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결국 패배할 것이다

냉전의 붕괴 이후, 무수한 헐리우드 액션영화들은 미국을 목표로 하는 테러공격(및 격퇴)을 소재로 즐겨 이용하였고, 이 영화들에 CNN의 유명 앵커들은 단골 까메오로 출현하였다. 하지만 영화에서와는 달리, 실재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그들은 유창한 언변 대신, "아니 이럴수가, [또다시] 아니 이럴수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할 따름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이 공격이 같은 세계에 속하는 곳으로부터가 아니라, 마치 외계의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것은 아닌가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세계무역센터의 붕괴: '안전한 전쟁'이라는 우상의 파괴

걸프전 이후로 미국인들은 매혹적이지만, 그 자체로 형용모순일 수밖에 없는 하나의 표현을 탐닉하게 되었다. '안전한 전쟁'(safe war), 곧 '미국인의 희생이 없는 깨끗한 전쟁'이라는 우상이 바로 그것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텔레비전 네트워크를 통해 방송된 전쟁은, 마치 위생적으로 처리된 공간에서, 인간을 대체하여 비인격적인 무기체계들간에 자웅을 겨루는 일종의 게임으로 묘사되었다. 따라서 미국이 치루는 전쟁은, 미국의 보통 시민들과는 관계가 없고, '외주'를 받은 전문가들이 수행하는 특화된 영역으로 간주되었다.

미국인들이 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것은 두 가지 믿음 때문이었다. 첫째는 미국의 군사 기술의 압도적 우월성 즉 스텔스폭격기와 순항미사일로 대변되는 미국의 첨단 군사력은 어떤 적이라도 완벽하게 제압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둘째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완벽한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감히 미국 '본토'
를 공격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물론 이러한 믿음은,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기 전, 세계의 대다수도 공유하고 있었다.)따라서 이 시기 동안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자신의 국가가 주도하는 국제적인 분쟁과 그 결과에 대해 - 다소 불편한 심기를 갖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도 있지만 - 철저히 무관심하였다. (미국의 어느 설문조사에서 '오늘날 미국이 당면한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에는 외교문제가 아예 순위에 오르지 못했으며, '미국이 당면한 외교문제는 무엇인가'라는 또다른 질문의 경우 1위는 "모른다"였다.) 그리고 미국의 주요 언론매체들은 이라크에서 계속
되는 폭격으로 인해 민간인 사상사들은 발생하지 않았는지, 그리고 미국의 경제제재로 인해 누가 어떤 고통을 받고 있는지에 대해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수단의 제약공장을 화학무기 생산기지로 오인하였던 순항미사일 공격이, 그 이후 백신 부족사태를 야기하지는 않았는지에 관해 이야기한 보도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때문에, 혹자는 이번 공격이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미국의 '무감각'에 대한 공격이라고 평했다. 자신들이 겪고 있는 치명적인 폭력에 비추어 볼 때, (완전히 비대칭적으로) 태평하기 짝이 없는 미국인들도 그 고통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알기를 바랬다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적 상흔과 '보복전쟁의 승리'라는 맹목

따라서, 이번 공격은 미국 본토가 항구적 '전장'의 일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강력히 시사한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에게 주는 정신적 타격은 역사상 초유가 될 것이다. 그리고 얼핏 보아도 이러한 종류의 공격을 100퍼센트 사전에 인지하여 막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닫는 순간. 그 압박감은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느냐는 문제는 향후 미국의 진로를 결정하는데 있어서 중대한 고비이다.하지만 대통령 부시를 필두로 하는 미국의 정책 결정자들은 '왜' 미국에 대한 증오가 누적되어 왔으며 이런 일이 발생하게 되었는가에 대해 결코 자문하지 않고 있다.(너무나도 당연하다!) 오히려 미국 정부가 보이는 일차적 반응은,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의 헤게모니에 무언가 균열이 발생하고 있다는 인상이 세계적 범위에서 각인될까 전전긍긍하는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의 압도적인 힘을 (과잉되게) 과시함으로써, 무너진 우상을 회복하고자 하는 심리가 집단적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핵)미사일, 항공모함전투단, 보병 및 기갑사단을 포함하는 지상군, 특수부대, 첩보전 등등 어떤 수단이라도 가능하다면 총동원하여, 가장 '스펙타클'한 전쟁의 승리를 연출하고 싶어할 것이다. 즉 '화려한' 공격에 상응하는 '화려한' 보복만이 무너진 자존심을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미국이 싸워야 할 대상은 '사막의 폭풍'과 같은 대규모 전쟁계획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즉 미국이 전쟁을 펼치고자 하는 빈 라덴과 그와 연루된 느슨한 범지역적 네트워크 조직은 어떤 '정부'가 아니다. 따라서 이라크와 같이 분명하고 고정된 목표물을 갖지도 않는다. 펜타곤과 같은 지휘통제본부도, 대규모 군사시설도, 정보기관도 없으며, 발전소나 방송국과 같은 주요시설도 없다. 미국이 아무리 공중폭격을 통해 전략적 타격을 가하고 싶다고 해도, 뚜렷한 대상이 없다는 말이다. 또한 아프카니스탄은 빈 라덴을 직접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어떤 재정지원이나 병참지원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프카니스탄 전역을 대상으로 하는 공중폭격도 라덴 및 그와 연루된 조직들을 직접적으로 약화시키는 것과는 상관이 없다는 점을 가리킨다. (이는 또한 관련 조직들이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이 아닌 이상, 아프카니스탄에 대한 공습이 시작될 시에 제2, 제3의 보복 테러가 재발할 수 있다는 점도 가리킨다.)

이처럼 미국이 처한 현실적 악조건들과 전쟁이 갖는 고유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미국 정부는 전쟁시나리오에 관해 선뜻 결정을 내리지는 못하고 있다. (9월 11일 이후 1주일 이상이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 이렇다하게 확정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미국은 빈 라덴을 '죽이거나 생포한다'는 것을 이번 전쟁의 승리를 판가름하는 1차적 잣대로 스스로 설정하고, 이를 호언장담하고 있는 이상, 극한적인 상황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여러 악조건들로 인해, 현재 미국은 아프카니스탄 정부를 압박하는 간접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그러나 아프카니스
탄이 신병 인도를 최종적으로 거부할 경우, 미국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외길 수순뿐이다. 일단은 특수부대를 이용한 군사작전을 시도하겠지만, 이것이 소기의 성과를 얻지 못할 겨우 지상군 투입으로의 확대는 예정된 결과가 될 것이다. (실제 미국이 아프카니스탄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고 직접적인 수색 활동을 하지 않으면 단시일 내에 신병을 확보하기 힘들 것이라는 말이다.).


중동에 대한 미국의 집착과 범세계적 '공안정국'

한편 미국의 군사적 대응방향이 이와 같이 가닥이 잡혀간다는 것은, 미국이 중동지역에서 점하고 있던 기존의 패권에 대한 집착이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말과 동일하다. 미국의 채취산업(석유, 가스, 광산, 목재 등) 부문의 자본가들이 강력한 부시 지지자들이라는 점에서 볼 때, 현 정권이 중동지역에서의 이해관계에 더욱 민감할 것이라는 점도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중동지역에 대한 미국의 집착은 역사를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 미국의 對중동전략의 자연스러운 연장이다.

중동과 미국의 오랜 적대관계는 크게 세 가지의 역사적·정치적 이유들에 기인한다. 미국 정치권에 대한 유대계 미국인들의 압력, 중동의 엄청난 양의 석유자원, 그리고 냉전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이스라엘 문제를 양도받을 때, 미국이 갈등했던 것은 분명 사실이다. 당연하게도, 중동지역에 유대국가의 건설이
가져올 엄청난 분쟁과 충돌을 미국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미 미국 정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주로 정치자금의 문제와 관련되었다) 막대한 부를 소유한 유대계 미국인들의 요구를 결코 회피할 수 없었다. 또 한편, 미국으로서는 중동의 엄청난 양의 석유자원에 대한 강력한 지배권을 갖기 위해서는 유력한 거점이 필요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헌신적인' 지원은 사실 이러한 거점을 유지하기 위함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냉전이라는 세계적 조건 속에서, 주요 산유국들이 소련의 영향 하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군사쿠데타 및 왕정 복고를 지원하고 이를 통해 중동 내의 친미국가들을 확보해갔다. 빈 라덴의 출생지인 사우디아라비아는 그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사우디는 지금까지 확인된 세계 석유보유량의 1/4을 소유하고 있는바, 사우디는 서방세계의 저렴하고 풍부한 주유소 역할을 해왔다.) 이 사우디와 미국과의 관계는 1945년 양국간의 정치적 합의로부터 출발했다. 이 합의의 골자는 사우디의 석유에 대한 무제한적이고 영구적인 접근을 허용해주면, 미국은 사우디 왕족을 내외부의 적들로부터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란 혁명이나 이라크의 쿠웨이트 공격이 사우디 왕정의 위기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미국은 군사력의 사용을 불사해 왔다. 또한 1981년 사우디 내부 반란의 경우에도 왕정 수호에 전력을 다했다. (레이건 왈, "우리는 사우디가 이란과 같이 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개과정은, 결국 '이스라엘 편향'과 '사우디 편향'이라는 미국의 對중동정책의 근간을 형성해 왔다. 또한, 그 결과 미국의 중동개입은 제반의 개혁운동 및 이슬람 부흥운동을 좌초시켰다.

이번 공격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보복 의사 속에서, 아랍권 국가들은 극도로 위축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아랍권 국가들의 집단적인 반발이 없을 것이라고는 단언할 수 없다. 이는 기본적으로 중동지역에서의 모순과 갈등구조 자체는 변한게 없기 때문이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하여 몰아닥칠 범세계적 차원의 '공안정국'은
반발을 불러일으킬 공산이 크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이스라엘은 사건 발생 직후, 미국의 응징 방침을 지지하는 수준을 넘어서, "팔레스타인의 테러 근거지도 없애야 한다"며 대대적인 공격에 나섰다. 이스라엘은 테러사건이 일어난 직후 요르단
강 서안의 팔레스타인 자치도시들에 탱크와 병력을 투입했고, 15∼16일에도 다시 공격을 감행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죽거나 다쳤다.) 이처럼, 이번 사건을 오히려 '호재'로 삼아서, 강경 드라이브를 걸려고 하는 이스라엘 측의 의도는 아랍권에서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미국은 아랍의 여러 국가들을 차례차례로 테러 비호국으로 지목하여 전반적인 공포분위기를 유도하거나, 각각의 국가들에 거점을 두고 있는 조직들의 소탕 작전에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을 요구하면서 강압적 분위기를 조성할 가능성도 매우 크다. 결국 이는 아랍권 국가들의
인내의 한계선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위험: 이제 미국에게 '승리'란 있을 수 없다

테러 사건 직후, 미국의 대응방향의 큰 기조는 '피의 보복'으로 신속히 결정되었다. 미국은 그 결과가 '상처뿐인 승리'가 될지라도, 관성에 따라 앞으로 돌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자초하였다. 따라서 이제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사태의 양상이 전개되더라도, 미국은 깊은 수렁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된 것이다. 특히 현재 미국이 계획하는 '테러와의 전쟁'에서는 승리가 존재할 수 없는 여러 이유가 있다.

첫째, 미국은 전쟁의 초점이 빈 라덴을 '죽이거나 생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이 상황의 종료와 전쟁의 승리를 의미하는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보도에 따르면 빈 라덴은 느슨한 네트워크의 재정적 후원자이자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할 뿐, 각각의 조직을 구체적으로 '지도'하는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이번 테러 사건도 빈 라덴의 직접적인 사주가 있었는지도 불확실하다. (단지 빈 라덴의 궐석재판 하루 전날 벌어졌다는 점에서, 그를 추앙하는 집단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의혹이 존재할 뿐이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빈 라덴이 죽거나 생포되어
도 미국 영토가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기화로 하여 상황이 확대될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미국의 불운한 현실이다.

둘째, 이번 사건을 계기로 미국 영토가 여러 형태의 테러에 대해 극히 취약하다는 점이 세계적으로 각인되었다. 일례로, 오늘날 미국이 국경통제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수많은 인구와 상품들이 매일마다 3700개의 정류장과 301개의 항구를 통 미국을 드나들며, 전국적으로 일년간 약 1640만대의 트럭 및 500만개의 컨테이너가 미국 내에 진입한다. 이를 제대로 검색하기 위해서는, 약 12미터에 달하는 하나의 컨테이너의 경우, 최소한 5명의 인원이 3시간 동안 검색해야 한다. 그러나 운송이 정체될 경우 들어가는 비용은 너무나도 크기 때문에, 결국 한대의 트럭을 검색하는
데 투여될 수 있는 시간은 고작 16초∼20초 사이 뿐이다. 미국 영토가 일종의 전장(戰場)이 되어 중심없는 공격에 직면하게 된다면, 현재까지 미국을 지탱해 온 사회시스템 전체가 유지될 수 없다.

셋째, 분명히 테러는 그 집단의 정치적 무능력의 결과이지만, 동시에 정치·군사적 약자의 수단이기 때문에 반복적으로 출현하게 된다. 따라서 이는 일단 개시된 테러 공격은 항구화, 영속화될 공산이 크다. 결국 테러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집단에게 승리란 불가능하지만, 역으로 그것을 막는 입장에서도 완벽한 승리는 불가능하다. 단지 쌍방간의 정치적 역량의 소진과 그 전쟁터의 황폐화만을 부추길 뿐이다.

하지만, 미국이 결국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이번 전쟁의 기술적 특징 때문이 아니다. 마치 영국이 자국의 헤게모니의 쇠퇴기에 자원 약탈을 위해 벌였던 보어전쟁이 그들의 잔인성과 추악함을 드러내주는 계기가 되었듯이, 이번 미국의 보복전쟁 시도의 결과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걸프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잔인무도한 군사적 수단 외에는 동원할게 바닥나 버렸다는 사실이 드러날 때, 그것은 정치적 패배를 자인하는 꼴이 될 것이다. 또한 미국은 이번 전쟁을 '성전'(지하드가 아니라 십자군성전-crusade)으로 묘사하기 위해, 세계적인 차원에서의
인종주의를 자극하고 있다. 특정 인종에 대한 공격은 곧 특정 문명에 대한 공격을 의미하며, 이는 미국이 자랑하는 민주주의의 기본 이념을 스스로 잠식하는 효과를 발휘하게 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이미 발생하고 있는 아랍계에 대한 통제되지 않는 무차별적 공격 행위는 그것의 매우 위험한 전조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결코 승리할 수 없는 전쟁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모든 인류에 대한 단말마적 테러행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