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개나리를 '튀밥꽃'이라 불렀다. 보릿고개가 시작되고 한 해 농사일이 시작되는 이맘때, 허리를 펴면 하늘도 노래지는 이때, 마을이며 들과 산이 온통 신기루처럼 개나리꽃으로 덮이면 한번쯤은 그게 옥수수가 튀겨진 것으로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역시 배고픈 이들에겐 다 먹을 것처럼 보이나 보다.
개나리라는 이름은 나리꽃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나리꽃보다 꽃송이가 작고 수수하지만 개나리는 나리꽃처럼 꽃을 한두 송이 피우는 게 아니라, 한꺼번에 수천수만 송이 꽃을 피워 나리꽃과는 다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수수하지만 여럿이 함께 꽃 피어서 아름다운 개나리는 민중들 삶을 가장 많이 닮은 꽃이다.
개나리는 그냥 가지를 꺾어 양지바른 곳에 꽂아놓기만 해도 잘 자란다. 가지가 휘어져 땅에 묻히면 그대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난다. 개나리와 같은 종류인 산개나리나 만리화, 미선나무가 다 이땅이 자생지인 한국 특산 식물이다. 개나리 역시 아직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이곳이 자생지일 가능성이 높다. 개나리 학명에는 '코레아나(koreana)'란 이름이 들어가 있기도 하다. 세계 곳곳에서 자라는 개나리는 여기서 퍼져나간 것일 게다. 말하자면 개나리는 정말 토박이 나무인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뿌리내리고 자라기 때문에 개나리 열매 보기가 쉽지 않다. 개나리꽃은 겉모습은 같아 보이지만, 꽃잎 속에 암술과 수술 크기가 다른 두 가지 종류 꽃이 핀다.(이런 것을 알아보는 것도 재미난 놀이가 된다.) 하나는 암술이 크고 수술이 작은 꽃(장주화)이고, 다른 하나는 수술이 크고 암술이 작은 꽃(단주화)이다. 개나리는 장주화와 단주화가 꽃가루받이가 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문제는 개나리가 열매로 번식하기보다는 주로 '꺾꽂이'나 '휘묻이'로 쉽게 번식하기 때문에 한 곳에는 주로 같은 종류 꽃이 피기 쉽다. '토박이'는 자칫 열매를 맺지 못한다. 섞이고 어울려야 다양해지고 그래야 열매도 맺을 수 있다. 개나리꽃 사태 아래에는 보라색 제비꽃이 꽃피고 있다. 노란색 개나리와 보라색 제비꽃이 어울려야 봄의 아름다움은 더해진다.
개나리꽃은 꽃필 때처럼 한순간에 시들어 버릴 것이다. 꽃이 지면 개나리도 잊혀진다. 그러나 개나리는 알아주는 이 없어도 잎을 내어 푸르게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