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빅테크가 달러를 지배하길 원한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의 춘계 회의는 보통 조용하고회의에 참석한 중앙은행장들이 끝나자마자 잊어버리기를 바라는 성격의 행사다그러나 이번 봄은 달랐다올 4몇몇 중앙은행장들이 귀국하면서 느낀 감정은 평소의 안도감이 아니라 훨씬 더 직감적이고 생생한 감정이었다그것은 공포심지어 전율이었다이유는? 2025년 법제화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하고 있는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법안즉 지니어스 법안(Genius Act)’이라는 유령 때문이다이 법안은 도널드 트럼프가 1월 23일에 발동한 전략적 암호화폐 비축령’ 행정명령의 뒤를 잇고 있다.

지금까지 중앙은행들은 암호화폐를 불쾌한 존재로 보면서도다행히 자신들이 관리하는 통화 시스템의 구조에 심각한 균열을 일으킬 수는 없는 존재라고 여겨왔다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트럼프 대통령의 참모진이 암호화폐—그중에서도 달러에 고정된 스테이블코인—를 전 지구적 통화 질서를 재구성하기 위한 전략의 일부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봄중앙은행장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은 단지 해당 정책 자체가 아니라그 정책이 함의하고 있는 바였다그것은 20세기의 통화 질서를 의도적으로혼란스럽게 해체하려는 것이었다이 질서에서 중앙은행들은 화폐의 유일한 설계자로 군림해 왔다. ‘지니어스 법안은 단지 민간 스테이블코인을 허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이 법안은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를 금지하며기업이 발행한 토큰을 달러 패권의 새로운 수호자로 임명한다이것은 혁신이 아니다그것은 화폐 자체에 대한 적대적 인수다그 어떤 실질적 규제와도 닮지 않은 상태에서스테이블코인은 안정적이지도 않고 단지 대체 결제 수단도 아니다그것은 화폐의 전면적 민영화를 위한 트로이 목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그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만약 채권주식파생상품 등 증권이 블록체인으로 이전되고 토큰화된다면결제 시스템 역시 그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이에 대한 ECB의 해법은 토큰화된 유로화다이는 공공 화폐가 금융의 토대라는 점을 유지하려는 시도다지금까지 ECB는 독일과 프랑스의 은행들이 현 상태를 유지하려 하며 이 계획에 반대하는 상황에 맞서야 했다그러나 이제 ECB는 더 큰 골칫거리를 떠안게 되었다워싱턴이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모습이다. CBDC를 금지하고 스테이블코인을 공식 허용함으로써트럼프의 참모진은 단지 공공 디지털 화폐를 거부한 것이 아니다그들은 달러 패권을 빅테크 내부의 가장 어두운 세력에 외주화한 것이다.

이 아이러니는 그야말로 기괴하다국가에 반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던 바로 그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이제는 자기들의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의 공식 통화로 인정받기를 바라며 국가에 애걸하고 있다더 나쁜 것은이들이 연방준비제도의 대차대조표에 접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민간 발행업체들이 중앙은행의 준비금으로 자기 토큰을 뒷받침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테더(Tether), 서클(Circle), 혹은 일론 머스크의 코인이 미국 재무부의 묵시적 지원을 받으면서도 은행 규제를 받지 않고 활동하는 세상을 상상해보라이것은 단순한 규제 차익이 아니다이것은 화폐의 봉건화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19세기 미국이 통화적 디스토피아였던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수천 개의 와일드캣 뱅크’(무분별하게 사설 지폐를 발행하던 은행들)가 민간 지폐를 발행했고반복되는 금융 패닉은 대중특히 노동계급에게 무가치한 종잇조각만을 남겼다심지어 J.P. 모건조차도 이 상황에 경악했고 위협을 느껴연방정부와 다른 은행들을 압박해 연방준비제도(Fed)를 공공기관으로 설립하도록 만들었으며이는 화폐를 안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뒤로 되돌아가고 있다아직 최종안조차 공개되지 않은 지니어스 법안은 디지털 와일드캣 시대(현대 디지털 자산 환경에서 민간 기업이 통제하는 스테이블코인이 규제 없이 무분별하게 확산되는 상황)를 열 수도 있다이 시기에는 달러에 고정되어 있지만 민간 주체들이 통제하는 스테이블코인들이 디지털 유사 달러 형태로 전 세계를 휩쓸 것이다선의로 운영되는 스테이블코인이라 할지라도—예컨대 서클의 USDC나 테더의 USDT—일단 연방정부의 공식 인가를 받은 이후 발행량이 급증하게 되면발행 주체가 자신들의 토큰을 달러와 1:1로 유지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진다그리고 이것은 진실을 뒤집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 중 하나일 것이다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스테이블코인을 미국 달러의 주권을 증진하고 보호할 수단이라고 정의했다이 표현을 느슨하게 번역하면의심스러운 민간 주체들에게 달러 대체물을 세계 곳곳에 퍼뜨릴 권한을 부여한다는 의미다설령 각국이 미국 달러를 공식적으로 버린다 해도그들은 여전히 달러의 디지털 그림자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유럽은 지금 허둥대고 있다. ECB는 이 상황이 존재론적 위협임을 인식하고 도매용 CBDC’를 빠르게 추진하고 있다이 디지털 유로는 제도적 사용을 위한 것으로기존 결제 시스템을 블록체인과 동기화하는 임시 방편적 하이브리드 수단이다이는 진정한 원자적 결제 체계(atomic settlement)를 민간 은행들의 완강한 저항을 뚫고 실현할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어쩌면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유럽이 여전히 각종 위원회 속에서 미적거리는 사이미국은 이미 행동에 나섰다암호자산시장 규제법(MiCA)은 이미 테더를 유럽 시장에서 몰아냈다그것은 MiCA(Markets in Crypto-Assets, 암호자산 시장 전반을 규율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포괄적 법률)가 지나치게 엄격해서가 아니라유럽연합의 정치 지도부가 이 문제의 중대함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만약 스테이블코인이 암호화폐 시장탈중앙화 금융(DeFi), 그리고 신흥국 경제에서 기본 통화로 자리 잡게 된다면, ECB의 미완성 디지털 유로는 전쟁이 이미 끝난 전장에 나중에야 도착하게 될 것이다.

한편개발도상국들은 잔혹한 선택 앞에 놓이게 된다이미 달러의 지배력에 질식하고 있는 이들은스테이블코인을 금지해 암호화폐 자본 흐름에 대한 접근을 포기하든지아니면 달러의 네트워크 효과에 맞서기 위해 자국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든지 해야 한다3전혀 유쾌하지 않은 선택지는훨씬 더 위험한 형태의 사실상 새로운 달러화에 항복하는 것이다.

이 쓰나미에 앞서 유일하게 사전 계획을 세워둔 중앙은행은 중국의 중앙은행이며, BRICS 일부 국가들도 그에 동참하고 있다이미 작동 중인 디지털 위안화를 보유하고 있는 중국은 스테이블코인을 규제함으로써 그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완전히 금지함으로써 안전을 확보하는 길을 선택할 여유가 있다하지만 이 합리적인 거부는 하나의 거대한 딜레마를 남긴다그것은 중국의 공공 및 민간 기관이 보유한 약 4.5조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고다이 자산을 매도해 트럼프 측의 달러 평가절하 계획에 동조할 것인가아니면 계속 보유함으로써 트럼프 팀이 조장하는 변동성에 그대로 노출될 것인가?

장기적으로 진짜 위협이 되는 것은기존의 지정학적지정경제적 긴장에 더해통화 질서의 이중화가 초래하는 지정통화적 충돌이다현재 두 개의 평행한 통화 체계가 충돌로 향하고 있다하나는 중국인도어쩌면 유로존이 발행하는 공공 화폐로 구성된 체계이고다른 하나는 달러에 고정된 스테이블코인이 점점 지배하는 사설 화폐 체계즉 달러존을 식민화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중앙은행장들이 워싱턴에서 돌아가는 비행기에 오르며 느꼈던 감정이 올봄에는 단연코 공포였던 것이 과연 놀라운 일인가?

[출처] Trump Wants Big Tech to Own the Dollar – Project Syndicate op-ed

[번역이꽃맘 

덧붙이는 말

야니스 바루파키스(Yanis Varoufakis)는 경제학자이자 그리스의 전 재무장관이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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