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슈 규탄 전 세계 행동주간, 상식을 말하다

"돈만을 위한 의약품 생산, 존중되어야 할까?"

  프랑스 파리의 'ACT UP'에서 로슈규탄국제공동행동을 알리기 위해 제작한 웹포스터

"대통령 각하, 술 저장고 열쇠를 그들(월가)에게 줘놓고 그들이 술 취해서 망가뜨린 것을 초대받지 않은 국민이 내야 합니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불거진 자국의 금융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부시가 7천억 달러의 구제안을 발표했을 때, 미국 민주당의 로이더 더깃 하원의원이 그에 대한 비판으로 한 말이라고 한다. 금융산업에만 맞는 말이 아닌 것 같다. 다국적 제약기업의 터무니없는 약값과 그에 대한 우리나라 정부의 대응을 보고 있노라면 거기에도 이보다 더 적합한 표현을 찾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더욱이 그런 비상식 상황이 일상화되면 잠시 망연자실해지기도 한다.

약가결정, 우리의 상식과 그들의 상식

한국로슈의 에이즈치료제 '푸제온'은 2004년 11월에 1병당 2만4천996원(연간 1천800만원)으로 보험등재 되었지만 지금까지 국내에 한 병도 공급되지 않았다. 약을 찾는 환자가 없어서가 아니다. 약값이 로슈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푸제온은 '진료상 반드시 필요한 약제에 해당된다'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약제급여평가위원회의 평가에 따라 필수약제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필수적'약은 기업도 국가도 보장해 주지 않았다.

3년이 넘는 기간 동안에 수차례에 걸쳐 의견서, 면담요청, 항의방문, 기자회견 등을 해왔지만 2008년 7월 3일에 가서야 에이즈감염인단체, 시민사회단체는 겨우 울스 플루어키커 한국로슈 대표이사와 면담을 할 수 있었다. 우리의 의문은 당연히 "왜 당신들의 원하는 가격이 정당한가?"였다.

우리의 상식이 예상하는 답은 연구개발비-푸제온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로슈사 전체의 한해 의약품 연구개발비라도-라든가, 생산단가의 문제라든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업이 내놓은 대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의약품 공급에 관한 문제는 해당 국가 국민이 해당 의약품을 구매할 능력이 되는지, 즉 구매력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며, 따라서 "한국뿐만 아니라 경제수준이 낮은 동남아지역 국가에는 푸제온 공급이 안 되고 있다"고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약간의 비아냥마저 섞인 대답이 돌아왔다.

그 당당함은 일순간 우리를 무안하게 만들었다. 그런가? 그게 이 시대의 상식인가? 희귀난치성 질환에 대해 만들어진 약은 국가와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최대치를 기꺼운 마음으로 내야만 하는 것인가?

의약품 공급, 우리의 상식과 그들의 상식

우리가 면담자리에서 들은 것은 로슈가 부르는 가격 이하로는 절대로 약이 공급되지 않는다는 선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약을 어떻게든 로슈를 거치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공급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특허'가 있다. 사실 특허는 기존의 약품보다 월등한 임상적 혹은 경제적 이득이 있는 제품의 개발을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특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것보다 우수한 것만이 아니라 이제 모든 신약에는 특허가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년간 보장되는 독점권 때문에 제약회사들은 혁신성 보다는 기존의 것에 약간의 변화만 주어도 특허를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특허제도와 연구개발방식을 바꾸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개발된 모든 신약이 20년이 넘는 독점을 누릴 만큼 다 훌륭한가? 그 독점권자가 푸제온처럼 공급을 일방적으로 하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나? 모두가 의문이다. 적어도 후자는 합법적인 답이 있다. WTO TRIPS(무역관련지적재산권협정)에서조차 공중보건을 위해 특허권자의 허락 없이 제3자나 정부가 복제약을 생산, 공급할 수 있도록 "의약품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가 가능하도록 했다. 그것은 국내법으로도 물론 합법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부는 그 방법을 쓰지 않는다. 특허약은 하나도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특허보호를 하고 있다.

로슈규탄 전세계 행동주간(Global Week of Action against Roche)

우리는 이 과정을 다른 나라의 단체들에게 알리기로 했다. 9월부터 한국 로슈의 푸제온 대응에 대한 내용을 각국에 메일로 보내고 이에 대한 항의 연명을 받고자 하였다. 그러나 단지 연명뿐이 아니었다. 파리의 ACT UP이라는 단체에서 아이디어를 보내 주었다. 로슈 창립일인 10월 1일을 전후로 하여 반인권적이고 부도덕한 로슈를 규탄하는 행동을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하이에나 이미지를 넣은 선전물도 보내왔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10월 1일 파리에서 시작하여 뉴욕, 필라델피아 등을 거쳐 10월 7일 서울까지 이어지는 국제공동행동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에서는 10월 1일부터 6일까지 한국로슈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고 10월 7일에는 12시간 시위를 벌이기로 하였다. 그들의 연대와 독려는 이 일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니라고, 비상식의 일상화에 약간은 얼빠져 있던 우리가 정신을 차리도록 해주었다.

이것이 상식이다

한국로슈의 너무도 당당한 횡포와 정부의 틀에 박힌 안일함 속에서 우리도 잠시 무엇을 주장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길은 상식 속에 있었다. 소위 다국적 제약기업이 특허를 통해서, 그리고 특허로 보호된 독점가격을 통해 환자들로부터 벌어들이는 천문학적인 돈을 등에다 지고 본래 그 특허를 정당화할 수 있었던 환자들의 건강권과 의약품접근권은 사라졌다. 제약기업의 존재이유 및 특허의 정당성이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되는 원래의 것이 철저히 무시되고 있다. 그들만을 위한 기업, 돈만을 위한 의약품 생산, 이것이 존중되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10월 1일부터 그리고 10월 7일까지 우리는 테헤란로의 한국로슈 앞에서 말할 것이다. 로슈가 푸제온을 공급하지 않는다면 '로슈는 인간의 고귀한 생명과 건강을 지키면서 성장해 온 기업'이라는 간판을 내려야 할 것이라고, 그게 상식이라고.
덧붙이는 말

변진옥 님은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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