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실시로 백혈병·에이즈 환자 생명 보호해야"

보건의료단체들 '의약품 강제실시 요청' 인권위 진정

높은 가격과 초국적제약회사의 공급 거부로 논란이 일었던 백혈병 치료제 '스프라이셀'과 에이즈 치료제 '푸제온'에 대해 환자 및 보건의료단체들이 10일 정부에 강제실시를 권고해줄 것을 요청하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했다.

로슈 등 제약회사, 환자 생명 볼모로 '돈 놀이'

고가약 논란이 있어 온 스프라이셀과 푸제온은 초국적제약회사인 브리스톨마이어스큅(BMS)과 로슈가 개발한 신약이다. 두 회사가 요구하고 있는 가격은, 환자 1인 당 연간 각각 4천만 원(스프라이셀)과 2천2백만 원(푸제온)을 부담해야 하는 수준이다.

때문에 그간 백혈병·에이즈 환자단체 등은 BMS와 로슈 그리고 보건복지가족부에 이 같은 약가 책정의 근거를 밝히라며 약가 인하를 수차례 요구해왔다.

그러나 지난 5월 보건복지가족부는 제4차 약제급여조정위원회를 열어 BMS의 스프라이셀 약가를 5만5천 원(70mg 한 알 당)으로 결정한 바 있다. 한편, 푸제온의 경우 복지부가 지난 2004년 1병당 2만4천996원으로 보험에 등재했으나, 로슈 측은 약가가 낮다며 현재까지 국내 공급을 거부하고 있다.

초국적제약회사들의 이 같은 행태로 한국의 에이즈 환자들은 약이 있어도 약을 먹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또 연간 4천만 원을 지불해야 하는 백혈병 환자 개인은 물론 정부 건강보험재정도 막중한 부담을 떠안고 있다.

"한국 의약품 제도, 제약회사 횡포 제재할 장치 전무"

이처럼 환자들의 생명을 볼모로 초국적제약회사가 '배짱'을 부리고 있으나, 한국 정부는 약가 인하는 물론이고 로슈의 경우처럼 아예 시장에 공급하지 않는 행태를 제지하지 못하고 있다.

단체들은 이날 진정서 제출 전 인권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의 의약품 제도는 초국적 제약회사들을 비롯한 기업들의 이윤동기에 끌려다니기 쉬운 상태여서 환자들의 건강권을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의약품 제도의 개선을 촉구했다.

이들은 BMS와 로슈의 행태에 대해 "제조약가비용은 부풀려지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약값을 산정한 것도 모자라 선진국 약값을 모든 나라에 똑같이 요구하고 있다"며 "심지어 제약회사가 생각하는 약값보다 낮거나 시장이 작아 구매력이 떨어지는 나라에서는 공급을 거부하는 일조차 일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단체들은 한국 정부에 대해서도 "환자들에게 꼭 필요한 약인 필수의약품일 때도 제약회사의 횡포를 제재할 수 있는 장치가 거의 없는 상태"라며 "이는 국가가 제3자가 시민에게 인권침해할 수 없도록 보호해야 하는 보호의 의무를 방기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정부, 강제실시 통해 환자 생명권 지켜라"

단체들은 이날 스프라이셀과 푸제온에 대한 강제실시를 한국정부에 재차 요청했다. 의약품강제실시란 한 국가가 자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특허에 의한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고, 제네릭의약품(복제약)을 생산할 수 있는 권리로 세계무역기구 무역관련 지적재산권협정 상에도 규정되어 있다.

단체들은 "많은 나라들이 강제실시 등으로 필수 의약품 접근권을 보장하고 있다"며 "의약품 강제실시 등 정부가 취할 수 있는 수단이 있으나 이를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아 발생한 환자의 건강권 생명권 침해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국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비판했다.

이들은 또 "한국정부가 제약회사의 횡포를 막아내어 환자의 건강권을 보호할 여러 수단을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초국적 제약회사가 공급을 거부하면 정부는 필수의약품공급에 대한 어떠한 방안도 갖고 있지 못하다'며 스스로 무책임함을 실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단체들은 "이번 인권위 진정을 계기로 보건복지부가 해야 할 일은 '제약회사 눈치보기'가 아니라 '시민들의 의약품 접근권을 보장'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더욱 노력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