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달 아래서 희망이 뚜벅뚜벅

[뚜벅뚜벅](1) 콜트콜택에서 쥐불놀이, 달집태우기

갈산역에서 내려 부평IC쪽으로 걸어가다가 왼쪽에 보이는 대우자동차판매(주) 앞에서 오른쪽으로 정수장을 끼고 돌면 고속도로로 빠지는 귀퉁이에 콜트콜택 공장이 있다.

천막 농성장의 날짜 판엔 ‘1830’이라고 써 붙였다. 2007년 2월 천막을 설치하면서 날짜를 기록한 게 벌써 1830일이 지났다. 만 5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농성장은 그대로다. 드럼통을 잘라 만든 모닥 불 안엔 고구마가 익어간다. 지난해 이맘 때 찾아갔던 한진중공업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 밑에서 박성호 동지가 굽던 고구마도 그렇게 맛있었다. 크레인 위의 사람들이 내려오고 85호 크레인이 흔적도 없이 해체됐지만, 그래도 고구마는 어디든 있다.

지난해 여름 내내 봤던, 진보신당의 밥차는 벌써 많이 낡아 곳곳에 땟국물이 줄줄 흐른다. 그래도 오곡밥에 육개장이 넘쳐난다. 점심을 굶었기에 우선 줄부터 섰다. 100명 가량의 뚜벅이들이 분홍색 몸벽보를 두른 채 놀고 있다. 내일(6일)이 정월대보름인데 하루 당겨 공장 마당엔 달집이 세워졌고, 쥐불놀이도 빙빙 돈다.

  뚜벅이 참가자들이 진보신당 밥차 앞에서 줄을 서 오곡밥을 받아든다. [출처: 이정호]

달집태우기는 1시간 내내 이어졌다. 머리 위로 김포와 인천공항을 오가는 비행기가 쉴새없이 사람을 실어 날랐다. 은박지로 싸 달집 아래 넣어둔 통닭과 막걸리가 떨어질 때쯤 ‘하루 뚜벅이’로 참가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갔다.

밤 10시15분. 오늘 숙소인 민주노총 인천본부까지 584번 마을버스로 이동했다. 기사가 틀어놓은 FM라디오에선 <허윤희의 꿈과 음악 사이에>가 흘러나왔다. 목소리 좋기로 유명한 그이는 엊그제 폐암으로 죽은 폴란드의 시인 심보르스카의 시 <두 번이란 없다>를 음유했다. “사람은 연습 없이 태어나서 실습 없이 죽는다. 어떤 하루도 되풀이되지 않고 서로 닮은 두 밤(夜)도 없다. 같은 두 번의 입맞춤도 없다.”

199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이는 아흔이 다 돼 죽었지만, 그이의 시는 늘 청년처럼 날카롭다. 인간 내면에 숨겨진 이율배반적인 욕망과 잔인한 본성을 비판하는 심보르스카는 일제 강점기와 민족 전쟁을 겪은 한국의 비극을 노래한 시 ‘한국에서(Z Korei)’를 발표해 우리에게도 익숙한 할머니다.

그이는 폴란드에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고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강조되자 1952년과 1954년 두 차례 절필 선언도 하고, 스탈린에 대한 혐오감을 담은 ‘설인(雪人)에 대한 도전’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이의 시는 나고 자라 배워 몸에 익힌 사회주의적 사실주의에서 그리 멀리 가지 않았다.

그이의 말처럼 딱 한 번뿐인 인생을 말도 안 되는 억지와 노조 혐오주의로 허비하는 한국의 자본가들은 어찌해야 할까. 대우자동차판매, 콜트콜택을 뒤로하고 내일은 시화공단과 반월공단으로 들어가 파카한일유압과 시그네틱스를 돈다.

  콜트콜택 농성장을 지켜온 ‘기타’ 조형물 [출처: 이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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