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전격적으로 단행한 핵실험의 여파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이목이 한반도에 집중되고 있다. 북한은 어제 핵실험 이후 현재까지 공식적으로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고, 미국을 중심으로 유엔 안보리에서는 대북제재를 골자로 한 결의안 채택을 논의 중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반전․평화 등 진보진영 제 사회단체들도 이번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북의 핵실험 이후 진보진영 제 사회단체들의 반응 역시 일반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 문제를 둘러싼 긴장과는 별개로 한반도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진행된 북의 지하 핵실험은 그 자체로 충격적인 소식이었다. 북의 핵실험 이후 각 사회단체들은 논평 등을 통해 북의 핵실험 실시에 우려를 표명하며, 평화적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 희망사회당 등 진보정당을 비롯해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사회진보연대, 노동자의힘, 다함께 등 진보진영 제 단체들은 이번 사태의 평화적 해결이라는 대원칙에는 의견을 같이했다. 또 금융제재 등 지속되어 온 미 부시행정부의 대북 강경노선이 이번 사태까지 불러오게 된 원죄라는 점, 이와 함께 핵실험이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기반한 대미 협상용 카드라는 인식에는 크게 차이가 없었으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더 둘 것이냐에 따라 이번 사태에 대한 다소간의 시각차를 나타내기도 했다.
북한 핵실험에 대한 진보진영 우려, 수위 제각각
북의 핵실험과 관련해 제 사회단체들은 공히 우려를 나타냈으나, 그 수위는 차이가 났다. 민주노동당은 9일 긴급대책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많은 국민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것에 대해 강한 충격과 유감을 표명한다”며 “민주노동당은 핵의 자위적 수단을 비롯한 핵무기 정책에 반대하고 있음도 분명하게 밝힌다”고 건조한 어조로 원칙적인 수준에서 ‘핵실험’에 유감의 뜻을 밝혔다.
이에 반해 희망사회당은 논평을 통해 북 지도부까지 거론하며, 북의 이번 핵실험을 강력 규탄했다. 희망사회당은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한국과 세계 민중의 기대를 저버린 중대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희망사회당은 “핵은 지난 1950년 한국전쟁 때 전쟁광신도 맥아더도 차마 쓸 수 없었던 극악한 전쟁수단”이라며 “북한의 핵실험은 농업을 도외시하여 식량위기를 빚어낸 정책 즉,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가 빚어낸 필연적 사태이자, 북한체제의 비극”이라고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북 체제까지 거론하며 이번 핵실험을 강행한 북 지도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희망사회당은 또 “북한의 핵실험을 빌미로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려는 어떤 행위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또한 성명을 통해 “북의 핵실험은 한반도 주민들을 치명적인 핵위협의 볼모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와 주변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이며, 남북이 서로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선언과 6.15공동선언의 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며 “한반도 주민의 안전을 볼모로 삼아 백해무익한 핵무장을 실현하고 이를 협상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북한 당국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반대한다”고 규탄하며 북한의 핵무기 즉각 폐기를 촉구했다.
북 핵실험 배경, “미국의 대북 압박 정책이 초래” 한목소리
북의 핵실험 자체에 대한 반응과는 별개로 제 단체들은 이번 사태까지 오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공통적으로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을 주요원인으로 지적했다.
민주노동당은 이번 사태를 불러온 주요원인을 “북의 핵실험 강행의 과정에서 미국이 취해온 대북 고립․압박 정책”이라고 규정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긴장과 대결국면을 조성한 일차적 책임은 미국의 적대정책에 있다”고 밝혔다.
정영섭 사회진보연대 집행위원 역시 "작년 919 공동성명을 만들어 냈음에도 미국은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 등을 통한 고립, 압박 전략을 버리지 않았다”며 “이는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킨 1차적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북은 핵실험을 벼랑 끝 전술로 판단하고 있는 듯 한데, 이는 오히려 핵이라는 것을 현실화함으로써 이전과는 돌이킬 수 없는 극한 정세를 만드는 것"이라고 북의 핵실험 감행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광일 다함께 운영위원도 "북한 핵실험은 미국이 대국압박이 낳은 위험한 결과"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
손진우 노동자의힘 정책국장 또한 북한이 핵실험을 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북미간 직접대화' 촉구
한편, 이번 사태 해결을 위한 방법에 대해서는 각 단체들 마다 강조점을 두는 지점이 달랐다.
민주노동당은 “지금의 상황은 미국의 악의적 대북 무시 정책과 북한의 극단적 선택이 빚은 지극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따라서 북/미간 직접 대화와 동시행동이 평화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는 최선의 방법”이라며 북미 양자간 직접 대화를 촉구했다.
다함께, “유엔의 대북제재 반대해야”
김광일 운영위원은 우선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군사공격 우려와 관련해 “현재 미국 내의 반전 여론,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이라크의 상황과 이란의 국면을 고려했을 때 직접적인 공격은 쉽지 않을 것"이라며 "중국과 한국 정부의 경우도 대북 제재에는 동의할 수 있으나 군사 공격에 합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남한의 진보세력들이 미국의 군사 대응뿐만 아니라 유엔을 통한 제재가 해결책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 또한 반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91년부터 10년간 진행된 이라크 경제 제재를 예로 들며 "이라크 민중들이 겪은 끔찍한 경제 제재의 경험을 했던 전례를 고려할 때 유엔을 통한 대북 제재 또한 남한 정부가 절대 동조해서는 안 된다"며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에 우려를 표명했다.
노동자의힘, “북한 체제와 이번 사태 분리 대응해야”
손진우 노동자의힘 정책국장은 "북한을 벼랑 끝으로 계속 몰고 간 부시 행정부와 미국 대북정책의 실패가 드러난 것"이라며 "북한의 핵실험 자체에 대한 비판여론에 주목하기보다는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하고 그것을 주도한 미국의 의도, 즉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아닌 북 국가체제와 정권에 대한 공격으로 접근하여 6자회담이 무력화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만든 미 제국주의의 문제를 지적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손진우 정책국장은 이어 한반도 비핵화와 반전에 대한 기본시각은 동일하다고 전제하면서 북한 체제와 관련한 문제는 이번 사태와 분리해서 바라볼 것을 주문했다. 아울러 그는 "노무현 정권이 개성공단 등 대북 관련 협력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하는 것은 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는 것"이라며 "전략적 유연성 합의 문제나 포괄적 접근방안에서 드러났듯이 노무현 정권이 대북관계에서 주도권을 갖지 못하고 미국의 대북 제재나 압박을 용인해주는 태도를 계속 취한다면 북을 궁지로 몰아 동북아의 군사적 위험을 증가시키는 꼴이 될 것"이라 경고했다.
사회진보연대, “북 핵보유 긍정, 사회운동에 도움 안돼”
정영섭 집행위원은 향후 한국정부의 행보와 관련해 "한국정부는 미국에 파병이라는 선물까지 줬지만 결국 한국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은 미국이 허용하는 한에서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것 밖에 없다”며 “한미동맹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정영섭 집행위원은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가 미국의 대북제제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 얘기하면서 북의 핵 보유를 긍정하고 있다”며 “이는 보수세력의 준동과 대중의 반북이데올로기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운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필요한 것은 모든 쟁점을 흡수해 버리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 경계하면서 북의 핵 보유에 대한 비판을 정확히 하고, 이와 더불어 미국의 군사주의적 전략과 이에 휩쓸리고 있는 한국정부에 대한 비판이 필요한 시기"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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