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흑기로 접어든 한국 경제

[양규헌 칼럼] 가계부채와 노동개혁

실패한 부동산 정책과 가계부채

가계부채 문제가 재차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8월 이후 박근혜 정부의 경제수장인 최경환 부총리가 쏟아낸 각종 경기부양 조치에서 출발한다. 이는 '최경환노믹스'로 지칭되는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이면에 가려진 각종 부동산 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가 21차례에 걸쳐 부동산 활성화 대책을 내놓은 데 이어 박근혜 정부 역시 수도권을 중심으로 거품이 빠지는 부동산을 방지하기 위해 지난해 '4.1부동산 종합대책'을 시작으로 최근까지 모두 8차례 대책을 시행했다.

이중에서도 지난해 8월 이후 직접적인 부동산 대출 규제책이었던 LTV(주택담보 인정비율)와 DTI(총부채 상환비율)의 완화와 함께 한국은행의 두 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하를 계기로 가계부채가 급증세로 돌아섰다. 결국 정부가 '일반 국민에게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메시지를 남발하면서 젊은 세대가 빚을 내서 집을 많이 샀고, 이런 과정을 통해 거품은 꺼질 줄 모르고 그렇지 않아도 심각하던 가계부채가 급등한 것이다.

갑자기 빚내서 집사지 말라는 정부의 태도는 위기가 심각하다는 반증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올해 7월 22일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서둘러 발표했다. 이렇게 급작스럽게 정책 급선회의 배경은 부동산으로 경제를 살리려는 잘못된 정책의 결과, 위기가 목전에 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정치적 부담 때문인지 LTV와 DTI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번 대책은 변동 만기 일시상환 대출을 고정 분할상환 대출로 전환하겠다는 것이 골자다. 원금상환에 대한 부담을 채무자에게 주고 대출심사를 강화해 가계부채를 줄여보겠다는 것이 목적이다. 이랬다저랬다하는 정부정책이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주먹구구식이라 ‘오락가락하는 부동산 대책’, ‘투기만 살찌게 하는 반국민적 정책’ 등의 비판이 쏟아지자 청와대는 서둘러 '빚내서 집 사라 마라'한 적 없다며 국민들을 바보취급하고 있다. 그간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서 ‘빚내서 집사라’는 정책을 빼면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정부의 규제완화인 금리인하로 전세대란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빚을 내서 집을 샀다는데, 문제는 집을 팔려고 해도 팔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저출산으로 인구가 줄어들고 불안정노동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거품이 잔뜩 들어간 집을 누가 사겠는가. 출산율은 1.19%로 세계 최고의 기록이다. 박근혜 정부가 오로지 집사기만을 부추긴 이유는 금융권과 건설재벌을 살찌움으로써 경제를 살리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의 결과였다. 그러나 정부는 심각한 부채상황에서도 이 정도는 충분히 관리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치고 있지만 생각해 볼 문제다. 지금 상황에서 주택 1%만 경매에 나와도 주택가격은 폭락한다. 거품의 가장 큰 문제는 꺼질 때 정상적인 수준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민생 살린다며 빚 폭탄만 안기는 정부

모든 정치적 쟁점과 무능이 드러날 때마다 ‘민생 살리기’를 유행가처럼 불렀던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은 입으로는 민생을 떠들지만, 실제는 국민들에게 빚 폭탄을 안겼다.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자원외교 등으로 100조 원을 쓰레기통에 버렸고, 박근혜 정권은 임기 중반임에도 150조 원을 버렸다고 한다. 두 정부가 250조 원의 어마어마한 돈을 버렸는데 이건 순전히 노동자, 민중을 빚더미에 올려놓은 꼴이다. 어린 아이들까지 한 사람당 1억5천만 원의 빚을 안겼으니 말이다.

지금도 돈은 쓰레기통에 마구 버려지고 있다. 차라리 아무 짓도 안하고 국민1인당 1억5천만 원씩을 나눠줬다면 경제가 좋아져서 팽팽 돌아갈 것이다. 노동자, 민중은 국가가 진 빚 부담과 가계부채라는 이중의 부담까지 안고 상당 기간 어려운 삶이 될 수밖에 없다.

잘못된 경제정책의 여파로 국가부채와 가계부채에 따른 위기가 심각해지자 정부는 책임회피용 폭탄돌리기를 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정부대책팀을 만들어 관리하다가 감당이 어려워지자 대책팀을 해체하고 금융위원회가 알아서 하라고 넘기고 있다. 같은 정부 내에서 하는 짓거리에 대해 뭐라고 하고 싶지 않지만, 불장난은 기재부가 하고 책임은 금융위가 지라는 꼴이니 이런 정부 정책에 무슨 신뢰가 있겠는가

거품 정책으로 내수를 살린 경우는 어디에도 없는데, 거품으로 경제를 살리겠다고 야단법석을 떤 창조경제 대통령의 잘못된 정책에 대한 책임과 반성이 없으니 남은 임기 기간에도 기대할 것은 없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제를 살리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부총리도 민생을 살리기보다는 책임을 전가할 구실만 찾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집값은 너무 비싸고, 전세가 집값에 육박하고, 내수경기 활성화 정책은 없고, 가계부채와 함께 경제 위기가 목전에 치밀어 오르자 고작 생각해 낸다는 발상이 이제는 ‘노동자 때려잡기’다. 잘못된 정책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 민중에게 전가하고 책임져야할 자들은 정치적 책임조차 지지 않고 그 자리에 있다는 것은 교육상으로도 좋지 않다. 그간 현 정부 경제정책의 흐름을 봤을 때, 맥락 없고 반성 없는 가운데 요행만 바라는 정책은 경제를 망치는 과정이었기에 이후 남은 임기가 더욱 두려워진다.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는 노동개혁이 생존의 필수전략이 아니라 자본개혁이 필수전략이다

박 대통령은 8월 6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노동개혁이 ‘생존을 위한 필수전략’이라며 노동시장의 유연안정성, 사회안전망, 100만 명이 넘는 청년실업자에게 질 좋은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반드시 이뤄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잘못하고 실패한 정책에 대한 사과나 반성 없이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난리를 치고 있다. 개혁의 사전적 의미조차도 이해를 못하면서 뭘 하겠다는 건가. 모든 개혁의 의도는 ‘진전하는 발전적 변화를 초래하자’는 데 있다. 따라서 개혁이 필수전략이라면 ‘노동개혁’이라고 떠들 게 아니라 ‘노동조건 개악’이라고 솔직히 말해야 한다. 노동시장도 아닌 노동 자체를 어떻게 개혁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분명한 사실은 개혁이라는 연막 속에는 노동자계급의 기본권을 말살하겠다는 불순한 의도가 번뜩이기에 이는 순리를 뒤집는 반역일 뿐이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 차별화의 문제와 청년 일자리 해소를 위해 노동시장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데, 그 방법론을 보면 임금피크제와 직무성과급제 그리고 노동 유연화다. 이런 방법의 진정성은 제쳐두고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의문이다. 임금피크제는 장기근속자의 임금을 깎아 하향평준화하겠다는 것이며, 해고를 정리해고보다 더 자유롭게 함으로써 자본의 천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벌들은 7백조 원의 돈을 금고에 넣어두고 더 많은 이윤을 획득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사내 유보금이 넘쳐 쌓아둘 곳간을 찾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지만, 재생산에 투자하고 정상적 고용을 확대하는 일은 없으며, 일자리를 늘린다는 어떤 계획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무슨 좋은 일자리 타령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럼에도 임금피크제 등을 통해 일자리를 늘리고 경제를 살린다는 말은 결국 개풀 뜯어먹는 소리일 뿐이다.

직무성과급제 또한 업무성과만을 가지고 저임금 노동자와 불안정한 노동자를 맘대로 해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업무성과에 대한 판단을 노동자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가 임의대로 하는 것이다. 이런 대책이 청년일자리를 늘린다는 논리는 어불성설이다. 더욱 기막힌 논리는 노동자들의 부를 증대시켜 소비를 활성화시킴으로써 내수경제발전을 통해 기업이 성장하는 나라를 만든다는 것이다. 소득이 있어야 소비가 가능한데, 노동자계급의 생존을 벼랑 끝에 내몰면서 노동자가 맘 놓고 돈을 쓸 수 있게 하겠다는 건 무슨 말인지 최근 시중에 나도는 ‘박근혜 통역기’를 통해서만 알 수 있겠다.

위기극복이나 개혁을 말할 때는 어김없이 끌어들이는 노동자

정부와 여당은 경제위기의 원인이 노동에 있다며 노동개혁이 불가피하다고 떠들어대지만, 그 내용은 노동자계급 내부를 갈등관계로 설정하고 세대갈등까지 부추기는 짓이다. 진정 경제를 살리려면 갈등을 조장할 것이 아니라 총투자 총소비를 늘려 당면한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책을 이어야 하지 않는가. 부채탕감과 위기극복 그리고 경제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노동개혁에 승부수를 던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근혜 정권은 그간의 정치 일정 속에서 분할통치와 이데올로기 공세로 표 얻는 재미를 톡톡히 봤다. 따라서 이번엔 세대간(기성세대와 청년세대) 갈등을 통해 지지율을 확보하고자 하는 비열한 정치적 꼼수가 돋보인다. 선거 여왕의 지침에 따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총선에서 표를 잃더라도 노동개혁을 하겠다는 유치한 결의를 다짐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원인을 오판하면 처방과 치유가 더욱 어려워지는 법이다. 말도 안 되는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허울 좋은 ‘생존을 위한 필수전략’이니, 민생이니, 창조경제니 떠들어댈 것이 아니라 자본가 집단과 재벌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현재 단행해야 할 개혁의 대상은 노동개혁이 아니라 무능의 극치인 박근혜 정권 자신을 개혁하는 것과 곳간에 700조 원을 쌓아두고 있는 자본가, 재벌을 해체하는 개혁이라고 해야 설득력 있고 논리적으로도 합당하다. 계속 늘어가는 사내유보금은 결국 불안정노동과 노동유연화, 그리고 노동자계급을 착취함으로써 축적한 잉여물임을 부정할 수 없다.

문제는 노동자계급의 사활을 건 투쟁이다

경제, 민생 공약을 폐기한 박근혜 정권은 다른 정책을 마련할 여력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지난번 공무원 연금 삭감의 연장선에서 노동개혁에 올인하고 있는 현 정부와 집권여당의 태도에서 노동자계급에 대한 증오와 적개심이 보인다. 김무성은 ‘600만 표가 떨어져도 노동개혁을 성사시키겠다’고 했는데, 이런 행위 자체가 저들의 교묘한 선거 전략이다. 정권이 바뀌고 새로운 정권이 등장해도 변하지 않는 하나는 노동기본권과 노동조건이 끊임없이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노동자계급이 이번에 또 밀리면 더 이상 물러설 공간이 없다. 따라서 우리는 김무성의 말처럼 600만 명이 죽는다는 각오로 지배계급의 불순한 발상을 저지할 투쟁이 필요하다. 거듭되는 위기는 자본주의 그 자체에 있다. 그렇다고 자본주의 타령만 하고 있을 수도 없다. 경제위기의 고통을 민중에게 전가하며, 노동자계급을 ‘쓰고 버리는 이쑤시개’로 여기는 지배계급의 정치적 술수와 노동자 때려잡기 전략은 관망할 대상이 아니라 투쟁으로 맞서야 한다. 그 투쟁의 시작은 총파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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