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주변정세-5+왕따?]‘북한-무원칙한 양보, 일본-이중잣대’ 문제있다

북일 해법 문제없나

양미강/일본교과서바로잡기운동본부 상임운영위원장
9월 17일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두 정상이 만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이번 만남은 오랫동안 소원했던 북일관계를 풀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태어나기 위한 양국간의 노력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그러나 북일 정상회담이 갖는 성과와 함께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히 짚어내는 일은 매우 필요하다.

한국이나 일본의 언론매체들은 북일 정상회담과 그 이후를 보도하면서 균형적 감각을 잃은 것 같이 보인다. 북일간의 중요한 쟁점이었던 일본인 납치문제와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해 균형적인 시각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50여년간의 시간을 뛰어넘어 양국 정상이 발표한 북일 평양선언은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파격적이라고 할 정도로, 김정일 위원장은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하고, 더 나아가 진상규명과 재발방지까지도 약속했다. 납치문제에 관한 한 일본의 주장이 100% 받아들여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러나 초미의 관심이 된 일제 식민지 시대의 과거사 청산에 대한 북일 합의는 “국교 정상화 이후 무상자금 협력, 저금리 장기차관 제공이나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인 지원 등 경제협력을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1945년 8월 15일 이전의 일에 대해선 국가와 국민이 모두 재산청구권을 포기한다는 기본원칙에 합의한다”고 했다. 바로 이 대목이 가장 우려하는 지점이다.

북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식민지배와 전쟁피해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일본의 각 시민단체들도 경제협력 방식이나 사과와 반성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한일간의 불행한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를 연이어 발표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북일 평양선언에서 양국정상은 경제협력 방식에 근거해 과거사를 청산한다는 원칙을 발표했다.
이것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과 침략전쟁의 법적 책임을 준엄히 묻는 사죄와 배상의 차원이 아닌, 국가와 국민의 청구권 포기와 무상자금 지원, 저금리 장기 차관 형식으로 해결한다는 것이다. 경제협력 방식이 갖는 가장 큰 문제점은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동시에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 규정이 명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남한의 일제 강제징용 징병 피해자들이 또 다시 청구권 포기와 경협 방식을 채택한 한일협정에 의한 피해자가 되어 개인 배상을 위한 기나긴 법정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동안 일본정부는 입에 발린 사과의 말을 여러 차례 해왔다. 이번 북일 평양선언이 지난 1995년 무라야마 총리의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문구화한 것은 한일협정과 비교해볼 때 그나마 성과로 평가될 수 있다.

지난 1990년 일본의 자민당과 사회당 대표는 평양을 방문해 조선노동당 대표들과 과거 식민지 지배와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인정하고 배상을 약속한 것처럼, 일본정부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일본은 일관된 잣대를 가지고 과거사청산에 임해야 한다. 현재 일본은 일본인 납북자 문제로 국내 여론이 악화돼 있다.

그동안 의문투성이었던 일본인 납북자문제의 실체가 드러났으니 분노가 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타국을 향한 그들의 이중적인 잣대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일본정부가 일본인 11명 납치자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죄, 재발방지까지 북한으로부터 받았다면, 일본이 일제시대에 행한 수만명 한국인 납치자(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등)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사죄, 배상은 왜 하려고 하지 않는가?

북일수교가 제대로 이뤄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일본의 시민단체들과 연대하여 일본정부의 이중적 잣대들을 폭로하고, 피해자 개개인에 대한 배상의 길을 확보하며, 한일간의 잘못 체결된 한일협정 재개정 작업을 진행할 것이다.

정의와 인권의 잣대가 아닌 외교적 술수나 경제적 잣대로 평가되는 한, 피해자의 목소리를 외면하는 한 우리에게는 희망은 없다. 희망을 만들어 가는 일이 바로 우리의 몫이다.
[ 105호] 9.30 ~ 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