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노무현 바람 언론때문만은 아니다...진보정당 타산지석 삼아야

손석춘/한겨레 논설위원
갈수록 가관이다. '노무현 바람' 앞에 신문권력의 행태를 보라. 정치인 노무현이 '급진좌파'요, 계급의식을 부추기고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추구한다'는 이인제 진영의 정치공세를 대서특필한다. 기막힐 노릇이다. 하지만 그 정도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는 또 어떤가. 느닷없이 김대중 정권이 좌파정권이라고 공격한다. 말살에 쇠살인 그 주장 또한 1면에 대대적으로 부각했다. 어느새 우리는 지난 4년 넘게 '좌파정권' 아래서 살아온 셈이다.
정리해고의 칼날을 마구 휘두르고 공기업 민영화를 밀어붙인 김대중 정권이 좌파라면 도대체 민주노동당의 색깔은 무엇이란 말인가.

차분히 돌이켜보자. 무릇 취재와 보도에서 가장 기초적인 상식은 사실확인이다. 문제는 최근한달 새에 언론이 대서특필한 음모론과 색깔론 그리고 언론국유화론 어디에도 사실은 없다는 데 있다.

왜 대한민국에서 저마다 최고 언론을 자부하는 신문사들이 아무런 사실확인조차 되지 않은 기사들을 막무가내로 내보내는 걸까. 문제의 신문들이 취재보도의 기본상식조차 몰라서일까.

결코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왜일까.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천문학적 탈세가 드러나 '이회창 정권'만을 학수고대하던 신문권력에게 노무현 돌풍은 엄청난 충격일 터이다. 더구나 노무현은 소유지분 제한과 편집권 독립을 공언하고 있다.

실제로 그가 집권할 경우 언론개혁에 관한 한 어정쩡한 김대중 정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갈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신문권력이 오늘의 상황을 사운을 건 싸움으로 인식할 법하지 않은가. 문제는 음모론·색깔론·언론국유화론을 연일 부풀려 보도해도 경선 과정에서 보듯이 과거와 같은 신문권력의 영향력이 아직까지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그렇다고 다른 길을 선택할까. 아니다.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할 때까지 사력을 다해 '노무현 죽이기'에 나설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래서다. 색깔공세에 언론의 책임을 물을 때가 아니다. 책임은 상대가 조금이라도 선의가 있을 때 물어야 한다. 과연 오늘의 언론이 그러한가. 아니다. 언론은 지금 언론개혁에 적극적인 한 정치인을 대상으로 '전쟁'을 벌이고 있다. 민주·진보세력이 언론개혁운동에 적극 힘을 모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주노동당 일각에서 노무현 바람을 시큰둥하게 바라보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당연한 일이다. 분명 노무현 바람은 민주당 바람이지 민주노동당 바람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노무현 바람은 진보정당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왜 민주노동당은 신선한 바람을 불러오지 못하는가. 노무현 바람은 그것이 언론 때문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뼈아프게 '입증'해준다.

아직 오지 않은 진보정당의 바람을 위해서라도 노무현 바람은 꺾이지 말아야 한다. 노무현 현상을 폄하하는 것은, 조금이라도 진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길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진보정당 또한 색깔공간을 신선하게 활용해나가는 참신한 접근이 아쉽다.

김대중 정권을 좌파로, 노무현 후보를 급진좌파로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몰아가는 정당이 대한민국의 원내 1당이고, 발행부수 1·2·3위 신문이라는 대한민국의 엄연한 현실을 냉철히 주시할 때다.

바로 그 현실을 밑절미로 진보정당의 '오지않은 바람' 전략을 구상해야 하지 않을까?
[83호] 4.15 ~ 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