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혐오와 불신, 국회 무용론은 누구에게 이익일까?

권역별 비례대표제 토론회...“비효율 관료와 정부 견제할 의회가 커야 갈등 줄어”

한국 정치는 혐오와 불신의 대상이 됐다. 혐오와 불신의 대상이다 보니 자연스레 국회는 하는 일 없이 국민 세금만 축내는 곳이란 인식도 생겨났다. 국회가 혐오와 불신의 대상이 되면서 가장 혜택을 받는 곳은 행정부다. 4대강, 자원외교 등에서 행정부가 수십조 원의 세금을 낭비했지만, 여당은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를 무능과 비리의 방탄 의회로 만들고 있다. 국회법 처리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한국은 3권분립이란 말만 난무할 뿐 대통령이 국회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나라임이 드러났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다시 충돌하고, 또다시 국회 불신이 생겨나고, 국회의원은 다 똑같다는 인식이 악순환처럼 생긴다. 이런 악순환으로 국회 의원을 줄이는 것이 정치 혁신이라는 반 정치가 설득력을 얻게 되고, 국회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과연 국회 무용론과 국회 의원에 대한 혐오로 이익을 얻는 세력을 누구일까.


내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선 비례의석 확대와 의원 정수 확대가 선거제도 개혁의 주요 이슈로 부상했지만, 정치혐오에 기반한 국민 여론조사 결과는 의원 정수 확대나 비례 의석 확대엔 부정적이다. 정치학자들은 이 같은 정치혐오가 결국 인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게 하는 대의 정치를 만든다고 지적했다.

3일 오전 새정치연합 혁신위원회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토론회를 열고 선거제도 개선의 중요성을 짚었다. 발제자들은 선거제도 개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정치에 대한 불신부터 걷어내고 의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했다.

발제를 맡은 박동천 전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선거 불신은 선거를 두려워했던 박정희가 선거운동을 못 하게 막고, 교과서에도 선거에 대한 불신을 담도록 만들어 한 세대가 지나자 선거는 더러운 것이 됐다”고 한국 사회 국회 불신의 배경을 설명했다. 박 교수는 “국회가 무능한 이유는 국회법 개정안 처리나 세월호 문제 국정조사에서 여당이 대통령에 꼼짝 못 하고 그대로 따르는 17세기 영국 토리당보다 못한 왕당파이기 때문”이라며 “실제 국회만이 인민을 대표해 인민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유일한 기관이며, 모든 권력을 감시할 유일한 권력인데도 100-200만 명의 공무원을 불과 300명의 의원과 1,700여 명의 보좌진 정도가 감시하고 있다. 국회 무용론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법의 지배라는 원칙을 생각할 때 법이 권력을 지배하고, 권력이 법을 따라야 하며, 권력기관의 모든 행위가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며 “따라서 대의민주주의 기본원칙은 의회가 우위에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회의 행정부 견제 기능을 복원하기 위해선 연합과 동맹의 정치가 가능하도록 선거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의회와 정치 혐오를 통해 의회를 축소하면 갈등은 더 늘어난다는 여러 지표를 소개했다. 박명림 교수는 “한 세기를 걸쳐 살펴보면 의회가 강한 국가가 선진국가가 될 수 있다. 선진국들이 의회 민주주의를 하는 게 아니고, 의회 민주주의를 하지 않으면 선진국가가 되기 어렵다”며 국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국회처럼 비판받는 조직도 없다. 예산권과 인사권, 감사권 전부 대통령과 행정부가 갖고 있는데도 국회의 견제와 비판, 감시조차 정쟁으로 만드는 반 정치와 반 의회, 반 효율성 담론은 (의회) 민주주의가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며 “이제는 무엇이 효율적인지 물음을 던져야 한다. 의회 규모가 클수록, 국회 의원 1인당 대표 인구가 적을수록 갈등이 현저히 줄어든다”고 밝혔다. 이어 “투표율이 높은 나라와 노조 조직률이 높은 나라를 보면 두 개가 일치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다. 투표율이 놓은 나라들이 노조 조직률도 높고 사회갈등률이 떨어진다”며 “의회 규모가 크다고 비효율적이고 정치비용이 크다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의회가 확대되는 대신 의원 세비는 다른 나라에 비해 많다며 세비 50-60% 감축을 제안했다.

결국 정치 혐오를 줄이기 위해선 최소한 선관위가 제시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김형철 성공회대 교수는 권역별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 도입에 따른 기대효과로 “거대정당의 과다대표와 군소정당의 과소대표라는 정치적 대표성의 왜곡을 극복할 수 있다”며 “선거 비례성이 높아져 유권자들의 의사가 왜곡되지 않게 되고, 사표의 축소와 유권자가 자신의 선호를 소신 있게 표시할 수 있다는 점이 장점이다”라고 밝혔다. 또 “정당득표율이 정당 의석수를 결정해 정당은 책임정치를 실현하게 되면서 유권자들로부터 심판받고자 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데다 입법부와 행정부 사이 상호견제 능력을 향상시킨다”며 “높은 정당 득표율을 획득하기 위해 특정 지역이 아닌 전국을 대상으로 전국적 이슈를 정책화해 지역주의 완화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권역별 소선거구-비례대표 연동제의 한계에 대해선 “계층/계급, 직능, 사회적 약자 등과 같이 전문성을 높이고,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했던 사회세력의 이해와 요구를 대표하기 위한 비례대표 본래 취지가 약화할 수 있다”며 “본래 취지와 달리 지역적 이해와 요구가 우선되는 또 다른 지역대표가 탄생하는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토론자로 나온 김태년 새정치연합 정치개혁특위 간사는 “새누리당이 의원 정수도 못 늘린다고 하고, 지역구 의석도 못 줄인다고 하는 상황에서 비례대표 54석을 권역별 비례로 하자는 제안을 지난주에 했다”며 “54석으로도 충분히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있다”고 밝혀 비례대표제 취지 훼손 논란을 일으켰다.

김형철 교수는 “권역별로 하려면 비례의석을 대폭 확대해야 비례대표제의 취지와 목적을 훼손하지 않고 지역적 안배를 고려할 수 있다”며 “만약 54석으로 하면 전문가나 여성 안배가 아닌 지역적으로 안배가 된다. 지구당 위원장이나 지구당을 담당하려는 사람이 비례후보 공천을 신청하면 그들 중에서 뽑게 된다. 배제된 사회적 계층의 정치적 대표 가능성은 전혀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김태년 간사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경기도당 1번은 비정규직 여성, 2번은 장애인, 3번은 사회적 경제 관련 후보를 공천했다”며 “칸막이를 쳐서 호남 지역은 농업을 더 강조한다든지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