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쩍은 의료장사 “언니, 강남으로 와요. 병원 소개해 줄게”

의료관광 1번지 강남구, ‘탈세’, ‘의료사고’ 병원도 ‘협력의료업체’로 버젓이

‘강남스타일’로 유명세를 탄 강남구가 이제 의료관광의 첨병으로 거듭나고 있다. ‘강남미인도’라는 웹툰이 만들어질 만큼 강남 일대의 공장식 성형산업이 눈총을 받기도 했지만, 그 정도의 비아냥거림은 손톱 밑 가시만도 못했다. 이제 내국인을 넘어 해외 관광객까지 대거 몰려들고 있는 탓에 강남 병원은 어느덧 천문학적의 진료수입을 올리는 ‘관광명소’로 자리매김했다.

강남이 의료관광의 천국으로 발돋움한 데는 무엇보다 정부와 지자체의 공이 가장 컸다. 정부의 규제완화와 의료산업 육성 정책으로 날개를 단 강남구는 주요 병원들과 협력 관계를 맺으며 해외 환자들을 줄줄이 수술대로 안내했다. 탈세와 과대광고, 의료사고 등 숱한 문제를 일으킨 병원들의 과거 행적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정부와 지자체의 든든한 지원을 발판으로 자본력을 쌓은 병원들은 정부의 응원에 부응이라도 하듯 의료영리화를 위한 후속 작업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팔 걷어붙인 강남구 ‘직접 병원 알선해요’...지난해 진료수입 1,657억

압구정동 현대백화점 옆에 위치한 ‘강남메디컬투어센터’. 강남구가 의료관광객 유치를 위해 지난 2013년 6월 개관한 종합 의료관광 안내센터다. 해외 의료관광객들에게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고, 관광객을 직접 병원과 연계해 주는 알선 업무도 병행하고 있다. 강남 지역의 피부과 및 한의원에서 만든 화장품을 판매하는 일도 한다. 센터에 들어서서 ‘체험서비스’를 받으러 왔다고 하니 의료관광코디네이터가 직접 안내를 한다. ‘체험존’은 피부측정과 혈압측정, 체성분 분석, 3D가상성형 등을 무료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해외 의료관광객을 타겟으로 하고 있지만, 내국인도 일정 부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방명록에는 꽤 많은 내국인의 방문 기록이 담겨 있었다. 측정을 마친 뒤 괜찮은 병원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자 코디네이터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외국인에게는 병원 소개 및 연계가 가능하지만, 내국인은 병원 정보 접근이 쉽기 때문에 연계 서비스를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원칙적으로 의료법에는 영리를 목적으로 환자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소개, 알선, 유인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당시 의료법이 개정되면서 외국인 환자를 상대로 한 병원 알선, 유인이 가능해졌다.

센터에는 강남 지역 성형외과, 피부과, 척추 및 관절치료 병원, 한방병원 등 수많은 병원 홍보물이 전시돼 있었다. 피부과에서 만든 화장품을 전시해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의료 관광객을 위한 공항 영접-병원 및 호텔 픽업- 공항 이동 등의 픽업 서비스도 진행하고 있다. 직접 강남 의료관광 상품을 운영하기도 한다. 건강검진, 스킨케어, 스파 등을 비롯해 ‘패키지’ 상품도 있다. 건강검진 패키지는 600달러, 토탈뷰티 패키지(필러시술, 한방, 스파, 스튜디오 촬영) 상품은 1,740달러 선이다.

강남구청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해 센터를 방문한 인원은 약 1만1천 명 가량. 그중 외국인 관광객은 약 6천2백 명이며, 내국인 방문객도 약 4천8백 명 가량이다. 관계자는 “체성분 분석이나 가상 성형 등의 체험을 비롯해 화장품 테스트와 구입도 가능하다. 본인이 원할 경우 병원을 소개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강남구청은 지난 주말(5일) 보도자료를 통해, 강남구가 지난해 의료관광 유치실적 1위를 달성했다고 밝혔다. 강남구는 2010년부터 5년 연속 의료관광객 유치 관련 지자체 평가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강남구가 유치한 의료관광객은 약 5만6천 명. 대한민국 전체 의료관광객의 21.2%에 달하는 수치다. 강남구 의료관광객 방문 수치는 2013년도에 비해 23.8%(1만856명)가 증가했다. 강남구 외국인 환자 중 중국인이 44.2%로 가장 많았고, 미국이 12.8%, 러시아가 7.5%, 일본이 7.2%, 카자흐스탄이 4.5%로 뒤를 이었다. 가장 많은 진료과목은 성형, 피부 진료로 47.1%를 차지하고 있다. 강남 병원의 외국인 환자 진료수입는 매년 고공행진이다. 지난해 강남 지역의 외국인 환자 총 진료수입은 1,657억 원으로, 전년도 대비 42.8%가 증가했다.

강남구-강남 병원의 수상한 공생관계
탈세, 의료과실 병원도 ‘협력의료기관’ 선정


강남구는 외국인 환자를 직접 병원으로 유인, 알선하며 의료관광 사업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주요 병원과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필수적이다. 강남구는 성형외과를 비롯한 각종 의료기관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강남구에 들어서 있는 의료기관은 약 2,400여 곳. 강남구는 그중 약 160개의 병원을 ‘강남구 협력의료기관’으로 선정해 의료관광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성형외과 65곳, 피부미용 13곳, 척추 및 관절 치료병원 5곳 등이 협력의료기관으로 선정됐다. 종합병원으로는 강남세브란스병원과 삼성서울병원, 강남차병원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심각한 것은 과거 수십억 원의 세금을 탈루한 대형 성형외과를 비롯해 과대 과장 광고로 제재조치를 받는 등 문제를 일으켰던 병원들이 강남구 협력의료기관으로 대거 선정됐다는 점이다. 심지어 의료과실로 외국인 의료관광 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병원도 강남구의 협력의료기관으로 선정돼 있었다.

강남구 협력의료기관 중 하나인 A 성형외과는 강남 최대 규모의 성형외과로 꼽힌다. 신사역 인근에 직원만 18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지난 2012년, 거액의 세금 탈루 사건으로 논란을 빚었다. 당시 검찰은 병원 대표원장 홍 모 씨를 비롯한 3명이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총 수입금액 545억 여 원을 세무당국에 축소 신고해 23억 원의 세금을 탈루했다고 밝혔다. 이들 세 명은 병원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각각 10억 4천만 원과 2억 여 원을 개인적으로 탈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A 성형외과는 지자체와 정부기관의 지지 및 지원을 발판삼아 여전히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법무부는 지난해 이곳을 ‘의료관광 우수 유치기관’으로 선정했고, 강남구도 ‘외국인 환자 유치활동 우수기관’으로 선정하는 영예를 안겼다. 올해 6월에는 한국소비자협회에서 주관한 ‘2015 대한민국 소비자 대상’에서 성형외과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성형외과는 현재도 강남구와 ‘협력의료기관’이라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강남구는 의료과실로 사망사고가 터졌던 병원과도 손을 잡았다. 강남구의 협력의료기관으로 이름을 올린 척추 관절 치료병원인 B 병원은 외국인 관광객이 수술 도중 목숨을 잃었던 곳이다. 지난 2013년 6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의료관광을 왔던 10대(당시 16세) 여성이 해당 병원에서 척추측만증 교정 수술을 받다가 과다 출혈로 사망했다. 병원은 몸무게 30킬로그램 대의 10대 여성을 상대로 무려 3차례에 걸쳐 수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척추측만증은 수술 없이도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에 당시 병원이 과잉진료 및 무리한 수술을 강행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은 올해 3월, 이 병원의 의료과실을 일부 인정했다.

뿐만 아니라 의료분쟁의 빈도가 높은 성형외과들도 강남구의 협력의료기관으로 버젓이 선정돼 있었다. 지난 2011년 12월, 한국소비자원은 성형 피해 신고 빈도가 높은 12개의 성형외과를 ‘다빈도 병원’으로 분류해 발표했다. 12개 병원 중에는 현재 강남구 협력의료기관으로 선정된 C 성형외과의원과 A 성형외과도 포함돼 있다.

거짓, 과장 광고 등으로 제재조치를 받은 병원들도 강남구와 협력의료기관 관계를 맺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2013년 12월, 인터넷 홈페이지 및 배너광고 등을 통해 미용 성형 시술과 관련한 거짓, 과장, 기만적 광고행위를 한 13개 병원에 대해 시정조치를 내렸다. 시정조치를 받은 13개 병원 중 D 성형외과, E 성형외과, F 성형외과는 강남구의 협력의료기관으로 선정됐다.

‘의료관광’으로 몸집 키운 대형 병원
‘의료영리화’ 주도하며 정부, 지자체에 보답


강남구는 협력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의료관광을 집중 육성하고 있다. ‘강남의료관광 가이드북’을 만들어 선정된 의료기관의 연락처와 가격대, 위치, 치료기간 등을 표기해 배포하기도 한다. 협력의료기관을 상대로 재정 지원 사업도 벌인다. 강남구는 협력의료기관 중 일부를 선정해 외국인 환자 유치활동 사업 예산의 50%이내(최대 300만 원)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의료기관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 ‘협력의료기관’으로 선정됐을까.


강남구 관계자는 “참가 모집을 받아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 평가표에 따라 문항별로 평가한다. 점수도 중요하지만, 강남구 의료관광 자문위원회에서 협력기관 선정 여부를 결정한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협력의료기관 선정은 ‘강남구 의료관광 자문위원회’의 손에 달려있는 셈이다. 자문위원회는 15인 이내의 관련분야 교수 및 전문가, 여행사 관계자, 구의원, 보건소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강남구 의료관광 정책수립 자문 역할과 주요 업무 심사 및 평가 등을 맡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인사가 자문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강남구 측에 명단을 요청했지만 소식이 없어, 현재 정보공개청구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에 힘입어 의료관광의 중심에 선 대형 병원들은 ‘의료영리화’ 사업을 주도하며 정부의 성의에 화답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5일, 중국 녹지그룹이 제출한 제주영리병원 설립계획서를 접수했다. 국내 1호 영리병원 설립을 준비하고 있는 녹지그룹은 부동산 개발 전문회사로, 실제 병원 운영은 중국의 병원경영지원회사인 BBC(연합리거)가 맡게 된다. 특이한 것은 제주 영리병원 설립에 위에서 언급한 강남 최대의 성형외과인 A 병원의 우회적 투자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에 따르면, 연합리거 내 최대 규모의 영리병원인 ‘서울리거’는 전 A 성형외과 대표원장이 설립해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한국 자본이 중국에 설립한 영리병원을 국내에 재수입하는 이상한 방식의 우회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제주영리병원은 내국인 이용에 제한이 없어, 사실상 본격적인 국내 의료상업화의 도화선이 될 전망이다.

뿐만 아니라 정부는 의료기관의 ‘메디텔’(의료관광호텔) 설립을 허용하는 등 ‘의료관광’을 통한 대형 병원 수익률 증대를 꾀해 왔다. 설립자격이 대폭 완화됐고, 유치업자 다수의 공동 설립도 가능해 일찍부터 강남 병원들이 최대 수혜자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잇따랐다. 시민사회는 메디텔이 ‘해외 의료관광객 유치’라는 명목으로 추진됐지만, 사실상 국내 의료 상업화를 위한 발판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실제로 메디텔 역시 객실 전체의 40%이하까지 내국인 사용이 가능하다. 과연 ‘의료관광’이라는 외피를 쓰고 몸집을 키운 대형 병원들의 시선은 어느 곳을 향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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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 의료관광 , 의료영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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