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Before & After-방용석 노동부장관]장관되면 세상도 달라진다?

오진아 dodani@kdlpnews.org
"산업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한 경험이 있고 국회의원으로서 노동행정에 어느 정도 식견과 소신이 있던 터라 이 자리가 부담이 되면서도 그렇게 생소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방용석 노동부장관이 지난 2월 28일 장관 취임 한달을 맞아 기자들 앞에서 밝힌 소감이다.

70년대 원풍모방 시절 "군경유가족뿐만 아니라 국가 경제 발전을 위해 몸 바쳐 일한 노동자들도 국가유공자"라던 방용석 '지부장'은 1996년 국민회의(현 민주당) 전국구 의원으로 당선, "30여년 가까운 기간동안 노동운동권에 있다가 국회의원이 되고 나니까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는" 것을 느끼고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했다.

특히 국정감사에서 그의 활약은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의원들 가운데서도 돋보였다. 그는 야당시절은 물론 여당이 되고 나서도 노동부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발언을 하는 의원이었다. 그래서 국감 때만 되면 의원회관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자기 사업장 문제를 제기해달라는 노동자들로 문턱이 닿을 정도였다.

그는 97년 삼미특수강 해고자들 문제가 해결기미를 보이지 않자 노동부장관에게 "'대법원의 판결이 날 때까지 유보하자' 어떻게 이것이 정부가 할 수 있는 얘기냐"며 "노동부가 어떻게 하든지 매듭을 지어야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이유도 알 수 없다"고 따졌다.

그런 그가 장관이 된 지금, 삼미특수강 해고자들은 대법원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전히 복직되지 못한 채 생계를 위해 공사판을 전전하고 있다.

또 당시 정부가 공무원들의 노조 결성을 반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 "노동조합을 인정하게 되면 근로기준법 등을 통해서 공무원들의 대우가 상승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러는 것이 아닌가"라고 꼬집었던 그였지만 올 3월 공무원노조 결성식이 열리고 있던 고려대에 경찰력을 투입, 총회를 무산시키려 했다. '불법단체 결성'을 이유로 공무원노조 간부들은 현재 수배신세가 되어 있다.

IMF로 인해 실업자들이 거리에 쏟아져나오고 있던 98년 "정부의 백화점식 실업대책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질책했던 그였지만 노동부장관이 된 후 그가 내놓은 실업대책, 비정규직 대책 등도 전직 장관들이 내놓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99년 "과거 노동정책에 대한 솔직한 자기반성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 그토록 비판받아왔던 (정부주도의)노사평화선언운동이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라던 그는 지금 "월드컵을 맞아 노사자율로 노사평화선언을 추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 나가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난 2월 있었던 철도, 가스, 발전 등 3사노조가 파업에 들어가자 방 장관은 "민영화 관련법안이 이미 국회에 제출되었거나 통과되어 정부의 손을 떠난 현 시점에서 민영화 철회는 불가"하다며 '민영화만이 살길'이라는 김대중 정부의 철학을 고스란히 '계승'했다.

그는 또 장관은 '국가기간산업인 발전소를 해외에 매각하려는 것은 국부유출의 문제'라는 발전노동자들의 주장을 "이념을 앞세우고 투쟁하는"(노동부장관 호소문) "주장만 있고 현실적인 해결의 가능성을 전혀 무시한 운동권"(월간 말 4월호 인터뷰)의 주장으로 몰아세웠다.

"배고프고 억울하고 서러워"서 노동운동을 했다는 그는 이제 "조금 더 경쟁력을 갖춰야 하는 측면에선 노동강도가 조금 높아질 수도 있고, 인력조절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84호] 4.22 ~ 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