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인터넷실명제를 거론하고 적극 추진하겠다고 나온 것은 새삼스럽지 않으나 기자가 축구까지 들먹이며 지금의 난국을 설명하려 하는 까닭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팽팽했던 찬반 여론이 찬성 우세로 상황 역전, 이대로 종료되지는 않을까하는 조바심마저 들기 때문이다. 또 아이러니한 것은 지난해의 경우 ‘선거 관련 게시판에서의 실명제’였다면 이번은 그보다 확대되고 포괄된 개념의 ‘인터넷실명제’라는 것. '여우 피하고 났더니 호랑이 만난 격'이라고 당최 ‘인터넷’실명제라 함은 그 범위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너무 광범위하지 않은가!
그러나 시민사회단체의 대응은 미흡하고, 언론은 정부의 입장만 나열하며, “개악”이라고 열을 올리던 ‘열린모당’은 “이제 인터넷에서 재미 볼 것 없다”며 적극 선동하고 나섰다. 이에 호도된 여론마저 찬성으로 돌아선 상황, ‘인터넷실명제’는 이러한 시류를 타고 긴 생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 난국에서 시민사회단체가 신속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야속함을 품고 김정우 진보네트워크센터 활동가를 만났다. 김정우 활동가는 우선 흔들리고 있는 여론에 대해 “핵심적인 문제점에 대한 분석은 뒤로 한 채 단지 실명제를 도입해야 하는가 아닌가의 이분법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점은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김정우 활동가는 또 “지난해 경우 ‘실명제’를 법안에 삽입이라도 했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어떤 방식의 인터넷실명제인지’, ‘어떻게 인터넷실명제를 도입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 상을 제시하지 않은 채 추진하겠다는 입장만 나오는 상황에서 시민사회단체는 어떤 방식으로 대응해 나갈지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이버폭력 예방을 위한 교육과 캠페인을 벌여나가고 사이버폭력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핫라인 개설 등을 사회적으로 공론화시켜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결국 정부는 시민사회단체의 눈치를 살피며 ‘본인확인우대제’ 등 일련의 정책으로 찔러보고 있고, 시민사회단체는 정부가 구체적 상을 제시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지난 2003년 선거법 개정과 관련하여 인터넷실명제 논쟁이 불붙으면서 2004년에는 선거법 개정안에 ‘선거 관련 게시판에서 실명제 도입’하는 내용이 삽입되어 통과되었습니다. 그러나 2005년은 다른 국면입니다. 지난 2004년과 2005년 인터넷실명제논의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그러나 그때나 지금이나 일관된 맥락이 있는데요. 인터넷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는 사이버폭력 등의 근본적인 원인을 익명성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명제를 도입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이버폭력의 원인은 익명성 이외에도 다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근본적인 연구와 검토가 필요합니다. 과거 PC 통신 시절에는 실명을 통한 개인인증을 하지 않으면 아예 접속조차 할 수 없었는데요. 그때도 사이버폭력은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대부분의 사이트들이 이미 실명제를 도입해서 개인 인증절차를 거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폭력은 줄어들고 있지 않죠. 이런 상황에서 실명제를 강제적으로 도입한다는 것은 실효성의 문제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그래서인지 여론 또한 지난해와 양상이 사뭇 다릅니다. 지난번에는 선거관련, 유권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표현할 권리를 침해한다는 여론이 있었던 반면, 이번 인터넷실명제 논의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개똥녀'사건 등 자신도 사이버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우려로 인해 여론조사결과 80%까지 인터넷실명제 찬성으로 돌아서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여론이 호도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데.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신중하게 검토해야 합니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한 여성에 대한 사이버 폭력 사건(소위 개똥녀 사건)'의 경우에도 인터넷의 익명성이 그 원인이라고 보기 힘듭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사이버 폭력에 노출이 된 것은 본인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신의 얼굴을 포함한 사진 등 개인정보가 인터넷 상에 올려졌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지적되어야 할 문제는 인터넷 기업들이 자신들의 이윤추구를 위해서 과도하게 개인정보를 수집한 것입니다. 여기에 네티즌들의 프라이버시권에 대한 인식의 부재가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함께하는 시민행동'의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미니 홈피 등을 통한 개인정보의 노출은 특정 개인과 그 지인들이 사이버 폭력에 노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고 있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싸이월드는 기업의 이윤추구 목적에 희생되어 실명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싸이월드의 미니홈피를 통해 자신의 개인 정보 및 인맥 등은 고스란히 노출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사이버폭력의 대표적인 사례로 보도되고 있는 ‘연예인X파일’ 사건의 경우 한 회사가 연예인들의 민감한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수집하고, 그 정보들을 인터넷에 유출시킨 것으로 인해서 발생한 사건입니다. 또한 ‘트위스트김’ 사건의 경우도 인터넷 포르노사업자가 개인의 별칭을 도용한 것이 직접적인 문제의 원인이지, 네티즌들의 익명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건입니다. 상황이 이럴진대 사이버폭력의 원인을 익명성으로만 한정해서 보는 것은 근거없는 주장이며, 오히려 익명성에 대한 ‘마녀사냥’인 것입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포털 사이트의 여론조사는 상황에 대한 핵심적인 문제점에 대한 분석은 뒤로 한 채 단지 실명제를 도입해야 하는가 아닌가의 이분법적인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설문조사는 여론을 더욱 왜곡시킬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현 정부의 핵심논리는 '익명성'입니다. 익명성이 오히려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그렇다면 사이버 폭력은 진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정치적 표현의 자유의 핵심은 비판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며, 비판의 자유는 익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보장되어야 비로소 완전해집니다.
그리고 사이버 폭력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척박한 토론문화, 상대방에 대한 자기표현방식의 미숙함에서 시작해서 인권에 대한 감수성의 부재, 여성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무시, 국가주의에 기반한 폭력성 등이 자리 잡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실명제, 어떤 문제를 안고 있습니까?
인터넷실명제가 아니라면 점차 증가되고 있는 사이버 폭력은 어떻게 예방하고 규제해야 합니까?
사이버 폭력은 잘못된 것이며, 이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실명제의 도입을 통해서 해결하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일단, 사이버 폭력이나 명예훼손 등에 대해서는 이미 현행법으로 규제가 충분히 가능합니다. 포털 사이트 등에서 일정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도 있습니다.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자발적인 운영원칙을 세울 수도 있으며, 사이버 폭력이 발생할 시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핫라인의 개설 등도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시간이 걸리더라도 인권과 관련한 교육과 캠페인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한 차원 높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