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시장'에 대한 통쾌한 승리, '문화다양성'

유네스코, 압도적 표차로 협약문 채택, 이례적인 '미국' 왕따 현상도

'시장'과 '반시장'의 대결에서 '시장화를 반대'하는 주장이 압도적인 승리를 이뤘다. 유엔교육과학문화기구(유네스코)는 20일(현지시각) '문화콘텐츠와예술적표현의다양성보호협약(문화다양성협약)'을 압도적 표차로 채택했다. 154개국 대표가 참석한 이날 총회에서 참가국들은 찬성 148, 반대 2, 기권 4로 문화다양성 협약을 '국제협약'으로 채택했다. 나아가 이는 WTO 무역 체제에 '파열구를 내는' 동반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표결 결과 탈퇴 19년 만에 2003년 유네스코에 복귀하며, 문화다양성협약 채택을 강력히 반대해 온 미국은 국제 회의 역사상 유례없는 '왕따'신세가 됐다.

양기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사무처장은 이번 협약채택에 대해 "WTO가 문화의 영역을 시장화, 사유화 하려는 것을 저지 시킨 것으로 더 이상 WTO, FTA 등 국제 협상에서 '문화를 일반 상품과 똑같이 취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 쾌거"라 평가했다. 또한 "이런 협약들이 더욱 많아진다면, 교육, 보건, 의료 등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될 공공 영역들의 싸움에서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의의를 뒀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유네스코 총회에 앞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각국 대표들에게 서한을 보내 "협약이 채택되면 세계무역기구(WTO)의 무역 자유화 진전을 막고,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제한하는데 남용될 수 있다"며 '협약안이 자유 통상 원칙을 어기는 무역장벽이 된다'고, 사실상 반대의 압력을 공공연하게 행사했다. 또한 이번 총회에도 미국은 28개 항목 각 각에 수정안을 제시하며 '협상 지연전'을 펼쳤으나 모두 기각되는 참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협약이 채택 됐다고 해서 바로 실질적 효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 이 협약은 최소 30개 국에서 비준되어야 국제 협약으로의 자격을 갖추게 된다. 또한 이 협약을 비준 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구속력을 발휘할 없는 한계도 있다. 이제 범국제적 협약이 채택됐으니 실질적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각국의 노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번 협약 채택은 헐리우드로 대표되는 상업자본과 문화 패권주의에 일침을 놓았다는 점, WTO 무역 체제의 예외 규정을 국제 협약의 합의로 이끌어 냈다는 것, 그리고 문화적 측면에서 다양한 지역, 토착, 특성적 문화들을 국제법적 차원에서 보호할 수 있는 범세계적 합의 규정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한 역사적 의의를 남길 것으로 보인다.

문화다양성과 WTO의 역관계

좀더 세부 내용을 살펴보면 이 문화다양성 협약은 각 국이 '문화 다양성 증진을 위한 규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고 문화적 표현들이 소멸 위기에 처한 상황에 따라 이를 보존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발동할 수 있게 했다. 또 개발도상국내 문화 산업의 강화, 개도국 예술가와 문화상품 및 서비스에 대한 특별 대우, 문화다양성 국제기금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규정했다.

또한 쟁점 중 하나였던 다른 국제협약과의 관계 설정에서도, 문화다양성 협약은 '이 협약이 다른 협약들에 종속되지 않음'을 분명히 했는데 이는 다른 국제협약의 의무를 이행 할 때 문화 다양성 협약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명시한 것이다. 그래서 다자무역체계로 전세계적인 패권을 자랑하는 WTO 무역체계에 예외 규정이 생긴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양기환 사무처장은 "이번 합의 결과가 특히 더 관심을 끄는 이유는 유네스코 회의에 정부기관들이 참여하는데, 역대 역사상 수 많은 협약 중에 미국이란 나라가 이처럼 철저히 왕따를 당하고 고립된 경우가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런 현상은 "세계 각국들도 미국의 일방적 문화 패권 주의와 일방주의가 세계적인 반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양기환 사무처장은 이번 협약은 "국내 문화적 측면에서보면 문화정책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뀔 것이다. 문화를 돈벌이 산업논리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공존과 교류를 통한 문화 영역들이 확대될 것이고, 또한 직접적으로 스크린쿼터 논란의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영화,방송,음반등 시청각 분야에 대한 시장화와 일원화 움직임을 저지하고 방송의 공공성 중요(항목 6조-당사국 권리 규정)보장을 장려하는 정책들도 나올 수 있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으로 인해 지원이 취약했던 순수예술 분야에도 '지원의 의무'가 강제되기 때문에 공공 영역에 대한 국가 지원이 더 확대 될 것"이라고 기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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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 문화다양성 , 양기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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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나가다

    헐드리우 -> 헐리우드가 아닐까요^^;;; 어쨌든 투쟁!