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키디데스 함정과 미국 제국주의의 쇠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 기간 열린 첫날 회담에서, 중국의 시진핑 주석은 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Thucydides trap)”을 언급하며 오늘날 세계 경제·정치 질서를 지배하는 두 초강대국 사이의 전쟁을 경고했다.

시진핑이 언급한 것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그는 당시 급부상하던 해양 도시국가 아테네가 기존의 육상 패권국 스파르타를 두렵게 만들었고, 결국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분쇄하기 위해 전쟁에 나섰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진핑은 미국이 중국에 대해 그런 야망을 갖는다면 그것은 미국 자신에게 함정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투키디데스 함정이라는 개념은 원래 소설가이자 제2차 세계대전 참전용사였던 허먼 워크(Herman Wouk)1980년에 처음 발전시켰다. 워크는 당시 미국-소련 냉전을, 기원전 5세기 중반 공통의 적인 페르시아를 물리친 뒤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에 형성된 냉전과 비교했다. 이후 2015년 미국 정치학자 그레이엄 앨리슨(Graham Allison)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사이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조되는 갈등의 비유로 끌어왔다. 앨리슨은 역사상 신흥 강대국이 기존 패권국에 도전한 사례 16건 가운데 12건이 전쟁으로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을 예로 들며, 떠오르던 유럽 강국 독일이 쇠퇴하던 패권국 영국과 프랑스에 맞서 전쟁을 벌였다고 설명했다. 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경제 강국으로 떠오른 일본이 1940년 미국을 공격한 사례도 들었다. 앨리슨은 투키디데스가, 아테네 같은 신흥 강대국이 스파르타 같은 지배적 강대국의 지위에 도전할 경우 전쟁은 피하기 어렵다고 보여주었다고 주장했다. 시진핑이 미국이 피해야 할 것이 바로 이 함정이라고 말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는 신흥 강국인 아테네가 패배했고 기존 패권국인 스파르타가 승리했다. 20세기 세계대전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투키디데스 함정은 시진핑이 사용하기에 그다지 적절한 비유는 아니다.

어쨌든 고대 그리스의 투키디데스 함정이 21세기 미국과 중국 사이의 경쟁 심화와 정말 관련이 있을까? 앨리슨이 제시하는 사례들은 그다지 설득력 있지 않다. 예를 들어 미국은 1930년대 쇠퇴하는 강대국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또 제1차 세계대전은 훨씬 더 약한 강대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가 발칸 국가들을 공격하면서 시작됐고, 그것이 러시아를 끌어들였으며 결국 전 세계를 휘말리게 만든 것이었다.

더욱이 투키디데스 자신에 따르면,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핵심 교훈은 경쟁 강대국들 사이 전쟁의 불가피성이 아니라, 두 국가 지배 엘리트들이 내린 결정에 있었다. 아테네의 경우, 경제력 상승은 지도자들의 오만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당시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던 시칠리아를 침공해 막대한 부와 영토를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테네는 침공 과정에서 참패했고, 그 결과 크게 약화되어 결국 스파르타가 승리하게 되었다. 미국 역사학자들과 군사 전략가들은 자연스럽게 투키디데스 함정의 이 측면을 강조하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려 한다면 아테네가 시칠리아에서 겪은 것과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쇠퇴하던 강대국 스파르타가 결국 떠오르던 강대국 아테네를 무너뜨렸다는 결론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따라서 중국이 대만 점령을 시도한다면 미국도 패권 경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논리다.

그러나 중국은 그렇게 무모하지 않다. 물론 중국은 대만을 중국의 일부로 간주하며 결국 본토로 돌아와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대만은 기원전 5세기의 시칠리아가 아니다. 미국은 전면전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대만을 중국으로부터 방어할 수 없으며, 그런 전쟁을 지속할 능력도 아마 없을 것이다. 스파르타가 시칠리아를 놓고 싸웠던 상황과는 다르다. 게다가 21세기의 경쟁 강대국들은 대량살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전쟁이 발생할 경우 양측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절멸 가능성을 수반한다. 시진핑의 발언 뒤에는 중국이 시간 끌기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이 깔려 있다. 그가 함정을 경고한 것은 미국이 대만 문제를 둘러싸고 중국과 군사 충돌을 고려하는 것을 억제하려는 목적이었다.

내 생각에 투키디데스 함정 비유는 21세기 세계 패권 경쟁에는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더 나은 비유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아니라, 200년 뒤 벌어진 로마와 카르타고의 포에니 전쟁이다. 기원전 250년 무렵 로마 공화국은 군사력과 발전하는 노예경제를 바탕으로 지중해 대부분을 지배하게 되었다. 그러나 로마의 완전한 지배를 가로막는 주요 경쟁 세력이 하나 있었다. 북아프리카 도시국가 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는 과거 스파르타가 그랬던 것처럼 시칠리아를 지배하고 있었다. 로마는 시칠리아를 침공했고, 25년에 걸친 전쟁 끝에 결국 카르타고로부터 시칠리아를 빼앗았다. 그러나 카르타고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카르타고의 군사 지도자 한니발이 로마를 침공한 유명한 전쟁들을 포함한 일련의 전쟁 끝에야 로마는 경쟁 세력을 무너뜨리고 도시와 주민들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었다. 이후 로마는 지중해의 유일한 패권국이 되었고, 군사 정복을 통해 제국을 더욱 확장하며 자국 경제를 위해 수백만 명의 노예를 확보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로마의 노예 공급은 고갈되었고, 로마 국가는 결국 시민적 민주주의의 형태마저 상실한 채 부패한 군사 독재 체제로 전락했다. 때로는 광기에 가까운 황제들이 차례로 등장했다.

이 비유는 20세기 미국이 단 하나의 경쟁 세력인 소련과 맞서 지배적 강대국으로 부상한 과정에 훨씬 더 잘 들어맞는다.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이후 미국은 기원전 200년경 로마가 그랬던 것처럼 완전한 패권을 달성했다. 그러나 당시 로마가 그랬듯, 이제 미국 자본주의 경제 내부의 모순이 내부로부터 그 힘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가기구의 수장에 있는 글로벌리스트들은 여전히 금융 억압과 군사 모험을 통해 세계를 통제하려 하고 있다. 이는 황제 시대 로마가 그랬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트럼프 아래 미국 정치 제도는 점점 더 부패하고 독재적이며, 왕정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미국 제국은 이제 쇠퇴하고 있다. 이는 미국 경제의 대외 순부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 외국인들이 보유한 미국 자산이 미국 투자자들이 보유한 해외 자산보다 더 많아졌다는 뜻이다. 중요한 점은 미국의 순국제투자지위가 미국이 1990년대 초 유일한 패권국이 된 시점부터 마이너스로 전환됐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순국제투자포지션, GDP 대비 비율

미국 제국주의는 소련 붕괴를 지켜보는 데는 성공했지만, 무역과 생산 측면에서는 다른 주요 경제들, 특히 중국에 상대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유럽은 유로존을 중심으로 더욱 통합되었고, 동유럽의 저임금 노동력을 활용하며 동쪽으로 확장했다. 아시아의 호랑이 경제들도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도약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국이 세계 제조업과 무역의 중심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1990년대 중국으로 생산기지를 이전했던 미국 다국적기업들 덕분이기도 했다.

미국의 마이너스 순국제투자지위는 미국 산업이 세계 상품 시장에서 경쟁할 능력을 잃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 행정부는 막대한 미국 무역적자에 대응해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수입을 줄이기 위해 관세와 여러 조치를 도입했다. 그러나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그래서 미국은 점점 더 외국인들이 미국 기업과 주식을 사들이는 것 — 이른바 낯선 이들의 친절— 에 의존해 무역적자를 메우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거대한 미국 경제가 곧 무릎을 꿇게 될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 최대 순부채 국가일 수 있지만, 동시에 달러를 발행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달러는 여전히 국제 무역·투자·외환보유의 핵심 통화다. 독일, 일본, 중국 같은 무역흑자 국가들은 달러 수익 대부분을 미국 경제의 달러 자산 구매에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달러의 과도한 특권(exorbitant privilege)”이 미국 제국을 계속 굴러가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미국의 해외 투자 규모는 외국의 대미 투자 규모보다 적어 순국제투자지위는 마이너스가 되었지만, 외국인들은 미국 자산에서 미국 투자자들이 해외 자산에서 얻는 것보다 더 적은 소득을 벌어들인다. 따라서 미국은 2008년 이후 평균적으로 GDP의 최소 0.5%에 해당하는 순소득 흑자를 유지해왔으며, 이는 국내 경제에 추가적인 이익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해외직접투자(FDI) 자산의 지속적인 초과 수익률. 주: 수익률은 최근 4개 분기의 소득 수취 또는 지급액을 추정 시장가치로 나누어 측정했다.

미국은 아직 외국에 대한 순부채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 순소득 흑자가 사라지는 티핑 포인트에 도달하지는 않았다.

막대한 순부채, 그러나 순소득은 여전히 소폭 흑자. 주: 순자산 포지션은 시장가치 기준이다. 순소득은 최근 4개 분기의 이동 합계로 측정했다.

기원전 200년 지중해 세계에서 경제·군사적 권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점부터 로마가 쇠퇴하고 붕괴하기까지는 수세기가 걸렸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쩌면 앞으로 미국 지도자들은 더욱 절박해져 중국을 충돌로 끌어들이려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국은 트럼프와 미국의 글로벌리스트들에게 전면전의 구실을 제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시진핑이 말했듯, 중국은 투키디데스 함정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출처The Thucydides trap and the decline of US imperialism

[번역] 이꽃맘

덧붙이는 말

마이클 로버츠(Michael Roberts)는 런던 시에서 40년 넘게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일하며, 세계 자본주의를 면밀히 관찰해 왔다. 참세상은 이 글을 공동 게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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