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5남북합의의 정치학과 불안정한 동북아시아

[주례토론회] 진영을 뛰어넘는 외교로의 전환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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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동북아시아 불안정성의 일상화

동북아시아의 불안정성은 역사적으로 중일관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으며, 1895년 청일전쟁 이후 본격화·일상화되었다. 일본은 청일전쟁의 승리로, 그 동안의 동양 패권을 중국으로부터 넘겨받는 계기가 되었고, 대륙으로의 침략을 한층 강화할 수 있게 되었다. 전쟁 결과 일본은 국내의 산업혁명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며 자본주의 국가로 성장하게 되었지만, 패전한 중국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더욱 받게 되는 불운을 겪게 되었다.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중국 중심 세계질서(Sino-centric world order)’에 종지부를 찍고 신흥 일본을 이 지역의 패자로 등장시킨 획기적인 전쟁이었다. 또한 당시 아시아에서 대립하던 영국과 러시아 등 제국주의 열강들간의 영토분할경쟁을 촉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당시 조선은 뿌리깊은 중국의 종주권에서는 벗어났으나, 동시에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대상으로 바뀌어 인적·물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혹독한 수난을 당하였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한반도 분단,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일본은 패전국으로 퇴진하였고 이 자리를 승전국 미국이 차지하면서 새로운 관계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중국의 군사경제적 급성장이 ‘중국위협론’을 정당화하면서 동북아시아 불안정요인의 한 축이 되었다.

이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지형이 매우 복잡하다. 현재 동북아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그 자체가 논쟁거리이자 커다란 화두이다. 한-미 동맹의 방향, 미-일 동맹의 세계화와 ‘중국 위협론’, 일본의 평화헌법개정 및 보통국가론, ‘중국위협론’에 대항하는 중국의 평화굴기(和平掘起)론, 중일간의 패권적 경쟁 등 핵심 현안 어느 하나 일국적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는 문제들은 아니다. 한·중·일의 상호 관계는 갈등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국내정치가 국가주의를 촉발하여 동북아의 불안정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일, 중-일간의 역사전쟁은 심각한 우려를 더해 주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전후세대는 보수화하고 있고 민족주의와 결합해 공격적 태도를 띠고 있다.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 군사력 강화, 미-일 동맹 강화 등 일본의 우경화 경향이 북한 핵문제와 ‘중국위협론’을 명분으로 거세지고 있다. 북한의 핵문제와 미사일 실험 발사는 동북아 지역의 불안정을 더욱 고조시킨다. 북중관계는 냉랭하지만 북러관계는 신밀월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중러 군사협력은 더욱 강화되어 주변국가들에게 위협적이다.

중국은 미국과 일본에게 위협 요소로 생각된 존재이다. 중국은 이런 ‘중국위협론’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평화적 부상’(평화굴기)을 강조하지만 그것에 대한 신뢰는 매우 부족하다.

동북아는 역사적·문화적 동질성으로 통합의 가능성이 높지만 공동운명체로서의 전망을 공유하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이는 미국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9.11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가 북한 핵문제를 둘러싸고 더욱 강해졌다. 미국의 일방주의의 영향으로 동북아에서는 경성권력(hard power 국가 권력)이 여전히 연성권력(soft power 시민사회의 힘)을 압도하고 있다. 미국의 일방주의와 경성권력이 동북아 지역 불안정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세계가 냉전종식을 했음에도 동북아 지역이 유일하게 냉전적 구조와 냉전적 유산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남북관계를 극단으로 치닫게 만들었고, 남과 북은 동북아시아에서 존재감을 상실했지만 북한의 도발과 남북대화 그리고 합의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으면서 당분간 분위기를 주도하게 되었다.

2. 긴장의 연속 - 남북관계

박근혜 정부 초반부터 남북관계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북한은 대선 1주일 전과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각각 장거리 로켓 발사와 제3차 핵실험을 단행했고, 박근혜는 강경 원칙론으로 맞대응했다. 박근혜가 2014년 연두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라고 밝히고, 2014년 3월 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통일한국 구상인 ‘드레스덴 선언’을 발표했지만 북한은 ‘흡수통일론 아니냐’고 강력 반발했다. 북한의 핵포기 여부에 따라 대규모 경제지원에 나설 수 있다는 드레스덴 구상은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 3000’ 구상과 동일하다는 평가다.

보수단체들의 대북전단도 남북관계의 발목을 잡았다.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 북한 ‘실세 3인방’이 2014년 10월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을 계기로 방남하면서 남북이 고위급접촉을 서로 타진했지만, 대북전단에 북한이 반발하면서 화해 분위기는 한 달 만에 사그라들었다. 박근혜는 8·15 광복 70주년 경축사 때 북한 지뢰 도발을 비판하고 사실상 대북 강경기조를 재확인하면서 남북간 충돌은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군사충돌을 피하기 위해 열린 남북 고위급접촉 결과로 남북관계가 ‘대결’에서 ‘대화’로 전환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위기는 일단 기회로 반전됐고, 대북원칙론은 박근혜의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8.25합의 이후 남측의 실무접촉 제안에 대해 하루 만에 북측이 화답한 것을 두고 박근혜정부와 보수세력이 깜놀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의 최고존엄인 김정은이 일주일만에 나타나 이번 합의를 소중히 여기고 풍성한 결실로 가꿔가야 한다는 발언을 고려하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남한의 북한에 대한 불신 팽배와 북한의 남북관계 개선의 절박함을 반증하고 있다.

이번 합의를 놓고 일부 보수세력들은 아직도 손익과 승패를 따지는 있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다. 어느 일방이 굴욕적이거나 손해를 본 것도 아니며, 극한 상황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으로 보였지만 결국 윈윈게임이었다. 역시 남북관계는 적대적 의존관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3. 북한의 선택과 북중러 관계

지뢰사건에서 시작된 일련의 흐름이 매우 긴박한 상황을 연출했다지만 전작권이 없고 의지도 박약한 박근혜 정부와 미국이 두려워 무모한 도발은 공멸을 불러오기 때문에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없는 김정은의 입장이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는 것을 눈여겨 봐야 한다.

물론 미국, 중국, 유엔사 등 누구도 확전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북한이 위기를 고조시켜 협상력을 높이는 전술을 구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9월 3일 전승절 행사를 앞둔 중국이 한반도가 극도의 긴장 상태에 놓이는 것을 반길 이유는 없다. 중국 외교관들이 8월 22일 오후 비공개 방문했다는 미확인 언론 보도가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이 관망했다는 평가는 섣부른 판단으로 보인다.

미국의 개입과 역할은 더 적극적이었다. 그 동안 북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미국은 이번에 북한의 군사적 위력과 내구력을 확인하면서 대화제의,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8.25합의 환영, 북핵문제 대화 해결 의지 표명 등 북한의 존재감을 인정한 것이다.1

따라서 북한이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했다는 평가는 적합하지 않다. 북한이 지뢰사건에 대한 유감표시로 체면을 구겼다는 평가는 국제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기 때문에 충분히 감수할만한 가치다. 북한에 대한 불신과 부정적 이미지가 굳어졌다는 평가도 과도하다. 오히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확인하였기 때문에 미국의 의도적 무시가 중단되고 북미 관계 개선의 계기가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박근혜 정부를 선택했을까?
현재 동북아시아는 5개의 제국주의 국가들과 1개의 전체주의 국가가 3 vs. 3 스트리트 파이터의 대결구도를 형성하면서 2인 3각 경기를 펼치는 복잡한 공간이다. 북중러의 삼각관계를 보면, 지난 2013년 3차 핵실험 강행 이후 최대 후견국이자 혈맹이었던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진 북한으로서는 든든한 우방이 절실해졌다. 시진핑이 김정은보다 박근혜를 먼저 만난 것은 충격적이었다. 특히 장성택 숙청은 북러관계를 신밀월시대로 만든 결정적 사건이었다. 북한은 대외무역의 90%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파트너가 필요했고 러시아를 선택하여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그래서 북한은 올해를 ‘북러 친선의 해’로 정하고 경제·군사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2014년 4월에 경제공동회의가 열려 북한의 채무 110억불 중 90%인 100억불을 탕감해줘서 양국간 경제협력이 정상화되었다. 북한의 노동자 2만 여 명이 러시아에서 외화벌이를 하고 있다. 이는 푸틴의 신동방정책과 맞아 떨어지기도 하다.2

군사협력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북한은 러시아를 통해 낙후된 재래식 무기를 현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북한이 구입하기 원하는 러시아 첨단 무기는 방공망을 강화하기 위한 S-300 지대공 미사일, 미그-29와 수호이-35 전투기, 4천 톤급 이상의 대형 군함과 T-80탱크, T-90탱크 등으로 알려졌다.

사실 북한의 핵기술과 장거리 미사일 원천기술은 구소련에서 들어왔고, 금년 봄 실험에 성공한 잠수함발사 탄도미사일에 사용된 부품도 일본 무역상을 통해서 들어왔지만 소련제라는 주장이 있을 정도로 러시아와의 군사교류는 역사가 깊다. 올 가을에는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하기로 합의하였다. 한마디로 따뜻한 북러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구 제국주의의 우려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이 재래식무기를 현대화하고 핵무기 개발 노하우까지 알아낼까봐 우려하면서 북러관계를 ‘위험한 관계’라고 한다.

반면 북중관계는 냉랭하다. 이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자주 거론되는 것이 지난 3월 평양에 부임한 리진쥔 신임중국대사가 아직까지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을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리대사가 가뭄이 극심했던 6월에 모내기지원에 발벗고 나서 중국과 남한의 언론에 화제가 됐었는데, 정작 북한언론에서는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아 그것이 화제가 되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주북러시아 대사가 협동농장을 방문해 밭매기를 하고 물자를 지원한 건 신속보도하였던 것이다.

양국간 고위급 접촉은 거의 사라졌다. 김영남, 리수용, 강석주, 최태복 등 북한의 외교라인이 세계를 누비면서도 중국을 외면하고 있다. 중국의 단둥과 북한의 신의주를 잇는 신압록강대교는 북중관계의 바로미터인데, 북중경제협력의 동력이 될 이 다리는 2014년 10월 완공되었지만 북한이 맡은 도로건설을 미루는 바람에 아직도 개통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8월 6일 막을 내린 아세안지역안보포럼 외교장관회의에서 그동안 관례적으로 이뤄졌던 북한과 중국의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김정은 위원장이 중국에 대해서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졌다. “조국의 자유독립과 평화를 위한 성전에 고귀한 생명을 바친 인민군렬사들과 중국인민지원군렬사들에게 숭고한 경의를 드립니다.”(조선중앙TV방송, 2015.7.26.). 북한이 최근 들어 우호적으로 말한 게 처음인데, 이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강력히 원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얼마 전 시진핑은 북중접경지역인 옌지시를 방문한 것도 북중관계 개선의지를 나타낸 ‘화해 시그널’이다.

하지만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중러간 신밀월이 북한에 긍정적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오히려 중러합동군사훈련은 미일합동군사훈련에 맞대응하는 것으로 동북아 불안정요인의 핵심이 될 것이다.

게다가 경제적 측면에서 러시아는 북한에게 계륵같은 존재다. 러시아가 장기적 전략을 가지고 북한에 접근하는 반면 북한은 러시아가 얻는 만큼의 경제적 전략적 이익을 얻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의 경제협력 규모가 1억달러도 채 안 된다. 전체 교역규모가 너무 작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며 따라서 서로 신뢰할 만한 경협 파트너가 되기에는 어려움이 있는 상황이다. 미국의 의도적 무시 또한 북한의 어려움을 호전시키기에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남한과의 경제협력을 통해서 북한 경제의 활로를 모색하는 실리적 선택을 한 것이다.3 북한이 이번 남북회담에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 중단은 요구하지 않으면서 금강산 관광 재개 문제를 거론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그러니 북한의 8.25합의 이행의지는 그 어느 때 보다 높아 보인다.

4. 남한의 외교 실패와 한미일 관계

한미일 관계에서 한국의 존재감 상실은 진작 시작되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임기절반을 허송세월로 보냈는데, 중국과 일본에게는 눈치를 보면서 북한에만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 동안 보여주기식 외교 패션쇼 외교에 불과한 속빈 강정이었으며, 국내에서 하락한 지지율을 상승시키는 도구로 해외 순방을 활용하였다.

이러한 한계와 실패는 처음부터 예상되었던 것이었다. 외교·안보·정보라인이 군출신들에게 독점되고, 문고리 측근과 검찰출신들로 채워진 청와대 실세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들에게 북한은 붕괴의 대상이었기 때문에 몇 년 안에 급변사태가 일어날 것을 전제로 정책을 수립하였다. 박근혜의 임기 내에 급변사태가 발생하여 흡수통일이라는 대박을 터뜨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쪽박’을 찰 신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러한 대북 강경 일변도의 입장과 태도는 지지기반인 보수수구세력에게서 일반적으로 목격할 수 있는 특징으로, 이번 사태에서 박근혜의 ‘확실한 사과’ 원칙을 적극 지지하면서 이번 기회에 북한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었지만 뜻대로 안되었던 것이다.

한편, 중국과 일본에는 할 말을 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민감한 한반도 정세를 다루기 위한 전략적 사고의 부재를 드러냈다. 일본의 재무장을 추구하고 있는 아베가 지난 4월 28일 미국을 방문하여 상하의원 합동연설을 한 것은 패전 70주년에 맞춰 2차대전 전범국가라는 멍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가 일본의 역사수정주의를 지지하면서 한일간의 역사갈등에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베의 왜곡된 역사인식에는 미국의 지지에 의해 가능해 진 것이다.

4월 28일은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발효된 날이다. 이 조약은 당사국인 한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민국, 중화인민공화국의 참여가 배제되었다는 근본적인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일방적인 추진에 의해 동북아시아를 규정하게 되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생겨난 규칙, 절차, 제도 등을 포괄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라고 부른다. 샌프란시스코 체제로 인해서 일본은 과거 전쟁과 침략의 범죄에 대한 사과 없이 국제사회에 무임승차한 것이다. 일본은 과거 범죄에 대한 징벌이 없이 샌프란시키코 체제를 통해서 오히려 역할이 중요해졌다. 이는 중국, 소련, 북한 등 공산주의 진영과 대결을 위한 미국의 전략 때문이었다.4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2차대전 이후 동북아에서 미소대결, 중국의 공산화 등의 상황을 반영한 미국의 전략에 따라서 형성된 것이다. 미국은 일본을 동원하여 대소, 대중 봉쇄를 위한 동아시아 전진기지를 구축하고자 했다. 이 때문에 일본의 식민지지배와 군국주의를 완전히 청산하지 않은 채 일본이 재무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게 되었다. 따라서 샌프란시스코 체제는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체제라기보다는 동아시아의 화해와 평화를 가로막는 불안전한 체제였다. 이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2015년 4월 28일 아베 총리의 미국 방문을 통해서 되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으면서 과거의 범죄에서 면죄부를 받아 군사대국화하려는 일본의 보통국가 전략을 용인해주고 있다. 미일동맹이 중국 봉쇄에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군사력이 대외적으로 팽창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집단적 자위권을 용인하고, 미일 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이 같은 미국의 전략에 따라서 형성되는 미일관계는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부활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은 중국 견제를 위해 일본을 중시하면서 일본의 재무장을 용인하고 한미일 삼각협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부활하여 재강화되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이 성과를 내지 못하는 이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은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이했다. 게다가 2015년은 오바마행정부 2기 3년차이다. 올해에 성과를 내지 못한다면 오바마 정부의 정책은 실패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 정부는 일본과 협력을 강화해 아시아 정책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한일 과거사 문제의 원만한 타협을 필요로 하고 있다.5

이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임기 초반 아베의 역사인식에 변화가 없으면 정상회담 등 의미 있는 외교가 불가능하다는 강경론을 내세워 국민적 지지를 받았다. 뒤늦게 한·일관계의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고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할 명분을 찾아 나섰지만, 이 시점에서는 일본에 대해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2015년 8월 14일 역대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베 담화’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이러한 대일 기조는 한·미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줌으로써 한국의 외교적 입지를 좁혔다. 또 ‘북한 위협에 대한 한·미·일 협력’이라는 명분 앞에서 스스로 딜레마에 빠지는 자충수가 됐다. 미국은 아베를 치켜세우며 격려해 주라고 당부했다. 그럴 때 마다 상대의 잘못을 탓하는 것으로 자신의 무능을 덮었는데, 이제 그 시점도 지나가고 있다.

한국 외교의 영원한 과제인 ‘미·중 간 균형잡기’도 성공적이지 못했다.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 한반도 배치 문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 등으로 국내 여론이 반으로 갈라져 심각한 갈등을 유발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한국의 중국 경도론’을 제기하면서 압박을 가해왔다. 그렇게 박근혜 정부는 왜소해 진 것이다. 북한 문제는 다음 ‘도발’을 기다리는 것 이외에 하는 일이 없었는데, 절묘한 시점에 긴장을 고조시켜 남북대화가 성사되었다.

5. 8.25합의의 최대 수혜자는 박근혜

이번 합의과정에서의 안보결집효과가 오랜만에 빛을 발하였다. 한국갤럽이 8월 넷째 주(25~27일 3일간) 설문조사 결과 박근혜에 대한 긍정 평가가 49%에 달해 올해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러한 지지율은 향후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4대개혁의 추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다. 국정개혁의 최대 호기인 셈이다. 게다가 중국과의 관계개선은 덤으로 얻었으니 이것야말로 일석이조요 금상첨화다. 그러니 원칙을 고수하지 못해서 확실한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점, 모호한 합의문으로 인한 북한의 합의 번복 가능성 등이야 대수롭지 않다.

이렇게 박근혜 정부는 당분간 국내와 동북아시아에서 주도권을 행사하게 되었기 때문에 8.25합의 최대 수혜자가 된 것이다. 미국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승절에 참여하기로 한 것은 매우 의미있는 것으로, 동북아시아의 정치지형을 재편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는 북한고립화 정책의 일환이 아니라, 남북관계 개선과 공존-공영에 대한 중국의 지지를 획득하기 위해 한중 협력을 증진시켜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한국정부는 북에 대해 일방적 안보가 아니라 ‘남북공동안보’를 추구하고, 동시에 미국에 대한 안보의존도를 줄여나가는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 한마디로 진영을 뛰어넘는 외교로의 전환이 요구된다.

이런 선택은 현 시점에서 주저앉고 있는 남한경제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유일한 탈출구이기도 하다. 하지만 북한 타도와 남북대결을 외치는 보수수구세력의 지지를 업고 있는 박근혜 정부가 과연 이 길로 나설 수 있을까? 일정하게는 진전시키겠지만 대담하게는 나아가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럴수록 평화와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바라는 국민들과는 물론 대북진출을 바라는 한국의 독점재벌과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주

1) 북한이 준전시상태에 돌입했을 때 미국이 전략폭격기를 배치하지 않은 것은 북한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다. 미국의 이번 사태에 대한 태도는 북한 군사력의 실전능력과 남한의 위기관리능력을 평가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2) 푸틴의 신동방정책은 2012년부터 구체화되어, 동북아를 포함한 아태지역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로 되어 있다. 그 배경은 첫째, 세계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이동함에 따라 아테지역에서 러시아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둘째,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낙후된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 개발이 필수적이다. 그러기위해서는 아태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게 필수적이다. 셋째, 석유와 천연가스 등 에너지자원의 주요 수출국인 러시아로서는 동시베리아와 극동지역으로 생산지를 확대하고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할 필요성이 있다.

3) 한국개발연구원(KDI) 자료에 의하면 올 5월까지 북·중 무역은 지난해 동기 대비 12.5%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출은 10.3%가, 수입은 14.3%가 각각 줄어들었다. 북·중무역이 지난해 같은 기간 전년 대비 4.8% 감소했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부진은 다소 심각해 보인다. 북한의 수출 감소는 지하자원 수출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중국 경제가 위축되면서 수요가 줄어든 데다 지난해 가뭄으로 인해 전력 생산이 부진했고, 광산이 폐쇄되면서 공급능력도 줄어든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북한은 러시아 등 제3국과 무역 확대, 관광객 유치, 해외 노동력 송출 확대, 경제개발구를 통한 해외 투자유치 확대 등을 추진했지만 세계적인 경기 부진에다 북한 정권의 불확실성 등이 겹치면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국 또는 한국과의 관계 개선 없이는 경제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4)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대일강화조약)은 제2차 세계대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일본과 연합국 48개국이 맺은 평화조약이다. 51개국 중 체코슬로바키아, 폴란드, 소련은 서명을 거부했다. 전문(前文), 제1장 평화상태의 회복(제1조), 제2장 영토(제2∼4조), 제3장 안전(제5∼6조), 제4장 정치 및 경제(제7∼13조), 제5장 청구권 및 재산(제14∼21조), 제6장 분쟁의 해결(제22조), 제7장 최종 조항(제23∼27조)으로 되어 있다. 그 중 중요한 것은 제3장의 안전조항으로서, 미·일안전보장조약의 체결을 위한 복선을 그어 놓은 것이다. 즉, 국제정치의 입장에서 일본을 반공진영에 편입시키는 성격을 띠었다. 이는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드러난 것으로, 미국이 이 회의를 주도하면서 상식선을 넘는 관대한 정책을 일본에 베풀었다는 지적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대부분의 나라는 전쟁피해에 대해 배상청구권을 포기하게 되었으나 국회에서 조약 비준이 부결된 인도네시아, 배상청구권을 포기하지 않은 필리핀과 남베트남, 그리고 조약에 초대조차 받지 않은 중화인민공화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한민국 등과의 협상문제가 남게 되었다. 일본은 1955년부터 1959년에 걸쳐 미얀마, 인도네시아, 필리핀, 남베트남에 대해 보상을 하였다. 일본이 정식으로 침략 피해에 대해 배상한 것은 이 네 나라 뿐이다. 다른 나라에 대해서는 경제 원조를 하거나 무상 경제 협력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한국은 일본의 전승국에 대한 전쟁배상을 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참가하지 못함으로써 전시 ‘손해 및 고통’에 대한 배상청구권을 향유할 수 없게 됐다. 다만, 한국에 대해서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경제원조를 하는 것으로 하였다. 한편 일본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명문 규정이 없다는 이유를 독도에 대한 일본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5) 그런데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결 당시 한국을 제외시키면서 한일 간의 과거사 미청산의 씨앗을 뿌린 것이 한일관계가 악화된 원인이다.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이해 미국의 아시아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샌프란시스코 체제가 부활하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샌프란시스코 조약 그 자체가 샌프란시스코 조약 부활의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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