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456일,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의 기록

미수습 희생자 및 이주민 희생자 가족, 화물기사, 민간잠수사들의 숨겨진 고통

“국민으로서, 아이의 아빠로서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세월호 인양 없이는 우리 사회의 그 어떤 인권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456일째 세월호 안에 갇혀 있는 허다윤 양의 아버지 허흥환 씨는 우리 사회에 ‘인권’이 정말 존재하느냐고 거듭 반문했다. 허 씨뿐만이 아니다. 희생자 유족과 아직 미수습 희생자 가족, 생존자, 구조자 등 세월호 참사로 고통에 시달리는 피해자들은 대한민국에 ‘인권’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고 묻는다.

세월호 참사 456일, 드러나지 않은 피해자들의 기록

‘416 인권실태조사단은’ 15일 오전 11시,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세월호 참사 4.16 인권실태조사 보고서’를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세월호 참사 이후 방치돼야 했던 드러나지 않는 피해자들의 기록이 담겨 있었다. 무려 7개월 가량을 진도에 머무르며 가족들의 생사를 확인했던 미수습 희생자 가족들. 살아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바뀌었고, 이제는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뼛조각이라도 만져보고 싶다’고 털어 놓는다. 그들은 수색작업이 길어질수록 죄인이 되어야 했고, 모든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미수습 희생자가족 권 모 씨는 “수색이 가족들이 종료하고 싶어서 종료한 게 아니다”라며 “강제 종료나 마찬가지로 수색을 종료하겠다는데 끝까지 인정을 안 해주면 죽은 사람 꺼내려다가 산 사람 죽었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그런 식으로 (수색 종료를) 인정해 준 것”이라고 토로했다. 정부는 장기수색의 부담을 미수습 희생자 가족들에게 지웠고, 세월호 인양문제 역시 ‘비용’논리로 접근하며 가족들을 압박했다. ‘세금도둑’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가족들을 고립감으로 몰아넣었다.

구조작업을 위해 바다 속으로 뛰어든 민간 잠수사들도 오랜 시간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수색작업의 책임자는 해경이었지만, 정부는 모든 위험한 작업들을 민간 잠수사들에게 떠넘겼다. 안전장비도, 의료지원도 없었다. 민간 잠수사들은 정신적 트라우마와 육체적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결과 세월호 구조에 참여한 25명의 민간잠수사 중 7명이 괴사 등의 질병을 얻어 생업을 접었다. 민간잠수사 김 모 씨는 “골 괴사는 수술밖에 없다. 치료가 100% 되지 않아 골 괴사 수술을 받으면 영구 장애가 나온다”며 “수술을 해야 하는데 지금 국가에서는 보류를 시켜놨다”고 설명했다.

골 괴사뿐 아니라 디스크, 피부병, 잠수병, 정신적 트라우마 등 질병이 쌓여갔다. 애초 정부와 해결은 민간 잠수사에 대한 경제적 손실 및 건강상의 문제를 지원하겠다고 약속했었다.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민간 잠수사 공 모 씨는 “알면서 들어가도 겁이 난다. 그런 사람들을 시신이 손상 안 되게 분리해서 데리고 나왔는데, 그럼 생각이 안날 수 없다”며 “그런데서 오는 트라우마가 굉장히 힘들다. 술을 먹어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이 모 씨는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되겠지만, 또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돕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을 정도로 너무나 실망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이주민 희생자 가족, 생존한 화물기사의 숨겨진 고통

이주민 희생자 가족들은 가장 고립되고 소외된 피해자들이었다. 뒤늦게 사고소식을 접한 가족들은 모든 정보에서 배제되거나 소외당했다. 정부는 이주민 유가족이 입국한 초기 10일까지만 통역을 제공했다. 이주민 유족들은 언어의 장벽에 가로막혀 불안에 떨어야 했다. 생계 문제도 막막했다. 인권실태조사단은 “베트남 이주민 유가족의 경우에는 정부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해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며 “육체적이거나 심리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보상금 때문에 한국에 온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견딜 수 없다. 이주민 희생자 가족 A씨는 “한국에서 제일 슬픈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 가정이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라며 “실제로는 한국정부에게 아무 관심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저희는 아주 힘든 1년 이었다”고 말했다.

세월호에서 생존한 화물 기사들도 ‘어른 생존자’라는 죄책감과 정신적 트라우마, 생계의 문제 등으로 아직까지 고통을 받고 있다. 언론과 사회는 아이들을 두고 생존한 ‘어른’이라는 죄책감을 뒤집어 씌웠다. 많게는 한 달에 300만 원 가량 납입해야 하는 화물차 할부금은 몇 년이나 더 남아있었지만, 화물차는 이미 세월호와 함께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정부는 화물차를 구입하는 조건으로 추가 대출을 제공하겠다는 대책을 내놨지만, 이들은 더 이상 화물차 운전대를 잡을 수 없게 돼 버렸다.

생존 화물기사 B씨는 “생계 때문에 10월에 화물기사일을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중간에 포기하고 다시 안산 온마음 센터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제주 지역에 살고 있는 화물차 기사들은 경기도 안산을 오가며 트라우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제주시가 지원했던 교통비와 숙박비 지원은 이미 끊겨 버렸다. B씨는 “배가 뒤집히는 참사 장면이 떠오르고, 악몽만 꾸고 잠을 못자다 보니 도저히 3일간 운전대를 잡을 수 없었다”며 “다시 화물기사일을 할 수 없을 것만 같다”고 토로했다.

한편 46명의 인권활동가들은 지난 5개월간 45명의 세월호 피해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보고서를 통해 “정부에 의한 차별적 대우와 억압적 상황은 피해자들이 치유받고 추모와 기억의 권리를 가질 기회를 박탈했다”며 “1년을 훌쩍 넘긴 오늘, 세월호 참사 자체가 우리 사회의 드러나지 않은 인권침해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지 안타깝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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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찌녀

    아니.. 그 세월호 안에 갇혀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지금 몇일이 지났는데 거기에 묶여있지 않는 이상은 찾기도 어렵고..국가의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서 왜 그걸 꺼내야하는지 모르겠군요.

  • 희망세상

    국민에게 국가는 무엇입니까. 세금내고 군대가고 국가는 국민에게 충성을 강요하지만 정작 국가는 국민을 내팽겨치고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