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새벽 대구에서 만취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앞서 가던 쓰레기 수거차를 들이받아 환경미화원이 숨졌다. 다음 날(7일) 동아일보(10면)와 한겨레(9면)가 이 소식을 2단 기사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이번엔 음주 여성 BMW… 50대 미화원 숨져’라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6일 새벽 3시43분께 대구 수성구 범어동 도시철도 3호선 수성구민운동장역 인근 도로에서 30대 여성 운전자가 몰던 BMW 승용차가 앞서 가던 음식물 쓰레기 수거차를 갑자기 들이받았다”고 썼다. 동아일보는 수거차 뒤에 탔던 수성구 소속 50대 환경미화원이 심정지 상태로 대학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졌고, 가해자는 별다른 부상이 없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숨진 환경미화원의 동료는 ‘고인은 20년 넘게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한결같이 성실했고 동료들과도 잘 지냈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비슷한 분량의 한겨레 기사는 사건 개요에선 동아일보와 같았지만 원인을 분석하는 데선 많이 달랐다. 한겨레는 제목부터 ‘쓰레기 수거는 낮에 하는 게 원칙인데… 새벽일 환경미화원 만취 BMW에 참변’이라고 달았다.
면죄부가 된 예외조항
정부가 지난해 환경미화원 안전과 건강을 위해 지자체 쓰레기 수거를 낮 시간대 근무 원칙으로 한다는 지침을 만들고 법까지 개정했지만, 그놈의 ‘예외조항’을 둔 탓에 안타까운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3월 환경미화원 야간작업을 낮으로 바꾸는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을 만들어 전국 지자체에 전달했다. 국회도 지난해 4월과 12월 폐기물관리법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이 지침 내용을 넣었다.
그러나 ‘시급히 처리할 필요가 있거나 주민생활에 중대한 불편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면 지자체가 조례 재개정을 통해 예외’를 두도록 했다. 예외조항은 말 그대로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사용해야 하는데 몇몇 지자체는 이를 면죄부쯤으로 여긴다. 결국 예외조항은 야간작업을 시킬 근거로 둔갑하고 만다.
한겨레는 “2015~2017년 작업 중 다치거나 숨진 환경미화원은 1822명(사망 18명)에 달한다”는 팩트도 챙겼다.
▲ 11월7일 한겨레 9면(위)과 동아일보 10면. |
동아일보는 술에 만취해 성실했던 50대 미화원을 숨지게 한 30대 여성 외제차 운전자에 주목해 기사 제목에 ‘음주 여성 BMW’라는 단어를 넣었다. 물론 한겨레도 가해자가 30대 여성 운전자라는 사실을 기사 본문에 썼지만, 동아일보처럼 제목에 달진 않았다. 동아일보처럼 ‘여성’ 운전자를 굳이 부각시킬 필요는 없었다. 여성이 음주운전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고, 여성이 운전에 더 미숙하다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없는데 이런 제목이 꼭 필요했을까. 그 보다는 환경부의 지침과 국회의 법 개정까지 거치고도 근절되지 않는 쓰레기 수거 야간작업의 원인을 분석한 한겨레가 돋보였다.
쓰레기 수거차 뒤에 미화원이 타는 것도 뜨거운 쟁점이다. 이처럼 작은 사건 하나에도 수많은 쟁점을 숨어 있다.
새벽 4시에 음식배달 가능한 나라
지난 11일 ‘새벽 4시25분께’ 인천 서구 원창동 편도 4차로에서 음식을 배달하던 20대 오토바이 운전자가 만취한 30대 몰던 승용차에 치여 다리가 절단됐다. 가해 차량은 중앙선을 넘어 마주오던 오토바이를 들이 받았다. 가해자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71%로 면허 취소 수치였다. 오토바이 배달노동자는 왼쪽 다리가 절단됐다.
▲ 11월12일 세계일보 11면. |
사고도 사고지만, 새벽 4시25분에 음식 배달이 가능한 나라가 세상에 또 있을까. 우리가 ‘배달의 민족’이라던 어떤 정신 나간 광고처럼 24시간 주택가 골목길에 배달 오토바이 소음이 끊이질 않는 이 나라가 결코 정상은 아니다.
지난 9월 9일 인천 중구 을왕리해수욕장 근처 도로에서 오토바이로 치킨 배달을 하다가 술 취한 30대가 몰던 벤츠에 치여 숨진 50대도 새벽 1시에 사고를 당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배달 시장이 급성정하면서 배달 노동자들이 주로 타는 오토바이 사망사고가 크게 늘었다. 국토부 집계에 따르면 올 들어 1~4월 오토바이 교통사고 사망자는 모두 148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131명보다 13%나 늘었다.
새벽 1시에도, 새벽 4시에도 음식 배달이 가능한 나라는 배달노동자를 갈아 넣어 플랫폼 기업의 배를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