 하지만 대책위 주민 대다수가 월성원전이 들어앉은 마을에 살다가 이주한 주민이고, 이들은 원전 최인접지역을 “사람이 살 수 없는 절망의 땅”이라며 이주를 요구중이다.

대책위 주민은 월성원전과 신월성원전이 건설되던 지난 20여 년 동안은 건설인력을 상대로 방을 세놓거나 음식장사로 수익을 올렸다. 지금은 건설경기가 끊기기도 했지만 국민 대다수가 원전위험성을 느끼기 때문에 장사는 물론 부동산거래마저 끊겨 재산상 불이익을 받고 있고, 이를 한수원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주지역은 시민단체 탈핵운동이 큰 힘을 발휘 못하고 있다. 월성 1호기 수명연장을 앞두고 ‘월성1호기폐쇄 경주공동운동본부’를 꾸렸지만 느슨한 서명운동 받기에 그치고, 성명서에 단체 이름 내는 수준으로 활동한다는 평가다. 경주시의회는 노후원전폐쇄 촉구 결의안마저 채택하지 못했다. 시의회 의장은 월성 1호기 폐쇄와 관련한 언론인터뷰를 통해 ‘원전은 전문가 영역인데 왜 나한테 물어보느냐, 나는 비전문가’라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경주지역 국회의원 역시 ‘원전은 전문분야고 전문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상홍 경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핵발전소 초기 건설 단계에는 주민들이 원전 정보가 없었다지만 최근에는 원전 위험성을 알고 있다. 하지만 방폐장 유치 등 핵도시로서의 경주를 정치권과 주민이 수용하는 상황은 기업이 지역경제를 위해 좋은 일 하는 것처럼 여기는 측면도 없지 않아 보인다”고 했다. 이 국장은 “원전발전지원금은 기업이 마치 지역발전을 위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것처럼 비쳐질 수 있고, 정부나 지자체가 지역사회 사회복지 인프라 구축 등을 기업에 의존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원전주변지역 주민 복지와 생계대책, 이주 정책을 주민과 한수원에게 맡길 것이 아니라 중앙정부와 자치단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고향 지키려던 내가 원망스럽다”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 권 모(72) 씨는 월성원전 1호기가 들어선 자리에서 해녀생활 하면서 살았다. 권씨는 1975년 월성원전 1호기가 들어설 당시 이주할 집도 못 지은 상태에서 쫓겨나다시피 나왔다. 같은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외지로 장사하러 떠난 사람도 있고 보상을 적게 받은 사람은 농사나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에는 어업보상은 받았으나 해녀보상은 없었다.

  월성원전 1호기 자리에 살다가 쫓겨나왔다는 권 모씨. 그는 고향을 지키고 싶었으나 지금은 후회되고 고향을 버리고 싶다고 했다. [출처: 울산저널 용석록 기자]

권씨는 “고향을 지키고 싶어서 원전 바로 앞으로 이사했는데 지금은 내가 너무 바보같이 살아온 거 같아서 나한테 억울하다”고 했다. 권씨의 두 아들과 손자는 지금 양남면에 산다. 권씨는 “아들이라도 고향 떠나 살라고 했어야 했는데 내 고집으로 양남 땅에 살게 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김해준(72) 씨는 원전 바로 옆 나산리에 살고 있는데 그곳은 김씨 고조부 때부터 5대째 살아온 곳이다. 김씨는 “후쿠시마 사고 이전에는 월성원전 앞에 있는 공원으로 울산 사람들이 소풍을 많이 왔지만 지금은 보기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손주들에게도 양남마을에는 오지 말라고 한다. 그는 5대째 지켜온 고향이 원전과 방폐장으로붙어 오염된다는 걸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깨달았다.

권씨는 지금 ‘월성원전 인접지역 나아·나사리 이주대책위’ 소속으로 이주를 요구중이다.
덧붙이는 말

용석록 기자는 울산저널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울산저널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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