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극우정당의 부상과 유럽좌파의 대응

[주례토론회] 프랑스 사례를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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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서론

- 2012년 대선에서 승리한 프랑수아 올랑드(Francois Hollande)는 프랑스 제5공화국 수립 이후 두 번째 사회당(PS) 출신 대통령 당선. “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벌어라!”라는 사르코지의 강압적 개혁과 이에 대한 국민적 반감으로 반사이익을 얻었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경제위기에 어떠한 대안을 내놓을지에 대한 기대를 낳았던 것도 사실임.

- 사회당은 2010년 5월 정책 공약에서 2008년 경제위기를 우파 자유주의의 산물이라 규정하고, 조세 개혁을 통한 부의 재분배가 불평등 심화를 막는 대안임을 명시함. 나아가 사회당은 2012년 대선 직전이었던 2월 27일에는 소위 ‘75% 부유세’라는 상징적인 공약을 조세혁명의 방향으로 제시. 하지만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반 신자유주의 개혁 가능성은 점차 희미해지고 있음. 좌파 집권 이후에도 실업률은 계속 증가했으며, 대통령 임기가 2년밖에 남지 않았음에도 핵심공약 이행은 미뤄지고 있으며, 급기야 2015년 1월에는 사회당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부유세 정책을 폐지. 올랑드 정권은 10%대의 역대 최저 지지율을 유지하다가, 샤를리 엡도 테러 사건을 계기로 지지율 회복.

- 부실한 사회주의 정권에 대한 회의감이 급진 좌파 정당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전혀 제공하지 못하고 있음. 프랑스 국민들은 가식적인 ‘부자 증세’ 정책보다, 급진좌파정당들의 반자본주의 강령 보다, 중도우파의 성장 담론 보다, 극우정당의 공공연한 ‘이민자 증오’에 더 지지를 보내고 있음. 유럽의 경제위기로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정당이 성장했다면, 프랑스에서는 반대로 국민전선(Front national)이 전례 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음. 2011년 아버지 르펜(Jean-Marie Le Pen)으로부터 당권을 이어받은 마린 르펜(Marine Le Pen)은 국민전선의 ‘탈악마화’에 성공했으며, 엘리트 정치와 자유주의 시장경쟁에 지친 소외계층을 소위 여성 리더십으로 포섭해 나감.

- 노동자 계급정당의 의미를 단지 다수의 노동자가 지지하는 정당으로 규정한다면, 현재 프랑스의 노동자 정당은 사회당도, 급진좌파 정당도 아닌 극우정당임. 피폐해진 삶을 사는 프랑스의 청년과 노동자들은 왜 좌파 정당이 아닌 극우정당을 지지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동전의 양면처럼 맞닿아 있는 급진 좌파 정당1의 후퇴와 극우 정당의 성장을 동시에 조명할 필요가 있음. 이하에서는 1) 2000년대에 들어 급진좌파 정당들이 선거 국면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기회가 있었으나, 성장 흐름을 오래 가져가지 못했던 상황을 살펴 볼 것임. 2) 다음으로 급진좌파의 후퇴와 대조적으로 국민전선이 2000년대 후반 급부상할 수 있었던 다양한 원인을 추적함. 3) 마지막으로 현 국면에서 프랑스의 급진 좌파 정당들이 어떠한 딜레마에 빠져 있는가를 다룰 것이며, 그리스의 시리자 집권과 프랑스의 국민전선 부상이 외형적으로는 정반대의 결과이나, 내용적으로 일정한 공통점을 갖는 현상이라는 것을 논하고자 함.

2. 2000년대 이후 프랑스 급진좌파 정당의 성쇠

1) 2000년대 중반 반자본주의신당(NPA)의 부상


- 프랑스 트로츠키주의 정당의 역사는 독일의 프랑스 점령이 시작되었던 1940년까지 거슬러 올라감. 당시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제4인터내셔널 프랑스 위원회(Comité Fraçais pour la Ⅳe Internationale) 결성했으며, 소비에트 정부를 공식적으로 지지했던 프랑스 공산당과 대립각을 세우며 발전함. 프랑스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였던 프랑스 공산주의자들로부터 히틀러 지지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1960년대 알제리 전쟁과 68혁명 당시 체제 유지를 지원했던 주류 좌파, 특히 공산당과는 구분되는 정체성 유지.

- 프랑스의 트로츠키주의는 세 정당으로 발전함.

ⅰ) 혁명공산주의연맹(LCR) - 반자본주의 신당(NPA)
알랭 크리빈(Alain Krivine)이 이끌었던 1965년의 혁명공산주의청년회(Jeunesses Communistes Révolutionnaires; JCR), 1968년의 혁명 공산주의연맹(Ligue Communistes Révolutionnaires; LCR) 그룹은 2008년 창당한 반자본주의신당(Nouveau parti anticapitaliste; NPA)으로 활동을 이어오고 있음.
ⅱ) 독립노동자당(POI)
1965년 피에르 랑베르(Pierre Lambert)를 중심으로 조직된 국제공산주의기구(Organisation communiste internationaliste; OCI)는 이들은 68년 학생활동가 조직을 흡수하여 1970대 전성기를 보냈으나, 1980년대 이후 주요 선거에서 0.5% 이상의 득표를 기록하지는 못하고 있음. 1991년 노동자당(Parti des travailleurs; PT), 2008년 독립노동자당(Parti ouvrier indépendant; POI)을 창당하여 명맥을 이어 옴.
ⅲ) 노동자투쟁당 (LO)
노동자투쟁당(Lutte ouvrière; LO)은 1968년에 창당됨. 이들은 국제주의 공산주의연맹(Union Communiste Internationaliste)을 계승하여 1956년 노동자의 목소리당(Voix ouvrière)을 조직하였으며 1970년대에는 최초로 여성 대통령 후보를 냈음. 알레트 라기예(Arlette Laguiller)는 1974년부터 2007년까지 총 여섯 번 대선에 출마하였고, 1995년과 2002년 대선에서는 5%가 넘는 득표를 기록하기도 함(Knapp 2004, 120-3).

- 내부 분열이 장기간 지속되었음에도, 트로츠키주의 정당의 전성기는 2000년대였음. 가장 높은 득표를 기록한 해는 2002년이었는데, 당시 노동자투쟁당(LO)의 라기에, 노동자당(PT)의 글뤽스탕(Daniel Gluckstein), 혁명 공산주의연맹(LCR)의 브장스노는 각각 5.72%, 0.47%, 4.25%의 지지를 얻었고, 트로츠키주의 정당의 득표율을 모두 합치면 전체 10%를 넘기는 결과였음. 2007년 대선에서는 공산당을 포함한 여타 트로츠키주의 정당들이 모두 2% 득표율 미만을 기록했으나, 혁명공산주의연맹(LCR)의 브장스노(Olivier Besancenot)가 홀로 4.08%의 득표율(약 150만 표)을 기록하면서 언론의 주목을 받음.

- 2007년 대선을 계기로 혁명공산주의연맹(LCR)은 새로운 정당으로의 변모를 시도. 2008년 2월 창당된 반자본주의신당(NPA)은 “우파, 프랑스 기업운동 연합(Mouvement des entreprises de France; MEDEF), 고용주들에 반대하는 당”으로 스스로를 규정함. 트로츠키주의를 당의 공식 입장으로 표명하지 않았으나 “자본주의의 반대하는 자, 국제주의자,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자, 환경운동가, 여성주의자, 차별에 분노하는 자” 등 다양한 활동가를 포용하는 정당임을 밝힘. 2007년부터 2012년까지 사르코지 집권 기간 반자본주의신당(NPA)은 브장스노의 인기와 함께, 대중운동연합(UMP)의 강력한 신자유주의 개혁 드라이브에 맞설 수 있는 대안 정당으로 주목받음.

- 2009년 유럽의회선거를 앞두고 비(非) 사회당 좌파들은 연대의 움직임을 보였으며, 반자본주의신당(NPA)과 브장스노는 끊임없는 러브콜을 받음. 좌파당의 대표 장 뤽 멜랑숑(Jean-Luc Mélenchon)은 공산당 대표 마리 조르쥬 뷔페(Marie-George Buffet)와 손잡고 브장스노와의 연대를 시도함. 반자본주의신당은 반자본주의 이념을 공유한 정당 간 연대는 우선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일시적인 선거 카르텔에 그치지 않는 연합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제시함. 하지만 좌파전선(FG)은2010년 지역 선거를 포함한 지속적인 선거연대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고, 이에 반자본주의신당은 유럽의회선거 보다 거리로 나가 투쟁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둔다고 응답하면서 양자 간의 정당명부 단일화는 무산됨. PCF-PG-NPA의 연합을 이룰 경우 12-18%의 득표가 가능한 상황에서, 2007년 대선에 이어 다시 한 번 독자 노선을 선언한 브장스노와 NPA는 당 안팎의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음. 반자본주의신당과 브장스노는 “홀로 모든 것에 반대한다.”, “좌파의 효율적인 정치를 망치고 있다.” 등의 비판에 직면.

- 반자본주의신당(NPA)은 2009년 유럽의회선거 직전까지 여론조사에서 지속적으로 7%대의 지지율을 유지했고, 독자적으로 출마하더라도 다수의 유럽의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 그러나 개표결과는 사전 조사 결과와 상당한 차이가 있었고, 상당수의 좌파 지지층은 이탈하여 녹색당 연합을 선택함(그림 1, 그림 2 참고). 선거운동 없이 기존 고정 지지층의 결속에 집중한 대중운동연합(UMP)의 전략은 성공한 반면, 정권 심판론을 내세운 좌파 정당들은 패배한 결과가 나옴.

- 2009년 유럽의회선거는 사르코지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를 의미하는 선거로 진행되었기 때문에, 급진좌파가 약진한다면 신자유주의 3년차 개혁에 제동을 거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음.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집권 여당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제1당의 의석수를 확보한 결과가 나왔으며, 수세에 몰리던 집권 우파는 분위기 반전에 성공함. 이후 2010년대에 들어 과거 트로츠키주의 정당으로 분류되던 3당의 하락세가 눈에 띠게 진행됨. 2012년 총선과 2014년 유럽의회선거에서 반자본주의신당과 노동자투쟁당의 득표율은 총합 2%가 넘지 않는 상황임. 노동자투쟁당의 나탈리 아르토(Nathalie Arthaud)는 0.56%, 반자본주의신당의 필립 푸투(Philippe Poutou)는 1.15 %의 지지를 얻는 데에 그침.

  그림 1. 2009년 유럽의회선거 직전 정당별 지지율 [출처: Opinionway-Le Figaro/LCI 설문(2009년 4월 17일)]

  그림 2. 2009년 유럽의회선거 정당별 의석수/전국 득표율 [출처: 내무부 홈페이지 선거결과 자료(http://www.interieur.gouv.fr/Elections/Les-resultats/Europeennes)]

  그림 A. 국민전선(FN) 규탄 집회에 참석한 라기예와 우편물을 배달하는 브장스노

2) 좌파 연합(Front de Gauche): 프랑스 공산당(PCF)와 좌파당(Parti de Gauche; PG)

(1) 프랑스 공산당(PCF)

- 1920년 창당된 프랑스 공산당(Parti communiste français; PCF)는 1930년대부터 1981년까지 프랑스 정치 지형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함. 1945년 종전 직후 총선에서 159석을 얻어 정부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1956년 총선까지 하원의원 600여 의석 중 약 150석 이상을 확보하는 제1야당의 위상을 유지. 공산당은 제2차 대전 당시 프랑스 본토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벌여 국민 정당으로서의 정통성을 확보했으며, 냉전 기간 동안에는 소련의 후광에 힘입어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공산주의의 우월성을 호소할 수 있었음.

-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과 1958년 제5공화국 수립 이후 꾸준한 지지층 이탈 발생. 1970년대 후반부터 레지스탕스 경력으로 인기를 얻었던 정치인들은 은퇴하기 시작했으며, 전후 베이비붐 세대는 부모세대의 레지스탕스 신화에 둔감해짐. 전통적 지지층인 생산직 노동자들의 수가 감소했으며, 이데올로기적 버팀목이었던 동구권의 붕괴 역시 공산당에게 결정적인 타격을 입힘. 1990년대 중반 공산당은 소련식 사회주의 모델의 폐해를 인정했으나, 과거 소련과 연계한 역사는 지울 수 없는 과오로 남았고, 20-30년 주기로 단계적인 몰락을 겪음. 주요 선거 득표율은 1970년대 후반까지 약 20%대로 떨어졌고, 1980년대에는 10% 안팎, 2000년대 이후에는 5% 미만의 지지를 확보하는 정당으로 추락. 2002년 대선에서 과거 지지자의 60%만이 공산당에 투표했으며, 20%의 유권자는 사회당 지지로 돌아섬(Knapp 2004, 93-117).

  그림 B. 프랑스 공산당의 로고, 당사, 전 현직 대표(마리-조르쥬 뷔페(우) & 피에르 로랑)

(2) 좌파당(Parti de Gauche; PG) 창당과 좌파 연합(Front de Gauche) 결성

- 좌파당은 2009년 2월 1일 사회당을 이탈한 장 뤽 멜랑숑(Jean-Luc Mélenchon)과 마르크 돌레즈(Marc Dolez)가 주축이 되어 창당한 정당임. 좌파당은 사회주의, 생태주의, 공화주의의 세 이념을 당의 근본 지향으로 제시했으며, 경제위기와 환경재앙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롯되었다는 전제 하에 정치 전복의 필요성을 주창함. 이와 동시에 좌파당은 자본주의와 단절과 공화주의 완성을 위해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며, 수권정당으로서의 정체성도 분명히 함. 이들은 부의 공정한 분배, 국민 주권 회복, 자본주의 시스템 지양, 대안적 발전 모델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음. 그러나 좌파당의 태생적 특성상, 좌우 이념 스펙트럼 상에서 이들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는 논쟁의 대상임. 대중운동연합(UMP)은 좌파당을 ‘극좌’ 정당으로 분류하는 반면, 일부 학자들은 이들을 온건한 반자본주의 정파, 혹은 사민주의의 좌파로 규정하기도 함.

- 좌파당의 중심인물인 멜랑숑은 2008년 11월 7일 사회당 전당대회에서 당내 좌파에 대한 지지가 절반 이상 줄어들어 18.52%를 기록하고, 반대로 사회당 우파를 포함한 당내 주류 계파가 80% 이상의 지지를 얻자 우파에 양보 없는 새로운 운동을 창조하자는 명분으로 사회당을 탈당. 11월 12일 좌파당 창당 선언이 있었으며 2008년 11월 18일 좌파당과 공산당의 회동을 통해 정당연합에 대한 합의를 봄. 2009년 2월 7일에 발기인 대회에서 독일 사민당과 동독 공산당을 이탈한 정치인이 구성한 독일 좌파당(Die Linke)을 모델로 한다고 밝힘. 곧이어 29일에는 독일 좌파당 공동대표 라퐁텐(Oskar Lafontaine)를 초청하고 당 추산 3천명, 언론 추산 1천명의 지지자들을 모아 창당 설명회를 개최. 이 회합의 폐회사에서 멜랑숑은 환경주의자들의 정당 가입을 요청했으며, 다가오는 유럽의회선거에서 공산당과의 연대를 통한 좌파전선(Front de gauche) 결성을 약속하고 반자본주의신당의 브장스노와도 만나 연대를 논의하겠다는 견해를 밝혀 언론의 주목을 받음.

- 좌파당은 창당 이후 대부분의 선거에서 공산당과 연합 전략을 유지했고, 2009년 이후 주요 선거에서 성과를 냈음. 2009년 유럽의회선거에서는 반자본주의 신당(NPA)이 4.88%의 득표율로 의석을 얻는 데에는 실패한 반면, 좌파전선은 약 6.1%의 득표율로 유럽의회의석 5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냄. 이어지는 2010년 지역(레지옹)의회 선거에서는 전체 7.49%의 득표로 97명 지역의원을 당선시켰는데, 사회당, 대중운동연합, 녹색당, 국민전선에 이어 5위에 해당하는 결과였음. 2012년 대선 1차투표에서 멜랑숑은 전체 투표자의 11.1%에 해당하는 약 4백만 표를 얻어 사회당의 올랑드(28.63%), 대중운동연합의 사르코지(27.18 %),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17.9%)의 뒤를 잇는 4위 후보자가 됨. 선거 직전의 여론조사에서 멜랑숑은 14-5%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마린 르펜과 순위를 다투었기 때문에 예상보다 저조한 결과였으나, 1980년대 이후 처음으로 급진좌파 정당이 대선에서 10% 득표율을 기록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음. 그러나 멜랑숑의 잠정적인 정계 은퇴 선언 이후 2014년 시의회 선거, 2014년 유럽의회선거에서 좌파전선은 6% 중반대의 지지만을 유지하고 있음. 공산당이 독자적으로 5% 정도의 지지를 유지해왔었기 때문에 양당 연대의 실질적인 시너지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음.

  표 1. 프랑스 역대 대선 득표율

  표 2. 프랑스 역대 총선 득표율

  표 3. 프랑스 역대 유럽의회선거 득표율

  그림 C. 좌파당의 로고와 당사(상), 2012년 대선 좌파전선 포스터와 패러디(이슬람에게 권력을)(하)

3. 극우정당의 부상과 좌파 지지층 흡수

(1) 국민전선(FN)의 정상 정당화

- 반자본주의신당(NPA)의 몰락과 좌파전선(FG)의 현상유지 상황 반대편에는 국민전선(FN)의 화려한 부상이 있음. 프랑스 정치사에서 극우정당은 지속적인 명맥을 유지했으나 그 영향력은 매우 적었음. 국민전선이 정치 무대에 본격적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임. 초대 당수였던 장-마리 르펜(Jean-Marie Le Pen)은 세계화와 유럽통합을 프랑스 제1의 적으로 규정했으며, 경제 불안정과 실업 책임을 이민자들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지지층을 늘렸음. 그는 일반적으로 비-가톨릭 남성층, 소상공인 및 실업자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었고, 2002년 대선에서 좌파 후보들의 분열로 결선투표에 오르기도 했음.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주요 선거에서 특별한 성과를 내지는 못했음. 장-마리 르펜은 기본적으로 홀로코스트를 유대인 학살로 인정하지 않는 파시즘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있었고, 대중적 인기를 넓히기에는 한계가 있는 인물이었음. 국민전선은 2007년 대선에서 10.4%, 2007년 총선에서 4.3%, 2009년 유럽의회선거에서 6.3%, 2010년 지역선거에서 11.4%의 득표를 기록하며 고전함.

- 하지만 2011년 장-마리 르펜의 딸인 마린 르펜(Marine Le Pen)이 당권을 잡으면서 국민전선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함. 마린 르펜은 파시즘, 반인종주의, 국수주의 등을 떠올리는 기존 정당 이미지에서 벗어나고자 했으며, 세대교체를 단행하여 젊은 정당으로의 변모를 꾀함. 지도자 교체와 함께 선거 득표율은 꾸준히 상승했는데, 2011년 도의회선거에서 15%, 2012년 대선에서 17.9%, 2012년 총선에서 13.6%를 기록했음. 2014년 유럽의회선거에서 얻은 24.9%의 득표는 창당 이래 최고 기록을 경신함. 국민전선 및 장-마리 르펜은 1980년대 이래로 20% 대 이상의 지지를 쉽게 확보하지 못했으나, 2011년 이후 국민전선에 대한 지지율은 약 25%대에, 마린 르펜에 대한 지지율은 30%대에 가깝게 형성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음(그림 3 및 그림 4 참고).

  그림 3. 국민전선 지지율변화 : 1984-2014년 [출처: http://www.tns-sofres.com/dataviz?type=3&code_nom=fn(검색일: 2014.12.16.).]

  그림 4. 장-마리 르펜 및 마리 르펜의 지지율 비교: 1983-2014년 (좌)장-마리 르펜 (우)마리 르펜 [출처: http://www.tns-sofres.com/dataviz?type=2&code_nom=lepenmarine 및 http://www.tns-sofres.com/dataviz?type=2&code_nom=lepen(검색일: 2014.12.16).]

- 이러한 변화를 주도한 정당 내적 변화의 핵심은 탈악마화 전략이라 볼 수 있음. 국민전선은 파시스트 정당의 외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인종주의 입장을 철회하는 다양한 시도를 벌여옴. 마린 르펜은 아버지와 달리 파시즘을 혐오스러운 것으로 간주하고, 유대인 학살을 ‘야만의 극치’라 강조함. 2011년 4월 지역의회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국민전선의 한 청년당원은 나치 찬양 사진을 유포한 죄목으로 출당, 2011년 7월에는 노르웨이 테러사건을 블로그에서 옹호한 당원은 곧 당적에서 제외됨. 2012년에는 무슬림 이민자 비하 만평을 게재했던 하원의원후보가 당의 권고로 블로그를 폐쇄함. 마린 르펜은 공개적으로 이스라엘 주 유엔 대사를 면담하고, 유대인 변호사를 고용하는 등 유대인 혐오 전통에서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함. 국민전선은 다른 정당과 다를 바 없는,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정상’ 정당으로 각인되기 시작(Wieviorka 2013, 47-8).

- 그럼에도 국민전선이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공격을 중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함. 마린 르펜은 프랑스가 무슬림들에 의해 점령당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끊임없이 부각시킴. 2012년 대선 당시에는 정부 공무원들이 이민자 수를 조작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으며, 이민자에 대한 사회부조를 중단하고 실업 이민자들의 본국송환을 촉구하는 입장을 유지했음.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정당 이미지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무슬림 이민자에 대한 공격을 지속하는 자기모순적인 분열 속에서 성장을 계속하는 아이러닉한 상황 발생.

- 마린 르펜과 국민전선이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새롭게 기댄 전략은 프랑스 정치 고유의 정교분리(laïcité) 이념을 활용하는 것임. 마린 르펜은 2011년 9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함. “사람들은 우리가 구 병영시설을 파리 미라 가(街)의 무슬림 신도들에게 빌려줘야 한다고 한다. ... 한 술 더 떠서 파리 도지사는 기도시설 전환을 위한 비용까지 내주겠다고 한다. 1905년의 법은 어디로 갔는가? 어떤 권리로 공권력이 라이시테와 우리의 법을 조롱하는가?” 이는 파리 18구에서 매주 금요일 마다 수천 명의 무슬림 신도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기도하는 것이 사회적 문제가 되자, 정부가 기도할 수 있는 실내 시설을 제공하기로 한 조치에 대한 반박이었음. 마린 르펜은 이교도들에 대한 대중적인 반감을 감정적으로 공략하기 보다는, 민주주의와 국가 중립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통해 보다 합리화된 비판 근거를 제시함.

- 국민전선은 유사한 논리로 무슬림을 배려한 학교 급식을 비판. 기존에는 학생들을 위해 이슬람교 정통방식으로 도축된 할랄 음식을 제공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국민전선은 ‘소비자 건강 보호’와 ‘동물 보호’의 측면에서 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 특정 종교를 배려한 급식이 공교육 정신에 어긋난다는 논리도 재차 강조함. 이는 무슬림을 직접 공격하지 않더라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우회 전략이었음(Wieviorka 2014).

(2) 노동자, 청년 지지층의 흡수

- 국민전선은 주류 정당의 엘리트주의에 대한 비판을 앞세워, 소외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임을 강조하고 포퓰리즘 정치를 강화함.
대중운동연합(UMP)과 사회당(PS) 양당은 정치귀족을 형성하고 있으며, 농민, 실업자, 노동자, 은퇴자, 지방 거주자 등의 주변인을 대변할 수 있는 정당은 국민전선뿐이다. 농민, 실업자, 노동자, 은퇴자, 지방거주자들은 광란의 금융 시스템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자(invisibles), 망각된 자들(oublié)이다. 트리플 A라는 신을 신봉하는 대중운동연합(UMP)-사회당(PS)의 정치귀족들에 비하면 당신들은 아무것도 아니다(triple rien)(마린 르펜의 2011년 12월 1일 메츠(Metz) 연설, Wieviorka 2013 37에서 재인용).

- 같은 맥락에서 국민전선은 전통적으로 좌파 정당 지지층이었던 노동자들의 지지를 확대함. 2011년 Rue 89의 인터뷰에서 한 젊은 노동자는 “사회당을 지지하는 것은 경영자를 위한 것이고, 극좌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노동자뿐만 아니라 이민을 지지하는 것이므로, 프랑스의 노동자와 일자리를 보호하는 정당은 오직 국민전선이다.”는 논리를 밝힘.2 2014년 유럽의회선거 당시 전체 생산직 노동자의 41%, 사무직 노동자의 35%가 국민전선에 표를 던졌으며, 프랑스 북부 및 동부에서는 노동자 50% 이상의 지지를 확보한 지역도 있었음. 특히 학력 수준이 낮을수록 국민전선을 지지하는 패턴이 등장하는데, 이는 노동시장에서 열악한 위치를 차지하는 자들에게 국민전선의 전략이 설득력 있게 전파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3 이러한 추세는 2017년 대선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는데, 2014년 1월의 한 설문을 살펴보면 마린 르펜은 젊은 생산직, 사무직 노동자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음(표 4. 참고).

- 표 5는 2014년 9월 2017년 대선 후보를 가정하여 실시한 여론조사임. 여기서 두 가지 충격적인 사실을 발견하게 되는데, 첫째는 사회당 후보와 국민전선 후보가 대선 결선 투표를 치르게 된다면, 노동자들이 사회당 후보가 아닌 극우 후보를 적극 지지할 수 있다는 사실임. 사무직 노동자보다 생산직 육체노동자들이 국민전선을 더 지지하고 있다는 점도 중요함.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하는 지점은 극우정당을 배제하던 중도우파-좌파 지지자들의 암묵적인 연대가 무너졌다는 것임. 사르코지와 마린 르펜이 대선 결선투표에서 경쟁하는 상황을 가정할 때, 좌파전선 지지자들의 47%, 사회당 지지자들의 29%가 마린 르펜을 지지하며, 반대로 올랑드와 마린 르펜이 맞붙는 경우 대중운동연합 지지자의 62%가 마린 르펜을 지지할 의사를 보였음.

  그림 D. ‘르펜=인민’ 공식의 이미지화

  표 4. 2017년 대선 1차 투표 지지 후보 설문- 사르코지, 올랑드 출마의 경우 (2015년 1월) [출처: Ifop/iTÉLÉ/Sud Radio “Les intentions de vote pour l'élection préesidentielle de 2017”(2015년 1월 설문).]

  표 5. 2017년 대선 결선투표 지지 후보 설문: 올랑드 및 사르코지 대(對) 마린 르펜 가상 비교 [출처: Ifop/Le Figaro. “Les intentions de vote pour l’élection présidentielle de 2017”, (2015년 1월 설문 조사).]

4. 급진 좌파 정당의 딜레마

1) 우파의 좌파 전략 전취

(1) 반 세계화 담론의 극우화


- 프랑스 국민들은 여타 유럽 국민들보다 상대적으로 세계화에 더 큰 반감을 드러내왔는데, 국민전선은 이에 호응하여 세계화를 종말론적인 현상으로 묘사하는 데에 주력함. 2013년 5월 마린 르펜이 발표한 다음과 같은 담화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이제 국민전선과 극좌 정당들의 반세계화 담론은 표면상으로 구별하기 힘든 단계에 이름.

“이 야만적 세계화는 개인을 생산자-소비자 역할로 환원시킨다. 세계화는 인민들을 이 대륙에서 저 대륙으로 끌고 다니면서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인력으로 취급한다. 초자유주의 세계화는 개인을 각자에게 적대적인 다층적인 공동체 안에 가둬놓는다. 이 야만적 세계화는 문명 간의 충돌을 원하는데, 개인들을 근본주의적인, 극단주의적인, 살인적인 이데올로기에 지치게 하고, 정치의식과 인간성을 망각하게 만든다. 초자유주의적 세계화는 기회 평등을 위한 최상의 도구인 공화국 교육을 몰락시킨다. 이 초자유주의적 세계화는 우리 사회의 기본 세포이자 불확실한 삶으로부터의 대피소인 가족을 몰락시킨다. 따라서 우리를 스스로 규정하길 원한다면, 야만적 세계화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Perrineau 2014, 92-3에서 재인용).

- 자본주의의 사적 소유권 원칙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노동자의 안정적 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경제 프로그램을 민족주의와 결합시키는 방식. 즉, 자본주의의 전복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 하지 않으면서, 프랑스 국민들의 완전 고용과 임금 인상을 약속하고, 자본주의 그 자체가 아닌 초자유주의를 전복의 대상으로 설정하는 전략임(Bernier 2014, 62-3). 이를 근거로 국민전선은 유럽통합 문제와 관련해서도 매우 단호한 입장을 제시. 마린 르펜은 유럽의 경제 통합에 부작용을 지적하면서, 국가는 조정자 위치에서 경제 분야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어야 하며, 중앙은행을 통제하고 국가 부채를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국가 개입주의 원칙을 강조.

(2) 우파 포퓰리즘의 좌파 유산횡령

- 이에 앞서 사르코지는 좌파의 상징을 활용하는 우파 포퓰리즘을 선보임. 현재 극우 국민전선은 사르코지가 이끈 포퓰리즘을 이어 받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좌파의 노동 담론을 유사한 방식으로
이념성향과 상관없이 여러 위인들을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했으며, 좌파의 상징적 인물인 조레스(Jean Jaures), 블룸(Léon Blum), 모케(Guy Moquê̂t) 등이 마치 프랑스를 위해 희생한 인물인 것처럼 묘사함. 역사 왜곡이라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좌파 인사들에 대한 언급을 진행한 것은 좌파의 역사를 하나의 프랑스 ‘애국주의’ 안으로 통합하려는 의도였음. 사르코지는 2007년 대선 캠페인에서부터 자신이 좌파보다도 더 노동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후보라며 다음과 같이 언급함.

나의 프랑스는 조레스와 블룸의 좌파를 믿는 노동자들의 국가이지, 노동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고 복지부동하는 좌파를 인정하는 노동자들의 국가는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싶다. ... 조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계속해서 항상 판결을 내리는 것이 중요지 않다. 중요한 것은 시대마다, 세대마다 인간들이 어떤 삶의 방식을 취하고 있는지, 어떤 어려움에 빠져있는지, 그들 업무의 위험과 부담이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 질문하는 것이며, 무거운 짐에 눌리는 그들을 인정해 주는 것이다.” 좌파들은 왜 조레스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인가?(2007년 1월 14일 연설)

- 사회당 대표였던 올랑드는 조레스가 사르코지에 의해 인용되는 것은 ‘유산 횡령’(captation d'heritage)이라 비난(Le Figaro 2007년 1월 15일자). 공산당 기관지인 뤼마니떼(L'Humanité)는 사르코지는 조레스가 아니라 프랑수와 기조를 인용했어야만 했다고 비판했으며(Humanité 2007년 1월 16일자), 공산당 대표였던 뷔페(Marie-George Buffet)는 담화를 발표하여 나치에 의해 17세에 총살당한 기 모케를 극우 노선의 사르코지가 인용한다는 것은 모욕이라 주장. 이러한 비판에 대해 사르코지는 “사회당 당수인 당신이 상속받을 수 있다면, 모든 프랑스인들도 상속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상속권 포기를 제안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한평생 노동을 해왔고, 우리는 그것을 물려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라며 응수(2007년 4월 12일, Toulouse 담화). 결과적으로 2007년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사르코지는 조레스를 97번, 블룸을 50번 언급하였고, 극좌 후보였던 라기예(Arlette Laguiller)만큼이나 ‘노동자’, ‘노동자 문화’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함(Calvet and Véronois 2008, 119-123).

“노동자들은 노동을 해방의 조건으로 존중하는 문명과 인간을 대표하고 있다. ... 나는 노동자 문화에 대해 말하려고 여기에 왔다. 왜냐하면 이 지역에는 노동자로 성장하는 방식과, 노동자가 삶과 노동에 연관되는 특수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 브장송에는 섬유와 시계 공업의 오랜 노동자 문화가 있다. 양자 모두 위기에 심하게 타격을 받았다. 이 문화는 죽지 않았으며, 사라지게 내버려두어서도 안 된다.”(2007년 3월 13일 Besançon 담화).

- 사르코지의 친 좌파적 가치관 표명은 대선 캠페인에서 끝나지 않고 집권 이후에도 진행됨. 2007년 9월 기 모케의 처형지를 방문하고 그가 사형당하기 직전에 가족에게 보낸 편지를 기일인 10월 22일에 모든 프랑스 고등학생들이 읽도록 지시함. 이 조치는 역시 좌파들의 반발에 직면하였고 편지 낭독 행사를 거부하는 교사들이 늘어 논란을 일으킴. 사르코지와 대중운동연합(UMP) 측은 정부청사에서도 행해지는 당연한 의례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우스운 논쟁이라 일축하였고, 공산당 대표인 뷔페는 레지스탕스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편지 낭독에 참여할 것을 독려(Le Nouvel Obserbateur 2007/10/22). 노동의 가치에 대한 적극적인 언급도 반복됨. 사르코지는 집권 직후인 2007년 8월 30일 프랑스경제인연합(MEDEF) 총회의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함.

나는 노동의 종말이라는 이데올로기와 단절할 것이다. 모두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이 잘못된 관념과 단절해야 하며, 일자리를 나눠야 한다. 나는 노동을 경시하는 이러한 정치와도 단절할 것이다. 지난 30년 간 그러한 정치가 프랑스인들의 노동을 방해해 왔으며, 프랑스의 노동자들을 타락시키고 빈곤하게 만들었다(Sarkozy 2007).

2) 좌파 정책의 한계: 보호주의와 유럽통합 이슈

- 국가 간 자유무역에 저항하는 국가보호주의 이념은 좌파의 입장과 관련된 것으로 이해하기 쉬우나, 프랑스에서는 보호주의를 우파 정당의 전통에서 오히려 더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음. 프랑스의 드골주의 계파는 다른 국가들의 우파 정당들과 달리 자유시장이론을 지속적으로 지지한 경우가 없었으며, 드골주의와 구별되는 자유주의 우파도 기본적으로 보호주의를 지향함. 1980년대 사회당 정부와 우파는 세계화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공유했으며, 세계화에 반대하는 보수적 드골주의자였던 파스카(Charles Pasqua) 전 내무장관과 반(反) 신자유주의 운동의 대표 주자였던 보베(José Bové)의 입장이 일치하는 상황이 발생함.

- 유럽 경제위기 이후 ‘자유무역주의’와 ‘보호(무역)주의’의 쟁점은 다시 부각. 그런데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전선과 마린 르펜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며 “프랑스인 먼저”(Les Français d’abord)라는 보호주의 가치를 전면에 내걸었을 때 급진좌파 정당들이 이에 상응하는 선명한 슬로건을 제시할 수 없었다는 점임. 반자본주의신당은 맑스를 언급하며 “보호주의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의 잘못된 연대를 창출하고, 외국의 노동자를 적대시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주장함. 반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자유무역 대(對) 보호주의라는 딜레마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었으나, 반자본주의신당은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상품운송에 대한 킬로미터당 세금’을 제안했을 뿐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함. 좌파전선 역시도 프랑스 경제 주권 수호를 위한 보호주의를 명시적으로 제안하지 않음. 보호주의에 대한 논의가 점차 확산되자 2012년에 이르러 멜랑숑은 유럽연합을 경계로 한 보호주의 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 “프랑스는 세계화된 시장 자본의 압력과 저임금 생산에 맞서, 유럽 공동의 사회규범과 환경에 대한 보호 기구를 위해 행동할 것이다. 예를 들어 1) 유럽에 역수입되는 상품에 대한 국가 과징금 징수, 2) 상품 운송을 줄일 수 있는 킬로미터당 세금 도입. 징수된 과징금과 세금은 사회 및 환경 개발 정책 지원 자금으로 활용될 것이다.” 하지만 멜랑숑의 주장은 유럽 연합 28개국을 하나의 권역으로 설정한 보호주의이며, 프랑스의 국가 이익 수호를 전면에 내세우는 국민전선의 보호주의에 맞설 수 있는 대안 담론은 부재한 상태임.

- 유럽연합 문제에 대해서도 급진좌파 정당들은 국민전선의 ‘유럽연합 탈퇴론’에 대적할 만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음. 마린 르펜은 다음과 같이 ‘유럽연합 탈퇴’를 과감하게 주장. “유럽연합은 모든 문제를 악화시킨다... 자유롭고, 주권을 보유하고, 번영하고, 자랑스러운 인민의 유럽을 만들기 위해, 프랑스 국민들에게 다른 희망을 제공해야 하며 유럽 인민의 봄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는 대통령에게 2014년 1월 프랑스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하는 국민투표를 개최할 것을 요구한다.” 반면, 급진좌파 정당은 유럽연합 해체가 아닌 ‘다른 유럽 건설’을 대안으로 제시해 옴.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좌파전선은 “유럽 및 국가 차원의 일반이익과 인민주권에 기초한 새로운 버전의 사회와 유럽”을 지향해야 한다고 밝혔으며 ‘민주적 통제를 받는 유럽중앙은행,’ ‘생산성 논리에 종속되지 않는 유럽농업정책,’ ‘인민주권의 통제를 받는 국가 간 협력정책’ 등 세세한 강령을 제시.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가능한 많은 국민전선 출신 유럽의회의원을 선출해야 한다는 것이 좌파전선의 요구사항이 됨. 2010년 9월 좌파당은 여기서 한 층 수위를 높여 리스본 조약 탈퇴 및 유럽연합 불복종을 대안으로 제시했으나, 유럽연합의 사법적 통제에 대한 저항 담론이었을 뿐 유럽연합의 화폐 정책 거부, 혹은 유로존 탈퇴를 지향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음.

5. 결론

1) 반자본주의신당과 좌파전선은 2000년대 프랑스 주요 선거에서 눈에 띠는 성적을 냈으나, 양당의 약진은 점차 동력을 상실해가고 있음. 2002년 대선에서 트로츠키주의 정당들이 총 10% 넘는 득표에 성공했으며, 뒤이어 2007년 대선에서는 브장스노의 선전이 이어졌고, 이후 2009년 유럽의회선거 국면까지 브장스노와 반자본주의신당의 인기는 최고조에 달했음. 멜랑숑이 주도한 좌파당과 좌파전선 역시 2009년 창당 직후부터 각종 선거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했음. 2009년 유럽의회선거에서 의원 5명을 배출했으며, 2012년 대선에서 멜랑숑은 마린 르펜과 3위를 다투며 10%가 넘는 득표율 확보에 성공함. 그러나 2009년 유럽의회선거 이후 브장스노의 이름은 언론에서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반자본주의신당은 1%의 득표를 확보하지 못하는 정당으로 후퇴. 좌파전선 역시 좌파당과 공산당 간의 내적 갈등을 안고 가고 있으며, 2014년 각종 선거에서는 6% 정도의 지지를 확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음.

2) 급진좌파 정당의 몰락 혹은 정체와 달리 국민전선은 2000년대 후반 이후 비약적인 발전에 성공함. 마린 르펜이라는 대표의 등장과 정상정당으로의 이미지 변신으로 프랑스 국민들은 국민전선을 더 이상 위험한 반사회적 정치조직으로 인식하지 않음. 국민전선은 반유대주의 성향을 대폭 완화하고, 프랑스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입각한 무슬림 공격을 진행하고 있음. 또한 프랑스의 소외 계층, 노동자 계층을 정당 지지 기반으로 확보하는 데에 성공했는데, 좌파의 담론을 흡수하여 자유시장경제의 폐해를 지적하면서, 세계화와 이주민 유입으로부터 프랑스 국민을 수호할 수 있는 정당으로 어필하고 있음. 사회당과 국민전선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대결하는 경우 프랑스 노동자들의 57-8%가 마린 르펜에게 투표할 의사가 있다는 충격적인 조사 결과가 나옴.

3) 마린 르펜의 국민전선의 약진이 가능했던 것은 당내 인적 쇄신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당 정체성을 바꾸는 전면적인 강령 변화가 주요했음. 또한 ‘유럽연합 탈퇴’라는 파격적인 슬로건은, 실현가능성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더라도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음. 국민전선은 좌파정당보다도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 노동자에게 더 가까운 정당으로도 변모하고 있으며, 최근 지방자치단체 선거에서는 지역 노조대표가 국민전선의 후보로 출마하는 사례도 있었음. 사르코지가 강력한 이민자혐오 정책으로 집권한 이후 우파정당과 극우정당 간의 경계가 급속도로 허물어졌으며, 국민전선 부상의 최대 피해자는 이제 대중운동연합이 될 수도 있음. 결국 국민전선의 성장이 프랑스 정치 구조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이러한 돌풍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임.

* 주

1) 통상적으로 이념 스펙트럼 상에서 사회당보다 왼쪽에 있는 정당들을 ‘극좌 정당’ 혹은 ‘좌파의 좌파 정당,’ ‘비(非) 사회당 좌파’로 일컫는데, 필자는 반자본주의신당(NPA)과 좌파전선(Front national)을 하나로 지칭하기 위해 ‘급진 좌파 정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것임.
2) http://rue89.nouvelobs.com/carte-delecteur/2011/09/19/voter-fn-pour-certains-ouvriers-c-est-retrouver-une-identite-collective-2
3) Ifop. 2014. “Européennes 2014 : le FN étend son audience et se renforce dans ses bastions.” http://www.ifop.com/?option=com_publication&type=publication&id=747(검색일 2014.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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