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죽었다는 기사를 보고 트위터 계정에 140자를 물음표로 꽉 채운 글을 올렸어요. 왜 죽어? 같은 느낌으로. (중략) 유서에 같이 활동했던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 본인의 번아웃, 외로움 이런 얘기를 하는데, 나에 대한 얘기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또 실망을 한 거죠. 진짜 끝까지 비겁하네.”
2021년 2월 24일, 녹색당의 트랜스젠더 정치인 김기홍이 세상을 떠났다. 며칠 후 있었던 트랜스젠더 여군 故 변희수 하사의 죽음과 함께 트랜스젠더 차별에 저항하다 목숨을 끊은, 사회적 타살의 희생자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추모 흐름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죽은 자에 대한 추모로 상처를 입는 산 자 또한 있었다. 고인이 살아있던 시절 저지른 성폭력 사건의 생존자에게, 故 김기홍의 죽음과 이어지는 추모는 가해자의 생전 영향력을 확인하는 일임과 동시에, 고인의 가해 사실을 고발하기 더욱 어려워졌다는 신호였다.
가해자에 대한 추모가 이어지는 걸 더는 견딜 수가 없어 관계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가해 사실을 고발했고, 몇 달 뒤 이를 공개된 게시글로 SNS에 업로드함으로써 故 김기홍 사건을 공론화했다. 공론화 이후 4년이 지난 지금, 생존자는 자신의 일상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운동사회는 故 김기홍 성폭력 사건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을까.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프라이드 먼스)인 6월을 맞아, 故 김기홍 성폭력 사건의 가해고발인인 J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는 가해를 고발하는 사람입니다"
“트랜스젠더 단체에서 활동했어요. 창립되고 나서 반 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 활동을 시작했어요. 창립 멤버까진 아니지만, 거의 준 창립 멤버에 가깝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 당시에는 경북 예천에 살고 있었는데, 지방이랑 서울을 왔다 갔다 하다 보니까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활동보다는, 말하자면 단체 내부 살림을 도맡아서 하게 됐어요. 인터뷰 요청 들어오면 걸러내고, 단체 내의 사건 처리 담당, 그런 쪽의 활동이 주가 됐던 것 같아요.”
J는 뉴트로이스(1)로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논바이너리(2) 트랜스젠더퀴어다. 운동사회를 떠나기 이전, J는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에서 활동했다. 단체에서는 대외적으로 드러나는 일보다는 단체의 내부를 챙기는 활동을 주로 해왔고, 단체 밖에서도 비거니즘과 관련한 번역 활동 등을 해왔다고 밝혔다.
J는 2019년 6월 1일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가 끝난 날 밤, 故 김기홍을 만났다. 직접 만난 건 그날이 처음이었지만, 이전부터 SNS 등을 통해 아는 사이였다. J는 SNS를 통해 故 김기홍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고, 당일 당황스러운 순간들이 많았음에도 ‘정치인 김기홍’의 이미지를 생각하며 “무슨 일 있겠나”라고 애써 생각했다. 故김기홍은 J를 만난 첫날, 그런 신뢰를 저버리고 성폭력을 저질렀다.
“새벽에 느낌이 이상해서 일어나보니까 그 사람이 옆에 붙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번엔 제가 침대 아래로 내려가서 잤는데 또 침대에서 내려와서 제 옆에 붙어 있고. 그러면서 안 좋은 행동들을 많이 해서 이제 그때부턴 잠은 제대로 못 자고, 반쯤 깨어 있는 상태로 있다 더 심해질 것 같아서 밀어내면서 이러지 말라고, 내가 너한테 여지 준 것도 없는데 도대체 왜 이러냐고 했어요.”
“그래서 이러는 거 싫고, 이러려고 온 거 아니니까 나는 갈 거고, 네가 이러는 거 다 얘기할 거라고 하니까 갑자기 무릎을 꿇고 막 비는 거예요. 안 된다, 나 정치해야 한다, 한 번만 봐달라. 이런 변명을 하면서.”
사건 자체만큼이나 J를 힘들게 한 건 사건 이후의 기억들이었다. 고인은 故 김기홍을 “취기에 상대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다가, 통하지 않으니 “나는 할 일이 많다”라며 책임을 회피하려 하는 전형적인 성폭력 가해자로 기억한다. 그러나 알려진 트랜스젠더 정치인이 많지 않다는 점이 사건의 공론화를 망설이게 했고, 이러한 고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J는 결국 활동을 그만두고 운동사회를 떠나게 된다.
故 김기홍의 비례대표 후보 사퇴를 알리는 녹색당 입장. 21대 총선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던 故 김기홍은 과거 SNS에 게시한 발언들이 논란이 되어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했다. 출처: 녹색당
“그 사람(故 김기홍) 예전에 성 착취 웹사이트 이용 의혹과 과거 발언들이 논란이 돼서 비판을 받다가 총선 비례대표 후보를 사퇴하고, 녹색당이 입장을 밝혔던 걸로 기억을 하거든요. 이때가 내가 (故 김기홍의 성폭력 가해에 대해) 말해야 하는 시점인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한편으로는 “중도 사퇴까지 하게 됐는데 내가 이야기를 꺼내면 이 사람을 너무 사면초가로 모는 것 아닌가, 몇 안 되는 트랜스젠더 정치인인데.”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웃기는 게, 성폭력 가해자인데도 나랑 같은 ‘팀 트랜스젠더’니까 그런 걸 계속 신경 쓰게 되는 거예요.”
“저를 지치게 하는, 활동을 그만두게 된 요인이 100%가 있다고 쳐요. 그중에 절반 이상은 (故 김기홍에 대한 고민이) 차지한다고 생각을 해요.”
J는 스스로를 ‘피해자’가 아닌 ‘가해고발인’으로 지칭한다. ‘가해고발인’은 J가 故 김기홍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하며 스스로 만들어낸 조어다. 피해를 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가 아닌, 가해자의 가해를 부각시키는 의미에서 ‘가해’를, ‘나도 트랜스젠더이면서 트랜스젠더인 故 김기홍의 가해를 고발한다’라는 맥락에서 ‘내부고발자’의 ‘고발’을 따왔다. 박원순 성폭력 사건 이후 벌어진 ‘피해호소인’ 용어에 대한 논쟁을 보며, ‘피해’를 ‘호소’한다는 말이 가지는 함의에 대한 고민 끝에 만든 용어라고 J는 밝혔다.
“가해를 고발하는 사람으로 정체성을 잡으면 되겠구나 했어요. ‘나는 가해를 고발하는 사람입니다.’”
나의 동료들도 연대하지 않는다는 것
“트랜스젠더 정치인이라는 것만으로 과하게 성역화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게 나는 너무 비겁하다고 생각했어요. 인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왜 어떤 것에 대해서는 (인권의) 스위치를 끄고 지내느냐, 약간 그런 게 되는 거죠.”
공론화 이후 4년의 시간은 끊임없는 문제 제기의 연속이었다. 故 김기홍을 추모한 단체, 명망 있는 활동가들, 그리고 추모 기사를 낸 언론사를 상대로 故 김기홍의 성폭력 가해 사실을 알렸고, 지금도 故 김기홍을 추모하는지 질문했다. 4년이 지나는 동안 같이 문제 제기하는 조력자들도 생겼지만 기본적으로는, 4년 전에는 특히 이 모든 과정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는 곳들도 있었지만, 좌절과 무시의 경험 역시 많았을 테다. 성폭력 사건의 가해고발인으로서 이런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을까.
“일단 확실한 건, 제가 찾아 나서지 않으면 다들 자기들이 했던 말들, 발표한 입장들을 잊고 있어요. 그래서 아카이빙을 하게 된 거예요. 엄청 절절하게 반성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적극적으로 (故 김기홍을 추모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겠다. 있긴 있는데 되게 적어요.
성소수자 단체들의 태도가 저는 신기했었는데, 공과 과를 같이 두어야 하기 때문에 글을 지우지는 않고, 故 김기홍이 언급되는 글마다 설명을 달아놓겠다 정도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좋다, 공과 과에 대해 뭔가 평가하는 자리가 있겠구나, 싶었는데, 없었어요.
아무 말 없이 그냥 삭제해 버리는 사람들도 있고요. 마치 처음부터 추모하지 않았던 것처럼. 연락을 계속해도 절대 답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요. 뭐 변화가 없진 않아요. 근데 너무 느리고 적으니까 스트레스가 심한 거죠.”
J는 활동하던 단체와 언론인들에 대한 섭섭함 역시 토로했다. 일상의 회복 방법으로 공론화를 택한 이에게, 단체의 입장과 언론 등 공적인 영역에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창구는 매우 중요하고, 또 소중하다. 그러나, 활동 당시 언론 소통을 담당하기도 했던 J가 가해고발인이라는 위치가 되자마자 믿었던 사람들 또한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 활동하던 단체에서는 연대를 거부당했고, 친분이 있던 기자들 역시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해시태그 #김기홍추모하지않습니다 를 사용해 연대의 말을 남긴 사람들. SNS에 업로드된 게시글을 가해고발인이 갈무리해 블로그에 업로드하고 있다. 출처: 제이
“저에게 연대하겠다는 뜻을 담은 해시태그(#김기홍추모하지않습니다)가 있어요. 제가 활동하던 단체에 이 해시태그를 사용해서 글을 쓰는 액션을 취해 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개인 간에 벌어진 일에 대해 단체가 개입하지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고요. 그런데 제가 활동하던 시기에 단체 부대표가 성별정정을 했을 때는 성명을 냈었거든요. 이것도 개인적인 일인데, 왜 판단이 다르냐고 물어보니 아무튼 미안하지만 못 하겠대요. 내가 활동했던 단체조차도 나에게 연대해 주지 않은 거죠.”
“기자들에게도 실망을 많이 했어요. 단체에 있을 때 제가 주로 언론사 담당을 많이 했다고 했잖아요. 아는 기자들이 많았어요. 공론화하고 나서 연락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성소수자에 대해서 궁금한 거 있을 때마다 기자들이 많이 물어봤고, 저도 많이 알려줬거든요. 지금 보니까 그때 알려줬던 것을 토대로 기사 잘 쓰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나한테 연락할 생각을 안 하는 거죠.
그거 말고는 이제 뭐, “변희수, 김기홍, 이은용”, 이렇게 딱 공통 수식어처럼 언급하는 기자들. 그랬던 기자들 중에 사과하거나 연대 의사 밝혀주신 기자분이 딱 두 명 있어요. 너무 적어요.”
이번 인터뷰는 공론화 이후 언론 매체에 실리는 J의 첫 인터뷰다. J는 인터뷰를 하게 된 소회를, 칠판에 그림을 그려가며 이야기했다.
인터뷰 참여 소감을 설명하며 J가 그린 그림. 출처: 사루
“제가 가지고 있는 자원은 이만큼이예요. 확장성에 한계가 있죠. 연대하는 사람이나 단체를 만날 때마다 말할 수 있는 영역이나 역량이 더 커지는 거죠. 결국 이런 것들 덕분에 (공론화를) 계속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언론 기사가 나가게 되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넘어 더 크게 이야기가 퍼지겠죠.
나의 이야기를 할 곳이 필요하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이 일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남들의 글로서 더 많이 보고 싶어요. 내가 그동안 나의 이야기를 쉬지 않고 이야기한 게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도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판단을 하는지 글로 쓸 수 있지 않나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인터뷰를 하게 돼서 너무 좋죠, 당연히.”
운동사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이유
J는 운동사회로의 복귀를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이야기했다. 성폭력 사건 이후 쌓인 스트레스로 활동을 떠나게 된 사람에게, 활동으로의 복귀를 가로막고 있는 요소들은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활동으로부터 J의 마음이 떠나게 했을까.
“활동을 할 때 자주 듣던 말이 ‘이제 퇴근했으니까 인권 타임 끝이다’하는 말이었어요. 그게 뭐냐면 이제 그 뒤로는 그냥 ‘빻은’(3) 소리를 해도 서로 비판을 안 하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게 싫었거든요. 그게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모습이 싫었어요.
어떻게 보면 연결되는 이야기인데, 다들 성폭력에 대해서 되게 무감각해요. 또 자기한테는 성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 믿는 것도 많이 보여요.”
J는 조직 문화에 대한 실망이 운동사회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가장 큰 요소라고 답했다. 성폭력과 인권에 대한 문화뿐만 아니라, 조직의 역량이 전적으로 활동가 개인에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 또한 실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활동하면서 만들려고 했던 모습들이 있어요. 트랜스젠더나 퀴어 단체뿐 아니라 다양한 곳과의 연대를 넓히려 했던 것들이나, 논바이너리나 젠더퀴어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하려고 했던 것들. 그런 것들이 활동을 그만둔 이후에 사라지는 모습들. 실망이 쌓인 게 많으니까 활동을 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초점을 맞추기
지난 4월 26일 녹색당 성평등위원회와 녹색당유럽당원모임 그린페미의 공동주최로 열린 故 김기홍 가해 사건 대응 성평위 집담회 웹포스터. 출처: 녹색당
지난 4월 28일, 故 김기홍이 활동했던 녹색당에서 ‘故 김기홍 가해 사건 대응 성평등위원회 집담회’를 개최했다. 사회적 소수자이면서 정당의 정치인인 고인이 사망하여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 상황에서, 故 김기홍 사건이 갖는 시사점과 공동체의 역할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였다. 집담회는 또한 故 김기홍 성폭력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여 가해고발인에게 긴 시간 고통을 준 것에 대한 녹색당 차원의 반성의 자리이기도 했다.
“나 혼자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보다 다양한 곳에서 각자의 판단을 확인하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했는데, 녹색당 성평위 담당자가 계속 사고 상태가 되고, 녹색당 자체의 역량도 없어서 이야기를 못 꺼내고 있었어요. 그러다 올해 저랑 연락하시는 (성평위 담당자)분이 적극적이셔서 집담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나 말고도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정당의 힘을 통해서 확인했다는 것, 그 점에 가장 좋은 평가를 주고 싶어요. 그리고 자당의 정치인에 대한 사후 평가를 가해고발인과 의논해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사례라고 생각해요. 녹색당뿐 아니라 다른 진보 정당들도 뭔가 하면 좋지 않겠나 싶어요.”
집담회 개최가 공지되자마자 故김기홍의 생전 지인들을 비롯한 2차 가해자들의 공격이 불거졌다. 집담회 난입을 시사하는 등의 2차 가해성 게시글들이 올라오는가 하면, 가해고발인과 연대자들에 대한 위협 또한 이어졌다.
“2차 가해에 대한 우려를 이야기하니까, 질문을 미리 취합하는 등 짜임새 있게 준비하고 진행하신 것도 굉장히 좋았어요.”
다행히 집담회는 우려하던 일 없이 가해고발인과의 연대를 확인하며 끝이 났다. 그러나 가해고발인에 대한 일상적 2차 가해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고 J는 밝혔다.
“지금은 성폭력 당시의 나와 지금의 나를 분리할 수는 있어요. 시간이 흘러서 그 정도까지는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한 번도 그 일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적은 없어요. 왜냐하면 사람들이 내가 겪은 피해를 관음증적으로 보는 게 싫거든요. 그러다 보니 노동당에서 있었던 2차 가해 사건(4) 같은 일들이 많기도 해요. ‘진짜 겪은 일이 맞냐’, ‘왜 자세하게 이야기를 안 하냐’. 사람이 사람한테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J는 2차 가해로부터 가해고발인을 보호하고, 회복을 돕기 위해서는 피해사실이 아닌 가해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가해고발인에 대한 적극적인 조력이 필요하다는 사실 또한 덧붙였다.
“성폭력 피해자를 볼 때 그 사람에게서 이유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성폭력이 발생하는 이유는 가해자가 가해를 저질렀기 때문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다들 자주 잊거든요. ‘그 가해자는 나한테는 잘하는 사람인데, 좋은 평판이 있던데’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피해자의 말을 다 들어줄 수는 없을 거예요. 어떤 요구는 들어줄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럴 수 없는데, 그에 대해 잘 정리된 입장으로 대응을 해주는 게 가해고발인에게 도움이 돼요. “이래서 이렇게 하는구나” 납득을 할 수 있으니까.”
“피해자를 탓하지 않기. 그리고 가해고발인이 이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려면, 그런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 모두의 역할이라는 걸 생각하기. 그 정도인 것 같아요.”
“대충 가족 같은” 진보정당
“정치인은 말과 글로 신뢰를 쌓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반칙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반칙을 하는 것을 경계하고, 또 힘든 길이지만 독자적인 길을 걸으려고 하는 곳들에 계속 표를 준 것 같아요.”
J는 진보정당에 대한 애정과 지지를 숨기지 않는다. 조기 대선 때 민주노동당 권영국 후보를 지지한다는 글을 SNS에 게시하기도 했고,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진영의 후보에게 투표하지 않은 적이 없다고 한다.
동시에, 故 김기홍 성폭력 사건 이후 진보정당들에게 받은 상처 역시 작지 않다. 故 김기홍 사망 당시 추모 입장을 밝혔던 진보정당의 기구와 활동가들 중 아직도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진보정당의 당원들에게 2차 가해를 당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J는 진보정당을 “대충 가족 같은” 것이라고 느낀다.
21대 대선 기간 중 무지개행동과의 정책협약을 진행하고 있는 권영국 당시 민주노동당 대통령 후보. 독자적 진보 진영은 “차별 없는 나라”를 기조로 하여 공동으로 대선에 참여했다. 출처: 민주노동당
“정파적인 이야기보다는 그냥 노동자의 삶, 그리고 나의 정체성에 대해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모인 곳을 좋아하게 된 거죠. 진보정당은 대충 가족 같은 거예요. 가족이라서 계속 두고 볼 수밖에 없어요. 잘하는 건 잘하는 것대로 이야기하고, 못하면 못하는 대로 뭐라고 하고. 반칙하면 그러지 말라고 하게 되고. 조금 희한한 감정인 것 같아요.”
“대충 가족 같은” 진보정당들에게 가장 바라는 것은 매달 반성폭력 교육을 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건 녹색당에 처음 이야기한 건데, 저는 매달 당원들이나 당직자들이 반성폭력 교육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일상적으로 들어야 성폭력을 저지른 사람이 나쁜 거고, 성폭력을 당한 사람은 우리가 연대를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생길 것 같아요. 그냥 숨 쉬듯 자연스럽게. 그런 문화를 만들 수 있도록 매달 교육하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진보 정당 사람들은 반성폭력에 대해서는 확실하다는 인식이 생기면, 그게 정당이나 시민사회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사회 전체로 퍼지게 되겠죠. 그걸 가장 바라요.”
즐기기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2024년 서울퀴어문화축제 미국-영국-독일 대사관 부스 앞 항의 피케팅. 출처: 민주노총세종충남본부
“나의 가장 큰 정체성은 ‘내가 퀴어라는 것’이에요. 그런데 이제 활동가로서 축제를 바라보니까 그냥 축제에 참여하는 사람일 때랑은 좀 다르게 보이는 게 있잖아요. 조금 곪아 보이는 거라든지.”
프라이드 먼스를 맞아 진행되는 인터뷰이니만큼 성소수자 공동체와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이야기 또한 오갔다. J는 퀴어문화축제에 대한 복잡한 심경을 털어놓았다.
“서울퀴퍼를 앞두고 얘기하자면, 이런저런 문제가 매해 생겨요. 이스라엘 지원하는 국가들의 대사관이 참여하는 것도 용인을 한다든지, 블루드 베이비 같은 ‘대리 임신 서비스’ 업체 문제라든지. 그게 어떤 층에게 소구되는지는 알아요. 하지만 그게 어떤 방식으로든 용인되면 반드시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래서 당연히 조직위원회에서는 경계심을 갖고 걸러내야 하거든요. 근데 그런 걸 걸러내지 못하는 걸 보면서, ‘프라이드’란 뭔가, 내가 퀴어로서 무슨 자긍심이 있나, 한이 있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축제 자체의 즐거움은 있어요. 없지 않아요. 행진하면서 얻는 행복 같은 게 분명히 있는데, 이제 그것만을 즐기기 위해 가기에는 내가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거죠.”
퀴어문화축제 자체에 대한 아쉬움과 더불어, 각 지역의 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들이 故 김기홍 성폭력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서도 서글픔을 토로했다.
“김기홍이 죽었을 때 전국퀴어문화축제연대에서 추모 입장을 올렸었거든요. 공론화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게 그것 때문이었어요. 공론화를 안 하면 이 인간이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으로서 죽은, 퀴어들의 토템이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으니까.
몰라서 했으니까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공론화 이후로는 이에 대한 반성 입장을 낼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안 하길래 좀 당황했던 게 컸던 것 같아요. 제주퀴어문화축제는 작년에 입장이 나왔어요. 공론화 기준으로 2년 뒤에요. 그러니까 너무 싫은 거예요. 김기홍이 조직위원장을 했던 곳에서조차 2년이 걸렸다는 게.
외견을 보면 조금씩 변하는 게 있긴 있어요. “그런데 이제서야 변화를 한다고? 안 가.” 하는 마음이 생기는 거죠. 내가 몇 년을 이러고 있는데 이제 와서.”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에는 故 김기홍 사건의 2차 가해자로 지목이 된 사람이 행사 공식 촬영자 중 하나로 참여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J는 각 지역 퀴어문화축제들에게 갖는 아쉬움의 “핵심”적인 부분을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느낀다고 말했다.
“이 모든 것들의 핵심이 서울퀴어문화축제고요. 2차 가해자가 마켓 셀러로 등록을 하고, 공식 촬영이기도 했더라고요. 공식 촬영자 중 한 분이 저한테 이야기를 안 해줬으면 저는 그 사람이 공식 촬영자인 걸 몰랐을 거예요.”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는 어쨌든 간에 입장이 없는 거예요. 이런저런 일이 있으니까 더 이상 (故 김기홍을) 공개적으로 추모는 안 하지만, 가해고발인에게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평가를 하지 않는 거예요.”
채식하며 오래 잘 살아서 자연사하자
“성폭력 피해 경험을 가진 퀴어들이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을 멈추는 건 어려운 일이 맞아요. 저도 스스로 비난하는 시기가 분명히 있었고요. 그러나 저처럼 이렇게 잘 지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으니까, 이 느려터진 대한민국의 시민으로서 잘살아 봅시다.”
성소수자 단체와 운동사회에 대한 감정은 복잡할지라도, J는 여전히 성소수자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 여전히 성소수자 정체성은 스스로를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정체성 중 하나이고, 성소수자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서도 여전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성소수자 공동체 내부의 성폭력 사건은 “혐오세력에게 힘을 실어줄까 봐” 공론화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생기곤 한다. 특히 트랜스젠더가 연관된 사건의 경우에는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부정하는 ‘증거’로, 땔감처럼 쓰일까 두려워하는 경우 또한 있다.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이) 항상 김기홍을 언급하려 하는데, 그들이 언급한 나는 시스젠더 여성이 되기도 하고, 아동 청소년이 되기도 해요. 둘 다 아닌데. 나에게 연대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그냥 자기들이 트랜스젠더를 혐오하기 위해 “봐라, 트랜스젠더 성폭력 범죄 저지르잖아”, 딱 그 요건에 맞춰서 저를 끼워 맞추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J는 이런 이유로 성폭력 사건의 공론화를 주저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동료 시민들에게 따뜻한 한마디를 건넨다.
“‘성폭력을 경험한다고 해서 당신의 영혼이 파괴되지 않습니다.’ 이 말을 해 주고 싶어요.”
또한 운동사회에 남아있는 사람들과 故 김기홍 성폭력 사건을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당부의 이야기를 남겼다.
“내가 겪은 게 권력형 성범죄라는 걸 다들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알려진 활동가 내지 정치인하고,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활동하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권력 구조가 분명히 있거든요. 저는 이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라고 생각하고, 제 공론화도 미투 운동의 일환이라고 생각해요.”
공론화 이후 4년간 연대의 마음을 모아 준 사람들과 단체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트랜스젠더 단체 중에서는 튤립연대가 가장 적극적으로 연대해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리고 제가 올해 초부터 (트위터에) 후원 기능을 켜놓으니까 비정기적으로 적게나마 돈을 보내주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내가 적극적으로 연대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밥 잘 드시고, 커피나 한 잔 드시고,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을 보내주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마지막으로는 “희망찬 이야기”가 좋을 것 같다며, 아래와 같은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항상 친구들한테 그 이야기 하거든요. ‘맛있는 채식하면서 오래오래 잘살아서 자연사하자’라고. 저는 나쁜 일을 겪었다고 죽고 싶지는 않아요. 살아서 하고 싶은 일이 많거든요. 지금 만나는 애인이 너무 고맙고, 같이 하고 싶은 일도 많아요. 또, 연대한다 지지한다 따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괜히 밥 한 번 더 먹자는 사람도 있고. 이 일을 경유하면서 내가 얻은 자산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거의 다 한 것 같아요. 그리고 2차 가해자들, 반성 좀 하세요. 제발.”
*주
(1) Neutrois. “중립의”를 뜻하는 neutre와 “제3의”를 뜻하는 trois의 합성어로, 일반적으로 ‘여성도 남성도 아닌 제3의 성별정체성을 가진 사람’을 일컫는다.
(2) Non-binary. 성별이분법적 성별 구분을 벗어난 성별정체성을 지칭하는 용어.
(3) 인권 감수성이 결여된 행동이나 발언을 뜻하는 속어.
(4) 2024년 6월 경, 故 김기홍의 생전 지인이던 노동당 당원이 지속적으로 가해고발인에 대한 2차 가해성 게시글을 개인 SNS에 게시했다.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2차 가해는 이어졌고, 가해고발인은 노동당 당기위에 해당 당원을 제소했다. 노동당 당기위에서는 당권 정지 6개월과 사과문 작성을 결정했지만, 해당 당원은 징계에 불복하고 탈당했다. 자세한 사건 경위를 담은 가해고발인 대리인 입장문은 이 링크에서 확인 가능하다.
- 덧붙이는 말
-
사루는 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사무국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