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짤린 노동자의 유정천리

[발가락이 쓴다](5) 재능교육에서 쌍용차까지, 뚜벅이 다섯째 날

가련다 떠나련다 어린 아들 손을 잡고
감자 심고 수수 심는 두메산골 내 고향에
못 살아도 나는 좋아 외로워도 나는 좋아
눈물 어린 보따리에 황혼빛이 젖어드네


가수 박재홍의 ‘유정천리’가 아닌 김정우의 ‘유정천리’가 거리를 흐느낀다. 김정우는 가수가 아니다. 노동자다. 그것도 기가 막힌 사연을 지닌 해고 노동자. 대우자동차에 의해 2001년 거리로 쫓겨났던 김정우는 2009년 쌍용자동차에서 다시 쫓겨났다. 이 기막힌 노동자의 얼굴은 수심에 가득 차 있지 않다. 주위 사람에게 힘을 주는 희망 에너지가 넘친다.

  노래하는 김정우 [출처: 오도엽]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 뚜벅이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고 쉴 때, 어김없이 김정우의 뽕짝이 흐른다. “동지들 제가 노래 한 곡 부르겠습니다.” 김정우의 첫 곡은 ‘유정천리’다. ‘눈물 어린 보따리’를 지고 ‘황혼 빛이 젖어’드는 거리를 뚜벅이들과 걸으며 김정우는 뚜벅이들의 고된 다리와 발바닥을 노래로 주물러 준다.

밝은 웃음을 주며 걷는 김정우의 가슴은 사실 먹먹하다. 희망 뚜벅이의 최종 목적지인 평택 쌍용자동차 노동조합 지부장의 짐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뚜벅이가 멈출 때쯤이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맞선 투쟁이 1,000일을 맞이한다. 천일이란 숫자가 그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쌍용자동차 구조조정 이후 삶을 마감한 20명의 동료와 가족들 때문이다. 뚜벅이들이 출발한 첫날, 경찰에 감금당한 채 대학로 인근 이화사거리에 주저앉아 있을 때 스무 번째 죽음의 부고를 김정우는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더 강하게 싸워야 이 죽음의 행렬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김정우의 가슴은 탁 막혔다. 스무 번째 죽음의 자초지종을 들려준 김정우는 내게 마지막 말을 던진다.

“더 죽을 수밖에 없어.”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는 한 죽음을 멈추게 할 방법이 없다는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다. 분노 이상의 울림이 퍼진다.

투쟁하는 이들의 얼굴은 절망과 수심이 가득하리라고 여긴다. 이들을 어떤 말로 위로할까 걱정한다. 하지만 이들을 만나는 순간,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위로를 받는다. 희망 뚜벅이의 5일차 행진, 이들은 고됨을 웃음으로 날린다. 꿈이 있기 때문이다. 꿈이 있는 자는 싸운다. 싸움을 멈추는 순간 꿈을 잃고 죽음을 맞이한다.

쌍용자동차의 희생자들의 대부분은 희망퇴직을 한 이들이다. 희망의 이름으로 사직서에 자신의 이름을 적고 공장을 떠난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정리해고에 맞선 이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자!’라는 희망의 목표가 있기에 맹추위의 한겨울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주저앉아 언 김밥을 먹으면서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삶을 위해 싸운다.

[출처: 오도엽]

희망 뚜벅이 다섯째 날 출발은 부천역이다. 서른 명 남짓 출발한 뚜벅이들은 송내역 부평역을 거치며 백 명이 훌쩍 넘어선다.

오늘은 일본의 나카마 유니온 위원장인 이데쿠보 케이츠 씨 등 일본사람들도 함께 했다. 오전 11시 송내역에서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한일 희망 뚜벅이’의 기자회견을 가졌다.

기자회견을 마친 뚜벅이들은 송내역 광장에 주저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지붕 없는 길바닥에서 먹는 점심이지만 모두들 행복하다. 엊그제 과천 코오롱 본사 앞에서 먹었던 도시락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날 밥알이 목구멍에 넘어가는 순간 숨이 콱 막히는 경험들을 했기 때문이다 “과천에 비하면 오늘은 호텔 밥이야.”

오늘 아침에는 고등학교 3학년, 3월에는 인하대학교 새내기가 되는 김화란 학생이 부천역으로 찾아와 뚜벅이들과 함께 걸었다. 장갑을 준비하지 않고 온 김화란은 맨손으로 선전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었다. 그의 꽁꽁 언 손으로 건네진 그 선전물에는 그 무엇보다도 따뜻한 노동자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 김진숙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농성을 보며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문제에 깊이 관심을 갖게 됐다는 김화란은 “집에 말을 하지 않고 와서 오늘 일정을 끝까지 하지 못한다”며 미안해한다.

송내역에서 점심을 먹고 부평역으로 향했다. 부평역으로 간다니 가슴이 폴딱폴딱 뛴다. 2001년 대우자동차는 1,750명의 노동자를 정리해고 했다. 그해 1월 15일 대우자동차 사원 임대 아파트에 빨간 헬멧을 쓴 우체부가 들어서자 입주자들은 창문을 열고 집배원의 행낭에 눈을 집중시켰다. 집배원은 한 뭉치의 편지봉투를 꺼낸다. 해고통지서다. 집배원의 발자국 소리가 자신의 아파트 현관문 앞에서 멈추면 집안에 있던 이는 통지서를 받기도 전에 주저앉으며 통곡을 했다.

2001년 2월 17일 5천명의 경찰이 대우자동차 안으로 들어가 노동자들을 공장 밖으로 내몰았다. 다음날 민주노총과 금속연맹은 곧바로 부평역에서 항의집회를 열었다.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도로에 쏟아져 나왔고, 경찰 버스가 불에 탔다. 정리해고자들은 주춤했다. 이때 앞장 선 이들은 전국에서 몰려온 노동자와 학생들이었다. 이들의 연대가 있었기에 대우자동차 정리해고자들은 다시 복직할 수 있었다.

2009년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77일간 공장에서 옥쇄 파업을 했다. 소설에서나 있음직한 노동자들의 처절한 항쟁을 보며 공장 밖에서는 발만 동동 굴렸다. 2001년 부평과 같은 뜨거운 연대가 있었더라면, 스무 명의 목숨을 떠나보내지 않았을 텐데...

[출처: 오도엽]

부평역을 지나 GM대우 공장 앞을 지난다. 2010년 한겨울 정문 아치에 올라 농성했던 GM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억이 눈을 촉촉이 젖게 한다. 기계가 멈춘 콜트악기 부평공장에 도착하니 누군가가 말한다. 방금 걸어온 부평거리는 ‘노동자 탄압의 거리’라고.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는 대우자동차판매다. 이곳 노동자들은 지난 2011년 1월 24일부터 정리해고에 맞서 농성 중이다. 오늘 희망 뚜벅이들 ‘투쟁 1주년 문화제’를 회사 안 공장에서 열고 있다.

오는 일요일인 5일에는 콜트악기 공장에서 희망뚜벅이 정월대보름 잔치가 있을 예정이다. ‘쥐를 돌려라! 죽을 때까지!’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 잔치는 달집 태우기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행사가 준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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