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노동자의 힘 보건복지기획단)
도대체 무슨 일이요?
-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 현황
2002년 3월, 대우조선 노동조합 소속 76명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직업병으로 집
단 요양 투쟁에 돌입한 이후,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일들이 전개되어 왔다. 대
우조선 노동조합에 대한 사측의 침탈과 지도부 구속, 노동부의 근골격계 질환
예방을 위한 시행규칙 제안, 대우조선 노동조합의 상경투쟁 돌입, 상당수 사업
장의 집단요양 투쟁 결의, 총연맹을 중심으로 노동 사회단체가 결합하는 공투
위 결성 등 지난 한달 보름에 걸쳐 노동안전보건운동, 아니 전체 노동운동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한꺼번에 전개되어 온 것이다.
사실 문제제기의 출발이 되었던 대우조선 노동조합 당사자는 지도부의 구속,
조합 상집간부에 대한 임금 가압류, 출두요구서로 인한 활동가들의 위축 등으
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다. 현장에는 아직도 어용과 사측의 논리에 의해
지배되는 조합 대중의 정서가 엄연히 존재하고, 전국적인 연대 투쟁은 외딴
섬 거제도의 위치만큼이나 여전히 멀기만 하다. 이러한 조건에서도 대우조선
본사 앞은 최초 상경투쟁을 시작했던 5월9일의 낯설음에 비하여 훨씬 당당한
조선노동자의 투쟁 현장으로 나날이 변모되고 있다. 이미 금속연맹을 중심으
로 사회단체를 비롯한 연대 투쟁의 대오가 형성되어 매일 매일의 집회를 사수
하고 있으며,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정당성을 호소하고 대우조선 사측의 노
조탄압에 대한 격렬한 항의를 지속하고 있다.
한편 대우조선의 집단 직업병 투쟁을 옹호하고 전체 현장 투쟁으로 확대시키
기 위한 논의들도 활발해지면서 금속노조 경남지부를 비롯하여 충청권 등 여
러 사업장에서도 집단 요양 투쟁을 준비하기로 결의하면서, 지금의 투쟁이 대
우조선 노조만의 개별적 투쟁이 아닌 본격적인 노자간 대립 투쟁으로 변모되
고 있음도 확인되고 있다.
특히 많은 사업장들이 개별 요양이나 회사와의 합의를 통한 공상처리로 대처하
던 기존의 투쟁 방향을 집단 요양 투쟁으로 수정하면서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
은 노동자 개인의 산재인정과 보상 문제 수준을 본질적으로 넘어서고 있다. 또
한 총연맹을 비롯한 노동계와 노동안전보건 단체, 정치 사회단체가 참여하는
노동강도 강화저지를 위한 공동투쟁위원회 결성은 전국적 규모의 상시적 투쟁
대오가 마련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정부의 태도 역시 급진전되고 있다. 대우조선의 집단 요양
투쟁과 금속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4월 상경투쟁을 통하여 노동부는 근골격계
예방 대책을 어떤 식으로든 시급히 제출하여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게 되었고,
5월 2-4일간 있었던 시행규칙 제정을 위한 공청회에서 그 일단을 내비치게 되
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실로 참담한 것이었다. 근골격계 직업병의 원인을 단순
히 "개별 인간공학적 작업환경"(주 1) 즉, 작업자세, 반복작업, 중량물 인양
등으로 한정하고 이에 대한 규제를 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
나 그와 같은 시행규칙은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발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호도
하고 오히려 향후 직업병 인정 기준을 더욱 엄격하게 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되
면서 금속연맹을 비롯한 각 사업장의 분위기는 노동부 안에 대한 격렬한 성토
로 이어졌다.
(주 1) "개별적 (인간공학적) 작업환경"이란 작업자세나 반복작업, 중량물 인
양과 같은 각 노동자의 작업환경을 의미하는 데 비하여, "집단적 작업환경"이
란 노동인력, 작업량, 작업시간과 휴식시간, 작업 조직, 고용형태, 공정 및 기
계 등과 같은 생산 부서의 전체 노동자에게 영향을 주는 보편적인 작업환경을
의미한다.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요?
-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의 본질과 현장 통제
근골격계 직업병 문제가 이처럼 개별 사업장을 넘어서서, 지역을 넘어서서, 전
체 노자간 투쟁으로 급격히 성장전화하고 있는 배경에는 신자유주의 노동유연
화 이후 전개되고 있는 자본과 김대중 정부의 노동강도 강화 시도에 대한 노동
진영의 저항전선의 구축이라는 본질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즉 특정 직업
병의 집단 발병에 대한 인정과 보상 투쟁이 아니라 근골격계 직업병의 근본적
인 원인인 노동강도 강화에 대한 전 노동계급의 대응투쟁의 성격이라는 점에
서, 지금의 투쟁은 과거 노동안전 보건 활동과 그 궤를 달리한다. 즉 이번 투
쟁은 조합 산안부서의 활동이 아니라 현장내 조합 간부, 활동가, 조합원 대중
이 함께 연대하여 전개하는 일상적이고 집단적인 현장 투쟁의 의미를 갖고 있
다. 근골격계 직업병의 원인이 되고 있는 노동강도의 강화는 실제 '집단적 작
업환경'의 변화로 인한 필연적인 결과들이다. 인력의 감축, 작업량의 급격한
증대, 자동화로 인한 휴식시간의 감소와 노동밀도의 증가, 비정규직과 하청의
증가로 인한 고용 형태의 변화 등 집단적 작업환경의 변화가 근골격계 직업병
발병의 본질적인 원인이며 이러한 조건을 타파하는 것이야말로 직업병 근절을
위한 본질적인 대책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적 작업환경 개선, 노동강
도 강화 저지 투쟁은 현장 통제권에 대한 노자간 대립의 핵심을 이룬다. 인
력, 고용형태, 작업량, 공정 및 기계, 노동시간 등 집단적 작업환경의 악화를
막아내는 투쟁은 노동주도의 현장 통제권의 쟁취를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현장통제권 쟁취 투쟁은 매우 간헐적이거나 선언적인 수사에
머물러 왔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작업중지권은 생산을 중단시킨다는 매우 파괴적이고 선
언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훌륭한 현장통제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특
정 위해물질이나 위험작업에 대한 노동 회피권 수준이거나, 임시 방편적이고
소극적인 생산 중지권이기 때문에 노동주도의 생산통제를 충분하게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없다. 지금까지 자본측이 전면적으로 취하고 있는 자동화, 인력
감축, 하청 및 외주, 잔업 증가, 휴식감소, 생산량 증가 등 일련의 노동강도
강화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노동 측의 대응과 투쟁으로 작업중지권과 같은 현
장 통제권이 적용되는 데 한계를 가졌던 것이다.
반면에 지금의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은 자본이 추구하는 구조조정에 대한 대
응 투쟁으로서, 그리고 노동강도 강화 저지 투쟁으로서 집단적 작업환경에 대
한 노동통제권을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다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현장통제
권 투쟁의 의미를 가진다. 작업중지권을 넘어서는 포괄적인 작업환경 결정권
을 요구하는 투쟁으로서 현재의 근골격계 직업병 투쟁이 위치지어져 있기 때문
에, 현장 통제권 쟁취 투쟁은 선언적 수준을 넘어서는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
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까지의 직업병 투쟁과 그 위상을 달리한다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무엇을 목표로 싸워야 하나요?
- 구체적 목표 달성!
먼저 전국적인 현장 투쟁의 가능성에 놀란 정부가 제출한 근골격계 질환 예방
을 위한 시행규칙은 '근본적으로' 거부되어야 한다. 그것은 집단적 작업환경
의 문제를 개별적 작업환경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함으로써 지금의 투쟁이 노동
강도 강화 저지, 그리고 현장 통제권 확보투쟁으로 발전하는 것을 가로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거부한다고 선언만 해서는 거부되지 않는다. 거부
가 실현될 수 있는 투쟁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첫째, 근골격계 집단 발병을 은폐하고 탄압한 악질 자본에 대한
사법처리를 요구하고 그것이 사태 해결의 출발임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둘째, 전국 사업장의 동시다발 근골격계 직업병 집단 요양 투쟁에 돌입하여 문
제의 근원이 노동강도 강화에 있음을 조합원 대중과 전체 사회가 확인할 수 있
어야 한다.
셋째, 집단 발병 사업장 혹은 업종에 대한 강제 역학조사의 실시, 특별 건강진
단을 요구함으로써 노동강도 강화 사업장에 대한 압박과 현장 투쟁이 활성화
되도록 하여야 한다.
넷째, 집단적 작업환경에 대한 노동자 결정권을 쟁취하여야 한다. 그것은 집단
적 작업환경 변화에 대한 노동안전평가제도의 도입, 노사 합의제 쟁취 투쟁으
로 발전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투쟁 목표는 지금까지와 같이 개별적 노사관계로 문제를 풀어왔던
다수 노동조합의 참여와 연대가 아니고서는 실현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진
정한 투쟁은 우리의 내부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기억하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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