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문화사회는 창간 특별기획으로 문화연대가 준비하고 있는 문화교육운동의 제기배경과 이념, 실천사례들 그리고 외국사례 등 문화교육운동의 쟁점들을 심층 기획하여 연재합니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1. 문화교육운동 제기 배경과 이념
2. 정부 교육정책, 무엇이 문제인가
3. 문화교육운동의 활동방향
4. 문화교육 교과과정 모델 방향
5. 문화교육 실천사례들
①문학언어교육 ② 시각미술교육 ③ 미디어교육
④ 음악교육 ⑤ 연행교육 ⑥ 공공문화시설 연계 교육
⑦ 가정에서의 문화교육 ⑧ 대안교육에서의 문화교육
6. 문화교육위원회 사업제안
7. 외국의 문화교육
① 프랑스 ② 캐나다 ③ 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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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문화개혁/사회개혁의 브릿지 '문화교육운동'제기 배경과 이념
'문화의 세기', '문화예산 1조원 시대'가 도래했다고 하지만 문화는 여전히 사치나 오락, 홍보와 상품의 수단으로 치부되고 있다. '삶의 질' 향상과 '문화적 리터러시'의 함양, 예술인프라와 문화인프라의 구축은 요원한 반면, 문화상품 개발과 관광위락 시설 개발에는 예산이 과잉 투자되고 있다. 대중매체 시대에 '문화의 산업화'는 불가피한 면이 있으나, 상업주의가 문화 전반을 휩쓸면서 문화예술의 비영리적인 성격과 자율성은 크게 위축되고, 문화적 공공성 자체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도 신자유주의 정책의 강화로 공교육 기반이 크게 약화되고, '지식기반사회'로의 이행을 빌미로 정규 교육과정에 실용주의적/시장주의적 프로그램과 제도가 전격 도입되고 있다. 수용자 중심 교육, 이수시간 단축, 자율선택이라는 명목으로 국/영/수 같은 중점 교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교과를 선택과목으로 치환하고 예체능교육을 대폭 축소한 7차교육과정, 민간 귀족학교인 '자립형사립고'의 도입 계획, 기초학문을 배제하고 실용교과 위주로 통폐합을 강제하려는 국립대학발전계획 등이 단적인 사례다.
이런 과정에서 문화와 교육은 환경과 더불어 시장논리로 재단될 수 없는, 인류 최후의 자원이라는 점이 점점 더 간과되고 있다. 그러나 문화와 교육마저 시장논리로 환원되면, 인간 능력의 다양성과 잠재력 자체가 급격히 소진되고 파괴될 것이며, 이는 목전의 이익에 급급한 환경파괴로 지구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만큼이나 인류의 미래에 위협적인 것이다. 이 때문에 신자유주의적 자본의 세계화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이나 G7국가들조차 환경은 물론, 문화와 교육 분야에서만큼은 시장논리의 무차별 적용을 피하고 인적 자원의 풍부한 잠재력을 보존하고 육성하기 위해 오히려 공공성의 원칙을 새롭게 강화하고 있는 실정이다(미국의 경우 지난 십 수년간 신자유주의 논리에 의해 공교육의 기반이 과거에 비해 훼손된 것은 사실이나, 이미 상당한 교육·문화적 인프라가 구축되어 있고 교육예산의 비중 역시 우리와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에 반해 우리 정부는 여전히 개발지상주의의 낡은 도식에 사로잡혀 문화와 교육 부문에도 시장논리를 무차별 적용함으로써 세계적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그 결과 미래사회를 책임질 우리 청소년들은 갈수록 악화되는 입시경쟁에 시달리며 획일적인 문화상품이 양산하는 표피적인 감각주의로 해소에 매몰되고 있고, 좌절한 교사들은 학교를 떠나며 돈 있는 학부모들은 '교육이민'에 매달리고 있는 형편이다. 예술가들 역시 문화산업의 대세에 밀려 창조적인 예술적 실천의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문화의 세기'와 '평생교육의 세기'가 열렸다는데, 우리에게 닥쳐오는 것은 '문화 붕괴'와 '교육 붕괴'일 뿐이다.
'문화의 붕괴'와 '교육의 붕괴'는 동전의 양면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선 그간 분리되어 온 문화운동과 교육운동이 '문화교육시민운동'이라는 새로운 개념 틀로 결합되어야 한다.
문화교육운동을 위해선 21세기 지식정보사회 그리고 문화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새로운 학교교육 이념 수립이 필요하다. 현재는 전지구적인 디지털혁명으로 인해 산업구조, 미디어환경, 문화환경이 격변하고 있으며 사회 각 분야가 대대적인 구조변동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즉 지식사회, 영상시대, 이미지경제로의 전환에 걸 맞는 새로운 문화적 리터러시의 함양이 사회적 의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교육은 이와 같은 사회 변동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채, 입시위주교육, 지식정보전달 교육이라는 낡은 틀에 매달려 있어 학교붕괴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식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홍수'가 문제시되는 사회에서는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정보의 가치를 판별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판단력과 창의성 교육이 절실하다.
또한 근대적 노동중독사회가 필요로 했던 교육 내용과 교육 방법을 탈근대적 문화사회가 필요한 교육내용과 교육방법으로 새롭게 구성해야 한다. 이는 정부주도형 지식기반사회론에 근거한 포스트포드주의적 시장의 요구에 맞춰 학교교육을 재편하려는 '지식정보 전달 중심의 교육'과는 다른 방향으로, 문화적, 생태적 가치판단을 중심으로 학생들의 신체와 감수성, 창의적인 지적 역량의 발달에 역점을 둔 교육이다. 이를 포괄하여 '문화교육'이라 말하며, 예술교육과 체육교육은 이의 일부이고 이들 교육 역시 문화교육의 이념 하에서 재구성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현재의 지식정보전달 중심교육은 감성교육과 지식교육의 균형에 둔 문화교육으로의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하다. 좁게는 교과과정의 내용, 넓게는 교과과정의 편성까지 한편으로는 청소년들의 정신적, 육체적 능력, 심리적 자질 등의 발달 단계에 맞게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단계별 능력에 맞게 사회 생활에 필요한 일정한 지식과 정보를 학습, 축적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학교 교육은 후자의 측면에 집중돼 있으며, 개개인이 잠재적으로 지닌 다양한 정신적, 육체적 능력들(faculties)을 어떻게 최대한 계발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점점 무관심해지고 있다. 따라서 정규 학교교육에서 교과과정상의 극심한 불균형을 극복하기 위해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예체능교육과 미디어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을 확대하면서(저학년에 이를수록 늘어나는 방식), 기존 지식교육과 예술/미디교육을 접목하는 형태의 통합교육 방식의 교육과정 재편이 필요하다. 입시 문제 때문에 학부모들의 반대가 심할 수 있으나, 여론을 통한 설득과 정책적 구체화를 통해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를 중심으로 문화교육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고등학교에서는 1학년까지로 한정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칸트는 인간의 정신능력들이 인식능력, 쾌/불쾌의 감정, 욕구능력이라는 세 가지 이질적 능력으로 구분되며, 이는 각기 오성(순수이성), 판단력, 이성(실천이성)이라는 세 가지 상위의 인식능력이 제공하는 세 가지 상이한 선천적 원리(합법칙성, 합목적성, 궁극목적)에 의해 지도되고 운영되며, 자연과 예술, 그리고 자유라는 세 가지 이질적 적용대상을 가진다고 보았다. 이에 따르면 수학이나 자연과학적 탐구의 열쇠는 오성의 작동에서, 미학적 탐구는 판단력(특히 반성적 판단력)의 작동에서, 그리고 도덕과 형이상학은 실천이성의 작동에서 구해질 수 있다. 말하자면 정신적 능력의 이질적 차이로부터 학문적 편성의 근거를 도출했던 셈이다. 이러한 칸트의 인식론에는 두 가지 큰 특징이 있다. 하나는 세 가지 인식능력이 서로가 환원 불가능한 고유성과 이질성을 특징으로 갖고 있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이런 환원 불가능성이 완전히 통약 불가능하게 별개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별개일 경우 주체가 내파할 수도 있으므로) 반성적 판단력을 매개로 일정하게 연결(보다 정확히는 '절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즉 반성적 판단력(미학과 예술)을 몸통으로 하면서 한편으로는 순수 이성(법칙을 탐구하는 과학)이, 그 반대 방향으로는 실천 이성(자유를 추구하는 도덕)이 서로 양 날개를 펴는 양상이 그것이다.
그러나 현행 예술 교육은 지난 200년간의 서구식 근대화 과정에서 장르별 전문화를 통해 제도화되어 사실상 반성적 판단력/상상력이 아니라 규정적 판단력/오성적 도식의 지배 하에 굳어져(버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반성적 판단력의 학습 불가능이라는 초월적 '천재론'에 기초하고) 있다. 오늘날 광범위하게 제도화된 '제도 예술'은 재료와 매체를 다루는 기술과 장르적 규범을 축으로 움직여 왔고, 특히 우리 사회의 예술 교육과 예술 현장은 이와 같은 기술주의와 규범주의에 의해 완고하게 경직화되어 왔으므로 창의적 사고와 상상력이라는 예술 고유의 매력을 상실해 버렸고, 그에 따라 문화 발전을 견인하는 기능 역시 스스로 상실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새로운 문화교육의 이념 하에서 예술교육의 혁신이 필요하며, 예술교육은 재료와 규범적 기술 위주의 교육이 아니라, 자연-사회-집단-개인간의 관계를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사유하고 표현하며 감수성과 상상력을 도야하는 교육으로 재편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아가 '문화교육'은 재구성된 예술만이 아니라, 대중매체문화를 포함한 일상생활에서의 취미형성의 문제를 주요한 쟁점으로 포함해야 한다. 여기서도 다시 칸트가 제기했던 '취미판단'의 문제를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칸트는 애초에 대상이나 표상과 쾌/불쾌의 감정과의 관계가 욕구능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서 세 가지 종류로 구별될 수 있다고 보았다. 감각적 자극에 의해 쾌락을 주는 '쾌적'(Angenehme), 단지 만족을 주는 것일 뿐인 '미'(Schoene), 그리고 존중되고 시인되는 객관적 가치를 갖게 됨으로써 만족을 주는 '선'(Gute)이 그것이다. 본래 칸트는 순수하게 '무관심적인'(disinterested) '미' 그 자체를 찬양하기 위해 '미'로부터 감각적 쾌락을 분리시킨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에게서 미적 형식(the beautiful form)은 도덕적으로 선한 것의 '상징'으로서, 감각적 쾌락으로부터 도덕적 선으로의 이행을 매개하는 역할을 수행하며, '미'에게는 쾌락과 선으로 양극화되기 쉬운 내적 분열을 중재하고 조율하는 적극적 역할이 부여되었었다. 따라서 감성적 쾌, 미적 형식, 숭고 사이의 위계가 아니라 수평적 관계 형성을 통한 미적 교육의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이렇게 문화연대가 제안하는 문화교육운동은 공교육의 위기에 대한 선택적, 배타적, 제한적 대안을 찾기 위한 교육운동이 아니다. 문화교육은 공교육의 교육과정 전체에 대한 개혁운동이며, 아동과 청소년들에 대한 공교육의 기본 방향의 근본적인 전환을 기획하는 운동이다. 장기적으로는 교과과정에서 일부 예능교과목과 특별활동의 위상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서, 교육의 철학과 방법에 대한 근대적 한계(교육의 탈식민화)를 극복하기 위한 즉 공교육 전반의 패러다임 전환에 기초하는 운동인 것이다.
심광현(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장 shkwang@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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