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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는 잡초, 꽃마리

[강우근의 들꽃이야기](34) - 꽃마리

겨울을 견디어낸 것들이 모두들 기어 나와 봄맞이 잔치를 벌인다.


산 속과 산 아래에서 생강나무와 산수유가 서로 견주어 뽐내기 하듯 다투어 꽃을 피워대고 그 나무 아래 볕 좋은 곳에서 냉이와 꽃다지가 흰색, 노란색 꽃을 한꺼번에 쏟아내며 봄 잔치가 시작되었다. 파리랑 벌들이 윙윙 날아들었다. 무당벌레, 노린재가 냄새를 풍기며 잔치에 끼어 들었다.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린 무당벌레 두세 마리는 결국 이 잔치에 끼지 못했다.

이른 봄 꽃 잔치가 화려하거나 푸짐하지는 않다. 화려한 봄 꽃 잔치는 진달래, 벚꽃이 꽃피는 봄 2막에서나 시작된다. 겨우겨우 겨울을 난 것들이 벌이는 이른 봄 꽃 잔치, 가난한 이들이 아껴 모아 소박하게 벌이는 잔치처럼 작고 수수하다. 이 조촐한 잔치는 흥겹고 정감이 넘친다.

이 잔치 자리에서 가장 돋보이는 꽃이 꽃마리이다. 꽃마리 꽃송이는 좁쌉처럼 작다. 이렇게 작은 꽃도 벌레를 부르고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작다. 작은 꽃임에도 불구하고 꽃마리가 돋보이는 것은 하늘빛 꽃 색깔 덕이다. 꽃마리 고운 꽃 색깔은 이제 곧 시작될 화려한 봄 2막을 예고하는 듯하다.

꽃마리 꽃이 개나리 꽃 크기만큼만 했어도 꽃마리 운명은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꽃마리를 그냥 냉이와 꽃다지 틈에 내버려두지 않았을 테니까. 꽃마리는 돌돌 말고 있는 꽃대를 조금씩 풀어내며 한 송이, 두 송이 계속 꽃을 피워낸다. 꽃마리는 아까시 꽃 피는 봄 3막이 지나고 밤꽃 피는 봄 4막까지 계속해서 말린 꽃대를 풀면서 꽃을 피워낸다. 봄철 내내 그 봄을 꽃대에 새기듯 꽃 피고 열매맺던 꽃마리도 봄과 함께 시들어 갈 것이다.

1층에 은행이 들어앉은 건물 앞 화단에 꽃마리가 소복소복 자라났다. 그 앞 가로수 아래에도 꽃마리가 빼곡하게 자라 올라왔다. 봄맞이 화단 가꾸기를 시작하면 이 꽃마리들은 모두 뽑히고 말 것이다. 그리고 프리물라, 데이지나 팬지 따위 봄 화초가 그 자리를 대신할 것이다. 끊임없이 뿌리뽑히고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잡초의 삶은 힘겹다. 그러나 잡초는 스스로 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머무를 수도 없다. 그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잡초는 자기 자리에 안주하지 못하고 또다시 화단에서, 가로수 아래로, 보도블록 틈으로 새로운 삶을 찾아 길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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