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재구성

언론의 재구성
노동자 배제된 한겨레 기획, ‘동반성장의 길’

참세상  / 2005년09월19일 17시16분

홍석만/ 언론의 재구성 시간입니다. 이번 주 언론의 재구성에는
민중언론 참세상의 최인희 기자 나오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최인희/ 예 안녕하세요.

홍석만/ 오늘 소개해 주실 내용은 어떤 건가요.

최인희/ 네, 한겨레 특별기획인 ‘양극화를 넘어 동반성장의 길’ 2부
‘국내에선 어떻게’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 기획 1부는
아시다시피 지난 5월 15일 방송에도 소개된 바가 있는데요,
해외 선진국에서 사회적 합의를 통해 동반성장한 사례를 들면서
양극화 해결을 모색한다는 취지를 내걸었지만 독일 노동자들이
감내했던 희생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지적됐었습니다.


홍석만/ 네, 그렇다면 이 기획 2부인 국내 사례에서는 어떤 내용들이
소개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최인희/ 네, 먼저 8월 30일자의 <“네가 커야 나도 큰다” 동반자 정신의
힘>이라는 기사를 보시겠습니다. 이 기사는 ‘대기업-중소기업
상생협력’이라는 주제로 대우조선해양과 포스코의 사례를
다뤘는데요, 대우조선해양은 협력사 직원에 대한 교육으로
생산에 시너지 효과가 있다는 점, 포스코는 자기업과 성과를
나누는 ‘성과공유제’를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본보기로 들었습니다.

홍석만/ 기획의 주제가 ‘양극화를 넘어 동반성장’인 만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이라면 적절한 내용이 아닙니까?

최인희/ 네, 하지만 이 기사도 지난번 해외사례처럼 지나치게
산업적 측면에만 치우쳐져 있고, 정작 노동자들에게 미친
영향은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의 문제제기를 할 수
있겠습니다.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적극적으로 협력사 육성
전략을 펴고 있는데요, 이것이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한
전략이라기보다는 매각이 예정돼 있는 회사 입장에선 최대한
인수자의 구미에 맞게 재편하려는 고육지책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또 조선산업에 비공식적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는
불법 파견노동자들을 생각해볼 때 정규직 노동자들과의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거나 하는 방안은 생략한채 오로지 기업대 기업의
양극화 해소 노력이 상생의 방안이라고 제시한 것은 편향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홍석만/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법이 노동자들이 아닌 기업들의 문제로
치우쳐있다는 말씀이신데요, 그렇다면 앞서 말씀하신 포스코의
사례는 어떻게 보도하고 있습니까?

겨레, 성과 따내기 위한 노동자들의 경쟁과 희생 간과

최인희/ 네 한겨레는 같은 기사에서 포스코가 과제를 잘 수행한
자기업에게 1억 9천만원의 현금을 지급했다면서 협력업체의
경쟁력 향상을 위한 취지라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성과공유제를
시행하기 위해선 포스코 노동자들이 원가절감과 품질향상을
위해 더 많은 노동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협력업체의 노동자들도 모기업에게 지급 대상으로 선정되려면
치열한 경쟁에 몰려야 한다는 사실은 생략한 것입니다.

홍석만/ 그렇다면 이 기획 1부에서의 문제점이 2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군요. 2부의 다른 기사들은 어떻습니까?

최인희/ 그나마 ‘노동자’에 초점을 맞춘 기사로는 9월 14일자에
‘사람에 대한 투자로 1석3조 새물결’이라는 기사가 있습니다.
이 기사는 ‘확산되는 뉴패러다임 경영’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요, 뉴패러다임의 채택은 직원들의 삶의 질이 높아지고
회사는 생산성이 향상되며 사회적으로는 일자리가 창출되는
윈-윈-윈 전략이라면서 호의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뉴패러다임 전략은 1993년에 유한킴벌리가 도입해서 주목받기
시작한 모델인데요, 교대제를 변경하는 방법으로 노동시간을
줄이고 새로 확보된 여유시간을 회사의 교육시간으로 사용한다는
내용입니다.

홍석만/ 노동시간이 줄어들고 일자리가 확대된다면, 노동자 입장에서
긍정적인 모델일텐데요.

패러다임 모델, 노동자에게 ‘경쟁력 고취’ 평생 교육


최인희/ 사실 뉴패러다임 경영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전적으로
생산성 향상의 효과를 거두는 회사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이 줄어든 대신 회사에서 ‘평생학습체제’라고
규정해서 받아야만 하는 교육의 내용에는 오로지 애사심 고취나
열심히 일해서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모두가 잘사는 길이라는
주장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명목은 인간존중과 노사화합이지만 이런 내용의 교육을
평생토록 받아야 하는 노동자 입장에서는 기업간, 노동자간
경쟁 체제에 익숙해지면서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조직된 단체행동을 하는데 어려움이 따를 것이 당연합니다.
실제로 뉴패러다임 모델을 채택한 기업들이 노동조합이 아예
없거나 유명무실한 것을 볼 때도 이같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홍석만/ 뉴패러다임 모델에 그런 문제점이 있군요. 그렇다면
이것을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을까요?

겨레, 기업에만 유리한 뉴패러다임을 양극화 대안으로 제시

최인희/ 네 한겨레는 이번 기사로 ‘사람’ 즉 노동자의 대안으로
뉴패러다임 모델을 내놓은 것인데요, 이 모델을 도입한
기업들의 말을 인용해서 ‘직원들이 만족해야 일할 맛이 난다’
‘인적투자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뉴패러다임이 대안이다’는
주장들을 소개했습니다.
↓ 그러면서 ‘인간존중 경영철학’인 뉴패러다임 모델이
‘양극화시대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본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전략과 마찬가지로
‘사람’에 대해 다룬 것처럼 보이는 이 기사에서도 정작
뉴패러다임 도입으로 인해서 노동자들이 회사간의 경쟁체계에
휩쓸릴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홍석만/ 네. 사실 요즘 가장 심각한 사회 문제 중의 하나가 ‘양극화’가
아니겠습니까? 이 양극화와 관련한 한겨레의 기획이
노동자들이 아닌 산업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이 아쉽군요.

최인희/ 네 그렇습니다. 물론 사회 전반적인 분야에서 양극화 문제가
심각하고 지역간, 기업간 양극화의 해법도 중요하지만
정작 노동시장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극화에 대해선
진단이나 해법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들간의 격차와 원인 진단, 해결 방안에 대해서
심도있는 고민을 보이지 않고 있는 언론의 태도가 아쉽습니다.

홍석만/ 네 오늘 말씀 잘들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최인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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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귀족은 어떻게 탄생했나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에릭 홉스봄은 어디선가 “1970년대 이후 두 곳에서 100여년 전 유럽 노동운동에 비견할 만한 대중적 노동운동이 성장했다. 브라질 노동자당과 한국의 대중 노동조합운동이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한국의 성장한(?) 노동운동은 외환위기 이후 등장한 ‘노동귀족’이란 말에 포위돼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다. 파업이 벌어졌다 하면 “‘배부른 노동귀족’ 사업장에서 웬 파업이냐?”는 말이 언론 보도뿐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 사이에 흔히 회자된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 노동운동의 당면 과제는 과거 ‘어용 콤플렉스’에서 이제 ‘노동귀족 이데올로기’로 이동하고 있다.


살기 위한 유일한 방도가 임금 뿐이니…


‘노동귀족’은 일반적인 노동자들보다 고액의 임금을 얻고 의식 구조가 부유층과 같아진 특권적 노동자층을 뜻하는데, 원래 노동운동 내의 기회주의자를 해명하는 데 쓰인 개념이었다. 산업화 초기 영국이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식민지 체제에서 초과이윤을 얻고 있을 때 독점의 잔치에 동참해 혜택을 누린 숙련노동자 중심의 특권적 소수가 노동귀족을 형성했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노동력이 탈숙련화되면서 노동귀족은 점점 축소됐다. 이후 노동귀족은 ‘가장 좋은 보수를 받는 노동자 상층’이 아니라 ‘자본에 매수돼 부패한 노동자층’이라는 뜻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경쟁이 격화되고 노동귀족을 유지·배양해온 물질적 기초인 독점 초과이윤이 감소하자 노동귀족은 갈수록 줄어들었고, 서구에서 노동귀족은 이제 현실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는 낡은 개념이 되었다. 그런데 왜 유독 한국에서만 노동귀족이란 말이 21세기에 뒤늦게 등장한 것일까?

노동귀족론을 단지 반노동자적 시각에서 생산·유통·소비되는 과장된 용어라고 치부하기는 어렵다. 노동계급 상층 내지 고임금 노동자층으로서의 노동귀족은 어디에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귀족은 자본에 매수된 노동자층 또는 노동조합의 권력화에서 비롯되는 ‘노동관료’와는 거리가 멀고, 독점의 혜택을 누리는 노동귀족에 가깝다. 무엇보다 한국의 노동귀족은 독점 대기업의 원·하청 관계에서 비롯된 초과이윤이 그 바탕을 이룬다. 특히 국가 차원의 복지가 빈곤한 상황에서 노동자 자신이 불안한 처지를 극복할 유일한 방도는 당장의 임금 인상뿐이다. 사적인 시장임금으로 “집도 장만하고, 자녀들 교육도 하고, 몸이 아플 때 치료비로도 써야 하고, 노후대책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기업을 벗어나서는 어떤 보호와 보장도 받을 수 없는 조건 속에서 노동조합은 회사와의 단체교섭에 매달려 무조건 현금을 많이 받아내려 하고, “(독점 대기업의) 오아시스를 버리고서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을 위한) 강을 찾아나서는 모험”을 하려 들지 않는다.

한국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고 임금투쟁에만 주력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사회 안전망이 취약해 자신이 혼자 가족 등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노동자 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오직 먹고살기 위해 임금 인상에 매달리고 해고에 극단적으로 저항하는 것이다. “작은 빵을 지금 나누기보다는 더 키워서 나중에 골고루 나눠먹자”는 성장주의도 노동귀족 양산에 한몫 가세하고 있다. 분배가 뒤로 밀리면서 노동자간 격차만 더 커지고 이것이 노동귀족층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가 이른바 ‘노동귀족의 파업’은 직권중재와 긴급조정권까지 동원해 필사적으로 깨고 ‘시장’으로 가되 “뒤처진 사람들은 복지로 부축하겠다”고 말하지만, 성장과 시장으로 달려가는 자체가 노동귀족을 만들어낸다.


노동자의 분단을 단적으로 반영


사실 노동귀족을 낳는 가장 큰 요인은 ‘기업별 교섭’이라는 한국의 노동조합 체계다. 서구의 노조가 개별 기업의 ‘시장임금’ 자제를 받아들이는 대신 국가 차원의 복지와 ‘사회적 임금’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사회적 타협을 추구했다면, 한국의 노조는 고립 분산적인 기업별 교섭을 통해 자기 회사 노동자들의 이익만 추구했다. 홉스봄이 말한 것과 달리, 한국 노동자들의 전투성이 오직 분파적 임금 인상에 매몰되는 ‘경제주의 전투성’에 그쳤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임금 인상만이 조합원을 동원하는 중심축이었고, 이에 따라 교섭·쟁의권이 ‘독점 기득권’으로 바뀌면서 노동귀족이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사실 중소기업 노조는 파업을 해도 회사로부터 얻어낼 물질적 기반 자체가 없고, 노조가 가장 필요한 중소영세·비정규 사업장은 노조조직률이 형편없이 낮은 게 현실이다. 전체 노동자(1300만명)중 100명 미만 사업장 종사자는 76.9%인데 민주노총의 경우 100명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전체 조합원(60여만명)의 3.1%에 불과하다.

노동의 역사는 ‘분열의 역사’이기도 한데, 노동귀족은 노동자의 분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때늦은 성장, 때이른 침체’가 한국 노동운동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지만, 대기업 정규직의 노동귀족론이 퍼지는 한쪽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쪽으로 노동조합운동의 힘을 이동시키려는 움직임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퍼옴
2005.09.23 04: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