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 5년 6개월 쫓겨나 이젠 단식”

[인터뷰] 부당해고에 26일째 단식 농성하는 정승기 씨

정승기(53) 씨는 한국타이어에서 해고된 노동자다. 그는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문 앞에서 26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부당한 해고이기 때문에 원직 복직시키라는 게 요구다. 2010년 9월에도 정씨는 같은 요구로 대전공장 정문으로부터 200여 미터 가량 떨어진 사거리에서 26일간 단식농성을 했다.

  
한국타이어 해고 노동자 정승기 씨가 원직복직과 사측의 노조 탄압 중단 등을 요구하며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단식농성 25일째인 9월 24일 인터뷰가 진행됐다.

정씨는 1993년 입사해 대전공장에서 타이어를 만들고, 검사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회사 명예훼손’으로 소위 말해 찍혀 10여명 남짓 근무하는 물류센터로 2008년 5월 강제 전보됐단다. 2010년 3월에 그는 1차 해고됐다. 3년 4개월 만에 2013년 7월 대법원의 최종 부당해고 판결로 복직했지만 2개월 만에 또 해고됐다. 회사에서 쫓겨나길 반복한 고된 삶이었다. 정씨는 말끝을 흐렸다.

“5년 6개월이나 일을 못했다. 길다면 긴 시간이다. 회사와의 싸움을 돌아보면 더 길게 느껴진다. 꽃이 피는 지 낙엽이 지는지 알지 못하고 투쟁한 것 같다. 그냥 참...”

‘내부 고발자’ 수식어가 정씨 앞에 따라붙었다. 그는 회사 편에 선 노조가 아닌 ‘민주노조’를 세우기 위해 오랜 기간 노력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이 같은 활동이 해고 사유가 됐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보복성 징계 해고를 할 만큼 한국타이어는 대기업이라고 하기에 궁색할 정도로 형편없는 행태를 보여 왔다. 공익제보를 인정해 대법원이 부당해고 판결했어도 어떻게든 내부 고발자를 쫓아내려고 2차 해고한 것이다.”

회사가 주장하는 1차 해고 사유는 ‘명예훼손’ 등이었다. 2007년 불거진 한국타이어 노동자 15명 집단 사망사고와 관련해 정씨가 2009년 여러 언론과 인터뷰 하면서 산업재해, 개인사찰 등을 주장했는데 이는 허위사실 유포이며, 사규를 어기고 회의내용도 유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는 집단 사망사고 문제가 불거지자 특별감독을 해 한국타이어가 1,3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을 위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에 이어 1, 2, 3심 법원은 모두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회사는 집단 사망사고와 관련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죄로 형사처벌 받았으며 비판적인 언론 보도가 이어졌는데, 일련의 사태를 참작하면 정씨가 개인적인 목적을 추구하기 위해 회사 비방 목적으로 언론 인터뷰에 응했다고 보기 어렵다”, “회사의 명예훼손이라 볼 수 없다”, “정씨는 회사에서 13회에 걸쳐 표창을 받은 공적이 있다” 등 법원은 밝혔다.

2차 해고 사유도 비슷했다. 정씨가 여러 언론에 해고와 사찰 관련 허위 사실을 유포해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고, 통상임금 관련해 노조 조합원에게 왜곡된 유인물을 배포하는 등 7개 사유로 해고가 정당하다고 회사는 주장했다. 그는 모두 반박했다.

“일례로 사측은 통상임금 관련 선전물 배포는 징계 사유도 아닌데 해고해놓고, ‘해고 기간에도 사규는 지켜야 한다’는 요지로 나에게 말했다. 황당했다. 사회적으로 해고는 살인에 비유된다. 위협을 느끼고 당했는데 찍소리 하지 마라? 사측의 매우 잘못된 주장과 태도다.”


하지만 1심에 이어 지난 7월 2심 법원은 2차 해고 소송에서 사측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 판결만 남은 상황이다. 사법부를 믿지 못할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다시 단식농성을 시작했다고 그는 전했다.

“1차 해고 사유와 별다르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부당해고 판결이 나올 것이라고 보고 노동위원회도 거치지 않고 법적 다툼을 시작했다. 그런데 1심에서 어이없는 판결이 나왔다. 2심에서도 바로잡히지 않았다. 공정한 판결이 아니다. 회사가 노조 대의원 선거에 개입하거나 공약을 만들어주는 등 지배개입 부당노동행위를 하고 노동자를 감시하는 등 관련 자료를 제출했는데, 법원은 이에 대해 판단조차 하지 않고 기각했다.”

정치권조차 성명을 내고 한국타이어와 사법부를 비판했다.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는 1, 2차 해고사유가 크게 다르지 않는데도 사법부가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에 대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며 “사측은 산재 사망사고 이후 한 치의 반성은커녕 노조운동 탄압과 보복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의당 대전시당은 “정씨의 단식농성에 대해 사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지 말라. 부당해고 철회하고 현장으로 복귀시켜라”고 촉구했다.

회사 노무담당자가 24일 처음으로 정씨를 찾아왔지만, 단식 25일째 온 그는 별다른 얘기 없이 돌아갔다고 한다. 사내 의원이 정씨의 건강상태를 체크한다며 매일 오다시피 하는데 같이 왔단다. 정씨는 “노무담당자가 의료진이랑 그냥 같이 온 것 같다. 내 건강 걱정해 온 것 같진 않고”라고 잘라 말하며 회사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냈다.

“만약 내가 법원 판결에서 패소한다면 앞으로 사기업에서 공익제보를 한다는 건 더 어려울 것이다. 침묵을 강요당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잘못을 비판하고 진실을 알렸다고 해서 징계 해고 등 각종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내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이유다. 사법부는 힘없는 노동자를 외면하고 돈과 권력에 따라 저울추가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 회사는 나를 원직 복직시키는 것은 물론, 헌법에 보장된 노조 활동을 보장하고 금속노조를 인정해야 한다.”

지금 정씨의 곁엔 아내와 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회(금속노조) 조합원들이 있다. 정씨는 두 명의 자녀가 있지만 못 본지 꽤 됐다. 걱정하는 아이들에게 단식농성 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열심히 공부하라’며 농성장에 오지 말라고 했단다. 추석에도 농성장에서 움직일 수 없어 당분간 아이들을 보지 못한다.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잠시 표정에 묻어났지만 그는 “큰 보람을 느낀다”면서 말을 이어나갔다.

“금속노조가 꿈틀대는 게 눈에 보이고 조합원들이 회사의 탄압을 뚫고 계속 가입해 기쁘다. 최근 기존 노조를 탈퇴하고 금속노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이 엄청 늘었다. 한국타이어를 바꿀 대안은 어용노조가 아닌 금속노조밖에 없으며 이곳에서 희망을 본다. 그동안 회사를 상대로 한 나의 싸움으로 노동조건과 환경이 일부 개선됐지만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금속노조가 생겨 현장에 모든 게 바뀌고 있으며 근본적으로 바꿔 나갈 것이다.”
덧붙이는 말

정재은 기자는 미디어충청 기자입니다. 이 기사는 미디어충청에도 게재됩니다. 참세상은 필자가 직접 쓴 글에 한해 동시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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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째 단식하고 있는 사람이 의자에 앉아 있어요??? ㅋㅋㅋ 웃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