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招魂) - 그녀들의 넋을 위로하며

하월곡동 성매매업소 집결지 화재참사 희생자 49재 열려

넋이여 혼들이시여!/
그대들의 억울하고 원통함/ 세상 사람들 모두모두 잊지 않고/
그대들의 가슴에 꽂힌 원한, 고통 다 풀어 가리니/
돈 세상, 여성 억압하는 세상 다 부수고/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들어 갈지니/


하월곡동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제 열려

늦은 네시, 주말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 가운데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라는 검은 플래카드가 펼쳐졌다. ‘근조’가 쓰여진 만장들이 그 뒤에 세워졌다.

14일은 지난 3월 27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업소 집결지에서 일어난 화재로 5명의 여성이 희생당한지 49일이 되는 날이다. 자립지지공동체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유가족들의 공동주최로 그녀들의 넋을 위로하는 추모제가 마련되었다.

“고독하고 외로움 속에서 살다 자유를 얻기도 전에 가버린 언니들이여”

추모제는 전북성매매여성인권센터 동료활동가의 추도사로 시작되었다. 활동가는 “저 역시 언니들처럼 성매매에 강요당하고 지내왔던 피해 여성이었기에 더욱 더 억울함과 분노를 토합니다”라고 말문을 열었고 “그 곳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마지막으로 언니들이 지내왔던 어둡고 무서운 곳이 아니라 생각하고, 그 곳에서나마 언니들이 그 동안 못다 한 웃음과 자유를 한없이 누리고 살길 바랍니다”며 추도사를 이어갔다.

또 “아직도 그 곳에서 외롭고 고독한 언니들을 위해 성매매의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언니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더 이상 여성들의 인권이 짓밟히지 않는 자유의 사회를 위해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라는 말로 추도사를 마쳤다.

공대위, 서울지법에 화재현장 증거보존 신청

이어 김미령 자립지지공동체 대표가 장례식 이후의 경과보고를 했다. 김미령 대표는 “사실 우리 모두가 장례식을 마치고서 지독한 공황 상태에 빠졌었다”며 “더 이상 어떤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변화하지 않는 현실 앞에서 절망했었다”고 힘든 심정을 토로했다.
“이제 추스르고 일어서서 남아있는 싸움을 계속해야 한다”며 말을 이은 김미령 대표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여성위원회에서 이번 소송을 맡아주기로 해서 앞으로의 법적대응을 준비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현재 공동대책위는 법적 대응의 시작으로서 화재현장 증거보존을 위해 서울지법에 증거보존을 신청한 상태다. 여성단체들은 관할 지역 공무원과 경찰의 유착관계와 감금 등의 여부에 관한 추가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경찰은 이에 묵묵부답이다. 김미령 대표는 “더 철저한 진상규명을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원통하고 애통한 한 누가 다 풀어줄꼬”

대구여성회부설 성매매인권지원센터의 추모시 낭송이 이어졌다.
“…선불금에 매여 발목 잡혀 오도가도 못 하고/ 남자세상 돈 세상에 상품으로 팔려 다니다가/ 무섭고 무서울 불길에 휩싸여/ 이 세상 끝내고 딴 세상으로 떠났으니/
애닯고 원통하기 그지없어라”
“…지금도 하월곡동 불탄 자리엔/ 검은 그을음이 지켜보고 있는데/
아직도 수백, 수만의 딸들이/ 붉은 등 아래 앉아있는데,/
포주 업주 사흘이 멀다 하고/ 불탄 흔적 지우라 아우성이니/
불쌍하고 원통한 넋들 혼들/ 어이 편히 세상 떠날까.
높은 자리 앉은 양반/ 뒷짐만 지고 있는데/
원통하고 애통한 우리 한/ 누가 다 풀어줄꼬…“

추모시가 낭송되는 동안 곳곳에서 터진 울음은 이어진 율녀춤 전통무용가 이귀선 선생님의 진혼살풀이춤에서도 계속됐다. 추모제가 진행되는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던 한 분이 나와 마이크를 잡았다. 유가족 대표의 인사 순서였다.

유가족 대표는 울음을 삼키며 “두 번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참혹한 일이지만, 불쌍하게 죽어간 우리 애들 영혼 달래주고 싶어서 이 자리에 섰다”고 입을 열었다. “다시는 이런 비참하고 불행한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정부와 공무원들의 철저한 조사를 통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그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추모제는 철저한 진상규명과 실질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성명서 낭독으로 마무리됐고, 참가자들은 플래카드와 만장을 앞세워 혜화동로터리를 지나 다시 마로니에 공원까지 행진했다.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업소 집결지 화재참사 관련 성명서

하월곡동 성매매업소 집결지 화재참사 희생자 49제를 맞아 여성인권이 보호되는 성매매 없는 세상을 이루기 위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실질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한다!

지난 3월 27일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88번지 성매매업소 집결지에서 일어난 화재로 5명의 여성이 희생당한지 오늘로 49일이 되었다. 화재발생 이후 유가족과 여성단체들은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에 대한 처벌,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촉구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 등을 요구해왔다.

이 땅에서 더 이상의 희생이 없기를 바라며 장례식 이후에도 공동대책위원회와 유가족들은 경찰의 미흡한 수사에 강력 항의하였고, 감금과 감시나 직무유기와 유착 등에 대한 의혹을 새롭게 제기하며 수사당국에 철저한 진상규명을 계속 촉구해왔다. 그러나 49일이 지난 오늘까지도 납득할 만한 진상규명이나 재발방지 대책이 없이 형식적인 대응으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관계당국에 대해 우리는 분노한다.

이에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49제를 맞이하여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 이와 같은 참사가 재발하지 않도록 성매매 없는 세상 만들기에 힘을 모을 것을 다짐하며, 수사당국은 물론 서울시와 성북구청, 소방당국이 유가족과 국민 앞에 사과하고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줄 것을 다시 한 번 강력히 촉구한다.

이제 더 이상 성매매로 인하여 여성들의 인권이 유린되고 성적착취를 당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성매매 문제해결에 앞장서 나갈 것이며, 성매매알선등행위의처벌에관한법률이 강력히 집행되고, 피해여성을 위한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의 보호지원 대책을 제대로 실천하여 성산업이 발붙이지 못하도록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 49일을 맞이한 오늘 이 자리에 모인 우리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 하월곡동 화재사건의 진상을 명확히 규명하고 관련자를 엄중 처벌하라!
- 실질적인 재발 방지대책을 마련하라!
- 성매매를 근절하고 여성들의 인권을 보호하라!
- 성매매 피해여성들을 위한 종합지원대책을 마련하라!

2005년 5월 14일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 성매매업소집결지 화재참사 희생자 추모제 참가자 일동
태그

성매매 , 추모제 , 하월곡동 , 화재참사 , 49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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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금치

    이번 미아리 화재참사의 진정한 범인은 성특법을 도입한 권력자들이다. 그들은 국가기관을 장악하여 ‘힘있는’ 자들 위주의 법과 제도를 만들고 ‘힘없는’ 국민들을 사지(死地)에 방치했다. 정상적인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며 성매매의 사회적 여건을 조장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권력자들은 재산을 수십억씩 증식하고 있으나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은 공부도 할 수 없고 병원에도 갈 수 없는 처지에 있다. 사회는 불안하여 인구는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인구감소도 다름 아닌 권력자들의 치적이다.

    그들이 조장한 것을 야만스런 폭력으로 다스려 자신들의 추악한 실정(失政)을 덮고 권력자 개인으로서는 보람과 명예를 찾으려는 것이 이번 성특법의 근본의도이다. 아니면 단속과 처벌은 사회를 더욱 어둡게 하고 이번 성특법 역시 사회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증폭시키게 되리라는 것을 모르는 무지의 소치이다. 아니면 성특법을 조항만 만들어 놓고 철저하게 이행하지 않은 씻을 수 없는 태만의 결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아리 참사의 범인들인 지금도 자신들의 정당성에 도취하여 더욱 큰 폭력과 처벌수단을 강구하며 그들만의 업적을 미화하고 확대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반면에 이번 미아리의 희생자들은, 생존해 있거나 유명을 달리 했거나, 다시 한번 권력자들로부터 인간의 기본적인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재산과 생명과 명예를 모두 잃어야 했다.

    이번 미아리에서 산화한 영령들이여, 이 땅의 권력자들은 그대들을 정죄하고 저버렸으나 아직도 ‘힘없는’ 수많은, 어질고 착한, 그래서 권력자들에게 저항 한번 하지 않는, 할 줄도 모르는 보통 사람들, 서민들이 그대들을 인정하며 사랑하며 삼가 명복을 빌고 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