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백신, ‘공공개발’ 했지만 분배는 불평등

[99%의 경제] 이윤동기 없는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거짓말

“공공의 가치를 어떻게 상상하고 현실화하고 평가할 것인지 그 방법론을 바꿔갈 때 혁신이 시작된다.” ‘2020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자로 나선 마리아나 마추카토(Mariana Mazzucato)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교수는 <기업가형 국가>(2013)와 <가치의 모든 것>(2018) 등을 통해 국가와 기업의 가치 창출과 분배 문제를 다룬 학자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장 가격 이외에 가치를 정의하는 기준이 무엇이며, 누가 가치를 창출하고 누가 착취하는지를 면밀하게 관찰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가의 역할이 단순한 시장 보조가 아닌 공공의 목적과 가치 창출에 맞춰져야 한다며, “국가의 새 역할은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역량을 키우며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 그의 확고한 생각이라고 한다.1)

마리아나 마추카토는 <기업가형 국가(The Entrepreneurial State)>에서 “자본가만이 혁신에 기여하고, 국가 부문은 성장에 부담을 준다는 신화는 이제 무너졌다”며 “인터넷에서 나노기술에 이르기까지 기초 연구와 뒤이은 (기술의) 상업화 모두 대다수 근본적인 진전은 국가에 의해 이루어졌다. 기업들은 수익이 명확해 보이는 시점에서 여기에 동참했을 뿐”이라고 설명한다.2)

  아이폰을 스마트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아이폰에 들어가는 세부 기술들이 공공부문과 공공투자에 의해 개발되었음을 보여준다. [출처: The Entrepreneurial State]

가령, 혁신의 상징인 아이폰(iPhone)에 탑재돼 있는 주요 기술들은 모두 정부의 지원을 받은 것들이다. GPS, 터치스크린 디스플레이, 심지어는 음성으로 작동되는 개인 비서 Siri까지도. 애플(Apple)은 초기에 정부의 공공자금 지원기관인 중소기업투자협회(Small Business Investment Corporation)로부터 50만 달러를 지원 받았다. 컴팩(Compaq)과 인텔(Intel)도 벤처 캐피탈이 아닌 공적자금인 중소기업혁신연구프로그램(SBIR)을 통해 보조금을 받고 성장했다. 가장 혁신적인 제약 회사 중 75%가 거대 제약사나 벤처 캐피탈이 아닌 국가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s of Health)의 자금에 빚을 지고 있다. NIH는 지난 10년 동안 생명 공학·제약 지식기반 산업에 6000억 달러(700조 원)를 투자했다. 마주카토는 “납세자가 이 기술 회사들을 부자가 되도록 만들었다”고 강조한다.

물론 마추카토 교수는 케인스경제학자로서 국가 또는 공공부문의 완전한 시장의 대체가 아닌 시장 속에서 국가와 공공가치의 역할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가치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이윤이 아니라 공공적 가치 즉, 사회적 사용가치를 창출하고 그 주체로서 국가와 공공부문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다만 공공적 가치(사회적 사용가치)를 창출하는 데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사회적으로 소유하고 분배하는 데까지 이르러야 창출된 가치가 비로소 실현된다는 점에서, 공공가치만을 얘기할 뿐 가치의 생산수단과 생산물의 공적 소유 문제를 얘기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현재 개발되고 있는 코로나19 백신이 그 한계와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공공투자와 기술로 개발되는 코로나 백신

새로운 백신은 최소 4년, 일반적으로 10년이 걸려야 사용승인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각국별로 임상시험을 단축하고 백신의 빠른 보급을 위해 애썼다하더라도 1년이 채 되지 않아서 새로운 백신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은 이래적인 상황이 아니라 기적 같은 일이다.

이 일이 가능한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 각국이 코로나 발생 초기부터 코로나 관련 정보와 (중국이 은폐 의혹이 있기는 하지만) 바이러스 염기서열 등을 WHO를 통해 모두 공개한 사실이다. 이로써 전 세계 과학과 의료계에서는 코로나 바이러스 관련한 과학적, 의학적 정보를 체계적으로 정립하고 대책을 수립할 수 있었다.

둘째, 현재 가장 개발 속도가 빠른 화이자와 모더나의 (후보) 백신은 모두 신기술인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방식으로 개발됐다.(모더나는 이 개념에 따라 회사 이름을
“Modified”+“RNA”=Moderna로 지었다) 기존 백신을 제조하려면 달걀에 원료 성분을 배양하는 등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mRNA 백신은 이 과정 없이 만들 수 있다. 그 때문에 통상 백신을 개발하는데 최소 4년이 소요되는 것이 1년 이내의 짧은 기간에도 개발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메신저 리보핵산(mRNA)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설계한 것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처음 개발되었다. 원천기술인 mRNA 방식을 정부가 가진 셈이다. 이 mRNA 개발 이후 관련 특허가 다소 복잡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추후에 여러 기업들과 기관 사이에 특허소송이 난무할 것으로 보이지만 어쨌든 mRNA의 원천 기술은 정부 지원에 의해 개발되고 발전했다.3)

셋째, 코로나 백신 개발에 대부분 각국의 공공자금이 들어갔다.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은 어느 날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다. 모더나는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와 공동으로 수년간 mRNA 백신에 대한 기본 연구를 진행해 왔고 국립보건원의 연구자금 지원까지 받았다. 화이자와 공동으로 백신을 개발한 바이오앤테크 역시 독일 정부에서 3억7500만 유로(5천억 원)의 자금을 지원받았다. 뿐만 아니라 이 백신개발 자금의 거의 대부분이 각국 정부가 ‘입도선매’ 방식으로 투자한 자금이라는 점에서 백신 개발은 공공투자와 개발이라는 형식을 띠고 있다.

이처럼 백신과 관련하여 바이러스의 정보, 백신의 원천기술과 개발자금이 모두 각국 정부와 전 세계 의료인, 과학자들로부터 나왔다.

코로나19가 세계를 휩쓸기 전에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전 세계 질병 및 바이러스 백신에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별로 수익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18개 미국 최대 제약 회사 중 15개가 이 분야를 완전히 포기했다. 이들 제약회사는 병원 감염, 응급 질병 및 전통적인 열대성 질환에 대한 치료제가 아니라 혈압약, 중독성 진통제, 남성 발기 부전 치료제 같은 것으로 수익을 벌어들였다. 인플루엔자에 대한 보편적인 백신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가능성이 있었지만 개발 우선순위가 될 만큼 수익성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매년 면역효과가 50%밖에 되지 않는 독감 백신을 이제까지 쓰고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제약사들은 태도를 바꾸었다. 팬데믹을 종식시키려면 140억회 분량의 백신이 필요하고 각국 정부가 모두 나서서 어떻게든 이 백신을 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국적 제약회사들은 정부 또는 공공기관과 손잡고 백신개발에 나섰다.4)

코로나 백신, 공적 소유가 아니다

WHO는 5월 하순 코로나19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 및 공평한 분배를 위한 '코로나 기술접근 풀(C-TAP)'을 출범했지만 초국적 제약회사들의 연합체인 국제제약협회연맹(IFPMA)은 바로 다음 날 성명을 내고 WHO의 계획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식재산권이 유지되지 않으면 백신 개발 동인이 사라져 백신 개발에 장애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백신의 소유권은 자신들이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윤동기 없는 공공투자-공공개발-공공혁신은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은 앞서 마추카토 교수의 책에서도 얘기된 바 있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제약회사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해 초국적 제약회사에 막대한 투자금을 대고 있지만 상품인 백신을 구매할 권리만 확보했을 뿐 백신의 특허권이나 지식재산권을 확보하지 않았다.

각국별 백신의 접근성 문제를 해결하고 효과적인 배분을 위해 국제적으로 190여개 국가가 연합해 코백스 퍼실리티(COVAX Facility)를 형성했지만 ‘입도선매’ 방식으로 선구매 형식의 투자금을 제약회사에 제공하고 있다. 화이자와 모더나는 애초에 코백스 퍼실리티에 들어오지 않았지만, 개별국가와 입도선매 방식으로 똑같이 진행되고 있다. 결국 코백스 퍼실리티와 입도선매 방식은 팬데믹과 같은 세계적인 재난 상황에서도 초국적 제약자본의 이윤과 지식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시스템이지, 국제적으로 팬데믹을 종식하기 위한 효과적인 시스템은 아니다.

각국 정부는 수십억 달러의 개발 자금을 대고도 개발되지도 않은 백신을 미리 구매해야 할 뿐만 아니라, 가격도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3달러, 모더나 백신 37달러로 많게는 10배가 넘게 차이가 난다. 화이자 백신의 경우 영하 70도를 유지해야 하는 별도의 냉동고를 구입해야 하는 등 유통비용도 엄청난 백신을 구매해 보급해야 한다. 게다가 서구의 초국적 제약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백신이 대부분이라 미국, 유럽 등 부자나라에서는 총인구가 맞고도 남을 물량을 계약하고 있지만 신흥국이나 개도국에서는 제대로 된 물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소에 따르면, 가능성 있는 백신 개발품 64억 회 분량이 이미 선구매 됐고, 다른 32억 회 분량에 대해서는 구매 협상이 진행 중이거나 “이미 맺은 구매 계약 건의 추가 구매 옵션”으로 마련돼 있다고 밝혔다.

백신의 특허가 제약사들에 있기 때문에 선진국이 아닌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높은 가격과 유통비용 때문이 아니더라도 지식재산권협정(TRIPS) 문제로도 백신 보급이 차질을 빚거나 불가능하게 된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제네릭(복제의약품) 허용에 있다. 지식재산권은 초국적 제약회사가 충분한 백신을 공급할 능력이 없는 경우에도 다른 공급사가 제네릭 대체품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백신의 가용성을 제한 할 수 있다. 가령 화이자가 내년까지 공급가능하다는 13억 회 분량은 화이자가 백신 제조 기업들과 맺은 계약에 따른다. 그나마 최근 유통방식의 문제로 공급량이 절반정도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기술이 있어도 화이자와 생산계약을 맺지 못하면 백신을 만들 수도 없다.

인도와 남아공 등에서는 백신을 빨리 개발할 정도의 기술은 없지만 개발된 백신을 생산할 능력은 갖추고 있다. 민간 기업만이 아니라 국영제약회사도 있다. 제네릭을 허용하면 백신 생산이 가능한 기업들이 각국 정부의 발주로 더 많은 백신을 만들 수 있고, 영하 70도 상태를 유지하면서(전용 냉동고 1대 비용만 2만 달러에 달한다) 비행기로 이동해야 하는 유통 문제도 완화할 수 있어 더 빨리 백신을 투약할 수 있다.

이처럼 사실상 공공개발 방식으로 진행된 백신 개발이 어찌되었든 민간개발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온갖 편법이 동원되어 오히려 백신 개발과 보급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어 코로나19 종식을 더 힘들게 한다.

G20 정상회의 “코로나 백신은 인류의 공공재”는 거짓말

지난 11월 22일 G20 정상회의 정상선언문에서 “(코로나19) 진단기기, 치료제 및 백신이 모든 사람에게 적정 가격에 공평하게 보급되도록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광범위한 접종에 따른 면역이 전 세계적인 공공재”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5월 19일 세계보건총회(WHA) 기조연설에서 “백신과 치료제 개발을 위해 국경을 넘어 협력해야 한다”며 “개발된 백신과 치료제는 인류를 위한 공공재로서 전 세계에 공평하게 보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을 보면 이런 정상선언은 모두 거짓말이다. 코로나 백신의 보급은 미국과 유럽 등 부자나라를 중심으로 보급되고 있고 가난한 개발도상국들은 엄청난 비용과 가격 때문에 거의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식재산권 문제로 제네릭 보급도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진정으로 공공재가 되기 위해서는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기술이 투명하게 보급되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백신의 보급 특히 제네릭(복제의약품)을 가로막고 있는 지식재산권협정(TRIPS) 폐기 내지는 최소한 코로나 백신과 관련해서는 배제되어야 한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제품의 특허권을 일시 유예하자는 제안, TRIPS 협정 유예안을 제출한 상태다.

무엇보다도 백신의 공적소유를 통해 코로나 백신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해야 팬데믹을 종식시킬 수 있다. 공공투자-혁신-개발뿐 아니라 생산할 수 있는 수단(방법)까지도 공적 소유가 되어야 하는 이유다.

<각주>

1) 마추카토 교수 “국가, 문제 해결사 넘어 공공가치 창조할 수 있다”, 한겨레신문, 2020.12.02.일자.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522593)
2) 마추카토 교수의 입장에 대해서는 소개한 바가 있다. <규제가 혁신을 가로막는가?>, 워커스, 2018년 9월호 참조.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103432)
3) https://www.scientificamerican.com/article/for-billion-dollar-covid-vaccines-basic-government-funded-science-laid-the-groundwork/
4) 코로나 백신 개발 과정을 보면, 왜 주로 아프리카에서 필요한 HIV/AIDS 치료제 개발이 지지부진하거나 의약품 접근이 어려운지, 열대 지방에 필수적인 뎅기열 예방 백신 같은 것들이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는지, 거꾸로 알려주고 있다. 아프리카와 열대 지방에 필요한 예방약과 치료제들은 자체로 개발할 수 없어 초국적 제약회사에 의존한 민간개발 방식이기 때문이다.

태그

평등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홍석만(참세상연구소)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 문경락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진정으로 공공재가 되기 위해서는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와 관련된 모든 정보와 기술이 투명하게 보급되고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백신의 보급 특히 제네릭(복제의약품)을 가로막고 있는 지식재산권협정(TRIPS) 폐기 내지는 최소한 코로나 백신과 관련해서는 배제되어야 한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의료제품의 특허권을 일시 유예하자는 제안, TRIPS 협정 유예안을 제출한 상태다.

  • 최용준

    국가 등 공공 부문이 연구 개발을 위하여 재정 지원을 하거나 원천 기술을 개발하였으나 백신 자체는 왜 공공 부문에서 하지 못하였는지 분석이 이루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분석과 주장이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